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문 선생 묘소와 쌍계사
최중호
계절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길을 나섰다.
대전에서 연산을 거쳐 양촌 방향으로 간다. 꽃 창살 무늬가 아름다운 쌍계사로 가기 위해서다. 가는 길에 성삼문 선생의 묘소가 있다. 선생의 묘소가 왜 여기에 있을까?
1453년,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은 단종을 모시던 황보인, 김종서 등을 처형하고 왕위에 오른다. 이듬해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던 중, 김질의 배신으로 실패를 한다. 이에 수양대군은 단종의 복위에 가담했던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과 많은 충신을 처형한다. 이때 성삼문 선생은 극형인 거열형(車裂刑)을 받는다. 거열형이란 목, 팔, 다리를 각각 다섯 대의 수레에 매달고 말을 달리게 하여, 몸을 찢어 죽이는 가혹한 형벌이다. 수양대군은 형을 집행한 후, 선생의 찢긴 시신을 전국 팔도로 돌리며 반역죄의 엄중함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도록 하였다.
이때 선생의 시신 중 한 부분(다리)을 지게에 지고 가던 사람이 논산 가야곡에 있는 통박산 고개를 오르며, “날씨도 더운데 무거워서 힘만 든다.”고 불평을 했다. 그때 등 뒤에서 “그러면 아무 데나 버리고 가거라.” 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혼비백산하여 시신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그 뒤, 인근에 있는 사람들이 선생의 시신 한 부분을 수습하여 현재의 자리에 장례를 모셨다고 한다.
선생의 묘소로 가는 길에는 코스모스가 웃으며 길손을 반긴다. 너른 주차장 옆에 선생께 제례를 올리는 성인각(成仁閣)이 있고, 산언덕에는 하마비(下馬碑)와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선생의 묘소는 그곳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선생께 참배를 하고 묘역을 둘러보았다. 바위옷을 곱게 입은 묘비에는 ‘매죽당 성 선생 지묘(梅竹堂成先生之墓)’라 새겨져 있고, 묘의 양옆엔 근래에 세운 듯한 문인석이 선생의 묘를 지키고 있었다.
제례를 올리는 성인각
성삼문 선생 묘
선생의 묘를 보며 선생이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남겼던 절명시(絶命詩)를 떠올려 보았다.
북소리 둥둥 울려 사람 목숨을 재촉하는데/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는 서산에 기우는구나/ 황천길에는 주막도 하나 없다던데/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자고 갈거나.
마지막 가는 길을 두려워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심경을 숨김없이 표현한 시라 하겠다.
선생의 묘는 세 곳에 모셔져 있다. 김시습, 남효온 등이 선생의 시신 일부를 수습해 묻은 노량진의 사육신 묘역. 선생이 태어 난 곳에 위패를 묻은 홍성의 노은단. 그리고 선생의 시신 한 부분이 묻혀있는 이곳 양촌리 묘다.
‘불의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지조를 지켰던, 만고 충신은 시신마저도 온전하게 보전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서글펐다.
선생의 묘소에서 내려와 3.7km 거리에 있는 양촌면 중산리에 있는 쌍계사로 간다. 가는 길에는 곶감의 주산지답게 산과 들에 감나무 천지다. 감나무는 천수보살(千手菩薩)이 펼친 손보다 더 많은 가지에 붉은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절 입구에 있는 저수지는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다. 잔잔한 수면 위에 주변의 모든 풍광을 가득 담고 있다. 맨 아래에 파란 하늘과 구름을 그리고, 그 위에다 불명산을 그린 후, 맨 위에는 나무들을 그렸다. 저수지 수면 위에 그린 그림은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였다. 이렇게 익어간 가을 풍경을 보면서 쌍계사에 도착하였다.
쌍계사 입구 절골 저수지
쌍계사 대웅전
이곳은 여느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주문과 천왕문이 없다. 대신 쌍계사라 새겨진 편액을 물고 있는 봉황루가 있다. 봉황루를 지나면 너른 절 마당과 대웅전이 있다. 절 마당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을 법한 석탑도 이곳에는 없다. 너른 잔디밭뿐이다.
쌍계사는 고려 초기 혜명(慧明) 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 후 몇 차례의 화재로 인해 중건되었고, 1739년(영조 15년)에 보물 제408호인 대웅전을 비롯해 여러 전각을 중건했다고 한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안에는 석가여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아미타불, 오른쪽에는 약사불을 봉안하였다. 특히 삼존대불 위에 만들어 놓은 닫집은 섬세하면서도 화려해 건축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한,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춘 공포(栱包)도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워 목조 구조 기술의 정수라 하겠다.
화려하고 정교한 대웅전 공포
대웅전은 자연석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왼쪽 측면의 중앙에 세운 기둥은 쌍계사의 또 하나의 숨겨진 보물이다. 칡 나무가 얼마나 오래 자랐는지 그 둥치가 기둥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일까? 윤달이 든 해에 이 기둥을 안고 돌면, 죽을 때 고통을 없애 준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대웅전 정면을 장식한 수려한 문짝은 통나무를 사용하여 연꽃, 모란, 무궁화, 국화 작약 등의 문양을 조각해 놓았다. 섬세하게 만든 꽃무늬 창호는 각각의 꽃들을 아름답고 정교하게 새겨서 그 예술적 가치가 또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대웅전 꽃 창살
대웅전 꽃 창살
대웅전 왼쪽으로 너른 노지에 관음보살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관음보살상은 비가 와도 얼굴이 비에 젖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30여 년의 풍상 속에서도 손과 옷 주름에는 검푸른 이끼가 끼어있지만, 얼굴은 언제나 백옥 같아서 신비로움에 경이감마저 들었다.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는 관음보살상
쌍계사를 둘러보며 성삼문 선생의 묘소에서 느꼈던 서글펐던 마음도 이제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2019. 한국작가. 6월호)
첫댓글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2019년 6월 1일 기준으로 안짱병조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