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霜,상]
꽃 지고, 잎 지는
사소한 일, 문득 눈물겹다
껴입고 나선 바람막이 앞섶을 여미는데 손등 정맥이 파랗다
목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차다
하얗게 질린 담벽이 버겁고
미처 물들지 못한 담쟁이,
인동초 잎도 바스락 위태롭다
첫서리가 내리고
엄지손톱 만한 우박까지 덮쳤다
윤기와 탄력 잃어가는
가을걷이 끝난 들녁
밭둑 한켠 쓸모 없어진
쇠스랑처럼 녹슬어가는
처진 어깨 끌고 걷는 내 뒷모습
날숨이 내뱉는 흰 입김
꽃 지고 잎 지는 무심한 시간이 문득 안쓰럽다 쓸쓸하다
한 때 꽃 같았던 은유
반짝이던 기억 뿌연 시야처럼
안개인지 서리인지
흐릿해지는 순간 순간
감춰졌던 가슴팍속 목울대만
뭉클 울컥 역류한다 늙어가는 길
한평생 엇갈린 인연,
생을 송두리채 지우고 싶을때
비정한 서릿발도 숙명인 셈
소태나무같은 쓸개즙 슬픔에
가끔 강변에서 홀로 통곡하는 일
괜찮은 처방이다
온통 하얗게 질린 새벽
물안개 뿌연 혼미한 세상
온곳도 갈곳도 알수 없는
한점 풍경으로 남고 싶다
윤슬처럼 반짝이는 상고대
그 예쁜 소멸이 되고 싶다
2024.11.3 태허 박현일
청주미동산수목원 메타쉐콰이어단풍
카페 게시글
좋은글
霜,상 / 태허 박현일
아굴라
추천 1
조회 21
24.11.05 08:55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