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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가면 절을 한다
사찰을 절이라고 한다.
절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왜 사찰을 절이라 하는가?
절에 와서 부처님께 지심으로 예경하고 자신의 정성과 소원을 표현하기 때문에 절이라 한다.
'절에 가면 절을 한다' 이것이 절의 의미이다.
인간은 업식과 욕망의 결과물이다.
이것을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분에게 의지하여 자신의 고통을 소멸하고 행복한 삶을 기원하는 것이다.
절하는 예식은 조금식 달라도 부처님이 계셨던 초기불교부터 절은 불교의 의식에 표함되었다.
인도에서는 절을 '접족례'라한다.
성인이나 현자에게 나아가 절을 하는 것은 자신의 이마를 상대방의 발에 대고 절을 하는 것이다.
자신을 최대로 낮추어서 상대방의 가장 낮은 부분에 경배하는 것이다.
어릴 적 당감동(부산) 선암사에 태홍스님이 계셨다.
스님께서는 점심을 드시고 오후 2시가 지나면 장삼에 가사를 수하시고 극락전 법당에 모셔진 지장보살 존상 앞에 나아가 지극히 절을 하셨다.
예순일곱 정도의 연세였지만 늘 불보살님에 대한 자신의 강한 신앙심을 표현 하셨다.
어린시절 나의 눈에 비춰진 태홍스님은 불편하신 당신의 몸으로 절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거룩하고 장엄하셨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절을 하시는 스님은 산중 수행자로서 고고함과 엄정함이 묻어났다.
'자비도량참법'에 보면 '절을 할 때는 마치 태산이 무너지는것처럼 하라' 라고 하셨다.
이 말은 태홍스님을 두고 말씀 하신 것 같다.
온갖 정성을 다 기우려시는 스님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원효스님께서 저술하신 발심수행장에서 배슬여빙무연화심(拜膝如氷無戀火心)이라 했다.
법당에서 기도할 때 '절하는 무릎이 아무리 차갑고 시리더라도 따뜻한 불 생각을 하지말라'고 하셨다.
또 고려시대의 염불결사를 주도했던 만덕사의 원묘요세 스님이 53불에게 예참했던 내용이 나타난다.
최자가 찬한 원묘요세 스님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묘종(妙宗, 천태)의 관경소(觀經疏)를 강독하다가 '시심작불 시심시불'(是心作佛 是心是佛)에 이르러 크게 마음에 계합되는 바가 있었으며 그로부터 묘종을 즐겨 설하였고 그 언변과 지혜가 걸림이 없었다.
문득 대중을 불러 참회를 닦게 하였는데 그 정성스러움이 지극히 정맹(精猛)하여 하루 53불에 열 두 번씩을 절하였으며, 심한 추위나 무더위에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므로 스님들이 그를 서참회(徐懺悔)라고 하였다."
절을 하면 부처님께 부끄럽지 않다.
제방의 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들도 대체로 하루에 한번 법당에 가서 108배 이상 절을 한다.
이참과 사참을 참회하는 것이다.
이참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요, 사참은 몸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절을 하였다.
절을 해보면 몸에서 땀이 난다.
아무리 추워도 나의 머리에는 풀에 이슬이 맺히듯 땀이 배여 있다.
사람은 하루에 한번 땀을 흘려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오장육부가 튼튼하고 육체가 건강하여 몸에 병마가 없다고 한다.
절은 우리 불자가 해야 할 안성맞춤의 운동비결이며 부처님께 다가가는 최상의 기도법이다.
절을하는데는 넓은 공간도 필요없다.
한 평의 작은 공간에서 위대함이 이루어진다.
부처님께서 최후의 말씀으로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고 일러 주셨다.
우리는 불자답게 열심히 부지런히 수행하고 정진해야 한다.
이것이 불자의 올바른 도리이다.
#일광스님
첫댓글 감사합니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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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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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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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되시옵소서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