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부대변인 김연주 2021.07.16
지난 5일 끝난 ‘나는 국대다!(국민의힘 대변인 뽑기 토론배틀)’에서 55세의 김연주가 상근부대변인으로 뽑혔다. 그 과정이 한국사회에서 ‘연공서열’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본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국대다’에는 모두 564명이 지원했다. 김연주는 1차(논평 영상 심사)와 2차(압박면접)를 통과한 16명 중 가장 연장자였다. 1차를 통과한 100명 중에는 현대중공업 회장을 지낸 민계식 79세의 노익장이 있었으나 2차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김연주가 최연장자가 됐다.
그는 최연장자로서 16강전과 8강전을 치렀다. 1위와 2위는 대변인, 3위와 4위는 부대변인이 되는 4강전까지 진출한 그는 3위를 차지해 6개월 동안 국민의힘 부대변인으로 일하게 됐다.
TV로 생중계된 4강전을 지켜본 사람 가운데 무려 12만 명 이상이 자기가 지지하는 대변인 지원자의 이름이나 기호를 적어 보내는 문자 투표에 참여했다. 그중 한 명인 나는 중계가 시작되자마자 그에게 투표했다. 그가 1위를 해서 대변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가 경쟁자들보다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아나운서였다는 것은 알았지만 언제가 전성기였는지, 그때의 지명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몰랐고,
남편이 ‘임 머시기’라는 유명 방송인이라는 것도 몰랐다. 얼굴에 남아 있는 젊은 날의 미모가 내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면 0.00001% 정도? 한국 최고로 꼽히는 대학에서 공부했다는 것, 잘 나갈 때 아나운서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 키우는 데 자신의 많은 것을 바쳤으며, 아이들이 다 자란 후에는 대학원에서 박사가 되는 공부를 했다는 사실은 이 글을 쓰는 준비를 하다가 알았다.
나는 단지 그가 가장 나이가 많다는 점 때문에 4강 배틀에서 1위를 하게 되기를 바랐다. 경쟁자들은 26세, 27세, 36세의 청년들이었다. 그가 1위나 2위를 하지 못하면 이들 중 두 명을 ‘대변인님’으로 모시게 될 판이었다. 연하도 너무 연하였다. 아들뻘, 조카뻘인 젊은이를 55세인 그가 모시는 그림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올시다”였다. 새파란 2세 경영인을 회장님으로 눈치 보며 모셔야 하는 재벌급 대기업의 창업공신, 전문경영인들과는 다른 상황으로 보였다.
오프라인 기업에서 평생을 보내고 퇴직한 노인 로버트 드니로가 온라인 기업인 새 직장에 인턴으로 들어가 딸만큼 젊고 아름다운 여자 CEO 앤 해서웨이(‘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인공도 했다)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세상을 가르치는 영화 ‘인턴’의 상황과도 다르다고 보았다.
수백 명 중에서 골라진 4강이라면 실력이야 증명된 게 아닌가, 비슷한 실력이라면 삶의 경험이 경쟁자들보다 월등히 풍부할 그가 대변인단에서 더 높은 지위를 가져야 옳다는 게 김연주보다도 더 오래 산 나의 경험이 내린 결론이었다. “국민의힘의 변화는 35세 대표가 뽑힌 데서 확인된 것 아닌가?
‘나는 국대다!’ 4강에 ‘젊은 피’가 셋이나 들어갔으니 역동성은 과시된 것 아닌가?”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나이 든 사람들의 자존심을 그가 지켜주기를 바랐다. 아내에게도 “김연주가 1등 해야겠지?”라고 바람을 잡았다.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사람이 젊은이들 사이에 분란이 생기면 조정도 잘 할 거 아닌가? 지명도도 높을 테니 김연주가 유리하겠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국대다!’ 토론배틀을 지켜보는데 내 생각이 틀렸음이 자꾸 드러났다. 김연주의 젊은 경쟁자들은 한국 사회의 여러 현안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논리와 순발력으로 자기 생각을 주저없이 펼쳤다. 이런 점에서 김연주는 젊은 경쟁자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경쟁자들은 질문이나 답변에 곧바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거나, 반론을 던지는데 그는 머뭇거릴 때가 많았고,
질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 논지에서 벗어난 답변도 했으며 말이 꼬인다는 느낌도 줬다. 스튜디오에서 토론을 벌인 젊은 경쟁자들과는 달리 혼자만 화상으로 토론을 해야 했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부족함이 자주 느껴졌다.(그는 4강전을 준비하는 사이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바람에 스튜디오에 나올 수가 없었다.)
최종 평가에서 심사위원 점수로는 꼴찌였던 그는 문자 투표를 많이 받아 3위로 올라섰다. 나는 그에게 문자 투표를 한 사람 대부분은 나처럼 이왕이면 연장자가, 이왕이면 경험자가 1등이 되기를 바랐던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1등이 되어 함께 대변인 활동을 할 경쟁자들이 지나치게 넘치는 혈기 때문에 젊음의 모든 이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적절히 조절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국대다!’ 토론배틀이 끝난 지 여러 날 지난 어느 날, 김연주 인터뷰 기사를 뒤늦게 읽게 됐다. 4강전 진출자로 확정된 후 했던 그 인터뷰에서 4강전에서 젊은이들에게 밀려 4위가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는 “4위로 부대변인이 되어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여기까지 온 것만도 감사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인터뷰를 읽으면서 김연주의 각오와 감사가 한국 사회의 연공서열 제도를 자연스럽게 파괴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각오와 감사 없이 나이와 경험만으로 젊은이들보다 나은 대접을 받으려는 사람은 ‘꼰대’라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6개월짜리 부대변인 자리일망정 그가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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