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문제연구소에서 펴낸 『법화경과 예수』에서 비교종교학자 민희식 교수와 조병선 씨의 다음과 같은 대담이 나온다.
조 : 그런데, 예수님은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하실 때 불경(佛經)은 어디까지 읽으셨는가요?
민 : 권대승경(權大乘經)을 통달하신 다음 실대승경(實大乘經)인 법화경(法華經)까지 공부했습니다. (중략)
그래서 그런지 신약성서에 법화경을 인용한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조 : (전략) 예수님께서는 내증(內證)으로는 법화경을 숭배하며 인용 까지 하면서, 외용(外用)으로는 마치 스스로 새로운 진실이라도 깨달은 양 그 명칭만을 달리한다는 것은 참으로 비탄(悲嘆)한 일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법문(法門)을 훔쳐다 자종 (自宗)의 극리(極理)로 삼는다는 것은 비유컨대, 나그네가 주인을 살해(殺害)하고 주인행세를 하는 비유와 다를 바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법화경을 공부했으며 법화경을 인용한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예수 당시에는 법화경이 아직 편찬되지 않았다고 억지주장을 한다.
법화경이 예수 사후의 시대에 편찬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석가모니는 예수보다 550년이나 앞서 살던 인물인데 석가모니가 가르친 법화경이 예수보다 늦게 생겼다는 웃기는 주장을 한다.
'박정희가 박근혜보다 늦게 태어났고
박정희가 전두환보다 늦게 쿠데타 일으켰다.
소크라테스가 오바마보다 늦게 태어났다'
뭐 이런식으로 주장하는게 낫지 않을까?
기독교에서 유포하는 내용: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이전의 시기인 1세기 초반은 법화경이 아직 편찬되지도 않은 시기이다. 법화경이 최종적으로 성립된 2세기 후반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보다는 100여 년이 지난 뒤이고, 복음서 편집도 이미 끝난 다음이다. 다시 말해서 법화경은 예수님 시대보다는 물론이고 복음서보다도 한참 뒤에 나온 책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혹자가 예수님께서 인도 지역에서 법화경을 공부하였으며, 신약성경에 법화경을 인용한 점이 너무나 많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법화경이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편찬한 것이고, 고타마 싯다르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500년 이상 앞에 살았으니까 예수님 당시에 당연히 법화경이 존재했었다고 착각하고, 법화경과 신약성경의 비슷한 부분을 법화경에서 배워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고고학자료에 의해 학자들이 확인한 내용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학자들이 발굴및 사료조사를 했다.
"이미 알려진 대로 법화경의 결집 시기는 BC5세기이다.
기독교 신약성서의 편집시기는 이보다 600년이나 후인 서기 80-100년 경이다.
법화경의 제1차 결집시기는 붓다의 입멸 직후(BC 5세기), 아라한 오백명이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 남쪽 에서 마하가섭 존자의 주재 하에 율장과 경장을 합송하는 방식으로 결집하였다.
법화경의 2차 결집은 칠백인 결집, 붓다의 입멸 후 1백년 경(BC 4세기), 상좌부(정통파) 비구 7백명이 베살리에 모여 경장과 율장을 결집하였다.
법화경의 제3차 결집은 마우리아왕조 아쇼카왕 즉위 18년(BC 255)에 1천명의 비구가 수도 파탈리푸트라성에 모여 결집되었다.
법화경의 제4차 결집은 카슈미르 결집이라고도 한다.
카슈미르 결집은 붓다의 입멸 후 500년 경, 쿠샨왕조의 카니시카왕의 후원으로 협존자, 세우존자 등이 주재하여 불교성지 카시미르에서 결집되었다.
아래의 내용을 보면
예수가 얼마나 심하게 베껴갔는지 비교해보면 초등학생이라도 한눈에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붓다는 40일 단식 때 마라라는 악령의 시험을 받았다 (불경 상응부전)
- 예수는 40일간 단식 때 사탄에게 시험을 받는다 (루가 복음 4장 1절)
?붓다는 12제자를 모든 계급의 사람에게 파견하였다 (아함경)
-예수는 12제자를 중근동에 파견한다 (마태복음 10장 1절)
?붓다의 제자 아난다가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지던 중 붓다의 확신을 받고 다시 끝까지 걸어갔다 (본생경 무쌍품)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믿음이 약해 물에 빠지는 것을 예수가 건져 주었다(마테복음14장 25절)
?붓다는 발우에 있는 한 개의 떡으로 500명을 먹이고도 남았다 (본생경 주석78)
-예수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마태복음14장17절)
?붓다는 과부의 두냥 헌금이 더 값지다고 했다 (잡보장경)
-예수는 과부의 한냥 헌금이 거룩하다고 하였다 (누가복음 21장 1절)
?사기꾼이 인도하면 개천에 빠진다 (무문자설경)
-소경의 인도로 구덩이에 빠진다 (누가복음 6장)
?아시타가 천사들을 목격 (본생경)
-목자들이 천사를 보다 (누가복음 2장)
?열반과 재물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무문자설경)
-신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누가복음 16장)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 받아 타향에서 방탕하다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오히려 환대하며 돌보는 장자궁자 이야기(법화경 신해품)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 받아 타향에서 방탕하다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오히려 환대하며 돌보는 돌아온 탕아 이야기(누가복음 15 : 11)
“1947년. 팔레스타인 지방 사해 서쪽 연안 절벽의 쿰란 동굴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던 어느 목동이 고대의 양피지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유대교 유대경전의 필사본이었다.
그러나 이 귀중한 고대성서 사본은 발견되자마자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무려 40년간이나 일반인과 신학자들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됐다.
고귀한 유대경전이 발견되었는데 뭐가 두려워서 감추고 공개하지 못했을까.
이 고대 유대경전 두루마리는 극히 일부의 ‘국제학자단’이 독점했고,
1991년이 되어서야 두루마리 전체라고 주장하는 부분들이 공개되었지만 이미 상당 부분이 고의적으로 잘려나가고 훼손된 뒤였고 주석을 붙인 출판은 또 다시 10년이나 연기되었다.
왜 이리도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방사선탄소연대측정법과 화학적 분석법, 서체분석법,
사용언어와 어휘 등으로 조사한 결과,
이 방대한 사해의 유대경전 사본은 B.C. 500년에서 A.D. 68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밝혀졌다.
150년전 이미 예수와 똑같은 가상인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본에
예수의 일생을 다룬 것으로 보이는 신약일부가 이미 기록되어 있었다.
기원전 150년 정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기록에 따르면 예수가 태어나기도 전인 150여년 전에, 이미 예수 혹은 예수로 추정되는 인물이 존재했었다는 얘기니
이렇게 되면 기독경에 어떤 오류도 없다고 믿는 기독교 측에선 치명타를 당하게 되어 당황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예수탄생 이전에 기록된 ‘사해문서’에 나타난 예수가 아닌 다른 인물은 ‘의로운 스승’으로 표현된다.
이 의로운 스승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괴로운 죽음을 맞을 운명에 처했고,
고문을 받았으며, 세속화된 교회제사장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세계를 구원하고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게 된다.
십자가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한 디오니소스
예수라는 허구 인물은 이런 수천년 전의 고대 이웃종교의 신을 그대로 표절한 유대식 신인이다.
그는
인내와 인간성과 형제애,
자선과 빈곤을 가르치며
새로운 계율과 정의와 세례,
그리고 성찬(聖餐)을 만든다.
이런 의로운 스승은 우리가 보는 성서의 구약에는 없다.
특히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고문을 받았으며, 흉악한 제사장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것을 보면 그 ‘의로운 스승’이 신약의 예수를 가리키는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예수는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존재했던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되다보니 기독교 기득권자들은 사해문서에 나타난 ‘의로운 스승’이 ‘세례자 요한’일 가능성,
예수가 어린 시절 이 에세네파에서 양육되고 그 이론을 전수받았을 가능성,
심지어는 예수 자신이 에세네파의 지도자였을 가능성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들끼리도 어느 것 하나 설득력 있는 견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 사후 30년이 넘도록 사해문서에 왜 예수가 단 한 줄도, 한 단어도 기록되지 않았는지 신학자들은 그 진실을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지중해 주변엔 수많은 역사가들이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예수를 기록하지 않음을 근거로 들면서 예수는 만들어진 신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최소 네 명의 역사가들은 예수를 언급했다.
바로 플리니 2세, 수에토니우스, 타키투스, 요세푸스가 그들이다.
이들은 각각 한 두 문장으로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했다.
하지만 작가는 원래 ‘그리스도’란 용어는 사람 이름이 아닌 ‘기름 부음을 받는 자’라는 호칭을 의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딱 집어 ‘그리스도’가 ‘예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네 번째 요세푸스의 기록이 99% 위조란 사실은 수백년 전에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기록이 별로 없다보니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마치 사실인양 인용되고 있다며 그 사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시대정신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알려진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의 내용을 근거 삼아
저자는 예수란 인물은 앞선 인물들을 혼합하여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점을 밝혔다.
1. 플라비우스 요세푸스(100년경 사망): 유대 고사사에서 예수를 언급함
이상하게도 그가 직접 겪은 AD 66년~73년 사이의 톡립 투쟁사를 기록한 첫번째 저서인 '유대 전쟁사'에서는 예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문제가되는 세번째 저서 '유대 고대사'라는 저서는 사실 아담과 이브의 신화부터 아브라함의 족장시대, 진위가 확실치 않은 출애굽기 등을 다루고 있는 사실상 역사서라고 부르기 낯 뜨거운 저서지요. 그나마 저작 시기인 AD93년~94년과 가까운 AD66년까지 다루고 있긴 하지만 정작 문제는 우대 고대사에사에서 오직 두번 언급된 예수에 대한 부분이 그 진위가 심히 의심된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유세푸스의 '유대 고대사'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 10세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원본은 남아 있질 않다는 것이죠.
툴째로 AD 220년~250년경 유명한 초기 기독교 변론자 오리겐은 '켈수스의 반론'을 통해 '요세푸스는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유세프스의 '유대 고대사'중 문제의 부분이 정말 처음부터 있었다면 기독교도들에겐 더 없이 자신의 신앙을 증거 하는데 안성맞춤의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324년의 유세비우스에게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언급하기 시작 합니다.
학자들의 논란들..
10 세기: 아랍 역사 학자이자, 아랍 기독교인이면서 추기경인 아가피우스가 두 번째 구절을 인용 한다. 그런데 그의 인용구는 유세비우스의 인용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유대인 통치에 관한 저술에서 유대인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이즈음 예수라 불리는 현자가 있었다. 그의 행실은 의로웠으며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가 그를 처형 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제자 직분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예수는 3일만에 부활 해 그들 앞에 나타내 보이셨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선지자들이 예언 했던 구세주였던 것 같다"
16 세기: 1500여년 동안 아무도 의심 하지 않아 오다, 16 세기에 들어 와서야 조셉 스칼리거라는 인물이 18권에 등장하는 구절의 진위를 의심 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기독교 색채가 짙다는 것 이었다.
17 세기: 리차드 몬테규 추기경이 "그는 구원자 였다"라는 구절이 훗 날 기독교인이 복사 과정에서 덧붙여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1737년: 위스튼이 요세푸스의 저술들을 번역하면서 요세푸스가 유대인 기독교인 이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두 번째 구절 전체가 원래 그에 의해 쓰여 졌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18 세기~ 20 세기 초반: 많은 학자들이 상기 구절이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위조 되었다고 주장한다.
1929년: 대커리가 위조설을 지지하면서, 또 누가 복음과 유대 고대사에 공통 점이 많음을 지적하고 누가와 요세푸스의 상면 가능성을 주장한다.
1931년: 아이슬러가 기독교 검열 하에 많은 부분의 삭제가 있었다며 그 나름대로 재 수정 복구된 구절을 제시한다.
1941년: 마틴이 부분적인 위조를 지적 하고 나머지 부분은 정확 하다고 주장한다.
1954년: 폴 윈터가 위조된 곳은 세 곳뿐이며 나머지는 정확 하다고 주장한다. 세 군데 위조는 "그는 구원자였다",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의 두 구절과 뒷부분의 부활과 예언에 관한 구절이었다. 이 주장은 당시 많은 공감을 샀다.
1960년: 콘젤만이 누가 복음과 사도 행전에 내포된 신앙 관과 문제의 두 번째 구절간에 공통성을 발견하고, 18권의 문제 구절 전체가 기독교인에 의해 위조 됐다고 주장한다.
1963년: 펠드만이 거의 모든 부분이 정확 하다고 단정한다.
1971년: 파인스가 9~10 세기 아랍 및 시리아 본을 (상기한 아가피우스의 구절)발견하고, 이들 사본에는 "구원자" 운운의 구절과 "인간이라 부를 수...." 두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들어 이것이 위조되지 않은 원본 기록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1973~1983년: 렝스토푸가 요세푸스의 저술을 집대성 재구성하여 용어 색인 체계를 만듦으로 학자들의 연구에 편리한 도구로 쓰이게 한다.
1984년: 버즈올이 렝스토푸의 색인 체계를 이용 하여 두 번째 구절의 문체를 분석하면서, 요세푸스의 문체와 너무 다르므로 구절 전체가 위조라고 주장 하다.
1991년: 마이어가 폴 윈터의 설을 지지 하다. 즉 세 군데 만 위조 됐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현재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 하고 있다.
1995년: 골드버그가 컴퓨터를 동원하고 통계학의 개념들을 이용 하여 두 번째 구절과 누가 복음의 엠마오 노상의 이야기(예수가 부활 해서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에게 나타난 이야기)에 신기한 공통점을 발견한다. 따라서 두 번째 구절과 "엠마오 이야기"는 이제는 잃어 버린 어느 초대 기독교 문서에 공통적으로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다. 결론으로 그는 "구원자" , "사람일수..." 구절 두 개만 빼고는 전부 원본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처럼 많은 학자들이 해당 부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위조가 있었다는 사실에 동의 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또 다른 가능한 반론은 요세푸스는 철저한 유대교도 였으며 동시에 유대인에겐 로마인에 빌 붙어 있는 매국노였다는 점입니다.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무장독립 투쟁을 모두 사기,강도질로 간주한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갈릴리의 유다, 페레아의 시몬, 톨로마이오스의 테우다스 등 메시아를 자청한 촉동 선동자들을 모두 하나같이 사기꾼으로 묘사하고 있지요.
더구나 그가 유일하게 메시아로 스스로 인정 한 인물은 다름아닌 로마의 황제였습니다. 유대-로마 전쟁에서 패하여 베스파시안 앞으로 뜰려간 그는 베스파시안이 유대인의 메시아이며 로마황제가 될거라고 아첨을 떨었으며 요행히 그 아첨이 맞아 들어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안의 측근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것은 정말 요세푸스의 문제의 구절이 처음부터 기록된 것이라면 티투스 황제가 그런 구절이 들어가 있는 서적을 서명까지 하며 발간을 허락하였다는 억지가 생기게 됩니다.
유대교도 였으면 유대인들 입장에서 매국노였던 그가 유독 예수에게만 자신이 보이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입니다.
이 밖에도 예수보다 역사적 비중이 적은 인물에도 많은 부분을 할당 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그가 예수에 대해서 고작 몇 줄만을 남겼다는 것, 요세부스의 다른 저술인 '유대 전쟁사'는 안티오코스의 예루살램 정복부터 AD 70년의 예루살렘 함락까지의 부분을 '유대 고대사'에서 그대로 복사했음에도 '유대 전쟁사'에서는 예수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는 점 등 상당 부분이 요세푸스 저작 안에서의 예수가 위작임을 암시 하고 있습니다.
2. 바벨론 탈무드
탈무드에 쓰인 예수에 관한구절.
예수는 그가 지은 죄로 인하여 지금 지옥의 똥물에서 펄펄 끓고 있다. (Gittin. 57a footnote #4)
귀족과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었던 그 여자(성모 마리아)는 목수들과 음탕한 짓을 저질렀다. (Sanhedrin. 106a)
머리를 만져주는게 직업이었던 여자 미리엄 (성모 마리아)은 많은 남자들과 간음했다. (Shabbath. 104b, footnote#2)
그(Jesus the Nazarene)와 그의 제자들은 마법과 흑마술을 사용하여 유대인들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미혹했으며 유대민족의 종교를 전복시키려는 이방민족 열국의 사주를 받은 자였다. (Sanhedrin. 43a)
그는 기적을 행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배운 마법을 사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토라에서 엄격하게 금지하는, 자신의 살갗을 자르는 행위를 저질렀다. (Shabbos. 104b)
그는 성적(性的)으로 문란했으며 돌로 만든 우상을 숭배했다. 그는 그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쫒겨났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Sanhedrin. 107b; Sotah. 47a)
유월절 전날밤, 예수는 교수형에 처해졌으니... 당신은 그가 변호를 할 가치가 있는 자였다고 생각하오? 그는 민중을 미혹하는 자가 아니었나이까? (Sanhedrin. 43a)
탈무드를 거부하는 기독교도들(“minim")이나 그 외 모든 자들과 그들의 자손은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Rosh Hashanah. 17a)
신약성경 (“uncanonical books")을 읽는 자들은 앞으로 올 세상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Sanhedrin. 90a)
이문건을 증거로 한다면 자폭이 아니고 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