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한 고등어도 ‘어’자를 달았건만
‘치’자는 고사하고 지청구 미꾸라지
진흙탕 쑤시며 산다고 턱없이 낮잡았다
용케도 피해가면 미꾸라지같은 놈이고
미꾸라지 용됐다고 뒤에서 쑤군쑤군
맑은물 흐려 놓으면 미꾸라지 되는거지
추어라고 부르는건 밥상 위뿐이구나
죽어서 제 이름을 알리는 이 있듯이
한 생을 풀어놓고 얻은 뜨거운 이름이다
가을엔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엔
추어탕이 제격이다
추어탕은 춘향골 추어탕이
그런대로 맛있다
이름만 들어도 왠지 맛 날 것 같은
남원의 춘향골 추어탕
무청에다 푹 우려낸 추어탕 국물은
먹다보면 금세 바닥난다
춘향골 추어탕이 경상도에 오면
향내 짙은 산초가루가 곁들여진다
경상도 사람들은
혀끝을 자극하는 산초가루와
방초라고 부르는 방아잎을
향신료로 즐겨 먹는다
후추와 깻잎에 비하면
그것들은 열배 스무 배 그 향내가
독하다
강원도 추어탕은 민물매운탕식이다
얼큰한 집 고추장으로 간을 하고
매운고추를 자잘자잘 으깨어 넣고도
모자라 청양고추가루를 두어 숟갈
넣고 바글바글 끓인 후 수제비를
뚝뚝 떼어 넣는다
가을엔 추어탕이 제격이다
경상도식으로 산초가루 듬뿍넣어 먹든
전라도 춘향골 추어탕처럼 무청에 푹 삶아내든
얼큰한 강원도식 추어탕 맛을 그리워 하든
가을엔 암튼 추어탕이 제격이다.
오늘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었더니
힘이 불끈 불끈 어디 쓸데가 없다!
가을 추어탕
꿈틀 꿈틀 미꾸리의 펄떡이는
기운이 팍팍 오는거 같다~~
가을엔 추어탕 먹고 힘내자
아자 아자!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는 추어탕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추어탕은 은밀한 금단의 음식으로서 가을에 으뜸 스태미나식품이다. 옛 사람들은 추어탕을 먹을 때 울퉁불퉁 근육질의 사나이를 떠올렸던 것 같다. 비단 우리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한중일 삼국에서 모두 추어탕을 즐겨 먹었을 뿐 아니라 추어탕 한 그릇에 울끈불끈 힘이 솟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금단의 음식을 맛보는 기분마저 공유했다. 추어탕은 가을밤이 깊어질 때, 양반집 안방마님이 사랑채에 머물고 있는 서방님께 야식으로 은밀하게 들여보냈던 음식이다.
남의 이목이 부담스러웠기에 대놓고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안 먹고 넘어가면 어딘지 허전한 보양식이었기에 누가 볼세라 한밤중에 날랐던 것이다.
중국도 비슷하다. 대표적인 고전이며 음란소설로도 알려진 ‘금병매’의 남자 주인공 서문경은 절륜의 정력을 자랑한다. 이런 서문경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추어탕 내지는 미꾸라지를 소재로 한 장식이다.
조선의 양반과 중국 부자, 일본 상류층은 왜 은밀하게 추어탕을 즐겼을까? 추어탕이 단순히 스태미나 식품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특이하게도 조선 시대 수많은 문헌 중 양반이 추어탕을 먹는 기록은 하나도 없다. 추어탕은 성균관에서 일하는 관노인 반인(泮人)의 음식, 청계천 왈패인 꼭지들이 먹는 음식, 잘 봐줘야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가 끓여 먹는 음식이라는 기록만 보인다.
중국에서도 추어탕은 철저하게 농민의 음식이다.
중국 속담에 ‘하늘에는 비둘기, 땅에는 미꾸라지(天上斑鳩 地上泥鰍)’라는 말이 있다. 농민이 구할 수 있는 음식 중 가장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 하늘에는 비둘기, 땅에는 미꾸라지라는 소리다. 뱀부터 자라에 이르기까지 보양식이 넘쳐나는 중국이지만, 농민들은 특별히 미꾸라지로 가을 몸보신을 했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습지가 많았던 옛날 도쿄에는 미꾸라지가 많았다. 복날에는 장어를 먹는 일본에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했던 농민과 노동자들은 장어 대신 미꾸라지를 잡아 보양식으로 삼았다. 손질한 미꾸라지를 우엉에 얹어 삶은 후에 계란을 풀어 먹는 일본식 미꾸라지 전골인 야나가와나베(柳川鍋), 일본 된장 미소를 풀어 끓인 추어탕, 혹은 미꾸라지 튀김으로 요리했다.
조선의 양반이나 중국의 부자, 일본의 상류층에서 왜 서민 내지는 하층민의 전용 음식이었던 추어탕을 몰래 먹을 정도로 식탐을 보였을까. 아무리 서민 음식이라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을 정도로 미꾸라지의 효능에 대한 믿음과 욕망이 컸기 때문이다. 추어탕이 얼마나 스태미나 식품인지를 한중일 속담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미꾸라지는 먼저 이름부터 힘이 넘친다. 가을에 특히 영양이 넘치고 맛있기 때문에 ‘추어(鰍魚)’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힘이 넘친다고 우두머리 추(酋) 자를 써서 ‘추어(酋魚)’라고 불렀다.
‘작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큰 파도를 뒤엎는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파도를 뒤엎을 만큼 힘이 좋다고 믿었기에 농부들은 아예 수중 인삼이라고 불렀다. 조그만 미꾸라지가 힘이 세 봤자 얼마나 셀까 싶지만 일본에서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장어 한 마리’라고 생각했다.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나면서부터 활기찬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힘을 비축할 때다. 이럴 때 추어탕 한 그릇이 가장 좋다. 추어탕 먹고 힘쓰는 계절 가을!
첫댓글 가을 추어탕 ㅡ 참 좋지요.
저의 동네에는 설악추어탕 집이 있습니다.
다른집과는 달라서 수제비대신에
국수를 한덩어리 넣어주면 그게 꿀맛입니다.
얼큰하게 산초 넣어서 정구지 넣고 밥 말아
훌훌 저어 먹으면 가을음식중에 일품이지요.
즐겁게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조조 이성욱 님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