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소금과 꽃소금
내가 형님처럼 모시는 분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교회에서 만난 나보다 네살쯤 위인 분이다. 그분이 이런 말을 했다.
“형이 며칠 전에 갑자기 죽었어요. 건강했는데 아무리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도 칠십대를 넘기기가 쉽지 않은가 봐요. 나보다 두 살 윈데 죽은 형을 생각하고 많이 울었어요.”
칠십대인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의 남은 시간도 얼마 되지 않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영정사진 속에서 나를 보는 형을 보면서 울다가도 한편으로는 웃기도 했어요. 젊어서 사업을 하던 형은 부자예요. 이번에 백억원이 넘는 한강변 새 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이었거든요. 들어가서 하루도 살아보지 못하고 죽었어요. 소금같이 짠 형의 팔잔가봐요. 노인이 된 그 나이에도 신던 운동화를 꿰매고 또 꿰매서 신었다니까요. 옷도 한철에 두 벌씩만 두고 그걸 갈아입고 살았어요. 그런데 형님 상가에서 내가 울다가 웃은 이유는 거기서 형님 친구인 소금 삼총사를 보고서죠.”
“소금 삼총사라뇨?”
내가 되물었다.
“평생 형님하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 두 분이 있는데 이 분들도 돈이 많은 데 지독하게 짠 거예요. 우리 형님이 보통 소금이라고 하면 친구 중 한 분은 별명이 왕소금이예요. 친구들끼리 모여도 밥때가 되면 돈 쓰는 게 아깝다고 각자 집에 가자고 하는 분이죠. 다른 한 분은 꽃소금이예요. 자기를 위해서는 돈을 아껴도 가족한테는 쓰는 분이예요. 왕소금 꽃소금이 흰 소금인 형님 상가에 오신 거죠.”
나는 영정사진 속에 계신 흰 소금께서 왕소금과 꽃소금을 보고 뭐라고 했을까 궁금했다. 동전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빈손으로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나는 괜찮은 왕소금을 본 적이 있다.
대대로 한국 최고의 부자라는 소리를 들어온 집안의 손자였다. 그 집안은 조상부터 거의 다 왕소금 급이었다. 자신들을 위해서는 철저히 아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서 쓸 건 썼다. 그래서 명가소리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자손인 금융그룹 회장은 몇개의 은행과 계열 금융회사들을 경영하고 있었다. 우연히 그가 부인과 둘이서 나누는 얘기를 옆에서 들었던 적이 있다.
남편인 그가 말했다.
“요새는 죽으면 전부 화장장에 가서 바로 태워버리는데 그 수의값도 아까운 거 아니야? 내가 죽어서 화장장에 갈 때 수의를 입고 괜히 돈을 쓰기가 싫어. 그냥 팬티만 입고 갈거야.”
듣고 있던 회장부인이 말했다.
“그건 좋은 데 당신 저승에 가서는 조상님들을 만나뵐텐데 그래도 팬티차림은 좀 그렇잖아?”
“그건 그러네. 평소에 입던 낡은 청바지 정도는 입고 가야겠네.”
나는 부부의 얘기를 듣고 웃었다. 그래도 부부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대학생이었던 칠십년대 부부는 공장동네에서 야학을 하면서 그에 필요한 돈을 다 대고 직접 야학 선생도 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착한 이면을 알고 있었다.
평생을 작은 도시에서 의원을 한 의사가 있었다.
환자를 돌보면서 검소하게 살면서 돈이 조금씩 모아 지면 땅을 샀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두었던 땅이 금싸라기가 되어 엄청난 재산이 됐다. 노인이 된 의사는 죽기 전 자기의 모든 재산을 대학과 종교단체에 기부했다. 착한 딸이 상속받기를 사양하면서 아버지에게 기부를 권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녀는 성경속에서 예수가 되라고 한 세상의 소금인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동네 친구로 오랜 우정을 이어가는 부자 친구가 있다.
몇 천억의 재산이 있으면 부자가 맞을 것이다. 젊은시절부터 돈이 많았는데도 길거리 좌판에서 파는 싸구려 운동화를 사서 신고 다녔다. 옷도 등산용 조끼를 입고 다녔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분장하지 않고 치수 재지 않는 점이었다. 자신이 부자인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등을 밀다시피해서 가끔씩 기부하게 했다. 그럴 때 그는 “나는 돈이 너무 아까워”라고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냈다. 위선이 아닌 그의 정직성이 나는 좋았다.
부자인 그가 얼마 전 큰 수술을 받고 난 후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수술을 하고 나서 마음이 달라졌어. 그래서 내 빌딩 관리를 하는 분에게 몇 천만원 드렸지. 평소에 짜던 내가 그러니까 놀란 것 같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어. 갑자기 엎드려서 나에게 절을 하더라구.”
나는 속으로 그를 죽염이라고 분류했다.
소금이 불을 통과하면 죽염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죽염은 물과 잘 섞인다고 한다.
나와 친한 주변의 부자들을 보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그런 거리감이 있고 혐오스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먹고 입는 게 더 소박했다. 그들은 사회적 겸손이라는 게 뭔지를 알 고 있었다. 돈이 있다고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명품이나 사치품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우리 사회를 천민자본주의라고 폄하하지만 나는 부자들 속에서 청교도 정신을 종종 발견한다. 그런 정신이 우리나라를 세계 경제 대국으로 만든 건 아닐까. 가난한 집안 출신인 나는 전에는 색안경을 끼고 부자를 봤다. 관념과 사상으로 그들을 스크린 해서 봤다. 나이 칠십에야 겨우 꽃을 꽃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린 것 같다.
[출처] 왕소금과 꽃소금|작성자 소소헌
첫댓글 오래전 '하나님 엄상익입니다, 라는 책을 통해이분을 알게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자신에게 또 그를 아는 모든이에게 정직하고 진실하며 성실하신분이란 생각을 했지요, 소금처럼 녹으며 세상에 쓰여지는 귀한 분이심을 다시금 알겠습니다
난 소금의 역활을 하고는 있을까
하고 있다면? 하고싶은것은?
오!~~ 맛소금이 되고 싶어요
맛을내는 사람이요~~^^
이미 소금이시고 소금으로 살아가시는데요.
어두운 세상이 나 하나로 인해 좀 더 밝아지고
나 때문에 살 맛이 나는 세상이 된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