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가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명당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동작동 국립현충원 자리는 명당중의 명당이다.
조산(祖山)인 관악산에서 출발한 기(氣)가
주산(主山)인 주달산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장군봉에서 기(氣)를 추수린 다음
혈(穴)인 창빈 묘에서 꽃을 피운 후
일반 사병 묘역과 현충문을 통하여
한강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명당 터다.
조선13대왕 명종이 후사 없이 죽자
중종의 후궁 창빈안씨가 낳은 덕흥군의 아들
하성군이 선조로 등극하면서
왕을 낳은 명당터로 통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풍수를 조금 안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추천했던 명당 1순위였다.
태조 이성계가 죽자
상주가 된 태종 이방원은
함흥에 묻어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자신이 참배하기 가까운 곳에서 묘지 터를 물색했다.
당대의 술사들이 추천한 곳이 동작동 현충원 터였다.
서운관원 유한우와 이양달을 대동하고
오늘날 신사동 높은 동산에서 동작동을 살펴본 이방원은
한강으로 빠져드는 객수(客水)가 마음에 걸렸다.
아쉬움을 안고 차선책으로 고른 곳이 건원릉이다.
이방원은
아버지에 대한 불효를 조금이나마 덜어보고자
함흥에서 가져온 흙과 억새로 봉분을 덮는 것으로 퉁쳤다.
아직 기틀이 잡히지 않은 불안한 정국속에서
부친 묘소를 참배하기 위하여 함흥나들이 할때
한양에서 쿠데타라도 발생하면 어찌할 것인가?
이때부터 왕릉조성은 도성 100리 이내라는 룰이 정해졌다.
태종이 죽자
술사들이 또 다시 명당 터로 추천한 곳이 동작동 현충원 터였다.
신하들을 데리고 현장을 답사한 세종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버지 태종을 대모산 아래에 모셨다.
동작동 현충원의 결정적인 약점은
후손이 발복하지만 곧바로 망한다는데 있었다.
조상의 음덕으로 망하는걸 모면한다 해도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
여러사람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후궁의 몸으로 왕을 만들어냈으니 발복한 셈이지만
선조가 나라를 말아먹고 그의 손자 인조가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항복하는 치욕을 겪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인조는 자기 아들 소현세자와 며느리, 손자를 죽이는
폐륜을 저지른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정희대통령의 후손 박근혜도 발복했지만 곧바로 망했다.
YS의 아들 현철이도 징역살고 나온후 재기하지 못하고
DJ의 아들 홍일과 홍업도 징역산 후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
미신 같은 과학, 과학 같은 미신
풍수는 풍수일 뿐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영화 '파묘'를 기회로 더욱 회자되고 있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
헌대 명종이 11대 ?
중종이 11대 아닌가요?.
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슬픈역사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