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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래엔 한국사 원문보기 글쓴이: 史必歸正
1. 교과서 발행 제도 아주 복잡합니다.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 무엇이 다른가요?
국정 교과서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용 도서(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2조)”를 말합니다.
즉, 국정 교과서는 교육부가 교과서의 집필과 편찬은 물론 수정· 개편까지 교육부 장관의 뜻대로 이
루어질 수 있는 교과서입니다. 따라서 국정 교과서는 단 한권만이 발행되는 유일한 교과서이자 다양
한 학교현장의 상황에 맞추어 선택할 수 없는 독점적인 교과서입니다.
검정 교과서는 국가가 집필 기준과 심사 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여러 출판사가 그 기준에 맞
게 다양한 형태로 교과서를 만들어 국가의 심사를 받는 교과서입니다. 그 외에도 출판사가 만든 교
과용 도서가 기준에 맞을 경우 교과서로 인정하는 인정 교과서, 교과서 제작에 대한 자율 편집권을
출판사에 주는 자유 발행제가 있습니다. 검정과 인정, 자유 발행제의 공통점은 교과서를 집필한 필
자들이 저작권을 갖습니다.
2. 역사 교과서를 국가가 발행한다면 믿음이 갈 것 같은데, 국정 교과서 제도는 세계적으로 널리 운
영되는 제도가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국정 역사 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북한, 베트남 정도입니다. 우
리와 역사 갈등을 자주 겪고 있는 일본과 중국 역시 검정제입니다. 우리가 모델로 삼을 만한 주요
선진국 중에서 국정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대부분 검정제나 인정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오
히려 국가나 지방 정부가 일절 개입하지 않는 자유발행제가 OECD 주요 선진국에서는 확대되는 추
세입니다.
3. 국정 역사 교과서는 우리가 예전부터 써왔던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오히려 국정교과서 제도가 예외적입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조차 한국인 교육에 국
정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았고, 해방 이후에도 1974년 이전까지는 국정교과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
만, 유신이 끝나고 군사 독재가 소멸되면서 국정 교과서 제도는 단계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1982년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시작으로 하여 2002년에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검정화 되었고, 2007
교육과정에 맞춰 한국사 교과서가 최종적으로 검정제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국정 역사교과서
는 유신과 함께 등장하였다가, 군사독재가 소멸되면서 단계적으로 사라졌던 것입니다.
4. 그런데 왜 지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문제가 되고 있나요? 왜 잠잠하다가 갑자기 국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렇게 커졌을까요?
2013년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학사 교
과서는 수많은 오류로 부실함이 드러났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위험한 역사인식으로 검정에 합
격하기 어려운 교과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학사 교과서는 교육부의 ‘특혜 검정’과 ‘교학사
봐주기’ 논란 속에서 여러 차례 수정기회를 얻어 최종 검정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학사 교과서는 학교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 받았습니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일부 학교
에서도 채택 과정에서의 부당함이 드러나며 철회하는 등 교학사 교과서는 참담한 실패를 했던 것이
지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주장은 교학사 교과서의 참담한 실패 과정에서 본격화 되었습니다. 처음에
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에 관여했다 실패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었으나, 최근에는 집권 여당의 정치인
들과 일부 보수 언론이 가세하여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학교현장에서
철저히 외면 받은 특정한 역사인식을 국가의 힘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적 주장으로 읽혀 더욱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5.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국정제을 주장하는 이들은 보수진영에 많습니다. 그러나 정부 여당 안에도 국정은 아니라고 생각하
는 이들이 적지 않고, 중앙·동아를 비롯한 대다수 보수 언론도 사설을 통해 국정을 반대한 적이 있
습니다.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이들이 보수 중에서도 아주 일부이듯이, 국정 교과서를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보수 중에서도 일부입니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적극 주장하는 사람들은 친일과 독재 미화로 비판을 받고 있는 뉴라이트,
냉전 우익 세력(수구냉전세력)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유 민주주
의’로 얘기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자유 민주주의는 그저 공산주의(북한)에 반대하는 용어일 뿐, 스
스로 건설적인 전망도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만큼 북한과 공산 국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사람들, 나아가 분단 문제에 대해 자신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을 좌
경, 용공, 친북, 종북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악의적으로 비하합니다. 이들은 1950년대식의 극단적인
냉전 반공주의에 갇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2013년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하며, ‘교과서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한다’고 주장했
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한국사 교과서는 체제 수호의 수단으로서 체제와 국가를 긍정하는 교육을
담당해야 하며, 이를 위해 다양성이 아닌 획일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정도면 이들이 말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6. 북한과 대결하고 있는 분단국가라서, 국론 통일을 위해 국정제를 옹호하는 분이 많은데요.
국정을 주장하는 이들은 북한이 공산 독재 국가이고, 전체주의 정권이라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맞
는 말입니다. 또한 이들은 우리가 북한보다 성공한 것이 바로 자유 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북한을 따라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 발행 체제만은 북한을 닮자
고 주장하니 놀랄 일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내 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더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풍요
롭기 때문 아닐까요? 우리 사회가 진짜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라는 것을 온 국민이 알고 있기 때
문에 진짜 친북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가 왕따 되는 것 아닐까요? 민주주의 국가
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자신들이 결정한 일이니
까 책임 있게 참여하는 체제입니다. 그 많은 국민이 정부에서 주입하는 대로 생각하지도 않겠지만,
국가의 진정한 힘은 바로 얼마나 민주적으로 결정되었느냐 아닐까 싶습니다.
7. 아~ 역사논쟁이 너무 피곤해요. 그냥 좌우 학자들이 모여 중립적인 교과서 하나를 만드는 게 좋
지 않나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역사교과서를 놓고 정치권과 언론이 편을 갈라서 논란을 벌이고, 역사전쟁
이란 말까지 나오는 판국이니까요.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교과서 논란에 정치권이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학문의 자주성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신 때 만들어진 국정제도와 이 때 국사교과서의 역사인식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오래 그 체제가 유지되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학문 연구가 활발해지고 민
주화가 진행되니까 당연히 교과서 내용도 달라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허나 요즘 국정을 주장하는 분
들 상당수는 유신 때의 역사인식과 다르니까 좌편향이라 말하고, 시끄러우니까 그냥 국정으로 하자
고 말합니다.
교과서는 정치적으로 좌파와 우파가 적당히 타협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해서 널
리 통용되는 학설을 바탕으로 만드는 거지요. 그런데, 정치 운동하던 이들이 갑자기 교과서를 쓰겠
다고 나타나서 자기 주장대로 책을 만들거나, 네 주장과 내 주장을 반반 담아 책을 만들자고 하면
곤란하겠지요.
8. 현재의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좌편향된 거 아닌가요?
국정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가 ‘좌편향’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국 역사
학자들 대다수가 국가 정체성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역사를 서술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이 믿어지시나요? 일부 역사 연구단체나 전교조·전국역사교사모임이 좌파 단체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 단체가 좌파 단체라는 말도 동의할 수 없지만, 모든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이 이 단체
에 속하고 있나요?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전체 중에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
들이 ‘좌편향’이라 공격하고 있는 교과서는 현재 여당의 집권시절에 집필 기준이 만들어지고 검정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역시 이명박 정부 때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 등이 만들어지고 박근혜 정부에서 검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좌편향’이란 말인가요? 유신의 역사인식을 반복하고, 친일과 독재까지 미화하자고 주장하는 분들이,
어느날 갑자기 대열의 가장 오른쪽으로 달려간 뒤, ‘나 빼놓고 모두 좌편향이야’ 라고 말하는 모습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9. 한국사가 수능 필수가 되었는데,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교과서로 배우는 게 시
험부담이 줄고 좋은 것 아닌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국어나 영어, 수학 교과서가 여러 종류이기 때문에 수능 준비가 불편하다는
분 혹시 보신 적 있습니까? 종류가 하나이든 여럿이든 교과서는 해당 연령대 학생들이 꼭 공부해야
할 핵심적인 요소를 담아 만듭니다. 교육과정이란 문서가 있고, 그 해설이 있고, 집필기준이 있는
거지요. 그래서 기본적인 내용은 교과서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교과서로 배우든
지금까지 문제가 안 된 것입니다.
오히려 국정 교과서처럼, 교과서가 한 종류 밖에 없다면 그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려움을 줍니
다. 검정제도에 따라 교과서가 여러 종류이면, 국가 수준의 시험은 여러 교과서에 함께 실린 내용으로
문제를 출제합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개념이나 핵심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공부하면 되는 것이지요.
최근 교육부는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면서 한국사 시험의 문제 난이도를 쉽게 하고
절대평가를 실시하여 학생들의 시험 부담을 줄이겠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9등급으
로 나누어야 하는 수능에서 시험 난이도를 낮춘다고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들까요? 과거 국정교과서
시절의 국사 문제를 생각해보면 지엽적이고 자잘한 내용까지 빼먹지 않고 공부해야 고득점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다시 국정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게 된다면 한국사는 ‘재미없고 외울 것만 많은 과
목’으로 전락하여 시험 부담이 더 늘어날 것입니다.
10. 국정교과서 논란을 바라보는 역사학계와 역사교사들의 입장은 어떤가요?
대다수의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유신 시절 국정 교
과서 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도 반대하였으며, 국정 교과서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꾸준히 폐지를
요구했습니다. 입시 중심의 암기식 교육, 획일적 역사의식 주입 등 관제 역사교육으로 전락할 가능
성이 높다고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신 시절의 교육 당국은 국가가 발행을 책임지니 내용도 풍부하고 학계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밀어 부쳤습니다. 하지만 실제 발행된 교과서들은
어땠을까요? 정치적으로 편향된 내용이 수없이 많았고, 이름 있는 학자들은 집필진에 들어가지 않았
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문적인 연구 성과의 반영은커녕 밀실에서 경쟁없이 만들어져 교과서의 질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2005년 전국역사교사 모임에서 현장의 역사교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응답자 1295명)에서는 국
정제를 벗어나자는 의견이 82%를 넘었으며, 2014년 조사에서는 반대 비율이 97%(응답자 858명. 전
국역사교사모임·역사교육연구소 공동 조사)로 늘어났습니다. 실제 발행된 검정 한국사 교과서가 이전
의 국정교과서 보다 질적으로 훨씬 나아졌고, 국정으로 환원할 경우 무누제가 된 교학사 한국사 교
과서의 역사 인식과 내용을 국정 교과서에 담으려 한다는 우려가 함께 작용한 결과입니다. 또한, 한
국일보가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학회 임원 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역사학자 97%가 국
정 전환에 반대하였습니다.
11. 국정 교과서제도를 반대하는 주장을 간략히 요약하면?
- 국정 교과서는 ‘위험한’ 교과서입니다. 최근에 국정제를 추진하는 세력이 주로 친일과 독재를 미
화하고 민족의 화해협력 노력을 폄하할 뿐 아니라 성장 제일주의를 지향하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지지자들이란 점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 국정 교과서는 ‘후진’ 교과서입니다. 시대를 거스르는 퇴행적인 국정제를 통해 경직되고 획일화된
역사교육으로 전락할 우려가 큽니다. 국정 교과서 제도는 여러 종류의 교과서 중에서 학생들에가 가
장 어울리는 교과서를 선택하여 최선의 교육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버립니다.
- 국정 교과서는 ‘찌라시’ 교과서입니다. 국정 교과서는 교육부가 저작권과 수정·개편 권한을 가진
교과서로, 자칫 역사교과서를 정권의 홍보물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국정 교과서의 역사에
서 보았듯이 자칫 학생들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달라진 교과서로 배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 국정 교과서는 ‘가만히(!)’ 교과서입니다. 역사는 다양한 자료를 찾아 읽고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
서 접근함으로써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과목입니다. 그러나 국정제는 지식을 암기하는 역사수업으로
이어져 생각하는 힘을 무뎌지게 할 수 있습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할 학생
들에게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 국정 교과서는 ‘부끄러운’ 교과서입니다. 보수 진영 중에서도 일부만 주장하는 국정제는 북한을
비롯하여 극소수 국가에서나 실시하는 제도입니다. 세계적으로 경제 선진국에 속하고 민주주의의 발
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이 후진 독재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국정제를 추진하는 것
은 국제적으로 창피하고 망신스러운 일입니다.
- 국정 교과서는 ‘피곤한’ 교과서입니다. 오직 한 종류의 교과서만 발행하면 시험 부담이 줄어 들것
이라는 오해와 달리, 국정 역사 교과서는 오히려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내용까지도 공부를 해야만 하
는 교과서가 됩니다. 또 다시 ‘피곤하게’ 달달 외우기만 해야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