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도에 주저앉아 그의 살뜰한 보살핌속에
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피곤함은 없는데 몸은 많이 불편해서 일어나기, 걷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남편은 이번 계기로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변한 것 같다.
그리고 주변에 자랑스레 홍보했다.
자신의 아내이기에 앞서 인간승리자를 보고 있는 듯 하다.
14시간 52분.
당일 받은 기록증에 있는 숫자이다.
커다란 완주패를 다시 한번 쓸어 본다.
난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벅차올라 자꾸만 눈물이 나온다.
남자들은 군대라는 울타리를 통해 체험할 수도 있지만
여자들에게는 일생에 있어 한번도 접해 보기 힘든
그야말로 희귀종이나 할 수 있는 체험 아니던가!
게다가
그토록 행복한 골인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84km지점부터 경찰차의 호의를 받으며 신호무시하면서 달리고
전주 경기장 트랙을 자원봉사자와 58친구들에게 둘러쌓여
힘찬 58개띠! 멍멍! 외침속에 골인할 수 있었던 나는
정녕 행운녀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해 냈다!!!
앞으로 어떤 난관이 닥쳐온다 해도
헤쳐 나갈 지혜와 인내를 충전해 놓았으므로
앞으로 남은 삶은 내가 도안한 그림대로 채색되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해준 고마운 분들이 많다.
제한시간 내 완주할 수 있도록 격려해준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84Km 이름모를 자원봉사자님!
무릎, 다리를 주물러 주신 덕에 다시 달릴 수 있었습니다.
* 최영열님! (똘똘이 남편)
90km 지점쯤 반대방향에서 달려와 안타까움으로 지켜봐 준 님의 마음
지칠대로 지친 영혼에 힘이 되었습니다.
* 불꽃아들!
자전거타고 말없이 뒤에서 호위해준 매우매우 기특한 녀석.
아줌마는 제한 시간 안에 못 들어 갈 것 같으니까
먼저 가던지 앞에 가는 아버지, 엄마 곁에서 응원하라 해도
“하실 수 있어요! ”그러면서 말없이 따라오던 녀석.
* 95km 지점부터 혜성같이 나타나 동반주해주신 이름모를 자원봉사자님들!
* 카우보이
97km 지점에서 준섭이가 달려 오길래 제한 시간 안에 들어 갈 수 있겠구나!
안도의 한숨과 함께 너무 반가워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 58자원봉사자들
경기장과 주로에서 밤을 새운 그대들!
그대들이 있었기에 마음 편히 밤을 달릴 수 있었다.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많은 것을 얻어냈다.
좀더 따뜻한 마음 가질 수 있도록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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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달에는 매주 장단거리 대회주를 나가 전력질주 한 탓에
왼쪽 고관절이 묵직해서 정작 하고 싶은 전주 D-day는 다가오지만
꼭 해내야겠다고 장담할 수 없는 몸이어서 마음은 고요했다.
참여하는데 뜻을 두고
가는데 까지 가다 정 안되면 할 수 없지...
내심이었다.
하지만 이상스레‘포기’란 단어는 내 머릿속에 아예 있지도 않았으며
‘가는데까지 간다’만 들어 있었다.
그렇지만 70km 이후에 다가올 내 몸의 변화에 대해서는 무지 궁금했다.
물정모를 때
부추긴다고 시건방지게 도전했다가
실패의 쓴잔을 들이킨 지난해 광주 빛고을 참가는
이번 참가에 교훈을 남겨 작전은 필요했다.
말썽을 피우고 있는 왼쪽 다리가 말을 들을지 알 수 없어
가긴 가되.... 천운에 맡기기로 했다.
머슬가이, 대관령 글을 참고하고 이미 울트라 전사가 되어 있는
신작로에게 다시 확인해서 이번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진통제를 준비했다.
빛고을이 준비 해온 찰밥을 적당히 먹고 소염제 두 알을 삼킨 다음
허리 쌕에 핸드폰, 휴지, 비타민 C를 넣고
지난해 호치가 준비해준 호루라기, 깜박이를 매달고
핸드폰 집에다는 파워젤을 집어 넣었다.
덜거덕 거릴 소음도 신경 걸리지만
배낭을 벗어 내리기 힘들 정도로 지칠 때를 대비한 것이다.
혹시 문자, 전화 격려해주는 멍들의 마음은 매우 고맙지만
후반 체력 소모를 염려해서 핸드폰은 아예 꺼 놨다.
자, 가자!
정복해 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자신을 던져 놓고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살살 파헤쳐 보자~!
출발부터 경기장은 개판이었다.
선두에 선 58개띠 멍들은 불꽃의 제의로“ 58!”“ 멍멍!” 구호 외치며
다른 참가자들 석죽이며(^^) 트랙 한바퀴를 돌고 나갔다.
맨 뒤에서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달려간다.
초반부터 7분~7분 30초 전법으로 간다.
MBC 방송차량도 따라온다.
뒤에서 쫒아오니까 쫒기는 심정이 되어 부담이 되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대관령은 42km까지만 같이 가주겠단다. 42km도 고맙다.
갈종완님, 대관령, 나 셋이 10km지점까지 꼴찌였다.
벌써 쳐지는 사람들이 있어 그 이후부터 한사람씩 제껴 나갔는데
그때까지 다리가 가볍지 못해 은근히 불안했으나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첫 번째 휴식처 25km 지점.
불꽃부부를 만났고 불꽃이 챙겨준 커피를 마셨다.
대관령이 시키는 대로 한다.
말 수 줄여라, 걸으면서 마시고 먹어라,
풀코스 50회, 울트라 경험자인
대관령의 442전법이 그럴 듯 했지만 나에겐 미지의 세계.
그저 천천히가 내 전략.
두 번째 휴식처 42km지점.
여기서 전열을 정비하던 58멍들을 여럿 만난다.
거북이, 신작로, 나무, 설악장군봉 등등.
제한시간 체크 포인트 62km 새벽 3시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촉박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때가 11시 40분쯤 되었던 것 같다.
누군가 의지하고 가야 하는데 정신 차려 보니 홀로 달리고 있었다.
대아 저수지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야경은 황홀경이다.
맑은 하늘, 초롱초롱 별빛, 교교한 달빛,
지나는 차량도 없고 인가도 없는 길을 달린다.
나 홀로 가고 있지만
가끔씩 대회 차량이 순회하고 앞뒤 반딧불이 달림이들이 있으니
호루라기 불어댈 일도 없을 것 같다.
약간 오르막이래도 오르막은 무조건 걷고 내리막은 좀더 달리면서
5km마다 길 바닦에 쓰여 있는 흔적을 살피며 시간 계산을 해보는데
딱딱 맞아 떨어져 그때는 재미가 날 지경이었다.
세 번째 휴식처 62.8km (제한 9시간)
한번 답사했기 때문에 길이 눈에 익어 지루하지가 않았다.
예상한대로 역시 인가에서 떨어진 곳에 체크 포인트가 있었다.
새벽 2시 34분 도착 합격!
와와~! 함성.
완주 할 수 있겠다며 녹향이 카메라 들이댄다.
면벽,설악장군봉, 거북이,등등 58멍들이 밥을 먹고 전열을 정비하는 속에
애주, 깜장, 앵두, 똘똘이 등 자원봉사자들에게
시간에 쫒겨 아는 체도 별로 하지 못한다.
허리쌕을 풀러 버리고 비닐봉지에 준비해 온 바세린을 가슴선에 다시 발랐다.
서둘러 떠나는데 똘똘이가 걱정스러운 듯 따라오며 아침에 만나잔다.
전장에 나가는 전사 같은 심정이 이럴까? (^^)
되돌아 나오는데 두어사람 더 들어오고는 그 이상 인적이 끊겨 버렸다.
다시 홀로주였다.
70km지점까지 계산은 맞았다.
그 이후로부터 거리표시도 잘못 보았고 시간계산도 틀려지기 시작해 마음이 급해졌다.
아무리 달려도 80km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계산이 틀려 버리자 마음에 실망이 생겼는지
75Km부터 무릎이 고장이 나서 달려지지가 않았다.
밤티재를 걸어 오른다.
사투시작~!
다 오른 다음 달려지겠지 했던 다리는
내리막길에서 더욱 시큰거려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암투병하시다가 돌아가신 부모님을 불렀다.
아버지! 엄마!
저, 완주할 수 있게 다리 좀 어떻게 해줘요!!!
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도와주세요!!!
반딧불이 달림이들도 인적 끊긴 고요한 산길을 혼자 내려오며
절규했다.
점점 추워지고 콧물은 쉴새없이 흘러내린다.
뒤에도 앞에도 인적 끊긴 산길에 희부염 여명이 찾아오고 있었다.
가끔씩 대회차량만 흘낏 쳐다보며 지나갔다.
한참을 그렇게 추위에 떨며 아픈 다리 끌고 내려오는데
뒤에서 소리가 나서 돌아다보니 불꽃부부가 온다.
이 고행의 길을 함께 가고 있는 저 부부가 참으로 부럽구나!
걷는 나를 걱정스러운 듯 지나친다.
마지막 휴식처 84.4km
날은 완전히 밝아 있고 나는 19Km를 계속 걸어왔다.
경찰차 세대가 서 있고
몇 사람의 자원봉사자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아픈 다리를 내밀었다.
지방 어디서 올라오신 달림이라는데 내 무릎을 정성스레 주물러 주었다.
나, 완주하고 싶어요~
여기서 포기할 수 없어요~
6시 40분쯤 되었을 것 같다.
그 중 어느 봉사자는 지금 부지런히 가도 제한시간 내 완주하기 어렵다는 말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몇몇 달림이들을 주저 앉혔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라니~
내게는 먹히지 않는 사탕발림이었다.
초코렛 하나를 입에 넣고
포기하라는 말을 흘리며 다시 떠났다.
여기서부터 나는 완전히 꼴지였다.
경찰차가 뒤에서 따라오고 대회차량이 올라타라고 하지만
완강히 고개 저었다.
걸어지지 않을 때 그때는 포기하리라!
이렇게 걸으면 키로당 10분은 되려나?
시간체크 열심히 하면서 앞뒤 팔을 휘저으며 부지런히 걸었다.
이제 완주패는 별 의미 없다.
기록증도 의미 없다.
완주만이 목표였다.
이상스레 다시 달려졌다.
8분페이스쯤 얼마동안 가다가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우려했던 고관절이 말썽을 부렸다.
간다. 가는데까지...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간다.
90.8Km 지나고 영열님이 저 앞에서 달려온다.
반갑다. 무지 반갑다. 콧날이 시큰해져 왔다.
뒤이어
불꽃 아들이 자건거 타고 나타났다.
녀석이 말없이 뒤따르고 경찰차도 뒤 따르고
대회차량은 다시 포기하라는 유혹을 하고...
다시 완강히 고개 젓는다.
불꽃 아들도 부담스러워서 가라고 손짓했지만
“하실 수 있어요!”
그럴까? 해낼 수 있을까?
걷다 다시 달림을 시도해 보다
시간은 왜 이다지도 빨리 가고
왜 이다지도 거리표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혹시 거리표시가 되어 있지 않나 하얗게 보이는 바닥을 훑어본다..
제한시간 내 완주! 할 수 있을까?
걸어서는 안되겠지? 시계를 자꾸 들여다본다.
95Km 표시가 지나가고 두 분의 자봉이 구세주처럼 나타나
옆에서 뛰어 주었다.
"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제한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어요! "
될까? 안될까?
아리송했던 마음에 희망이 생기면서
달려지지 않을 것 같았던 다리가 다시 움직였다.
97Km 지점쯤 되었을까?
빵빵!!!
“김민들레 힘내라 힘내~! ”
흘끗 쳐다보니
남편의 차가 앞에 있다.
우왕~~~~~
흐느낌을 넘어서 통곡을 했다.
그렇게 울면서 달리는데 저 만치 준섭이가 달려왔다.
다시 우왕~
준섭이를 보자 제한시간 내 완주는 틀림이 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교통경찰들이 거수경례를 붙이고 (뒤에 따라오는 차량에게 하는 듯)
신호정지를 해주었다.
교통경찰들이 온통 나를 위해 거리통제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참으로 이상했다.
안도와 함께 걷다 달리다를 반복하던 다리는 천천히나마 멈추지 않고 나갔다.
“58개띠들 다 나와라, 민들레 들어간다!”
준섭이가 두 번씩이나 나의 소재를 알려 주었다.
방자가 달려오고 빛고을이가 달려오고
보인다. 보여! 경기장이!!!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던 경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 왔다, 힘내라 힘내.
지하철이 경기장 입구에 나와 환하게 반겨주고
드디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자 58친구들이 우루루 나와
트랙을 같이 돌아준다.
“ 58!”“ 멍멍!”
“ 58!”“ 멍멍!”
한사람의 주자를 가운데 두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응원주를 해주다니
경기장은 온통 58의 함성이었다.
웃으란다.
웃으며 사진 찍히란다.
아~ 웃고 싶다.
하지만 골인하는 순간 통곡을 하고 말았다.
마이크를 잡고 울면서 꼴찌주자의 소감을 피력했는데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에 없다.
주저리주저리 울면서
나의 이백오십리 대장정은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첫댓글 감동 감동 감동그자체 그 열정 다시시작하자~
그 때는 많이도 뛰엇는데...
오래만에 들어보는 이름도 있네
58 개띠 머~~~엉
멋있다..민들레
저때가 우리 클럽이
전성기였지.
그 시절 다시 올라나?
내가 마라톤입문하기전이야기네.....장하다 민들레~~~힘!
2005년도에 뭘했엇나?
마라톤 은 먼 나라. 얘기시절이네~~
내가 마라톤하기 전년도인데 올해 울트라 첨해봤는데 내마음 하고 비슷 하다. 왜 힘들때 부모님 생각이날까.?
민들레 기지개 켠다하여 이 글을 다시 읽었는데......
민들레가 살아있긴하나보네....
투혼을 발휘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투혼을 발휘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올 상반기 내내 이때를 기억하면서 최면 걸었다.
이제 80키로 지났다. 조금만 더 참아라. 이제 90키로 지났다. 곧 도착할꺼야. 등등
덕분에 오랜시간 마음을 무겁게 했던 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참말 고마운 마음들.
신작로! 시간 내서 오시게나. 내 술 대접하리.
나 술 안마셔
@신작로 백일지난지 오래고 이제는 돐 다되어가는중일세
민들레소식 오랜만이네~~ 반갑다
예전처럼 달려봐라~
내가 2004년11월1일 이곳 58 클럽에 우연한 기회(매스컴 보도 기사)로 가입하여 지금은 고인이 된 꽃님이 의
울트라 한번 뛰어보라는 유혹(?)에 현혹 되어 울트라 의 울 짜(字)도 모르는 초보가 턱 신청하여 2005년 제1회
전주울트라를 뛰어 광주 친구 통통배 의 동반주 에 힘입어 12시간 15분 기록으로 첫 울트라 성공.....그리고 골인후
58천막에서 댐배 와 막걸리 마시고 있는데 울 여멍 민들레 가 경기장에 들어온다는 누군가(?)의 외침소리....지금도
나의 두 귀에 생생하구나. 딱 11년전 의 그날 의 감동.....눈물~콧물 흘려가며 마지막 을 장식 했었던 민들레~불꽃....
지금은 세월이 흘러 아련한 추억속의 전주울트라....
이때까지의 내 삶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신작로가 찍어준 지리산 사진 석 장매무매우 감사하고 고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