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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 庚 辛 丙
辰 辰 丑 申
64 54 44 34 24 14 04
戊 丁 丙 乙 甲 癸 壬 大
申 未 午 巳 辰 卯 寅 運
1896년생(음력) 남명. 한국의 정치인.
정권의 제2인자 역할을 했다.
1960년(庚子) 4.19 혁명으로 일가족이 구몰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역학동 | 이기붕 명조 - 귀경 차량에서 감상하세요. - Daum 카페
이기붕 명조 - 귀경 차량에서 감상하세요.
이름 : 인당 [ IP : 220.119.22.104 ]
제목 : 감사합니다.
저도 노고산인 선생님의 말씀처럼 당연히 <조후의 적용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컨데 현대의 명조 중에서 이기붕씨의 사주를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庚 庚 辛 丙 乾
辰 辰 丑 申
64 54 44 34 24 14 4.0
戊 丁 丙 乙 甲 癸 壬
申 未 午 巳 辰 卯 寅
위 사주 역시 丙火가 뿌리가 없는 상태의 구조인지라. 도저히 조후를 적용할 수 없는 상태로 봐야 할 것이 아닌지요?
살아온 내력을 보면 화운이 틀림없이 좋았던 인물입니다. 때문에 저는 <조후의 적용조건>을 의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사람의 경우 뿐만 아니라 몇몇 임상 자료에서도 뿌리 없는 火運에 발한 사례를 보았기 때문에 사실 저는 현재 적천수 공부중 이 한난장에서 가장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종류의 명조들 예에서도 대부분 지지 장간의 木성분에 의해 火가 유기한 상태인데도 과연 이를 무시하고 단지 뿌리가 없다 해서 무시해야 하는지? 참 갈등이 많습니다.
이름 : 老古山人 [ IP : 61.107.180.147 ]
제목 :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丙申生 명조는 한난이 아니라 허합과 허충으로 풀리는 명조로 보입니다.
팔자의 감명은 참고해야 할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며 학인의 공부가 잘 정돈된다면 증험을 얻으므로 통변에 확신을 갖게 되는데.. 옆에서 그 생인의 생활을 직접 목도한 것처럼 확연하게 떠오를 것입니다.
하오나 그러한 이치를 궁구함에는 공부로 인하여 가슴찡한 기쁨을 얻기전엔 환희를 맞보기 어렵지요. 언제 시간 나시면 의문시 되는 명조들을 올려서 같이 공부해 보십시다. 老古山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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丑月庚辰 丁酉生 - 대한민국 정치가. 만송 이기붕
74 64 54 44 34 24 14 04 ― 01 08 05 04 - 음력 1896년 12월 20일 辰時 生
己 戊 丁 丙 乙 甲 癸 壬 ― 庚 庚 辛 丙 - 4대운이다.(01월 20일이 대한이다)
酉 申 未 午 巳 辰 卯 寅 ― 辰 辰 丑 申 : 64세 乾命 (입춘세수설 적용명조)
* 晚松만송은 조선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16대 손이고, 흥선 대원군의 수하에서 활약하던 李會正이회정의 증손자이다. 조부는 20세에 사망하고 부친은 30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 09세 丙申한운 壬寅대운 乙巳년에 부친을 사별하고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松栢] => 초년의 대운 흐름을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집안이 궁핍하여 주변의 도움으로 근근이 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고학으로 문학을 전공하고 28세 甲辰대운 癸亥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에는 뉴욕에서 노동일을 했다.
* 30세 辛丑한운 甲辰대운 丙寅년에 성탄절 연극 팀에서 만난 박마리아와 약혼했다.
* 중2때부터 알고 지내던 이승만의 동지회에 가담하고 <삼일신문> 발간에 참여하다가 <삼일신보>를 인수하여 운영하였으나 재정난으로 그만두었다.
* 38세 庚辰한운 乙巳대운 甲戌년에 미국으로부터 귀국했다. 귀국 후에 상점을 운영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 39세 庚辰한운 乙巳대운 乙亥년에 혼인했다. 가난하여 처가의 반대가 심했으나 미국에서 약혼했다가 먼저 귀국한 처의 고집으로 혼인했다.
* 혼인 후에는 국일관에서 일하면서 02남 01녀를 두었으나 여식은 중학교 때 병사했다. 다방, 건축청부업, 광산 등의 사업을 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 50세 庚辰한운 丙午대운 乙酉년 - 1945년 09월에 미군이 진주하자 미군정의 통역관으로 채용됐고, 10월 12일 이승만이 귀국하면서 이승만의 거처인 돈암장에서 집사로 일했다.
* 50세 庚辰한운 丙午대운 丙戌년 - 그의 처인 박마리아가 프란체스카 여사를 알게 되면서 처덕으로 출세하기 시작했다. 1946년에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 이사와 조선적십자사 이사를 역임했다.
* 52세 庚辰한운 丙午대운 戊子년 己未월 戊申일 - 1948년 05월에(丁巳월?) 병원 입원으로 일시적으로 이승만의 비서실장 직을 내놓았다. 1948년 07월 22일에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대통령 비서실 실장이 되었다.
74 64 54 44 34 24 14 04 ― 01 08 05 04 - 음력 1896년 12월 20일 辰時 生
己 戊 丁 丙 乙 甲 癸 壬 ― 庚 庚 辛 丙 - 4대운이다.(01월 20일이 대한이다)
酉 申 未 午 巳 辰 卯 寅 ― 辰 辰 丑 申 : 64세 乾命 (입춘세수설 적용명조)
* 53세~56세 庚辰한운 丙午대운 己丑년~丁未대운 壬辰년 - 1949년 06월부터 08월까지 서울특별시 시장을 지냈다. 1949년 08월부터 1951년 05월 08일까지 다시 서울시장에 재선되었다. 1951년 05월부터 1952년 03월까지 제3대 국방부 장관을 지내고 1951년 12월 자유당 창당 조직에 참여하고 이후 자유당의 02인자로 부상하였다.
* 58세 庚辰한운 丁未대운 甲午년 - 1954년 06월부터 제3대 민의원 의장을 지냈다.
* 그는 병약했는데, 권력욕이 강해 이정재 등 정치깡패들과 연계해서 주먹의 힘을 빌어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키웠다.
* 60세 庚辰한운 丁未대운 丙申년 癸巳월 壬午일 - 1956년 05월 15일에 부통령 선거에 낙선하였다.
* 62세 丙申한운 丁未대운 戊戌년 - 1958년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고 민의원 의장이 되었다.
* 64세 丙申한운 戊申대운 庚子年 - 1960년 03.15 부정선거를 통해 부통령 선거에 당선되었으나, 04.19 혁명으로 사임하고 국회의장직마저 제명되었다. 04월 28일 새벽에 경무대 별관에서 당시 육군 소위로 복무 중이던 아들 李康石이강석이 권총으로 이기붕과 박마리아와 동생인 李康旭이강욱을 쏘아 죽이고 자살하였다.
76 66 56 46 36 26 16 06 ― 03 00 07 06 - 양력 1897년 01월 22일 辰時 生
癸 甲 乙 丙 丁 戊 己 庚 ― 庚 庚 辛 丁 - 6대운이다. (01월 20일이 대한이다)
巳 午 未 申 酉 戌 亥 子 ― 辰 辰 丑 酉 : 64세 乾命 (동지세수설 적용명조)
* 晚松만송은 조선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16대 손이고, 흥선 대원군의 수하에서 활약하던 李會正이회정의 증손자이다. 조부는 20세에 사망하고 부친은 30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 09세 丁酉한운 庚子대운 乙巳년에 부친을 사별하고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松栢] => 본명은 土金이 왕성하여 水木火가 희신인 명조이고 主神주신은 辰中 乙木이다.
[松栢 2024년 4월 20일] => 정화가 용신인데, 을목이 주신 운운하는 것을 보니 삑 소리가 났다.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는 설명이다.
* 집안이 궁핍하여 주변의 도움으로 근근이 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고학으로 문학을 전공하고 28세 戊戌대운 癸亥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에는 뉴욕에서 노동일을 했다.
* 30세 辛丑한운 戊戌대운 丙寅년에 성탄절 연극 팀에서 만난 박마리아와 약혼했다.
* 중2때부터 알고 지내던 이승만의 동지회에 가담하고 <삼일신문> 발간에 참여하다가 <삼일신보>를 인수하여 운영하였으나 재정난으로 그만두었다.
* 38세 庚辰한운 丁酉대운 甲戌년에 미국으로부터 귀국했다. 귀국 후에 상점을 운영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 39세 庚辰한운 丁酉대운 乙亥년에 혼인했다. 가난하여 처가의 반대가 심했으나 미국에서 약혼했다가 먼저 귀국한 처의 고집으로 혼인했다.
[松栢] => 39세 丁酉대운 乙亥년은 水木火가 왕성한 운세이다.
[송백 2024년 4월20일] - 이미 삑소리가 난 풀이이니 이 뒤의 글은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습니다.
* 혼인 후에는 국일관에서 일하면서 02남 01녀를 두었으나 여식은 중학교 때 병사했다. 다방, 건축청부업, 광산 등의 사업을 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 50세 庚辰한운 丙申대운 乙酉년 - 1945년 09월에 미군이 진주하자 미군정의 통역관으로 채용됐고, 10월 12일 이승만이 귀국하면서 이승만의 거처인 돈암장에서 집사로 일했다.
* 50세 庚辰한운 丙申대운 丙戌년 - 그의 처인 박마리아가 프란체스카 여사를 알게 되면서 처덕으로 출세하기 시작했다. 1946년에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 이사와 조선적십자사 이사를 역임했다.
[松栢] => 50세 丙申대운 丙戌년은 천간으로 쌍 丙火가 작용하여 발전하는 운세이다.
* 52세 庚辰한운 丙申대운 戊子년 丁巳월? - 1948년 05월에 병원 입원으로 일시적으로 이승만의 비서실장 직을 내놓았다.
* 52세 庚辰한운 丙申대운 戊子년 己未월 戊申일 - 1948년 07월 22일에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대통령 비서실 실장이 되었다.
[松栢] => 지지로 申子辰 水局을 짜는 명운에 세월이다.
76 66 56 46 36 26 16 06 ― 03 00 07 06 - 양력 1897년 01월 22일 辰時 生
癸 甲 乙 丙 丁 戊 己 庚 ― 庚 庚 辛 丁 - 6대운이다. (01월 20일이 대한이다)
巳 午 未 申 酉 戌 亥 子 ― 辰 辰 丑 酉 : 64세 乾命 (동지세수설 적용명조)
* 53세~56세 庚辰한운 丙申대운 己丑년~壬辰년 - 1949년 06월부터 08월까지 서울특별시 시장을 지냈다. 1949년 08월부터 1951년 05월 08일까지 다시 서울시장에 재선되었다. 1951년 05월부터 1952년 03월까지 제3대 국방부 장관을 지내고 1951년 12월 자유당 창당 조직에 참여하고 이후 자유당의 02인자로 부상하였다.
* 58세 庚辰한운 乙未대운 甲午년 - 1954년 06월부터 제3대 민의원 의장을 지냈다.
* 그는 병약했는데, 권력욕이 강해 이정재 등 정치깡패들과 연계해서 주먹의 힘을 빌어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키웠다.
* 60세 庚辰한운 乙未대운 丙申년 癸巳월 壬午일 - 1956년 05월 15일에 부통령 선거에 낙선하였다.
* 62세 丁酉한운 乙未대운 戊戌년 - 1958년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고 민의원 의장이 되었다.
* 64세 丁酉한운 乙未대운 庚子年 - 1960년 03.15 부정선거를 통해 부통령 선거에 당선되었으나, 04.19 혁명으로 사임하고 국회의장직마저 제명되었다. 04월 28일 새벽에 경무대 별관에서 당시 육군 소위로 복무 중이던 아들 李康石이강석이 권총으로 이기붕과 박마리아와 동생인 李康旭이강욱을 쏘아 죽이고 자살하였다.
[松栢] => 64세 乙未대운 庚子년은 간합지해를 놓으면서 主神주신인 乙木이 묶이는 운세이다.
行 / 시 일 월 연 / 띠
庚 / 戊 己 庚 辛 / 丁 : 65세 乾命 (음력생일 12.20. 신수표)
午 / 辰 巳 寅 丑 / 酉
[松栢] => 신수표에서 土金 상겁이 강한 채 寅中 甲木 정관 용신을 치고 있고, 養命之神.양명지신인 巳火 인수가 巳酉丑 金局으로 변질되었다.
◈◈◈ 좀 더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은 분은 <위키백과>를 참고하세요.
첫댓글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선 연간 병화는 지지의 근을 얻지 못하여 허투(중국 맹파의 용어)하였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허투의 의미는 공망과 유사합니다. 즉 실체는 존재하지만 그 작용력은 거의 없거나 아주 미약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운에서 허투한 오행의 록이나 왕지가 오게 되는 경우 근을 얻게 되어 원국에서 그 작용력이 강하게 발생하게 됩니다.(응기)
본문 내용의 이기붕에 사주의 궤적을 읽어보니 초년에 고생하다가, 남방 화운에 발복을 하였고, 토운에 불행한 결과를 맞이한 것으로 봤을 때 화대운에 록과 왕지에 허투한 병화가 힘을 얻어 그 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말씀하셨듯이 저 사주에는 조후의 작용이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제 주변에 축월 경인 일주 사주를 가진 사람이 셋이 있는데 세 명 모두 화대운에 좋지 않았습니다.
한 명은 제 예전 회사 친구인데 화대운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였습니다.
두번째는 역학을 매개로 컨텐츠를 개발하고 있는 제 후배인데 역시 화대운의 거의 죽을 뻔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세 번째는 제 중국 직원이었는데 화대원에 회사를 그만두고 식당을 차렸는데 곧이어 코로나가 터지고 최근 경기 침체로 식당을 그만둘지 고민 중에 있습니다.
그 세 명 각각의 사주는 다르지만 축월 경금이라고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격국으로 봐도 잡기 인수격이고 조후로 봐도 화대운에 길할 것 같지만 모두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내린 추측은 사주 원국에 목이 있는지 특히 월지 주변에 가까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동절에 화운이 오년가 날씨가 풀리고 제일 기뻐하는 것은 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목이 활성화되면 축토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평™ 동지세수설은 대운이 거꾸로 흐릅니다. 주변 친구들의 명조를 동지세수설로 놓고 다시 한 번 더 살펴보세요.
@松栢 조흔 동지세수설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지만 대운이 반대로 흐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요..선생님
@하평™ 동지가 지나면 해가 바뀌잖아요. 병신생 12월 25일생이나 1월생은 동지가 지났으니 정유생이고 그럼 대운의 순역행이 바뀌지요.
@松栢 조흔 아 연말 혹은 연초에 태어난 사주는 해가 바뀌는 기준이 달라지면 연주(띠)가 바뀔 수 있어서 대운의 순역이 달라진다는 말씀이시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