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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살아나셨다.
마가복음 16:1-8 권오진 목사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신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그의 생을 마쳤습니다. 33년의 생이 어떠했느냐?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산하 시인의 ‘나무’라는 제목의 시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무' - 이산하 나를 찍어라. 그럼 난 네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마.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죄로 가득한 인간들에게 도끼로 찍히는 삶을 살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나를 찍어라 / 그럼 난 / 두 배나 갚아 주겠다.”라며 달려들었을 텐데, 예수님은 “나를 찍어라. / 그럼 난 / 네 도끼날에 / 향기를 묻혀주마.”하는 마음으로 사셨습니다. 고난주간 특새 때 생각한 마가복음 15장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고통 중에 계셨음에도 사람들에게 “향기를 묻혀주셨습니다.” 그 결과 사형집행 책임자였던 백부장의 입에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고, 그때부터 오히려 당당하게 예수님의 제자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밝혔고, 예수님의 장례를 책임졌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경 말씀과 선포되는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의 향기를 맡으시고, 우리의 몸에 묻혀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까지 “향기”를 드러내셨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면 예수님은 한 성인에 불과하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고전 15:19)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찍혀 “향기를 묻혀준”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오늘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먼저 1-3절을 보십시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1-3절) 여러분은 이 여자들의 행동이 이해가 됩니까? 그들은 무덤이 단단히 봉해진 줄 알면서도 왜 굳이 예수의 시신에 기름을 바르러 갔던 것일까요? 이것을 이해하시려면 당시 장례풍습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에 시신에 향품을 바르는 일은 여인이 담당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시신 처리와 관련하여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이 구분되었는데, 남자들은 시체를 무덤까지 운구했습니다. 그때 전문적으로 곡하는 여인들과 피리 부는 사람들이 뒤를 따랐습니다(마 9:23) 시체가 무덤에 놓이면 여자들이 시체에 향유를 바르고 세마포로 싸는 일을 했습니다.
향유를 바르는 이유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시체 썩은 냄새를 중화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시체 처리를 마치면 동굴 입구를 둥근 모양의 큰 돌로 막고, 거기에 회칠하여 표시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 무덤이 새 무덤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기사에는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신에 발랐다고 보고하지만,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이 여인들은 그 사실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당일에 이 일을 하지 못하였기에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에 향품을 사두었다가, 부활절 새벽에 눈여겨 봐둔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유를 바르려고 간 것입니다. 사실, 이 여인들은 대단한 분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현장에서 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는데, 이 여인들은 있었습니다.
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막 15:40) ② 예수님이 무덤에 안장될 때도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막 15:47) ③ 안식일이 지나고 부활주일 아침에도 가장 먼저 예수님의 무덤으로 찾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여자 성도 여러분! 이 여인들의 신앙을 닮고 싶지 않으십니까? 닮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정동교회 모든 성도도 이 여인들처럼 주님 곁에 늘 머물기를 바랍니다. 이제 다음 4-7절을 보십시다.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4-7절)
사 복음서 모두 빈 무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들이었다고 말합니다. 과연 이 여자들의 증언은 믿을 만할까요? 탈봇 신학교 연구교수 윌리엄 레인 크레이크 박사는 그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답합니다. “그런 논리는 그 논리를 펴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다. 물론 그 여자들은 예수님의 친구였다. 하지만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여자가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를 안다면, 부활 이야기에서 빈 무덤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들로 여자가 등장한다는 것은 정말 의외가 아닐 수 없다. 1세기 팔레스타인 계급 사회에서 여자의 위치는 밑바닥에 가까웠다. 오죽하면 랍비들의 속담에 ‘율법의 말씀을 여자에게 전하느니 차라리 불사르라’, ‘아들을 낳은 자는 복이 있고, 딸을 낳은 자는 화가 있도다’라고 했겠는가? 여자는 유대 법정에 정식으로 증인으로 설 수도 없을 만큼 여자의 증언은 하찮게 여겨졌다.
그런데도 빈 무덤의 일차 증인이 여자들이라는 사실은 가히 기상천외하다 할 수 있다. 만일 후대에 누가 전설을 지어냈다면 분명히 베드로나 요한 같은 남자 제자들이 무덤을 발견한 것으로 했을 것이다. 여자들이 빈 무덤의 첫 증인이라는 사실을 가장 타당하게 설명하는 길은 - 좋든 싫든 간에 – 정말로 여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다는 것뿐이다. 이것은 복음서 저자들이 아무리 곤란한 내용일지라도 사실을 충실히 기록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것은, 여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일이 나중에 꾸며낸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습니다. 여자는 증인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시대였음에도 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하는 빈 무덤을 본 사람을 여자들로 말하는 것은, 그것이 명명백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이 부활절 아침에 무덤에 갔을 때는 이미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러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대신 천사가 앉아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지금 극장가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한 편 상영되고 있습니다. <그림 1. 파묘 포스터> <파묘>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지난 토요일까지 1062만 명이 관람했으니 우리나라 국민 다섯 명 중에 한 분이 보신 것입니다. 저도 숙제하는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파묘[破墓]란 말이 <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하여 무덤을 파냄>이니 영화 제목 자체가 으스스합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부를 대물림하며 살아온 한 부유층 집안에 기이한 병이 대물림됩니다. 현대의술로 치료가 안 되자 무당에게 해결을 의뢰합니다. 무당은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채고, 그 방면에 유능한 풍수사, 장의사(고 장로)와 팀을 꾸려 이장(묘를 옮김)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풍수사가 보기에 이 묫자리는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惡地)였습니다. 기이함과 불길함을 감지한 채 파묘를 진행하는데, ‘험한 것’이 나와 버립니다. 파낸 관의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였는데 영안실에서 관 뚜껑이 열리자 할아버지 혼령이 빠져나와 자손들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계속 이어지는데 친일파 관을 드러낸 그 아래에 또 다른 관 하나게 세로로 묻혀 있었습니다. 그 관은 오니라는 일본 사무라이가 들어 있는 관입니다. 일본 귀신으로 불리는 이 혼령이 등장하여 무서움을 극대화합니다. 영화 전체의 내용은 친일파 가정의 어려움과 일본이 우리나라의 정기를 막으려고 발버둥 쳐 보지만 과거 이순신 장군부터 시작해서 일본의 압제로부터 승리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영화 파묘를 보고 오늘 부활절에 말씀드리는 이유는? 친일파의 혼령, 일본 사무라이의 혼령이 사실을 허구이지만, 진짜 대단한 힘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힘으로는 <관도 뚫고 나오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이 관에서 나와 하는 일이라고는 자신의 후손을 죽이고 괴롭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느 조상이 후손을 찾아가 죽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사탄의 역사, 귀신의 역사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구약에서 새벽은 <하나님의 구원 시간으로 종종 나타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고 롯의 가족을 구해 내신 시간도 이른 아침이었습 니다(창 19:27-29). • 출애굽기에 보면, 새벽에 하나님이 애굽 군대를 어지럽히고 홍해의 마른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셨습니다(출 14:24). • 다니엘서에 보면 다리오 왕이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찾아가 그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도 새벽이었습니다(단 6:19). 이렇게 새벽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도, 믿음의 선배들도, 지금 우리도 새벽에 기도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세요. 하나님은 새벽 시간에 무덤에 안장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 속에 계실 이유가 없었으니 무덤 문을 활짝 열고 무덤에서 나오신 것입니다. 무덤 문이 열려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천사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6절을 다시 보세요.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6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 대다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겠지만, 아직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몇 분을 위해서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그림 2.리 스트로벨의 『부활의 증거』표지> 리 스트로벨(Lee Strobel) 이 쓴 『부활의 증거』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부활에 대해서 궁금해할 만한 주제들을 대부분 다룹니다. 책 세 번째 파트에는 【5가지 부활의 증거와 확신】에 대해서 말합니다. 【5가지 부활의 증거와 확신】 예수는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으셨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을 하려면 그 전에 예수님의 죽으심이 명확해야 합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예수가 ‘티베리우스 황제 재위 중에 극형을 당했다’ 라고 썼고,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빌라도가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라고 전합니다. 심지어 유대교 탈무드에도 예수임이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골수 자유주의자 존 도미닉 크로산도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역사의 어떤 사건 못지않게 확실하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2.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여 자기들에게 나타났다고 믿었다. 이것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제자들에 관한 바울의 증언, 둘째는, 초대교회에 전해진 구전 셋째는, 초대교회의 기록문서입니다. 바울 서신, 사복음서 등을 보면 제자들은 한결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기들에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였기에, 그들은 순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교회를 박해하던 바울의 회심 사울이 바울 되는 사건은 설명이 필요 없지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는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4. 예수의 동생인 회의론자 야고보의 회심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이후에는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부활장이 고린도전서 15장에 이 사실을 명확하게 밟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야고보는 예수를 믿게 되었고, 나중에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순교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5.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말은, 성령 받은 제자들로 인해서 예루살렘에 확실히 전파되었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증거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적들도 알고 있었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자들도 명확하게 증언합니다. 이렇게 세 곳에서 증거하고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이 확실한 부활의 증거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 분명한 부활의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부활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을 경험하게 되면 경건한 두려움에 쌓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말씀 8절을 보세요.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8절) 여인들이 무덤이 비어 있는 것, 천사를 통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경건한 두려움에 빠져버립니다. 오늘 부활주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으시고, 부활의 감격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매일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시고, 우리도 죽음 이후 부활하여 부활하신 주님과 만날 것을 소망하며 살아가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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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