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한 병
주말 오후! 할머니 한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모님 계시면 잠깐 밖에 나왔다 들어 가세요”하시기에 마침 아내는 출타중이어서 제가 나갔습니다.
교회 마당에 계신 분은 1,5리터 병에 담긴 기름 한 병을 주시며, 김치를 챙겨주어서 너무 고마웠노라며 들기름을 드리려고 방금 짜서 부랴부랴 오는 길이라 하셨습니다.
어르신의 그 마음이 고마워서, “저희는 그리 많이 먹지 않으니 작은 병 만 주시라”하자 기어코 큰 병을 건네시며 신신당부 하십니다.
“다른 데로 주지 마시고 꼭 목사님 댁에서 드셔요. 정말요”하시는데 미덥지 않으신지 연신 말씀하시고는 가셨습니다.
주중에 교회 김장을 여러 교우분들의 협력과 섬김으로 마쳤습니다.
관내 마을에 홀로 사시는 남자 어르신들 몇 가정에 맛뵈기로 한통씩 드리며 또한 당일 수고하신 분들 가정에도 조금씩 맛보시라며 나누었습니다.
다음날인가 아내로부터 교우분 한 가정이 김장을 올해에는 담그시지 않는다며 조금더 갖다 드리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 해 한 해, 지나갈수록 기력이 쇠해지시는 어르신들의 입장에서는 이제 김장 담그는 것도 힘에 부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아내가 준비해 준 김장을 갖다 드린 것이 그분의 입장에서는 좋으셨던가 봅니다.
올해에는 예년과 달리 요상한 날씨의 영향으로 김장 배추가 잘 되지 않았고, 또 자제분들도 반대를 해서 김장을 포기하셨다 합니다.
교회 김장으로 조금 나눈 것인데, 어찌 보면 생색은 저희가 낸 것 같아서 무안했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들기름에 담아서 전해 주시는 모습을 뵈며 저의 마음도 따뜻해졌습니다.
이태 전이었던 가, 교회 공터에 들깨를 심었던 적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포기의 들깨를 심으며, 수확하면 교우들에게 박카스 병으로 한 병씩 들기름을 나누어야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습니다.
열심히 물을 주고 길렀더니 들깨 밭이 무성할 정도로 잘 되었습니다.
가을철에 기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들깨를 하나씩 털면서 깨달았습니다.
그것은“저의 계획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던가”를 말입니다.
부피가 제법 되었던 들깨를 수확했지만 알맹이를 다 모아도 한 되가 될까 말까한 모습에 낙심천만(落心千萬)이었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있기에 들기름 1,5리터를 수확하려면 한 방울에 담긴 구슬땀의 양이 가늠되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교우분의 기름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연상되어졌던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선지 생도의 아내인 한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기름 한 병으로 부채를 청산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던 놀라운 이적 이야기입니다.(열왕기하 4장)
소소한 나눔임에도 그것을 크게 여기고 한 해 동안 수고한 결실을 목회자 가정으로 흘러 보내 주시는 어르신의 귀한 섬김을 주님께서 귀히 여겨주시길 기도합니다.
나아가 제게는 엘리사처럼 갚아 줄 능력이 없지만, 순백한 믿음으로 섬기는 그분의 귀한 마음과 간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심연(深淵)의 탄원을 속히 응답해 주시기를 저 또한 기도할 뿐입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