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분이 뭔가 영적 시도를 했을 때
이전과 다른 주님을 만나게 된다.
그런 식으로 최선을 다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한층 높여주는 때가 있다.
그런데 열심히 하다보면
고난이 있을 수 있는데
그 고난을 인내하고 하다보면
주님이 한 계급 올려주실 것이다.
어쩌든지 주님을 늘 갈망하라.
그러면 말씀 들을 때, 찬양할 때,
기도할 때 주님이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다.
단계, 단계 하다보면
왕적 영광의 위치까지 가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왕의 기름부음을 주옵소서.”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이
“나 대학 총장 시켜주세요.”와 같은 말이다.
은혜도 단계가 있다.
갑자기 ‘확’ 튀어 오르지 않는다.
은혜위에 은혜러라. 영광에서 영광으로,
일 천척, 이천 척, 삼천 척 하듯이
이런 것을 모르면 허황되게
강력한 기름부음, 능력을 원하는데
그렇게 안 해주신다.
뭘 몰라서 그런 것이다.
신의 성품에 들어가지 않으면
감당을 못해버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성품을 구하면 자연히
은혜와 능력은 오게 되어있다 거기에 임한다.
요셉도 13년을 기다리게 하셨다.
형제를 만나니 울정도의
아름다운 성품을 갖추게 하신다.
예전엔 누가 능력을 행한다. 부흥했다.
그걸 봤는데 지금은 그의 성품을 본다.
성품이 변화 안 되면 다 무너진다.
2
거칠고 욕심 많은데 불의 능력이 왔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망해버린다.
성도들이 무조건 영적인 기름부음이
좋은 줄 아는데 그걸로 변화 안 된다.
그렇게 불 받고, 뜨거워 데굴데굴 뒹굴었어도
며칠 지나보면 언제 그랬냐? 듯이
체험일 뿐이다. 한번 자극을 주는 것이다.
세계를 다니면서 그렇게 불 받았어도
변화 안 되니 계속 돌아다니잖아요.
변화되면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한 번의 불이 변화 시키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변화는 일생을 걸친다.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절대 고난 없이
인간은 인품과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
기독교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너무 정확하다. 막 구한다고
여러분 뜻대로 안주신다. 여러분이 하실 일은
그저 주님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다 알아서
그때그때 은혜를 주신다.
그 은혜에 빨리 접근하고 싶을 때
금식, 주기도문, 방언, 이런 방법이 있는데
그 정도까지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것도 큰 것은 아니다. 그것이
“주님! 제가 은혜를 사모합니다.” 그 표시이며
그것을 주님이 보시는 것이다.
“네가 진짜 은혜를 사모하는구나!”
3
주기도문은 한 시간에
120번 정도 할 수 있다.
기도 못하겠다고 안 해 버리니까
그걸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시편기도도 있고, 예수 기도도 있다.
“주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수도사들은 하루에 천 번, 이천 번도 했다.
한 시간에 720번 정도 할 수 있다.
“주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도 경배를 해봤는데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시여!
주님의 왕 되심 하나님 되심을 인하여
그 은혜에 감격하여 경배합니다.”
하루 7번 찬양한다고 해서
7번 공손히 하고 혹은
“주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밥 먹을 때도 예수 기도하고
주기도문도 하고 그러니 싫증이 안 나더라.
몇 번씩 섞어서 해보라.
그러면 쉬지 않고 기도가 된다.
“주여 성령 충만케 하옵소서.”
왜 입을 놀리나?
우리는 늘 그분께 열려있어야 한다.
찬양을 하든, 주기도문을 하든,
예수기도를 하시든 핸드폰을 늘 보듯이
끊임없이 주님과 교통을 하면
이 시대 은혜 안 주시겠어요?
“너는 전심으로 나를 향하는구나.”
그것이다.
아멘!
조호남 목
23. 2. 17 금요 밤 말씀
23. 2. 19 주일 낮 말씀 중
https://cafe.naver.com/bokmchurch/28498
카페 게시글
믿음의소리
몇 번씩 섞어서 해보라. 그러면 쉬지 않고 기도가 된다. 왜 입을 놀리나? 우리는 늘 그분께 열려있어야 한다.
천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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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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