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해보는 유언 한마디
이천이십사년이 사흘남은 날의 뉴스 화면은 동체착륙을 하다가 무안공항의 벽에 부딪친 제주항공 여객기의 사고로 검은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백칠십구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죽기 직전 탑승객 한 사람이 가족에게 ‘유언해야 하나’라는 안타까운 문자를 보낸 후 연락이 끊겼다는 보조기사도 있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분열되어 싸우던 정치권과 국민들의 마음과 눈이 사고로 죽은 사람들 쪽으로 옮겨졌다.
비행기를 타고 수천미터 밤하늘 상공을 흘러갈 때 문득문득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곤 했다. 짙은 구름 속에서 번개가 하늘을 가를 때였다. 비행기가 툭툭 떨어지며 몸서리를 칠 때 사람들은 겁을 먹었다. 아이고 하나님, 관세음보살하며 모두 기도를 드리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다시 안정된 고도를 잡고 편안히 갈 때 사람들은 모두 자기 얼굴로 돌아와 스테이크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우연성을 가진 죽음은 삶과 아주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 것 같았다. 자연 앞에서 비행기라는 인간의 작품은 흘러가는 강물위의 나뭇잎 한 장 정도인 것 같기도 하다.
지난해 실버타운에 있을 때 대한항공에서 삼십년 보잉기를 몰았다는 임기장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었다. 그는 일생을 하늘에서 살았다고 했다. 젊은 날 월남전에도 참전해서도 헬기를 조종했었다고 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기상 조건이 비행이 불가능한 날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명박 대통령후보를 모시고 급하게 양양공항으로 가라는 거예요. 그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었어요. 할 수 없이 비행기를 몰고 하늘로 올랐죠. 비행기가 앞으로 가는게 아니라 옆으로 떠밀려 흐르는 느낌이었어요. 난기류를 뚫고 대관령을 넘어가다가 위험에 맞닥뜨린 거예요.
비행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더라구요. 조종실 뒤의 좌석에서 이명박 대통령후보는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죠.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고 하나님’하는 기도밖에 없었어요.
하나님이 다행히 착륙을 시켜 주셨죠. 그 상황을 전혀 모르는 이명박 대통령후보는 늠름하게 가시더라구요. 평생 비행기를 조정하면서 잊혀 지지 않는 날이었어요. 비행기 사고의 뒤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우리 조종사들끼리만 아는 비밀이 있어요. 쉴새없이 비행기 운행을 하다 보니까 과로가 겹쳐 착륙지점을 착각한 경우도 있어요. 무리한 운행을 하다 보니 비행기를 정비할 틈이 없을 때도 많아요.
비행기가 땅에 있을 때는 정비사의 책임이고 공중에 떠있을 때는 기장의 책임이죠. 우리 기장들이 억울한 점이 많았어요. 회사에 호소해도 들은 척도 안할 때가 많았어요”
인간의 목숨이 수익 창출보다 못한 게 자본주의일 수 있다. 죽고 나도 한 생명이 전자계산기에 의해 금액으로 산출된다. 그게 살아있는 자의 시각으로 본 사고의 모습이다.
비행기가 시속 이백키로미터로 활주로를 미끄러지다가 공항 외벽에 부딪쳐 그 안의 승객이 거의 다 사망했다. 그런 순간 인간의 영혼은 어떤 상태일까. 그 비슷한 사고를 당했던 사람을 만났던 적이 있었다. 한밤중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앞에 차가 넘어져 있는 걸 모르고 그대로 추돌한 경우였다. 차가 완파되어 구겨진 종이같이 되었고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는 만신창이가 된 채 응급실로 실려 갔었다. 그는 그때부터 여섯달을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깨어났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고속도로를 무심히 운전해 가고 있었죠. 그러다 순간 멀리 길바닥에 넘어져 있는 차가 보였는데 내게는 슬라이드 영상같이 천천히 다가왔어요. 차가 부딪친다는 느낌은 받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 다음 순간도 나는 계속 운전대를 잡고 있었어요. 그런데 차창 밖을 보니까 하얀 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인 거예요.
내 차가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게 신기했죠. 그러다가 눈을 떴는데 내가 혼수상태로 육개월을 병원에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급격한 죽음의 경우 본인 자신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의식은 다른 세계를 구경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고가 난 비행기의 탑승객중 한사람이 ‘유언을 해야 하나?’라고 카톡 문자를 쓴 게 마음에 강하게 울림을 준다. 내가 그렇게 죽는다면 마지막에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유언을 할까.
나는 육이오 전쟁 말 농촌의 초가집 구석방에서 피난민의 아들로 혼자 세상에 나왔다.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인생의 사막을 낙타같이 한발 한발 걸어왔다. 죽음의 천사가 어느 때 와서 이제 가자고 할 지 모른다. 갈 때도 나 혼자서 어둠의 강을 건널 것 같다.
나는 유언장에 한마디를 쓴다면 뭘 써야 할까. 사랑했다고 할까. 그때 할 말을 지금 못하는 이유는 뭘까. 죽은 후에 내 뼈가루가 묻힌 마당 구석에 내가 좋아했던 보라색 들꽃을 심어달라고나 할까.
[출처] 미리 해보는 유언 한마디|작성자 소소헌
첫댓글 오늘은 무안 공항 참사로 인한 사망 외에도
유명인들의 사망 소식이 많다.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 등등.....
누구나 가는 길인데
가족의 찬송을 들으면서
하늘나라로 이사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