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불태울만큼 살아온 자만이 어두운 면도 품을 수 있다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삼십 오년이나 해온 남자.. 의도하지 않게 많은 책들의 근사한 문장들을 음미하며 사상이 자신의 뇌에 스며든다 그는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압축기를 이용하여 책을 파괴하는 것이다 폐지를 압축하다가 이따금 책에 흠뻑 빠지게 되고 그의 고용인인 소장은 그를 못마땅해 한다
그가 하는 독백이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그의 상상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집시여인부터 예수, 노자 등이 등장하는데 허구같다기도 진짜같다기도 하다
하수구 청소부들로부터 시궁쥐들이 전쟁을 벌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사회도 별 반 다를 것이 없다 두 이념으로 나누어 전쟁을 벌인다 한 쪽이 이긴다고 해서 평화가 도래하지 않는다 또다시 이 승자들은 진영을 나누어 상반되는 진영을 꾸리고 다시 팽팽한 균형이 생긴다 세상이 통째로 한 가지 이념이 되는 그런 시대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적을 만들어야 내부 단결이 끈끈하다고 한다 내부의 단결을 견고히하여 내부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급진한 발전에 자신이 35년 간 유지했던 폐지에 대한 신념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단지 인간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노인에게 소장은 이제 폐지 압축하는 일 말고 나가서 비질이나 하라고 한다 그렇게 그 남자는 폐지 속으로 들어가 압축의 대상이 된다
책:시끄러운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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