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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에서 확신으로
마가복음 16:9-13 권오진 목사
찬양사역자 김석균 목사를 세상에 알리게 된 복음송이 있습니다. <예수님 믿으세요>라는 찬양입니다. 이 찬양 1절 가사를 소개합니다. 예수님 믿으세요 / 김석균 1.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나요 발걸음 무겁게 이 세상 어디 쉴 곳 있나요. 머물 곳 있나요 예수님 안에는 안식이 있어요. 평안이 넘쳐요 십자가 보혈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아요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 믿으세요
오래된 찬양이지만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평안과 안식이 있고, 고통의 멍에를 벗을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지성이 발달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라면 초대문화부 장관을 역임하신 이어령 교수님이 그런 분이셨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은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성경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한 자였습니다. “내가 노아라면 혼자 살기 위해 방주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신이 계신다면, 6.25 전쟁 때 무엇을 하고 있었냐?” 반문하며 신을 부정했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견고한 이성은 딸이 <망막박리>로 눈이 멀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때부터 지성의 세계 너머에 영성의 세계가 있음을 믿게 되었고, 70이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게 되었고 88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언어로, 글로, 삶으로 복음을 증거가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미국에도 지성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지독히 거부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리 스트로벨(Lee Strobel)입니다. 리 스트로벨은 미주리대학교에서 저널리즘 학위를, 예일대 법학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81년까지 저명한 신문사 <시카고트리뷴>의 법률부 부장을 지냈습니다. 당시 기자들 사이에는 “어머니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일단 확인해 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모든 것을 의심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리 스트로벨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불가능했습니다. 그가 믿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고, 그의 최대의 가치는 <최대의 쾌락>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가정은 엉망이 되어 갔습니다. 그는 아내 레슬리(Leslie)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속에 있는 분노를 아내에게 수시로 터트렸고, 한 번은 홧김에 발길질하는 바람에 거실 벽에 구멍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혈기로 인해 아내와 어린 딸을 눈물짓게 했습니다. 딸이 두세 살이었을 때 아빠가 퇴근하여 현관문에 들어오게 되면 딸 아이는 부리나케 장난감을 모아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고 합니다. 지성으로만 사는 가장으로 가족이 병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오후 아내가 남편에게 중대발표를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남편 리 스트로벨은 이제 부부관계도 끝나가는구나! 하고 예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교회에 나가고 한 달 두 달 지나는 동안 아내의 성품과 가치관에 점차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주일에 아내가 <함께 교회에 가자>고 했을 때, 함께 따라나섰다는 것입니다. 리 스트로벨이 아내를 따라 교회에 간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아내가 보여준 변화에 감동해서이고 또 하나는, 혹시 아내가 사이비 집단에 빠져들고 있다면 아내를 건져낼 수 있을까 해서 였다고 합니다.
시카고에 있는 윌로크릭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 빌 하이벨스 목사의 설교 제목이 <기독교의 기초>였다고 합니다. 이 설교를 들으면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가 깨어졌고, 기독교에 호기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2년 가까이 리 스트로벨은 영적인 탐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성경부터 시작해서 역사적 자료, 고고학적 분야까지 기독교에 대한 모든 것을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신화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다>라는 것입니다. <그림 1. 예수님은 역사다. 책 표지> 리 스트로벨이 쓴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다> 라는 책은 1,400만 부가 발행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책을 바탕으로 영화도 만들어졌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은 역사다>는 확신이 있기까지 본인도, 아내도, 딸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기가 힘들까요? 한마디로 답하면 <예수님은 지성을 넘어선 영성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는 세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존재하셨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문제로 넘어가면 ‘그것은 좀’ 하면서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요? 자신의 이성으로서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좀 하면서 믿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부활을 믿지 못하면, 믿음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다른 것도 자연스럽게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증명하는 것> 몇 가지를 소개한다면
1. 하나님은 존재하며 성경의 하나님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이시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며, 완전한 신성을 가진 분이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모든 죄로부터 의롭게 되었다. 4.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생에서, 죄에 대해 초자연적인 승리를 누릴 수 있다. 5. 우리도 역시 부활하게 될 것이다. 부활을 믿는 것과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에 이런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이 무엇이냐? 했을 때 정답은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우리 주변에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 <이어령 교수처럼, 리 스트로벨처럼> 자신의 이성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라고 증언하는데도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말씀이 나옵니다. 11절 하반절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3절 하반절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참으로 답답할 노릇입니다. 지금부터 본문을 살펴볼 텐데 오늘 본문에는 큰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9절에 보면 괄호를 시작하는 부호가 있다는 것입니다. <【 > 그리고 말씀을 쭉 읽어내려가 보면 괄호를 어디에서 닫고 있는지 보일 것입니다. 어디에 닫는 부호<】>가 보입니까? 20절 마지막에 보일 것입니다.
괄호의 의미를 9절 말씀 난 하 주에 2) 하고는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9-20절 말씀이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마가 요한이 기록한 마가복음은 16장 18절로 끝나고, 9절부터 마지막 20절까지는 다른 어떤 사람이 후기, 혹은 부록 형식으로 넣었을 것으로 봅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우리가 가진 성경대로 인정하면 됩니다. 이 부분이 후기 혹은 부록이라도 책을 읽다 보면 <후기나 부록>이 더 중요한 예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고 있는지 집중해서 들어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9-11절은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이야기 12-13절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이해를 돕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이 몇 주 동안에 걸쳐 만난 사람들을 순서>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순서> ① 막달라 마리아에게 ② 다른 여자들에게 ③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에게 ④ 베드로에게 ⑤ 도마를 제외한 열 명의 사도들에게 ⑥ 도마와 다른 사도들에게 ⑦ 일곱 명의 사도들에게 ⑧ 열한 명의 사도들에게 ⑨ 승천하시기 전 올리브 산에서 사도들에게 이 순서대로라면 오늘 본문은 첫 번째와 세 번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지요.
1.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를 생각해봅시다. 9-11절 본문을 다시 보세요.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9-11절)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사는 요한복음 20:11-18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최근 발간된 <희(喜)스토리 성경> 내용 그대로 읽어보겠습니다. “여보시오!” 누군가 막달라 마리아를 부르고 있었다. “여보시오!” 그것은 아침을 깨트리며 오는 맑은 목소리였고, 우렁차게 머릿속을 울렸다. “여보시오, 아가씨, 왜 울고 있소?” 우느라 헐떡이면서 막달라 마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묘지기가 왔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우리 주님을 옮겨가 버렸어요” 그녀가 흐느꼈다. “그리고 그분을 어디 갖다 두었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찾는 사람이 누구요?” “오, 선생님!” 마리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이 그를 옮기셨다면, 어디 두셨는지 말해 주세요. 내가 직접 가서 그분 시신을 모셔오겠어요.” 이제 그 남자는 그녀 바로 앞에 섰다. 흐르는 눈물 사이로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하얀 튜닉, 말끔히 면도한 얼굴, 부드럽고 귀에 익은 목소리로 그 남자가 말했다. “오, 마리아.” 그녀는 숨이 막혔다. 그녀는 보았다. 그녀가 사랑하는 예수의 아름다운 이마와 검은 머리, 그리고 흔들리지 않은 황금빛 시선을! “랍오니” 그녀가 소리쳤다. “쉬, 쉬, 조용히.” 예수님은 그녀의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당신이 지금은 나에게 매달릴 수 없어요, 나는 아직 내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소. 그러나 내 친구들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이며 그들의 아버지, 내 하나님이며 그들의 하나님께 올라간다고 전해 주시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을 제자들에게 먼저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여인 중에 가장 연약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첫 목격자라는 사실에서 저는 구약 이사야에 나오는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사 42:3) 예수님은 상한 갈대 같은, 꺼져 가는 등불 같은 사람들을 살려주실 뿐 아니라 그들에게 가장 먼저 관심을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일곱 귀신들렸다 고침받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신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지성이 뛰어난 사람보다는> 오히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같은 자들이 먼저 영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가 최초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 소식을 제자들이 들었지만, 듣고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에게 나타나신 이야기>로 넘어 갑시다. 12-13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는 누가복음 24:13-35 에 자세히 소개합니다.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 <글로바(눅 24:18)>라고 밝히는데, 다른 한 사람은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그 사람을 학자들은 <글로바의 아내>라고 봅니다. 이유는 다른 부활 사건에 대한 기록에 글로바의 아내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9: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이 말씀에 의하면 글로바의 아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든 것을 목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못 박히신 장면을 생생히 보았습니다. 못이 손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피를 보았습니다. 그분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날이 어두컴컴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끝내는 창이 그분의 옆구리에 파고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는 예수님이 숨을 거두셨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 현장을 글로바도 보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아침 그들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글로바와 그의 아내는 예루살렘에 있다가는 자신들에게도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엠마오로 내려갑니다. 그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행했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글로바와 그의 아내에게 마지막 남은 예수님의 이미지는 십자가에서 처절한 모습으로 돌아가신 예수님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것은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행해주셨고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를 풀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엠마오에 도착해서 예수님의 떡을 가지고 축사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눈이 밝아져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 순간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라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두 사람은 다시 11km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제자들에게 예수님 부활하셨다고 우리가 목격자라고 알려주었지만, <역시 믿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세 가지 도구 동행, 성경, 성찬식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들에게 있는 공통된 흐름을 하나 발견합니다. 부활 신앙은 불신 슬픔에서 시작하여 → 기쁨과 흥분과 사랑과 헌신(확신)으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은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불신입니까? 확신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불신에서 시작했더라도, 이제는 내 지성을 내려놓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확신으로 전환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성의 세계 넘어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영성의 세계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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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의 끝이 내일의 처음입니다. 오늘 무엇을 했느냐가 내일을 결정합니다.
오늘 바쁜 일을 미루면 더 바쁜 내일이 되고, 오늘 바쁜 일을 처리하면
여유로운 내일이 됩니다. 오늘도 좋은 생각들, 마음들을 가지고 보내도록해요.
꽃길만 걸으시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주인공으로 출발하시는 하루 되세요.💖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