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자기전에 아내가 내일 기온이 영하15도아래로 내려간다고 하니 아침 산책을 생략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온을 보니 영하16도이다. 찬 물을 한 잔 마시고 책상앞에 앉아 미국 여류소설가 벨바 플레인의 대하소설 ' 영원한 사랑 '의 마지막 부분을 다 읽고나니 시간이 벌써 7시 반이다. 이 소설 ' 영원한 사랑 '은 마치 재미교포 소설가 이민진의 ' 파칭코 ' 처럼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몇세대에 걸쳐 겪게 되는 인생 파노라마인데 나처럼 책을 늦게 읽는 사람도 손에 책을 들면 놓기가 아쉬운 진지하며 정서적이며 재미있는 소설이다.
시간이 8시가 다 되었지만 일단 앞에 있는 상현중학교에 가서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오는 것이 좋겠다싶어 옷을 두툼하게 입고 나선다. 학교 교문앞에 보니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오늘이 방학도 아니고 토요일도 아닌데 나는 마치 휴일처럼 운동장 생각을 한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깜깜이다. 학생들이 벙거지를 쓰고 겨울 롱코트를 입고 재잘거리며 오는 걸 보니 역시 젊음이 좋구나싶어 한참을 쳐다본다.
어차피 나온김에 서달산을 돌고 오자. 길을 건너 소방서앞에 보니 119가 벌써 어디 갔다 오는 모양이다. 어제는 처이모가 연세가 여든일곱인데 돌아가셔서 아내와 함께 성모병원에 갔다 왔다. 일찍 가실 줄 알았던 꼬랑꼬랑한 처이모부는 연세가 90인데 오히려 정정하고 이모가 먼저 가셨다. 이 이모부가 내가 삼성물산 과장시절에 직속부장이었는데 자기 조카를 소개하여 결혼 하게 된 나의 아내다.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다. 내가 그 당시 삼성물산에 있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이 바뀌었을텐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삶이란 소중하게 가꾸고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는 겨울산을 걸으면서 지나치는 노인들 여인들 모두 자기의 삶을 소중하게 가꾸는 사람들인것 같다.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회색 하늘아래 흩날리는 눈발들, 앙상한 나뭇가지, 차가운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흰구름, 딸내미가 보내 준 누비이불, 이런것들이 있어 나는 겨울이 좋다. 22.1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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