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기] 토고가 약하다고? 쉬운 상대 아니다.
[2006년 01월 08일 18시 35분]
토고가 8일 기니와의 평가전을 통해 조금씩 전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기 결과는 페널티킥 골을 내준 토고의 0-1 패배. 토고는 최근 치른 3차례 평가전에서 전패를 기록한 셈이다.
토고, 한국이 꺾기엔 까다로운 스타일
TV 위성중계를 통해 본 이날 경기에서 패하긴 했지만 아데바요르 등 간판 공격수들이 빠진 경기여서 이것이 토고의 진짜 실력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부분적인 장면만 보면 토고의 수준이 '허당'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경기에서 토고가 상당히 많은 위기를 맞은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적잖은 국내 언론이나 팬들이 "수비에 구멍이 많다", "미드필더에 압박이 없다"는 평가를 내린 것도 같은 뜻이겠다다.
하지만 토고의 전력이 정말 형편없을까. 나는 반대라고 본다. 토고가 화려하고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지 못한 채 기니의 빠른 측면 공격수들에게 자주 휘둘린 것은 맞지만 전체적인 팀 스타일을 보면 한국이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토고는 수적우위를 앞세워 수비지향적인 플레이를 했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강호 세네갈을 따돌리고 조 1위를 차지해야만 월드컵본선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수비적인 플레이는 토고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날 토고는 포백을 썼다. 4명 모두 수비에 주력했을 뿐 공격에는 크게 가담하지 않았다. 2대1 패스나 개인돌파에 의해 위기를 맞았지만 토고 수비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기니 공격수들의 기량이 좋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상대 수비수를 세워놓은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퍽퍽' 치고 나가는 기니 측면 공격수들의 능력은 내가 봐도 탐이 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위험상황을 제쳐두고 수비진의 움직임만 보면 꽤 괜찮은 수준이었다. 수비수들끼리 서로 밀고 당기면서 빈틈을 메워주는 모습들은 훈련이 잘 된 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느팀이나 소집 직후 경기를 치르면서 조직력에서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토고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만일 충분한 시간을 갖고 조직력을 더 갖추면 더욱 탄탄한 수비력을 뽐낼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특히 골키퍼가 상당히 좋은 기량을 갖췄던 것은 보는 사람 누구나 동의할만큼 눈에 띄는 부분일 것이다.
빠른 공수전환이 인상적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미드필더의 빠른 공수전환이었다. 수비 때에는 포백 수비수와 함께 4명의 미드필더가 빠르게 수비에 가담하면서 수비숫자가 8~9명으로 늘었다. 역습 때에는 공격수의 숫자가 최대 4명까지 증가했다. 모두 미드필더의 빠른 공수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수비에서나 공격에서나 그때그때 팀 사정에 딱 맞는 최대 전력을 갖출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토고의 미드필더가 압박이 없다고 하는 국내 언론의 지적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아프리카 팀들의 공통된 특징이기 때문이다. 태양이 작렬하는 고온 속에서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많은 활동량을 통해 강한 압박을 가하기보다는 존 디펜스를 쓰면서 체력을 비축하다가 정작 뛰어야할 때 힘을 모으는 게 아프리카 축구의 미드필드 운용 방식이다. 토고가 경기장을 '블록' 단위로 나누면서 지역방어를 중시하는 4-4-2 시스템을 쓰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공격에서는 아데바요르 등이 빠진 만큼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 힘들다. 그러나 주의해야할 점은 수비나 미드필더에서 공격진으로 넘어가는 기습적인 역습패스가 상당히 빠르다는 점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볼을 빼앗기면서 역습을 허용할 경우 실점을 내주기 쉽다는 것이다. 토고는 전체적으로 위협적이거나 최정상급 수준의 플레이를 하는 팀은 아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점은 쉽게 지지 않는 팀이라는 것이다. 토고는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에서 10경기를 치르면서 7승2무1패를 기록했다. 특히 실점이 8골밖에 안되고 득점은 20골이었다. 수비가 좋고 역습도 날카로웠다는 뜻이다.
밀집수비로 나올 경우 쉽지 않을 듯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는 과연 우리가 토고를 이길 수 있느냐의 여부다. 물론 한국이 토고를 꺾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똑같지만 일단 토고는 우리에게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특히 밀집수비를 하는 팀에게 약했다. 요르단·베트남·몰디브 등을 상대하면서 어렵게 골을 넣어서 이기거나 아예 골을 넣지 못해 비긴 경우가 많다는 게 대표적인 예다. 또 2003년 말 베트남·오만에게 잇달아 패해 우리 축구계를 강타한 이른바 '오만발 쇼크' 또한 같은 경우다. 이들은 밀집수비를 하다가 역습을 노리는 축구를 했고 우리는 이들을 상대로 골을 제대로 넣지 못한 채 역습에서 패하고 말았다.
밀집수비를 하는 팀을 깰 수 있는 부분적인 전술은 크게 3가지다.
우선 개인기가 좋은 선수가 상대 선수 여러명을 잇달아 제치면서 수비가 도미노처럼 무너질 때 순간적으로 생기는 틈을 노리는 식이다. 당연히 돌파력, 스피드, 판단력을 모두 갖춘 선수가 필요하다.
두번째는 경기장을 넓게 쓰는 횡패스를 많이 함으로써 수비를 흔드는 식이다. 수비 숫자가 많을 때 단순한 플레이, 예측가능한 플레이, 종적인 플레이만 고집할 경우 상대 수비는 더욱 튼튼해지게 마련이다. 즉 수비진을 옆으로 많이 흔드는 패스를 해야만 수비가 이리저리로 쏠리기 시작하면서 골을 노릴 수 있는 틈이 생긴다는 뜻이다.
마지막은 빠른 공격이다. 즉 상대가 미처 수비진용을 갖추기전에 빠른 패스로 문전으로 다가간 뒤 골을 노리는 방법이다. 순간적인 판단능력에 따라 빠르고 정확한 패스가 2~3차례 연결되는 것이 필요하다. 패스 타이밍이 느릴 경우에는 상대 수비수가 8~9명으로 순간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 선수들은 밀집수비를 깨는 능력이 다소 부족한 게 사실이다(한국선수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다른 기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점으로 꼽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상대를 기술적으로 완전히 압도할 수 있는 개인기량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드보카트 감독으로서는 개인기량이 아니라 팀전술로 밀집수비를 뚫는 전술을 마련하는 것이 토고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최대 숙제라 하겠다.
필자 및 코너 소개
<토탈사커> 컬럼니스트 김학범은 K리그 명문 성남일화의 현역 감독이다. 국내 감독 중에서 전술적으로 가장 해박한 지도자로 꼽히는 그는 틈나는대로 유럽과 남미 현지를 방문해 세계 축구의 흐름을 좇는다. 국내 지도자로는 드물게 유럽 축구의 트렌드와 전술적 움직임을 파악해 실전에 반영하는 것으로도 이름 높다.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축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끔 이끌어준 그는 현재 <경향신문>의 축구해설위원으로도 활약중이다.
<축구해부학>은 일반 매니아들이 축구의 핵심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다. 컬럼니스트 김학범의 날카로운 시선은 경기장을 누비는 여러 팀들의 전술적 움직임과 경기 운영 방식을 분석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첫댓글 월드컵에 나온 국가가 쉬운 상대라고 생각 하는 자체가 모순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게 좋긴 하죠.
딴나라가 생각할땐 우리나라가 쉬운상대라 생각하겠죠 ㅡㅡ; 그러나 우리생각은 ㅋ
설마 토고가 월드컵에서도 수비위주의 전략을 가지고 나올까요? 프랑스를 상대론 그럴수 있겠지만, 토고 입장에선 첫경기가 가장 중요하고, 게다가 프랑스가 아닌 만만한(??) 대한민국과 경기를 하므로, 수비위주 전술보단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월드컵이니 안정적으로 수비적으로 나오겠죠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토고전에는 차두리보다 이천수구만...
근데 대체 WC본선에서 토고보다 약한 나라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