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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 예레미야 32장 1-15절
미국에서는 집을 살 때 그 땅도 함께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토지가 국유 아니면 집단소유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개인이 소유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자본주의를 여러분야에서 받아들이므로 주택 소유를 일부 허용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저 기본 권리에 불과한 것이며, 또한 그것을 사고파는 부동산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경제활동의 일부입니다.
성경에는 물론 '땅 투기'를 하라는 말씀은 없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밭을 사라고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더구나 본문 1절부터 5절의 말씀은 "유다 왕 시드기야 제 십년," 그리고 이미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을 때이고 나라가 멸망 직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유대나라가 멸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라가 망하는데 땅을 사서 무얼할 것입니까?
일찍부터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서 바벨론 왕의 손에 망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셨고,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한다고 예언해 왔기 때문에 시드기야 왕의 미움을 받아서 감옥에 갇혀 있던 때였습니다.
주전 586년 나라가 무서운 적에게 포위되고 망해가는 와중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로부터 '너는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는 아주 이해하기 힘든 명령을 받게 됩니다.
1. '상속권과 무를 권리가 있는 땅'이므로 사야 합니다.
7-8절에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여호와의 말씀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지금 "시위대 뜰 안"의 감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에게 "여호아의 말씀이 임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네 숙부 살룸의 아들" 즉 예레미야의 사촌이 되는 "하나멜"이라는 사람이 와서 자기의 밭을 사라고 부탁해 올 것이라고 예언해 주셨는데, 과연 그 말씀대로 하나멜이 예레미야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아나돗"이란 예루살렘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네로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멜은 아마도 전쟁 중에 경제적으로 궁핍해져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는 그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에 대하여 "기업의 상속권"과 "무를 권리"가 예레미야에게 있음을 상기시켜 주면서 그것을 사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마당에 염치없는 요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늘 남편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던 여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은 도무지 복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회생불능의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남편을 위해 마지막으로 여 집사님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심방을 오셨습니다. 목사님은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그에게 예수님을 믿도록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군인이었던 남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 다 죽어 가는 마당에 이제 와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나약한 짓입니다. 군인답게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저를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슬퍼하는 사람이 이런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면목과 체면을 찾아서는 않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의학자 패트릭 맨슨(Sir Patrick Manson ; 1844~1922)도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와 질병을 고치시는 분이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 말씀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하였듯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모든 병과 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결해 주심을 믿고 축복을 기대해야 합니다.
미국의 워너메이커는 어린 시절 그는 가난의 저주 속에 놓여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감사예물을 드리던 날에도 그는 빈손으로 교회에 가야하는 처지였습니다. 한번은 그것이 너무 괴로워 벽돌을 굽는 아버지에게 간청해서 벽돌 한 수레를 헌금으로 가져올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목사님은 간절히 축복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후, 워너메이커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세계적인 부호가 되었습니다.
'상속권'이 있고 '무를 권리'가 있는 '아나돗의 밭'을 이 전쟁 통에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 사라는 것은 몰염치하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또다른 뜻이 있음을 깨닫는 저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이것은 지금 함락 직전에 있는 예루살렘성 안에 갇혀서 완전히 절망에 빠져 있는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미래에 내려주실 해방과 축복을 믿고 소망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일종의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2. 하나님께서 깊은 뜻이 있어 땅을 사라고 명령하십니다.
8절 하반절부터 12절에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9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 칠 세겔을 달아 주되 10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11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를 내가 취하여 12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증서에 인 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사촌 하나멜의 제의를 받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즉시 그 '아나돗의 밭'을 사게 됩니다. 당시의 매매 관례대로 그는 먼저 "은 십 칠 세겔"을 저울에 달아서 정확하게 지불했습니다. 그 밭의 실제 넓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비싼 가격인지 싼 가격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평상시 거래될 때 통용되는 정당한 가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예루살렘이 적군에 의하여 포위되어 있고 나라가 곧 망하게 될 것이 뻔히 내다보이는 상황에서 그런 정식 가격을 지불한다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39세인 무직자인 박모씨가 지난 달 서울의 한 오피스텔 앞을 지나다가 창문이 열린 집을 발견하고는, 건물 외벽의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가 빈집을 털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가 훔친 것은 양말 한 짝과 모자 한 개, 넥타이 다섯 개가 전부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즈음 한국에 힘들게 입시를 통과한 대학생들이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교를 중퇴하고, 졸업 후에는 취업이 되지 않아 청년 백수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를 비관해 자살하는 젊은이들까지 있습니다. 퇴직 후 돈벌이가 없어 고생하는 노년층도 상당수라고 합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한국에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가 한 해 평균 49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인 C.S.루이스(Clive Staples Lewis ; 1898~1963)에게 한 청년이 찾아와 고난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왜 고난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청년의 말을 들은 C.S.루이스는 “고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확성기와 같은 것”이라며, “교만하고 타락한 인간이 고난마저 없다면 얼마나 더 교만하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6.25 사변 당시 물밀듯이 밀려오는 북한 공산군 앞에 서울이 함락 직전에 있을 때 누가 '내 집을 사시오.'라고 한다고 하면 그 어떤 바보가 그것을 사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십중팔구 휴지 조각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땅문서를 쥐고 있는 것보다는 한 푼이라도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백배 더 낫다는 것은 상식에 불과한 일인 것입니다.
또 만약에 서울 수복의 가능성을 믿고 그것을 산다손 치더라도 그 거래 가격은 현시세보다는 훨씬 더 떨어질 수밖에 없음은 사는 사람뿐 아니라 파는 사람에게도 당연히 알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레미야가 지불한 '은 십 칠 세겔'은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 돈을 지불하고 모든 토지 매매 계약의 절차들을 정확하게 밟았습니다. 일단 "증서를 써서" 그 원본은 내용을 고치지 못하도록 진흙이나 파라핀 따위로 "인봉하여" 토기에 담아 영구보존하도록 했습니다.
저 유명한 쿰란 공동체의 '사해(死海) 사본'들 역시 토기에 담겨서 잘 보존된 까닭에 오늘날까지 발굴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언제든지 읽어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의 사본도 만들어서 구매자가 소지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지금 옥에 갇힌 몸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 친구이며 개인 비서였던 "바룩"에게 맡겨서 역시 토기에 담아 보존하도록 조치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그 '아나돗의 밭'을 사촌에게서 사는 모습을 보고 그 주변에 있던 "증인들"이나 구경하던 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왜 멍청이 바보 같이 저 땅을 사나?” 하고 모두들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왜 그처럼 현실적으로 손해되는 계약, 당장 꼭 필요한 돈을 날려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매매계약을 체결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것이 곧 "여호와의 말씀인 줄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구매 제의는 하나멜에게서 들었지만 그 '아나돗의 밭'을 사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인 줄로 깨달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자기 사촌의 의도가 무엇인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3. 축복의 미래 바라보아야 합니다.
13-15절에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공중에 높이 나는 새는 좀처럼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새는 너무나 높이 날아다니므로 총을 쏠 수도 없고 그물을 쳐서 잡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영리하고 날쌘 새도 먹이를 찾아 내려오다가 포수의 손에 걸려서 죽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깊은 물 속의 물고기도 좀처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물고기도 향기로운 미끼를 찾아 올라오다가 낚시에 걸려 죽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명성이나 학식이 있는 사람들도 하루 아침에 몰락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눈앞의 사사로운 이익에 매달리거나, 현혹되어 몰락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멀리를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 '아나돗의 밭'은 다른 유다의 모든 땅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는 이미 바벨론 군대의 점령 하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예루살렘성 역시 느부갓네살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었습니다. 단지 이런 상황만 생각한다면 이 '아나돗의 밭'은 '은 십 칠 세겔'은커녕 사실상 거래 자체가 무가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는 먼 미래를 내다 봤습니다.
1945년 8월 6일 아침에 미군의 공습이 두려워 방공호에서 잠을 잤던 많은 히로시마 사람들이 밖으로 몰려 나왔습니다. 그 때 그들의 눈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자그마한 낙하산 하나가 보였습니다. 히로시마 하늘을 날던 미군의 B-29 폭격기에서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길이 3m, 지름 0.72m에 무게 약 4t인 일명 ‘리틀보이’라는 원자폭탄이었습니다. 리틀보이는 히로시마 상공 550m에서 폭발하였고, 그 폭발의 위력은 TNT 2만t에 해당할 정도로 무시무시하였습니다. 7km 상공까지 버섯구름이 솟구친 폭발로 인해 도시의 모든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도시 중심의 가옥과 사람들은 뜨거운 불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히로시마 인구 40만명 중 10만 명이 한 순간에 죽었고, 후유증으로 15만 명이 죽었습니다. 단 한 번의 폭발로 수십만 명의 생명이 죽고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핵 개발 능력과 기술이 더욱 발전해서 미국과 러시아 같은 나라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보다 300배 이상의 위력을 가진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 순간에 수천만, 수억의 생명을 죽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세상의 폭탄보다 더욱 강한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폭탄은 죽은 자를 살리되 잠시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생명폭탄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살려내며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세상의 폭탄은 한 번 터지면 그만 이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은 연쇄적으로 터질 수가 있고, 무한대로 폭발할 수가 있습니다.
디엘 무디는 생전에 수백만 명의 생명을 살렸고, 빌리 그래함도 1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고아의 아버지인 죠지 뮬러도 수십만 명의 생명을 살린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실로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해 주셨던 것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바벨론 군대가 침공한 이래 이미 부동산 거래 자체가 중단된 지 오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땅" 즉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다시 사람들이 "집과 밭과 포도원"들을 사고파는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날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회복되는 날이 언제 일까요?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을 받고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날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여기서 자신의 매매문서를 토기에 담아서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바벨론 포로 70년' 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70년 후면 예레미야 선지자 자신은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 토기에 담아 보관해 두었던 땅문서를 자기 손에 다시 쥘 수도 없을 것입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1864년에 태어나 1930년 67세로 타계하신 분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1세에 유기점의 점원으로 시작하여 16세에 행상을 시작하였습니다. 20대에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1907년 평양 모란봉에서 있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구국강연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아 소시민으로 살아오던 자신의 삶을 철저히 바꾸기로 결단하였습니다. 당일로 상투를 자르고 술과 담배를 끊고 민족운동, 교육운동, 산업운동에 나서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오산학교를 세우고, 오산교회를 세웠으며 도자기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민회(新民會)란 비밀결사를 조직하였습니다. 남강 이승훈선생의 경우처럼 한 사람의 변화는 시대의 변화를 일으키고 역사를 변화 시키는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많은 날'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유다의 국권을 회복해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토의 소유권을 되찾게 될 축복의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약속해 주시는 것이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미래에 훨씬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가, 예레미야의 '상징적 매매'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전달되어지고 믿기를 바라셨습니다.
한 나그네가 한 덩이의 향기를 발산하는 진흙을 얻었습니다.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네가 그 유명한 바그다드의 진주냐?” 진흙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또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너는 무엇이냐?” 진흙은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 진흙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진흙이 지닌 향기의 비밀은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진흙 위에 오랫동안 백합화가 뿌리를 박고 꽃을 피우며 살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향기가 밴 것입니다. 진흙과 같이 우리 인생이 향기로운 삶이 되려면 주님과 함께 해야 됩니다. 주님과 동행하면 주님의 향기가 내 속에도 생겨나고 친구와 이웃에게 번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당시에 예레미야의 거래를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두들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들 앞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지금은 적군의 손에 넘어가는 유다 땅이고 예루살렘 성이지만, 장차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 땅을 유다 백성의 손에 다시 넘겨주실 축복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고, 그 소망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눈 앞의 현실만 바라보고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않됩니다.
이 '아나돗의 밭'이 '축복의 산지'가 되고야 말 미래를 생각하며, 여러분들 각자를 위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미래를 마음속으로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