늙어서 만난 친구
오랫 만에 바닷가에서 ‘옥계 신선’을 만났다. 새로 친구가 된 팔십대의 심선생이다.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지만 오랫동안 알던 그 어떤 사람보다 친근한 느낌이다. 뒤늦게 만났어도 영혼이 교류되면 친구가 되나보다. 그와 근처의 카페로 가서 대화를 나누었다. 만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삶을 한 수씩 배우는 게 즐겁다.
“며칠 전 저에게 짧은 시를 보내셨죠. 황혼이 아름답다. 그런데 너무 짧다.라고 쓴 두 줄이던데.”
“저녁 무렵 바다에 스며드는 황혼을 보세요. 그 아름답고 신비로운 색조에 취해 보는 것 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있겠습니다. 부드럽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매일 밤하늘에 총총하게 빛나는 별을 보잖아요? 그 게 진정한 즐거움 아닐까요.
나보고 시골구석에 살면 문화생활을 못해서 어떻게 하느냐는 친구들이 있어요. 나는 그 말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꼭 예술의 전당에 가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어야 세련된 생활일까요? 저는 자연의 연주가 훨씬 좋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보아주는 사람의 것이죠.”
그는 퇴직을 하고 옥계 해변으로 온 후 시를 쓰고 있다.
“옥계 바닷가에서 어떻게 여생을 즐기십니까?”
인생의 마지막 여백을 어떤 아름다운 색깔로 칠하느냐가 내가 요즈음 궁금해하는 점이다. 그는 나에게 답을 해 줄 것 같았다.
“불교에 색성향미촉법이라는 게 있어요. 인간의 오감으로 세상을 즐기는 거죠. 저는 거기 따랐어요. 처음 작은 시골 집을 얻었을 때 마당의 빨갛고 노란 꽃들이 너무 눈을 즐겁게 해 줬어요. 전에 살던 사람이 조경사였대요. 거기 반해서 그 집을 바로 샀죠. 매일 차를 몰고 한 시간 정도의 짧은 여행을 합니다. 차창으로 밀려드는 아름다운 광경을 즐기죠.
다음은 피부로 느끼는 즐거움입니다. 온천을 찾아다녔죠. 그 다음은 맛집을 다녔습니다. 혀의 즐거움입니다.
공부가 즐겁고 성취감이 있습니다. 당나라 때 부터의 시를 익히고 외웠습니다. 지역의 학교에 할아버지 선생님이 되어 가서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쳤죠. 이따금씩 오랜 친구가 놀러 오기도 합니다. 지난 십오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어요. 공자님의 세 가지 낙도 다 즐깁니다.”
“어떻게 옥계 바닷가로 오게 됐어요? 원래부터 돈에 여유가 있으신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 은행에서 대리를 할 때 강릉지점에 근무한 적이 있어요. 강릉이 참 좋더라구요. 나이가 들면 다시 와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죠. 그러다가 오십 대에 비교적 일찍 퇴직을 했어요. 서울에 아파트와 퇴직금이 있었습니다. 그걸 가지고 나머지 인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먼저 전국을 돌면서 한 달 살아 보기를 했는데 홍천강가에서 이년을 살았어요. 경관이 수려하고 좋더라구요. 그런데 겨울이면 너무 추웠어요. 그리고 내 집이 아니니까 언제 나가라고 그럴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 다음으로 동해의 옥계 해변마을의 집을 사게 된 거죠. 가격이 얼마 되지 않았죠. 서울의 아파트가격과 차액으로 나머지 인생을 소박하게 살면 되겠구나 생각했죠. 남들은 내가 여유가 있는 걸로 오해하기도 하죠.”
“귀촌 한 입장이 되셨는데 어떤 애로사항이 있으셨어요?”
“처음에는 시골 마을에서 텃세가 있더라구요. 내가 키우던 개를 데리고 왔는데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들 집에도 다 개가 있으면서 말이죠. 저는 여기와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어요. 항상 우리집 문을 개방하고 마을사람 누구라도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게 했죠. 그리고 오는 사람마다 좋은 커피를 대접했어요. 그러면서 가까워졌죠.
귀촌해서 살면 절대 잘난 척 하면 안됩니다. 내가 못난 걸 보여야 그 사람들이 신이 나 하고 도와줍니다. 내가 일을 못하니까 와서 잡초도 뽑아주고 나무도 돌봐주고 그렇더라구요. 그건 자기네가 잘한다고 하면서 말이죠.”
“시골 사람들과 그렇게 어울리는데 문제가 없었나요?”
“살아온 삶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니까 소통은 사실 어렵죠. 어떤 사람은 놀러 와서도 입만 열면 쌍욕이 나오는데 조심스럽게 자제시켰죠. 귀촌해서 살면 역시 소통이 안되는 게 문제죠. 말이 통하고 영혼이 통하는 친구가 없다는 게 결정적인 아쉬움입니다.
하기야 중고등학교 동창도 수십년을 다른 생활을 해 오니까 가치관이 달라지고 환경이 다르니까 친구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죠.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났지만 엄 선생 같은 분이 훨씬 좋은 이웃이고 친구같이 생각됩니다.”
인간은 어디서 어떻게 살던 혼자 살든 군중 속에서 지내든 영혼을 교류하는 소통이 중요한 게 아닐까.
[출처] 늙어서 만난 친구|작성자 소소헌
첫댓글 5월 17일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뵙겠습니다.
장로님 권사님 고마워요
시간은.....?
@아굴라 이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12:30에 뵙겠습니다
저희들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점심드시고 서울보타닉가든 둘러볼 예정입니다
감사드립니다
@해 와 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