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원래 성부 하나님과 같은 영체이셨었고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육체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성육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우리와 같은 살과 뼈로 이루어진 육체가 되셨다는 것이고 또한 동물들처럼 유기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양만 다를뿐이지 유기물로 이루어진 육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수 없습니다.
식물은 식물대로 살아가는 메커니즘이 있고 동물은 동물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다 유기체의 작용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식물이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먹이를 먹어야 하고 물도 섭취해야 하며 숨도 쉬어야 합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하니 햇볕도 쬐어야 하지요.
이러한 육체의 특성상 예수님도 음식을 드셨고 옷을 입었고 걸어서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못에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삼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육체란 그런 것입니다. 몸이 망가지면 죽어 없어지고 병들면 육체의 기능이 떨어지며 뇌가 망가지면 치매도 되고 중풍도 되고 그런 것입니다.
성육신이란 그렇게 육체가 되셨다는 것이고 우리의 몸과 같은 몸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라 장로는 말하기를 예수님이 영체에 육체를 덧입었다고 합니다. 이는 성육신이 아니라 영체와 육체가 합쳐졌다는 것이고 영체가 육체라는 껍데기를 둘러쳤다는 것으로서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리는 사람이 죽은 뒤에 귀신이 되어 천당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서 더러운 귀신의 가르침이라 하겠습니다.
구라장로는 말하기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때 우편 강도와 함께 낙원에 갔다고 합니다. 즉 그 강도의 귀신과 함께 육체에서 벗어난 영체인 예수님이 낙원에 갔다는 것이고 그런 개사이비 교리를 부끄러움도 없이 당연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또 영체인 예수님이 지옥에 가서 전도하다 왔다고 횡설수설 합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이 영육이 합쳐진 것이라면 구태여 승천하시고나서 성령을 보내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영은 원래 편재할수 있는 존재입니다. 즉 여러 사람에게 임하여 계실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공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체이시기에 동시에 여러곳에 계실수 없고 그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셔서 각 성도들에게 계시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구름을 타고 오신다 했습니다. 육체이시기에 그런 것입니다. 영체가 따로 있다면 뭐하러 거추장스럽게 육체라는 껍데기를 둘러쓰고 다닌단 말입니까? 따라서 구라장로의 소위 육화설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의 죽음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개사이비 교리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천당 지옥 어쩌구 떠드는 자들은 전쟁터에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는 왜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일까요? 죽으면 아무 짓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짓은 고사하고 의식도 의지도 없어지기 때문에 죽여 없애버리려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더러운 귀신 교리를 버려야 합니다. 귀신교리와 성육신 교리가 합쳐져 이상한 개사이비 교리가 만들어졌고 그걸 신봉하고 있습니다. 그런 귀신 교리를 버려야 진정 성령께서 임하실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예수님이 육체라?
혈과육은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이 영육이 합쳐진 것이라면 구태여 승천하시고나서 성령을 보내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영은 원래 편재할수 있는 존재입니다.
영은 월래 편재 할수 있는 존재??
이게 먼 말일까??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럼 하나님을 편재할 수 있는 존재라고 ??
성육신을 믿지 않고 영육짬뽕을 믿는 사이비 교리가 교회들을 장악하고 있으니 이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이루셨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을 모독하는 교리입니다.
구라의 사고방식은 육체=악한것 이라는 전제하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가정이 도출되는 것입니다.
(육체가 악하다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악하다는 논리가 성립됨)
참 인간으로써의 삶을 감내해야했던 사정을 너무 가볍게 보는 사고방식이지요. 예수님은 배고프고. 피곤하고.슬프고.기쁜 희노애락의 한계를 직접 경험하셨기에 그 선택이 우리에게 값진것이 됩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마리아가 만지려고 하는것을 허용하지 않은 장면을 보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차원적 변화가 필요함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는 옆구리에 상처난 곳을 부러 만지라고도 했지요
이해되지 않거나 모르는 것에 대해 어리석은 결론을 내리는 것은 교만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