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부활 제6주일 (생명주일)
해마다 5월의 첫 주일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죽음의 문화’의 위험성을 깨치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생명 주일’이다.
한국 교회는 1995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지내 오다가, 주교회의 2011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이를 ‘생명 주일’로 바꾸며 5월의 첫 주일로 옮겼다. 교회가 이 땅에 더욱 적극적으로 ‘생명의 문화’를 이루어 나가자는 데 생명 주일을 지내는 뜻이 있다.
오늘은 부활 제6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어 성자를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성자를 통하여 참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성자의 사랑을 본받아,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도 서로 사랑합시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9-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제14회 생명 주일 담화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19)
출산과 양육, 노인 돌봄의 공동 책임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5월 5일은 어린이날이자, 한국 천주교회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보호하고자 제정한 생명 주일입니다. 이 뜻깊은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생명 경시의 세태를 성찰하면서 머지않아 어린이날을 누릴 어린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담아 생명의 고귀함과 탄생의 기쁨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오늘날 한국 사회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관련된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2024년 정부는 난임 여부 검사비를 포함한 난임 시술비 지원 사업을 소득 기준과 거주 지역에 상관없이 대폭 확대하여 지원하고 있고, 2019년 4월 헌법 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하여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5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관련 법을 마련하지 못하여 입법 공백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2022년 이른바 ‘조력 존엄사법’ 발의 이후 ‘의사 조력 자살’ 또는 ‘조력 사망’이라는 이름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계속 논의되고 있습니다.
2. 지난 2023년 4분기 합계 출산율이 사상 처음 0.6명대로 떨어졌습니다. 이처럼 한국은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에서도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고, 한국 사회의 출산 기피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정부 또한 다양한 저출생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한 출산 기피 현상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산 기피 현상은 어쩌면 부모 세대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 절망적 사회를 차마 자신의 소중한 아이들에게까지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한 호소를 드러내는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일컬어지는 ‘부의 양극화’, 사교육비 등 과중한 양육비, 치솟는 주택 가격과 물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 등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 사회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남녀의 사랑과 일치로 탄생한 가정은 ‘부부 사랑의 증진’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창조’라는 의미도 함께 내포합니다. 가정은 생명을 전수하는 자리입니다. “가정은 새 생명이 태어나는 곳일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하느님의 선물로 환대하는 자리입니다”(「사랑의 기쁨」, 166항). 이는 하느님의 창조 행위에 인간이 깊숙하게 참여하는 방법이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 유지와 존속의 책임을 수행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가정과 사회 형태의 변화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이 부모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자녀의 출산과 양육은 부모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닙니다. 가정, 기업, 사회, 국가, 교회가 다 함께 출산과 양육의 과정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4. 노인을 돌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인들의 지혜와 경험을 가족과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유일한 원천으로 받아들이면서(「생명의 복음」, 46항 참조),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에 기반하여 존엄사의 권리를 주장하며 안락사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우리 사회가 다 함께 이들을 돌보는 일에 함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녀의 출산과 양육, 노인 돌봄은 결코 고통스럽고 무익한 일이 아닙니다. “태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장 약하고 가장 보호 능력이 없는 구성원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생명의 복음」, 20항)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새로 태어난 생명에 대한 양육, 그리고 노인과 임종자에 대한 보살핌은 가정, 기업, 사회, 국가, 교회 모두가 공동 책임을 느끼며 ‘함께하는 기쁨’을 나누어야 합니다. 아이를 함께 양육하고, 노인을 함께 돌보는 일은 가정 본연의 사명인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고 전달하는 것이며(「가정 공동체」, 17항 참조), 동시에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5. 생명 주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배아 폐기 등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인공 수정보다는 나프로 임신법을 통하여 난임의 어려움을 겪는 부부를 돕고, ‘낙태죄’ 관련 법을 신속히 마련하여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며, 안락사 허용 법안이 아니라 ‘호스피스·완화 의료’를 의무화하고 지원하는 법안이 하루빨리 마련되기를 촉구합니다. 생명 주일을 맞이하여 생명의 문화를 수호하고 죽음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모든 형제자매가 출산과 양육, 노인 돌봄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랑의 봉사는,
우리 이웃들이 특히 약하거나 위협을 받고 있을 때,
그들의 생명이 언제나 보호받고 증진될 수 있도록 지켜 주는 일입니다”
(「생명의 복음」, 77항)
2024년 5월 5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문 희 종 주교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42151?gb=K1200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0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축일5월 5일 성 힐라리오 (Hilary)
신분 : 주교
활동 지역 : 아를(Arles)
활동 연도 : 400-449년
같은 이름 : 힐라리우스, 힐러리
프랑스 로렌(Lorraine)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힐라리우스(Hilarius, 또는 힐라리오)는 아를의 성 호노라투스(Honoratus, 1월 16일)와 가까운 친척인 듯하다. 뛰어난 가문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그는 세속적인 성공을 꿈꾸었으나 성 호노라투스가 그를 하느님만을 섬기도록 안배하여 레랭(Lerins)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일단 한 번 결정한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강직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부모의 막대한 유산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것을 형제들에게 모두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원의 엄격한 규율을 좋아했고, 공식적인 의무 외에 자발적인 노동을 즐겨하였으며, 포로들을 대속하는데 관심이 많아 늘 헌금을 거두어 그들을 석방시키는데 앞장섰다. 또 그는 아를의 주교로서 매우 뛰어난 설교가였는데, 가장 무식한 사람들조차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강론하였다. 또 수차례에 걸쳐 교회 회의를 주재하였는데, 그의 솔직한 성격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그에 대한 반대가 성좌에까지 전달되기도 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힐라리오 (Hilary)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