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과 연동되는 디지털 화폐와 한 번에 모든 바이러스를 잡는 범용 바이오칩이 개발된다는 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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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없다. 각각의 부르심의 영역을 따라 각자가 맡은 사역의 유형과 내용을 통해 특히 진리에 대해 더 잘 깨우침받을 이들이 있어 그만큼만 쓰임받을 뿐이다. 쓰임받는 그들 자체를 우상시하지 말고 꾸준히 스스로 말씀 가운데 검증받고 각자가 올바로 주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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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과 연동되는 디지털 화폐와 한 번에 모든 바이러스를 잡는 범용 바이오칩이 개발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단순한 소문에 안 그칠 것 같은 이유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통합적으로 디지털 전체주의 체제 지향의 흐름이 이미 자리잡아와서다. 아는 만큼 피하고 모르는 만큼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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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별로 월말이나 연초에 받아보는 변증전도용 책들에 대한 인세 내역을 보면 '전도용 책은 죽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전도는 신자들이 죽을 때까지 해야 하고, 교회에 새신자는 어떤 형태로든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다. 말로 직접 전하기 어려운 때에 문서로나마 섬기는 복음전도가 요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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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계 13:18). 마지막때의 짐승의 표는 총명하지 못하면, 곧 말씀에 따라 시대적 징조들에 깨어 있지 못하면 분별하기 어렵다. 적그리스도 체제의 통제사회 분위기를 코로나 사태의 이상 기류를 통해 아직도 예감하지 못하면 많이 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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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은 통제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공권력이 국민의 자유를 임의로 제한해도 별 거부감이 없도록 세뇌시키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백신 접종 없이는 자유로운 이동이나 매매가 통제된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분위기가 정착되어간다. 성경의 종말론을 부끄러워하는 교회 역시 눈치껏 모른 체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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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이웃과의 관계를 지키려고 불의한 일을 봐도 그냥 묻어버리려 하는 경우가 많다. 비신자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이웃과의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우선적인 신자들은 달라야 한다. 부정선거를 고발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해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지키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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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쭉 섬겨오는 동안 내 마음에는 늘 목회 100%, 변증전도와 문서 사역 100%였다. 어느 하나도 다른 하나로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교회가 왜 빨리 자라지 않나?" 하는 나의 질문에 주님의 답을 최근에야 받았다. "네가 내게 하듯 100%로 두 사역을 다 섬기려는 지금은 교회가 적당히 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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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내게 목회 사역을 맡기신 이유는 그 사역의 원초적인 생명력으로 내게 주신 변증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나의 비목회 사역은 목회 사역의 부산물이다. 목회에만 100%로 집중하면 그 자연스런 은혜의 능력과 열매로 비목회 사역에 100%로 헌신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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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확실하게 눈뜬 이들은 "야, 어쩌면 이렇게 명백하게 보이는 걸 못 볼 수 있지?"라고 말하고, 그 진리 안에 살면서도 눈을 감은 이들은 늘상 환한 어둠뿐이다. 한 세상에 한 햇빛을 받고 살면서도 누구는 그 빛으로 진리를 보고, 누구는 맨날 자기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정도로만 그 빛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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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너의 거짓 예언을 들은 네 모든 친구도 그와 같으리라"(렘 20:6). 거짓 예언은 당사자뿐 아니라 그 예언을 들은 친구들도 화를 당하게 한다.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무엇보다 죽음을 준비케 하고 회개와 심판, 종말에 대해 깨어 있게 하지 않는다면, 거짓 예언자이거나 세속주의자일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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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목회의 생존을 위해 행함 있는 믿음에 대해 교인들을 일깨우지 않는 목회자들은 생명을 부차적으로 돌리는 격이다. 목회의 생명은 생명을 살리는 것인데도 자기 생존만 위한다. 교리주의 뒤에 편하게 숨어 성경이 이 믿음에 대해 정말 뭐라고 가르치는지도 제대로 연구하기를 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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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날 모든 사람의 죄가 다 도말되었다. 이 감쪽같은 사실을 믿으면 그 진리가 나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이것이 완벽하신 주의 기이한 사랑이다. 믿고 안 믿는 게 이만큼 중대한 일이다. 믿으면 죄가 없고 안 믿으면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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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죄의 대속을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어 구원의 여정에 들어선다. 이제 그 고백대로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까먹을까봐 그냥 같은 고백만 반복하는 입술이 아니라 그 고백을 사는 삶이어야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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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지 몰라도 실은 큰 환난 전의 고요와 같이 위태롭다. 주님이 곧 오신다는 소문에 어떻게 교회마저 이리도 무관심할 수 있는지. 아무리 무슨 그럴 듯한 다른 이유가 있나 찾아봐도 세상이 더 좋은 거 말고는 딴 게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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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내일이라도 오시면 영원한 천국에 곧장 들어가는데 이런 말을 하면 왜 선동하듯 불안을 조성한다며 싫어할까. 세상에서 평온하게 잘 살아보는 게 천국보다 더 소원인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재림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불온한 체제 위협으로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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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주님에 대한 사랑은 너무 많은데 주님의 사랑은 너무 부족하다. 한 영혼을 내 식으로 사랑하는 거야 얼마든 하겠는데 주님처럼 사랑하는 게 너무 어렵다. 아무것도 되갚을 게 없는 사람에게 주님처럼 무한정 다 주는 게 이토록 힘들 줄 미처 몰랐다.
- 안환균 목사의 SNS에 수 년 전 어제 나눈 단상 모음
첫댓글 아멘아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