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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처럼, 바람처럼
사도행전 2:1-13 / 이규현 목사
오늘 본문은 교회가 탄생하는 장면입니다. 120여 명이 한 곳에 모여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오순절 날이 이르러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약속은 정한 시기와 장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때가 찼다는 것을 말합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날은 맥추절 또는 칠칠절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날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날 “홀연히”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기다릴 때는 힘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 오면 다릅니다. 매우 급하게 일어납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성령이 위로부터 임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땅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땅은 땅입니다. 모든 일은 하늘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하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따라서 땅의 역사가 재해석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이 다시 임하셨습니다. 본문 2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바람이 아닌, 바람 같은 소리입니다. 그 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특이한 사건입니다.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할 때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바람, 영, 호흡, 숨, 생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본문 3절,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불의 혀처럼 갈라졌습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낼 때 주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 앞에 나타나실 때도 불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시각적, 청각적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 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각자 다른 언어들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 각 나라의 언어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이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나라의 언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나타났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열렸습니다. 바람처럼 불과 같은 성령이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보편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냥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찾아오셨습니다. 그 안에 있었던 120명이,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하는 임재를 느낀 것입니다. 하나님의 현현이라고도 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늘 막연한 것입니다.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안 계신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보지 못한 상태로는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마침내 오순절 날 성령이 불처럼 바람처럼 강하게 임재하신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님이 밀고 들어오셨습니다. 특정한 사람에게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출발하는 지점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야 교회가 됩니다. 너무도 강력하게 임재하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성령의 임재를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신성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본 자는 죽습니다. 구약의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으로 인간이 들어가면 살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이 1년에 단 한 번 대속죄일에 자기의 죄에 대해 완전히 속죄한 다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의복에 방울들을 달고 몸에 밧줄로 묶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했습니다.
시내산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산 아래에 있었고, 모세만 산 위에 올라갔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영광은 너무 찬란해서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자 하나님께 떼를 씁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하나님의 등”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등은 의인화된 표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실체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창조자와 피조물의 차이는 너무 큽니다. 하나님은 신비로운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 신비로운 하나님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초월자이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성육신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천하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절대자, 초월자이신 그분이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임하신 성령은 이제 떠나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 다시 오실 성령에 대한 약속입니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은 하나님의 임재를 명백하게 드러내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장소와 시간에 특정한 사람을 만나주신 사건입니다. 무엇이 부흥입니까? 하나님이 찾아오시면 그것이 부흥입니다. 우리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이 찾아오시면 내 안에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존재를 흔드는 만남입니다.
한 교회에 모든 회중이 부인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찾아오시면 그 교회의 부흥이 일어납니다. 성경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도 있었습니다. 구약의 성전 시대에는 지성소에 하나님이 임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더 이상 성전이라는 건물에 갇힌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령을 모신 우리가 성전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가 중요합니다. 구약 시대는 성전이 이스라엘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몸을 입고 시공간 속에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본래 에덴 동산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큰 상실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력하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셨습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임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새 영을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능력입니다. 신약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하나님과 대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투명합니다. 사람들의 내면에는 불안이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불확실한 대상을 막연히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강력한 체험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듣고, 느끼고, 만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감동을 주십니다. 말씀이 들려지는 은혜, 깨달아지는 은혜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매 순간 하나님과 대면하며 살게 하십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찾아오신 성령은 교회와 당신의 백성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하늘의 권능이 주어졌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사람이 임의로 통제할 수 없는 강한 바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하늘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방법들은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기력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종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골리앗 앞에서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쓸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하늘의 일은 하늘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의 삶을 사는 일은 전투와도 같습니다. 어둠의 세력과 대결해야 합니다.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싸우기도 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본문 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의 충만입니다. 폭발적인 성령의 능력이 임한 것입니다. 성령은 창조의 영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성령은 함께 하셨습니다. 흙으로 만든 인간에게 생령을 불어넣으실 때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골짜기에 마른 해골 떼가 꽉 차 있습니다. 죽은 지 오래된 시신들입니다. 소망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새 영,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마른 해골 떼가 군대로 일어나는 환상을 본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세상을 흉내 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의 조직체로만 존재한다면 세상과 상대가 안 됩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모이더라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을 다 갖춘다고 할지라도 성령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을 잘한다고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 방법이 조금 서툴러도 성령이 임하시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련되지 않아도 성령이 역사하면 됩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해야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세상은 거대한 공동묘지와 같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미 죽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은 이미 죽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멈춘 교회는 조용합니다. 혼수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겉으로 보면 살아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살갗만 살짝 덮여 있습니다. 그 안에 생기가 없습니다. 활력도 없습니다.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죽은 교회도 열심히 활동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함으로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까? 더 나은 전략이나 새로운 기발한 방법들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사도행전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셔야 합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아무도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위로부터 능력을 입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령이 세우십니다. 성령이 시작한 교회는 다릅니다. 성령이 주도하시는 교회의 특징은 생기가 있고, 활력이 있습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고 성령이 일하시는 것이 보여야 진짜입니다. 종교적인 열심은 한계가 있습니다.
종교는 그냥 종교입니다. 죽은 영입니다. 교회는 클럽이 아닙니다. 단순한 조직체나 단체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영이신 성령이 이끌어가시는 예배는 다릅니다. 살아있는 예배가 됩니다. 산 예배와 죽은 예배는 다릅니다. 의무적으로, 의례적으로 드리는 예배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예배는 전혀 다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령의 체험 자체에 관심을 많이 가져온 편입니다. 체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적적인 사건이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왜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까?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유대인만의 복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임을 알리는 일을 위하여 하늘의 권능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권능은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핍박과 시련 속에서도 복음의 증인으로 뚫고 지나가는 능력입니다.
오순절에 일어난 독특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방언입니다. 본문 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자신의 혀가 갑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오순절 날 일어난 독특한 사건입니다. 사람들의 혀가 성령의 통제를 받게 되고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언어가 입에서 나오기 시작합니다. 내 혀가 내 혀가 아닙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혀가 언제나 문제입니다. 야고보서에서 아무도 혀를 길들일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죄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이 혀입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갈등이 넘치는 이유는 세 치 혀 때문입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언어의 타락입니다. 악이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가 혀에서 뚜렷이 드러납니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롬3:13-14). 죄인의 모습입니다.
창세기 11장에서 인간의 반역이 드러납니다. 바벨탑을 높이 쌓은 사건입니다. 인간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인간의 연합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역사입니다. 인간이 신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불순한 시도입니다. 하나님이 빠진 인간 중심의 집단화는 무서운 것입니다. 이기적인 집단화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입니다.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본래 인간의 언어는 하나였습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창11:1).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언어의 혼잡은 저주입니다. 인간관계에 거대한 벽이 생기게 합니다. 소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와 관계가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누어졌습니다. 가족끼리도 말이 안 통합니다.
인간의 모든 도모가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혀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죄의 도구가 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 우리의 혀는 아름답게 사용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말씀을 피차 권면하며 살게 됩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은 사람들의 혀를 주관하셨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했습니다. 성령이 혀를 사로잡으셨습니다. 각 나라의 언어로 말했습니다. 바벨탑의 저주를 푸셨습니다. 새 공동체를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본문 11절,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기독교는 말로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입을 열어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 말을 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성령이 내 입을 주장하셔서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진리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오늘날 세상은 전쟁통입니다. 긴장과 대립, 갈등이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경계선을 넘습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큰 일을 전하도록 하십니다. 더 이상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혀가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는 일에 쓰이도록 하신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는 그런 면에서 선교적입니다. 우리의 혀는 사용 목적이 정확합니다. 천하 만민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얻게 하는 일을 위하여 우리의 혀를 사용하게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의 역사는 그렇게 일어났습니다. 오대양 육대주, 모든 민족과 족속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죄로 인해 망가진 이 세상을 하나님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오순절에 오신 성령으로 인하여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압도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전에도 성령은 계셨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오신 성령은 강력한 임재였습니다. 성령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성령이 주도하십니다. 한두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민족적으로 임하시는 성령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특정한 계층이 아니라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작은 시냇물 정도가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거대한 대양을 이루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미풍이 아니라 폭풍이 밀어닥쳤습니다. 거대한 성령의 물결이 파도치며 변방에만 있던 복음이 갈릴리에서부터 온 민족까지 흘러가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권능을 입히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모든 세대가 꾸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더 이상 우리가 육체의 정욕대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때문입니다. 성령에게 모든 것을 맡길 때 비로소 신자답게 살 수 있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혀 살면 예수 믿기 쉽습니다. 말씀대로 살기 쉽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죄의 힘은 권세가 없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죄의 권세가 우리를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히면 더 이상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않고,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능력이 우리 안에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멋지게 쓰임 받는 은혜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여서 이번 한 주간도 주 안에서 승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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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지개는 잡을수 없기에 더 신비롭고 꽃은 피었다 시들기에 더 아름답습니다.
젊음은 붙들수 없기에 더 소중하고 인연은 깨지기 쉬운 것 이기에 더 귀합니다.
오늘도 건강 하시고 행복 하십시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