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 주는 의미
고린도전서 15:1-8 / 이성권 목사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우리 주님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요1:29), 갈보리 산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서 우리의 대속물(代贖物)로 지난 금요일에 피 흘려 돌아가시고, 장사한지 삼일만인 오늘 주일 아침에 부활하신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부활절은 고정된 날짜가 아니라 매년 날짜가 바뀝니다.
부활절 때마다 이 날짜에 대한 것을 말씀드립니다만, 아직도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살펴보면.... 부활절은 춘분(春分)이 지나고, 보름달 곧 만월(滿月)이 지난 다음 주일입니다. A.D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해졌는데,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유월절 양 잡는 시간(출12:6) 곧 유월절 예비일 오후 3시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마27:46).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달력은 태음력입니다.
유월절 예비일은 니산월 곧 정월 14일입니다. 낮이 지나고 이날 밤은 15일이다. 유대인의 하루는 "밤+낮"이기 때문입니다. 유대력의 니산월은 태양력의 3∼4월에 해당합니다. 니산월 14일 오후 3시 유월절 양 잡는 시간에 주님은 운명하셨고, 양고기와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고 출애굽한 유월절과 무교절인 15일은 주님이 무덤 속에 계셨다. 이 날이 보름날입니다. 그러므로 만월(滿月)이 지나야 하는 것입니다. 춘분이 지나고 만월(滿月)이 되는 날이 주일이 되면, 그 다음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게 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작년에는 3월 31일이 부활절이었습니다.
본문 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전한 복음이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는 말씀입니다. 그 복음은 바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본문3-4절).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사도들이 전파한 복음의 핵심입니다(행3: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 복음은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복음의 말씀을 굳게 지키고, 그 복음의 말씀을 헛되이 믿지 아니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복음 가운데 선 삶을 살아가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본문2절)」....
여기의 "구원을 얻으리라[소조(swvzw)]"는.... "구원하다, 구조하다, 보호하다"를 뜻합니다. 여기에서 현재형, 수동태로... 현재 구원 얻은 상태를 나타나내고 있습니다. 복음 가운데 선 자는 구원얻은 자입니다. 앞으로 구원얻을 자가 아닙니다. 한글개역 성경에 번역상의 문제입니다.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주님의 부활은 우리 성도들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 성도들의 부활도 없습니다. 전파하는 복음도 헛것이요, 믿음도 헛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사두개인은 부활이 없다고 합니다(마22:23). 이들은 부활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부활이 있다고 합니다(행23:8). 부활 자체는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마지막 날에 부활하리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의를 버리고, 사람의 의를 좇아가는 모습입니다(롬10:3).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오늘 본문에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꾸며 마든 이야기가 아니라(벧후1:16) 실제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나본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500여 형제, 야고보, 바울 자신.... 이들 중 태반이나 살아 있다고 했습니다(본문5-8절).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결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오늘 이 시대에는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주님, 그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1.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본문 3-4절/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죽지 않고 부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더욱 확인하는 것으로 「장사지낸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29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부활에는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습니다. 이를 계시록에서는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이라고 했습니다(계20:5, 12).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고 했습니다(계20:4).
첫째 부활자들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는 동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부활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천년이 지난 후에 부활하여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고, 유황 불못 곧 지옥에 던지우게 됩니다(계20: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부활에는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습니다. 곧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입니다. 다시 말해서 온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 부활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만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모든 사람이 다 부활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자신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안 믿기에 부활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저 지옥간다는 소리는 들어 알겠지요. 그 지옥에 갈려면 부활해야 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안 믿는 불신자가 부활한다는 소리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번 죽은 것이 정하신 것이 듯이(히9:27), 부활하는 것도 정하신 것입니다. 부활하기 싫다고 부활 않을 수 없습니다.
2.성경대로 부활했습니다.
본문 3-4절/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주님의 죽으심도, 주님의 부활도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으로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 예언이 성경의 기록대로 성취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도 똑같습니다.
사도행전 2:31-32절/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다윗이 시편 16:10절에 기록한 말씀을 말합니다.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대략 1천년 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1천년 전에 예언되어진 것입니다. 그 예언이 성취되어 우리 주님은 성경대로 부활하셨고, 사도들은 그 부활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어찌 이 뿐이겠습니까.... 물론 주님의 한 평생은 성경에 예언되어진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요19:28). 그러므로 우리 주님의 부활은 결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3.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부활했습니다.
로마서 4:25절/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는..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여기의 "의롭다 하심[디카이오시스(dikaivwsi")]"는.... "의롭게 함, 면죄"를 뜻합니다. 곧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라고 했습니다(롬3:21).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롬3:22).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여기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예수님의 사역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속죄의 완성과 의의 완성으로 구별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둘로 나누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이나 둘로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이나 왜? 둘로 구별해 놓았을까요.... 이것은 속죄와 의의 관계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속죄는 곧 의라고 생각합니다. 죄가 없는 상태가 곧 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의보다는 높은 차원의 의이지만, "하나님의 의"는 아닙니다.
「예수 십자가의 피로 씻고, 또 씻어 속죄함 받은 죄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두 가지 죄 곧 원죄와 자범죄입니다. 이 원죄와 자범죄가 없는 사람이 바로 범죄전 아담입니다. 범죄전 아담이 의로운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의"를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는 절대적인 의로 "불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범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범죄했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를 "의롭다 하심"이....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 씻음 받아 죄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로 "하나님의 의"를 이룬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라고 했습니다(요16: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하나님의 의"를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주님의 부활로 이루어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켜 이루는 "사람의 의"가 아니라(롬10: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입니다(롬3:22. 다시 말해서,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는 말씀입니다(롬5:18).
로마서 8:23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 몸의 구속.... 우리의 몸이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죽은 몸이 부활하든, 산 몸이 변화하든(고전15:52).... 하나님의 저주받은(창3:17) 우리의 이 몸이 구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때는 불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담처럼 범죄하지 않습니다.
4.우리로 거듭나게 하시려 부활했습니다.
벧전 1:3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거듭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는 것입니다(요3:6). 거듭난 자는 바로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를 말합니다(요1:13).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4:25절에서 속죄 사역과 부활 사역으로 구분하는 예수님의 사역에서 속죄 사역만으로는 거듭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속죄 사역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범죄전 아담의 상태입니다.
이 아담이 거듭난 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고전15:17). "다 이루었다"하신 속죄의 무효가 아니라 거듭나지 못한 범죄전 아담과 같이 범죄할 수 있는 죄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구속받지 못한(롬8:23) 육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고전15:44). 그러니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고 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거듭난다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나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에게 생기를 코에 불어넣은 것을 넘어 하나님께로서 난 것을 말합니다. 곧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되는 것을 말합니다(엡4:18).
히브리서 2:11절/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거룩하게 하시는 주님과 거룩하게 함을 입은 성도들이 다 하나에서 났다고 했습니다. 다 한 생명이요, 다 거룩한 자라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고 했습니다(벧전1:16).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의와 불의는 함께 할 수 없습니다(고후6: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주님의 부활로 우리를 거듭나게 했다고 했습니다. 속죄의 완성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로 "의의 완성"이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거룩해졌습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고(고후6:16),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게 되었습니다(고전3:16).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된 것」입니다(요17:23).
5.신령한 몸을 이루시려 부활했습니다.
고전 15:44절/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육의 몸"과 "신령한 몸"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으로 대조시키고 있습니다(고전15:45). 또 "흙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로 대조시키고 있습니다(고전15:47).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는 소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육의 몸"은.... "몸의 구속"을 기다리며 탄식하는 몸이고(롬8:23), "신령한 몸"은.... "몸의 구속"을 받은 영광스러운 몸입니다(빌3:21).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같은 몸입니다.
"신령한 몸"....
우리 주님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에(살전4:16),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살아서 주님을 영접하는 자들이 변화하여, 지금의 이 "육의 몸"을 벗고, 새롭게 가질 "신령한 몸"입니다. 곧 우리의 몸도 구속받는 것입니다.
"신령한 몸"....
지금의 우리의 이 "육의 몸" 곧 하나님의 저주받은 몸이 구속받은 "신령한 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진 "의로운 몸"입니다. "거룩한 몸"입니다. "영광의 몸"입니다. 그래서, 시내산 하나님 앞에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육의 몸"이지만(출19:12), 이제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계21: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주님의 부활로 "육의 몸"을 벗고 "신령한 몸"을 새로 입게 될 참으로 꿈만 같은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썩어질 "육의 몸"을 벗고,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을 새로 입게 될 때.... 바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은 얻은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우리의 몸까지 구원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몸의 구속"을 기다리며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 얻은 내 영혼이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육의 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존재합니다(갈5:17). 그래서, 내 삶에서 겉 사람과 속 사람의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롬7:15-23). 그래서, 내 몸을 쳐 복종케 해야 합니다(고전9:27).
우리의 구원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우리의 몸이 구속받아 "육의 몸"을 벗고, "신령한 몸"을 입어야 우리의 구원이 완성됩니다. "신령한 몸"을 입기까지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좇아 범죄할 수 있습니다. 범죄하면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죄사함 받아, 이제는 죄인이 아님으로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잘못 알고, 잘못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떠나가던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얼마나 가까이 나아갔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눈의 눈물을 씻겨 주실 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다면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죽지 않고 부활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는 것 같이(히9:27), 모든 사람이 다 부활합니다(요5:29). 천국 갈 부활이냐, 지옥 갈 부활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 데도, 사두개인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마22:23). 오늘날에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예수 부활이 곧 내 부활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주님의 재림도 없습니다. 저 하늘, 저 천국의 소망도 헛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심판도 없습니다. 사람이 한 평생 아옹다옹하며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버린다면 자기의 욕망을 좇아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하는 자가 행복한 자일 것입니다. 바로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가 되고 맙니다(고전15:19).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본문3-4절). 이것은 꾸며 마든 이야기가 아니라(벧후1:16) 실제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나본 사람들이 태반이나 살아 있을 때에 증거하신 말씀입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면....
어느 신학 대학교에서 부활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믿습니까? 라는 질문에 70%가 믿는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도 부활할 것을 믿습니까? 라는 질문에 35%만 믿는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부활신앙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우리 주님은 성경대로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부활, 내 부활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라 믿는 부활신앙을 넘어야 합니다. 이 수준이 바로 마르다의 수준입니다(요11:24). 주님은 "오늘 당장의 부활"을 말씀하시는 데,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당장의 부활"을 맛보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영혼이 거듭나는 체험을 통하여 예수 부활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부활 없이 내 영혼이 거듭날 수 없습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을 믿는 믿음을 넘어 내 영혼이 거듭나는 체험을 통하여 예수 부활, 내 부활을 확실히 믿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