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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람 낚는 어부
마태복음 4:18-22 / 권오진 목사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출발하는 시점입니다. 본문 앞에 나오는 17절을 보세요.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17절)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한 후 헤롯 왕에 의하여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드디어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를 끝낸 후에 공생애를 여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힘찬 외침으로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일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부르셨습니다. 이어서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셨다> 생각 없이 말씀을 대하면 그렇구나! 정도로 끝나는데, 당시의 문화에서는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시 랍비와 제자의 관계에서는, 제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랍비를 선택하여 그 선생님을 찾아갔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허락하면 선생님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암기했습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 가르침이 끝나면 제자는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랍비와 제자의 관계에서 주도권은 제자가 쥐고 있었습니다. 제자가 찾아가고, 부탁하고, 배우고, 떠납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제자의 관계는 반대입니다. 예수님이 주도권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직접 찾아 나섰습니다. 예수님이 찾으신 제자들은 당시로 보면 기막힌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다운 제자를 찾으려면, 수도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했습니다. 거기에 성전이 있고, 성전을 중심으로 사는 제사장도 있고, 서기관도 있고, 율법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제자로 스카우트해야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스카우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별로 없는, 그저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왜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을까요? 세상 기준으로는 한참 모자라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들이 <원석(原石)>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에 집중해 보세요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19절)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는 – 그물 던질 때 (투망)였고,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는 – 고기잡이를 끝낸 후, 그물을 깁고 있을 때라고 했습니다.
그물에 걸린 해초를 제거하고, 찢어진 그물을 깁고 있을 때라는 말입니다. 부르시는 시점은 달랐지만 <부름과 따름의 구조>는 같습니다, 19절 부르심 – 20절 하반절 “따르니라” 21절 하반절 “부르시니” - 22절 하반절 “따르니라” (그물과 배, 아버지까지 버려두고 따름) 이제는 부르시는 내용에 초점을 맞춰 봅시다.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9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내 제자로 삼을게!”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하셨을까요? 지금 우리 성경에는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하면서 ‘낚는다’라는 동사가 기록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낚는다’라는 동사가 없습니다. 헬라어 그대로 말하면 “내가 너희를 사람들의 어부로 만들 것이다”입니다. <사람들의 어부…….> 느낌이 어떻습니까? 세상의 많은 직업이 있지만, 어부라는 직업은 쉽지 않은 직업입니다. 거친 파도와 싸워야 하고, 손과 발을 포함한 온몸을 쓰는 직업입니다.
지금도 힘든데? 2천 년 전, 갈릴리에서 살았던 어부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뻔합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에 부양된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뼈가 으스러지기까지 그물을 던지며 고기를 잡는 숙명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베드로에게는 장모가 있었습니다. 그 처가 속사정이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베드로는 처가 식구까지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물을 한 번 던지면 딸린 식구가 많은 베드로는 두 번 세 번을 더 던져야 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너희들은 사람들의 어부가 되어야 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해석이 됩니까? ‘이제까지는 너희에게 부양된 가족만을 위해서 뼈가 으스러지게 너희 자신을 주는 삶을 살았지만, 이제부터 너희들은 내 백성,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위해 뼈가 으스러지기까지 너희 삶을 어부처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오늘 교회에서 적용하면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가 ‘사람들의 어부’로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그렇지요. 교역자와 항존 직분자는 자신의 가족을 살피는 범위를 벗어나, 교회와 성도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성도를 위하여 내 온몸이 더러워지더라도 교회를 평안하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은혜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를 앞장서 섬기는 이들에게 부탁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람들의 어부로 부르신 줄 알고, 순종하며 그 길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우리 선배들도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19절 말씀을 다시 보세요.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19절) ‘사람을 낚는 어부’ --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들을 잡는 어부’가 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무서워하지 마세요. 세상이 험하다 보니, ‘사람을 잡는 어부’라는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좋지 않은 이미지로 와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물고기, 사람을 낚는 어부>는 아주 친숙한 표현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로마의 엄청난 핍박으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인입니다.’라는 정체성을 나타낼 때 물고기 모양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그림이지요. <그림 1. 익두스 그림 > 헬라어 익두스(ΙΧΘΥΣ)는 '물고기'라는 명사인데 이 익두스(ΙΧΘΥΣ) 각 철자의 첫 자를 따서 조합문자를 만든 것입니다. <그림 2. 익두스 단어 설명 그림> 익두스(ΙΧΘΥΣ) Ιησουζ(예수스=예수), Χριστοζ(크리스토스=그리스도), Θεου(테우=하나님의), Υιοζ(휘오스=아들), Σωτηρ(소테르=구세주) 조합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물고기 모양이 있는 곳이 예배하는 장소가 되었고, 물고기를 그리는 사람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니 기독교와 물고기는 떼려야 뗄 수 없지요.
지금도 공산권이나, 기독교를 박해하는 나라에서는 <전도하려고 갈 때> 전도하려고 간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Fishing(낚시) 하려고 간다고 합니다. 설교 끝 분에 소개할 책에 보니 저자가, 낚시와 전도에 대해서 재미나게 비교해 놓았습니다.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낚시와 전도의 공통점은 첫째, 손맛을 잊지 못한다. 저는 낚시에 취미가 없습니다만, 낚시를 해 본 사람들은 물고기가 잡힐 때 손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심한 사람은 온종일 낚싯대가 눈앞에 어른거린다고 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를 통해서 성령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짜릿함은 너무나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성령 충만하여 전도에 미친 사람은 모든 사람이 전도 대상자로 보입니다. 어떤 성령 충만한 집사님은 원수 같은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서, 개를 앞에 두고 전도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둘째,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숙련된 베드로도 배를 타고 나가 허탕을 치듯이, 내 뜻대로 물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내가 열정이 있고, 강력한 전도의 도구가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전도는 악한 영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인내를 가지고 구원받을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셋째, 도구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낚시하기 위해서는 낚시 도구를 가지고 물고기가 있는 물로 가야 하듯이,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면서 성령의 검(말씀)을 준비하여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넷째, 양육이 가능합니다. 잡은 물고기를 양식하여 재생산도 가능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열매를 양육하여 재생산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 해도 됩니다. 아무리 프로 낚시꾼이라고 해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낚시를 안 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낚시하러 가지 않으면 아내가 좋아할 수 있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 안 한다고 먹고사는 데 영향을 받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전도하러 안 가고 세상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어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전도를 안 하면, 지상명령을 어겼기에 예수님 보기에 부끄러울 것이고, / 주님 앞에 섰을 때 전도로 인한 상급을 받지 못하게 되지요.> 전도의 상급에 대해서 다니엘 12:3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지금까지 낚시와 전도의 공통점 5가지를 말씀드렸는데? <낚시와 전도의 차이점도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낚시는 잡아먹기 위해(다시 말해, 죽이기) 위해 하는 것이고, 전도는 살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차이지요.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시며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9절) 하셨습니다. 풀어서 말씀드리면 제자들을 훈련시켜서, 영혼 구원 사역을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이루어졌고, 제자의 제자(속사도)를 통해 전해졌고, 지금까지 주님께 부름을 받은 모든 성도로 인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공산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 손경규 장로님, 김희오 장로님은 저와 한번 가보셨는데, 중국 연변에 가변 <연변과학 기술대학교>가 있습니다. <사진 3. 연변과학 기술대학교 전경> 서울 소망교회와 사랑의 교회의 전적인 지원과 헌신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학교가 연변과기대였습니다.
이 연변과학 기술대학교가 2021년 6월 17학번의 졸업을 마지막으로 폐교되고, 중국 국립대학교인 연변대학에 병합되었습니다. 사실은 30년 계약이 만료됨으로 모든 것을 중국에 빼앗긴 것입니다. 만 30년 동안 본과 졸업생 8,420여 명을 비롯해 사회교육원, 세종학당 등 부속기관의 수료생까지 합치면 약 30,000명의 학생이 과기대를 거쳐 갔습니다. 졸업생들이 지금 중국 사회 곳곳에 들어가서 신앙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헌신한 믿음의 동역자들이 1,100명이 넘습니다. 제 신학교 동기 한 분도 그곳에서 헌신하다가 은퇴하셨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으며, 그곳에서 13년 6개월 동안 섬기신 한 교수님이 <하늘 연리지>란 제목의 책을 발간했습니다. <사진 4. 하늘 연리지 책 표지> 저자는 노출을 비하기 위하여 백부장이라는 가명을 사용합니다. 이 교수님은 자신의 사역 목표를 ‘하루에 적어도 한 명에게 성경 가르치기’로 잡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13년 6개월 사역한 결과를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날은 한 명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매주 5-15명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양육하여 복음을 전했다”라고 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전도에 열정적인 분들이 우리 교회에도 많이 계십니다. 지난해 35명의 성도가 전도 열매를 맺었습니다. 전도왕 김정은 권사님부터 2, 3, 4등을 나눠 작은 선물을 드렸지만, 사실 주님 앞에 가면 상급이 크실 것입니다.
올해도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낚는 일’”에 올해도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 계획을 말씀드리면 ※ 성령강림 주일(5월 19일)을 전교인 전도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원래는 부활주일에 하려고 했는데, 올해 부활주일이 3월 마지막 주일이라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그래서 5월 19일 성령강림주일에 전교인전도주일로 지키려고 하니, 각 기관 리더들은 수정해 주시고, 모든 기관, 모든 성도님이 잘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교인 전도주일>을 잘 준비하기 위하여, 지난해에 이어 ※ 제2차 교회 부흥을 위한 새벽 지기 실시하려고 합니다. 기간은 부활절부터 성령강림절까지 50일이지만, 주일을 빼고 나며 42일입니다. 42일도 모두 다 오시라는 것이 아닙니다. 1주일에 최소 하루라도 나와서 교회 부흥을 위해서, 그리고 전도 주일을 위해서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지난해 100명이 훨씬 넘는 성도가 동참해 주셨습니다.
이번에도 교회학교 학생을 포함해서 모든 성도가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사람의 어부, 사람을 낚는 어부고, 제자를 부르셨고, 그들은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사람의 어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달라고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시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섬김 뒤에 놀라운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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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하루도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은 쉽게 성내지 않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고요했으면 좋겠고,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표 내지 않고 혼자 간직하다 이내 평온해지는
그러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고 좋은 일 많은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