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교 공부는 국민학교 1학년과 6학년 때가 전부다.
그 뒤로는 학교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1학년 때는 한글을 일찍 깨쳐 급장이 되었고,
담임선생님께서 무척 사랑해주셨다.
글을 모르던 동무들을 남아서 한글을 가르치니
학교생활은 무척 신나고 즐거웠다.
그러나 6학년 때, 서울에서 어렵게 고학 으로 공부하던 큰누나가
“너는 중학교를 서울 와서 다녀라”는 말을 믿었다.
그 꿈은 집에서 돈한푼 대주지 않든 누나에게 더이상 짐이 될수 없었다.
그다음부터 학교는 빈 가방 들고
동무들과 노는 곳이 되어버렸다.
중학교 때부터 무기정학을 시작으로
결국 농고에 가서 농사나 짓자”는 말이 씨가되어 이제까지 농사를 짓지만 한때는 너무나 살기 힘들어
슬프고 괴로워 했지만
이제 생각하니 아주 잘한것 같다.
그래서 가까운
안동농고에 갔다.
일제강점기 때 안동농고는 경북 북부의 하나뿐인 고등교육기관이었고,
내가 다닐 때는
김재규 건설부 장관, 이낙선 상공부 장관,
김인환 농촌진흥청장등 훗날의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선생님의 70% 이상이 농고 출신 선배들이었고
아버지, 형님, 선배 같은 분위기였다.
시내 한복판의 넓은 교정은
꽃과 나무로 잘 꾸며져 아름다운 공원 같았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지만
진학과 취직 걱정 없이 마음껏 놀았다.
나는 덩치는 작고 힘도 약하며 마른 편이었지만
힘없고 어려운 친구들을 보면 눈물이 많고 정이 많았다.
평소에는 겁도 많고 소심하고 얼띠고 마음이 여렸지만,
불의와 약자를 괴롭히는 일을 보면 앞뒤외 물불을 가리지 못했다.
당시 학교마다 조직폭력 서클이 있었지만
뒤에서 돌멩이와 낫을 들고서라도
물불 안 가리고 게릴라 전으로 맞섰던 나를 돌아이로 건드리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그 덕에 누구의 지배나 내하고 싶은대로 간섭 없이
마음껏 학교생활을 했다.
무기정학 → 제적 → 복학을 거치며 겨우 졸업했다.
그 시절은 학력·학벌 사회였다.
학력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1979년 5월 말, 나는 문교부 유학자격시험을 준비했다.
당시 유학자격은
인문·사회계열은 대학 4년,
자연·이공·농업계열은 2년 수료 이상이었지만
대부분 국내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유학을 간다.
지방대 농업계 2년 수료 응시생은 아마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종로2가 YMCA 학원 고급 일본어 유학반에는
한양대 토목과 대학원생, 여교사, 서울대 출신 등
네 명이 함께 공부했다.
1979년 12월 1일, 삼청동 교육원 합격자 명단에는
내 수험번호 하나만 올라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 나라의 교육이 대학 서열로 인간을 지배하는 낡은 봉건 식민지배구조 속에서
나는 열등감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
1980년, 비원 앞 일본문화원에서
일본 대학 수학능력 평가인정서를 받았고
도쿄농공대와 도쿄농업대 입학까지 모든 준비가 끝났지만
여러 사정으로 그 꿈을 접어야 했다.
눚게 놀기삼아 철학과에 편입 해서
별로 배울것이 없고 아까운 시간.돈 버리며 모두가 이짓을 왜 하는지 싶었다.
당시엔 해외 초청장이 없으면 외국에 나갈수가 없었다.
일본국제자연농법연수쎈타 초청 핑게로 고등학교때 무전여행을 바탕삼아 .....
돈없고 영어를 못해도 비행기표 하나만 들고
몇달씩 해외 자유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높이 나르는 새가 멀리 본다고
젊을때 고생하며 했던 바깥 세상을 일찍 한것이 내인생을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새롭게 바꿀수 있었다.
역시 삶의 질을 바꿀수 있는 것은
고생하며 했던 여행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내 아들 딸도 나처럼 똑같이 키웠다.
돈도 없고 마음껏 뛰어놀며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다.
학원에는 아예 보내지 않았고
고등학교 때 마음껏 놀다보니
졸업할 때 이과 247명 중 245등이었고
대학에 가서도 실컷 놀다가
군 전역 후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깨달아
학교 전체 토플 1등을 하며 국비 유학을 다녀왔다.
이후 삼성에 입사해
입사 1년 차 전국 삼성 비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현재는 공기업으로 옮겼다.
딸도 고등학교 때 퇴학, 대학 때 자퇴를 거듭하며
마음껏 자신을 찾도록 했다.
졸업 후 31살에 건축기술사, 32살에 전문자격증을 단번에 취득해
지금은 자기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학벌사회 → 지식정보화사회 → 창의·창조사회 → AI 시대 → 직관의 시대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어느 시대이든 공교육은 그시대 정치권력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인간을 가두어 길들이는 그이상 그이하도 아닌것 같다.
아직도 부모들와 우리사회는 구시대적 봉건 식민지 사고에 갇혀
내자식을 내소유물 처럼 마음대로 짓누르며 끌고 가는 마치 어린싹이 큰돌에 하얗게 짖눌려 있듯이...
어둠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망치고 있다 이 나라 교육의 가장 문제가 이것이다.
우리가 할일은 마음껏 뛰어놀게 하며
친구 처럼 사랑하고 격려하며 존중하는...
그밖에 할일은 아무것도 없다
첫댓글 선생님은 저를 실망 시키지 않으시네요 ㅋ
이야기는 처음부터 풀어야 감동이지요 ㅎ
계속 후편을 기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