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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221349293091
인간의자(人間椅子) -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
요시코는 매일 아침, 남편인 토초를 배웅하면 늘 10시를 넘어 겨우 자유의 몸이 되어, 양옥관 쪽 남편과 같이 쓰는 서재에 틀어박히는 게 관례가 되었다. 거기서 그녀는 지금, K 잡지에 올해 여름 증대호에 싣기 위해서 기나긴 창작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규수 작가로서 그녀는 근래 들어 외무성 서기관인 남편의 존재를 가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녀에게 매일 알 수 없는 숭배자들이 보낸 편지가 끊임없이 날아왔다.
오늘 아침에도 그녀는 서재 책상 앞에 앉더니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 알 수 없는 자들이 보낸 편지를 보아야 했다.
그건 하나같이 틀에 박힌 시시한 문장뿐이었지만 그녀는 여성으로서 자상한 마음씨로 어떤 자의 편지라도 자신에게 온 것은 일단 한 번씩 읽는 것이었다.
짧은 것부터 시작해서 봉서 2통과 엽서 1장을 다 읽으니 부피가 큰 원고로 보이는 1통이 남았다. 별반 통지가 적힌 편지는 받지 않았지만, 그렇게 갑자기 원고를 보내오는 경우는 예전에도 흔히 있었다. 그건 대다수 길기만 하고 지루한 글이었지만 그녀는 일단 제목만이라도 보자고 안에 있는 종이다발을 꺼내었다.
그건 예상대로 원고용지를 접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제목도 이름도 없고, 갑자기 '부인'이라고 부르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 역시 편지인 걸까. 그렇게 생각해서 아무 생각없이 두세 줄 읽던 중에 그녀는 왠지 모르게 이상한, 묘한 불쾌감을 예감했다. 그리고 타고난 호기심이 그녀로 하여금 점점 계속 읽게 하는 것이었다.
부인.
부인께 전혀 모르는 남자가 갑자기 이런 엉뚱한 편지를 보내고 만 죄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런 말을 하면 부인께서는 필시 깜짝 놀랄 것으로 아오나, 저는 지금 당신 앞에 제가 저질러 온 가장 기묘한 죄악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저는 몇 개월 동안 속세에서 모습을 감추어 정말로 악마 같은 생활을 해왔습니다. 물론 넓은 세상에 누구 하나, 제 소행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혹시 아무 일도 없다면 저는 이대로 영원히 속세에 돌아갈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근래 들어서 제 마음에 어떤 이상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제 인과에 쌓인 제 신세를 참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이 말한 것치고는 이것저것 의문스러운 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부디 일단은 이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어째서 제가 그런 마음이 들었는가. 또 어째서 이 고백을 굳이 부인께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그 점이 명확히 드러나겠지요.
자, 무엇부터 적으면 좋을까, 너무나도 뜻밖인, 기괴천만한 사실이라 이렇게 속세에서 쓰는 편지라는 방법이 낯설기에 붓을 쥔 손이 느려집니다. 하지만 망설여도 소용없습니다. 아무튼 일의 발단부터 순서대로 내려적겠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무척이나 추악한 용모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걸 부디 꼭 좀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혹시 당신이 이 어처구니 없는 소원을 들어주셔서 저를 뵐 경우, 안 그래도 추악한 제 얼굴이 오랜 세월 불건전한 생활로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지독한 몰골이 되었는데, 아무런 예비 지식도 없이 그걸 당신에게 보이는 게 저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라는 남자는 이 어찌 죄많은 태생을 겪은 걸까요. 그런 추악한 용모를 가진 주제에 마음 한켠으로는 남 모르게 매우 격렬한 정열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요괴 같은 얼굴을 한 데다 지극히 가난한 일개 직공에 지나지 않는 제 현실을 잊고서 주제 넘게 감미롭고 호화로운 각종 다양한 '꿈'을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젊고 좀 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다면 돈의 힘으로 다양한 유희에 빠져, 추악한 용모를 얼버무릴 수 있었겠지요. 그게 아니면 제게 좀 더 예술적인 재능이 주어졌다면, 예를 들어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지어서 이 세상의 덧없음을 잊을 수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불행히도 저는 그 어느 축복도 받지 못한 채, 가련한 일개 가구 장인의 아들로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일로 그 날 그 날을 살아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제 전문은 다양한 의자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든 의자는 아무리 어려운 의뢰주의 마음도 사로잡았기에 상회에서도 저를 특별히 눈여겨 보고 일도 고급품만 가져와 주었습니다. 그런 고급품의 주문이 오면 등받이나 팔받이 장식에 이것저것 까다로운 주문이 달리고, 쿠션의 경우 각 부위의 치법 등 미묘한 취향이 있는 등 그걸 만드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고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심한 만큼 완성되었을 때 큰 보람이 느껴집니다.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 마음은 예술가가 훌륭한 작품을 완성했을 때 느끼는 기쁨과도 같은 것일 테지요.
의자 하나가 완성되면 저는 먼저 스스로 거기에 앉아서 착석감을 느껴 봅니다. 그리고 따분한 장인 생활 속에서도 그때만큼은 형언할 수 없는 우월감을 느끼는 겁니다. 어디 사는 어느 고귀한 분이, 혹은 어느 아름다우신 분이 앉을까. 이런 훌륭한 의자를 주문할 정도의 저택이니까 거기에는 분명히 이 의자와 어울리는 화려한 방이 있겠지. 벽에는 틀림없이 유명한 화가의 유화가 걸려 있을 것이고, 천장에는 거대한 보석 같은 샹데리아가 매달려 있을 것이 틀림없어. 마루에는 고가의 융단이 깔려 있겠지. 그리고 이 의자 앞에 있는 테이블에는 눈이 번쩍 뜨일 것 같은 서양화가 감미로운 향기를 풍기며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거야. 그런 망상에 잠기면 뭐라고 해야 하나 자신이 그 웅장한 방 주인이 된 기분이 들어서 아주 잠깐이지만 형용할 수 없는 유쾌한 기분에 잠기게 됩니다.
제 덧없는 망상은 끊임없이 커져갑니다. 이 내가, 가난하고 추악하고 일개 직공에 지나지 않는 내가, 망상 속에서는 고귀한 귀공자가 되어서 제가 만든 훌륭한 의자에 앉아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늘 제 꿈 속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제 연인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제 망상 속에서 그 사람과 손을 잡고, 달달한 사랑의 말을 나누는 겁니다.
하지만 언제나 제 이 몽롱한 보랏빛 꿈은 갑자기 근처 아주머니의 시끄러운 얘깃소리나 히스테리에 걸린 것마냥 울부짖는 소리, 병든 아이들이 덩달아 칭얼거리는 소리로, 제 앞에 다시 추악한 현실이 그 잿빛 몸을 드러내는 겁니다. 현실로 돌아온 저는 거기에 꿈의 귀공자하고는 완전히 다른 불쌍하고도 추악한, 자기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아까까지 제게 미소를 짓던 그 아름다운 사람은... 그런 게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건가요. 그 주변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놀고 있는 더러운 애 돌보는 여자조차 저 같은 건 돌아봐 주지 않습니다. 오직 제가 만든 의자만이 지금 꿈의 잔재처럼 거기에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자는 이윽고 우리랑 완전히 다른 세계로 떠나 버리는 게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하나하나 의자를 만들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허무함에 휩싸입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불쾌한 마음은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버러지 같은 생활을 계속할 거라면 그냥 죽어 버리는 편이 낫다."
저는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작업장에서 부스럭거리며 끌을 사용하면서, 못을 막으면서, 혹은 자극이 강한 염료를 칠하면서 똑같은 생각을 집요하게 계속 하는 겁니다.
"하지만 있어 봐. 죽어버릴 거라면, 그 정도로 결심을 했다면, 좀 더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예를 들면..."
그렇게 제 생각은 점점 무서운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때마침 그 무렵, 저는 한번도 만든 적이 없는 가죽이 덮인 커다란 안락의자 제작을 부탁받았습니다. 이 의자는 똑같은 Y 시에서 외국인이 경영하는 그 호텔에 쓰는 물건으로, 하나라면 본국에서 주문해도 될 테데 저한테 맡겼습니다. 상회가 움직여서 일본에도 외래품에 뒤지지 않는 의자 장인이 있다는 이유로 겨우 주문을 따낸 거였습니다. 그렇기에 저도 식음을 전폐하고 그 제작에 몰두했습니다. 정말로 혼을 담아서 열중해서 만든 것입니다.
다 만들어진 의자를 살펴보니 저는 예전에 겪어 보지 못한 엄청난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제가 보기에도 반할 정도로 훌륭히 만들어진 거였습니다. 저는 전처럼 그 의자를 햇볕이 잘 드는 판 사이로 들고가서 천천히 앉았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 착석감인가요.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물렁하지도 않는 쿠션, 일부러 염색을 피하고 잿빛인 채로 놓아둔 가죽의 촉감, 적정한 경사를 유지하고 슬쩍 등을 지탱하는 풍만한 감촉, 섬세한 곡선을 그리며 완만하게 부풀어오른 양쪽 팔걸이, 그 모든 것이 신비하게 조화를 유지하여 완벽한 '안락'이라는 말을 그대로 형태로 나타낸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거기에 깊숙이 몸을 파묻어, 양손으로 둥근 팔걸이를 어루만지면서, 황홀해졌습니다. 그러자 제 버릇이, 멈추지 않는 망상이 오색찬란한 무지개처럼 눈부신 색채를 띠며 점점 솟아오르는 겁니다. 그걸 환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뚜렷하게 눈앞에 떠오르기에 저는 혹시 미쳐버린 게 아닐까 하고 덜컥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제 머리에 문득 근사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건 아마도 그런 걸 가리키는 게 아닐까요. 그것은 꿈처럼 황당무계하고 상당히 기묘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묘함이 말할 수 없는 매력으로 변해서 저를 유혹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저 제 정성을 담은 아름다운 의자를 놓고 싶지 않다, 가능하면 그 의자와 함께 어디까지고 같이 가고 싶다, 그런 단순한 소원이었습니다. 그것이 점점 망상의 날개를 펼치는 동안에 어느새, 그 날 제 머릿속에 무르익고 있었던 그 무시무시한 생각과 연결되고 말았던 겁니다. 그리고 저는 필시 미쳤겠지요. 그 기괴한 망상을 실제로 실행하려고 생각한 겁니다.
저는 서둘러 잘 완성된 의자를 산산이 부수었습니다. 그리고 새삼 그걸 제 묘한 계획을 실행하는 데 가장 알맞은 형태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대형 암체어였으니까 앉는 부분은 바닥에 스칠 정도로 가죽으로 덮여 있고, 등받이도 팔걸이도 상당히 두껍게 만들었기에 그 내부에는 사람 하나가 숨어 있어도 결코 밖에서 모를 정도로 커다랗게 빈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딱딱한 나무 틀과 수많은 스프링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저는 그것들을 적당히 가공을 해서 인간이 앉는 부분에 무릎을 넣고 등받이 안에 목과 몸통을 넣어, 딱 의자 형태처럼 앉으면 그 안에 숨을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을 만든 겁니다.
그런 가공은 밥 먹듯이 해온 거라 상당히 빨리, 쉽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숨을 쉬거나 외부 소리를 듣기 위해 가죽 일부에, 밖에서는 조금도 알 수 없는 틈새를 만들거나, 등받이 내부의 딱 머리 옆 부분에 자그만 선반을 만들어서 무언가를 수납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여기에 물통과 군대용 건빵을 넣어 놓았습니다. 어떤 용도를 위해서 커다란 고무 자루를 달고, 그밖에 다양한 사안을 검토하여 식재료만 있다면 그 안에서 이틀이나 사흘 정도 들어가 있어도 결코 불편하지 않도록 해놓았습니다. 이른바 그 의자가 인간 하나가 살 방이 된 셈입니다.
저는 셔츠 한 장 차림이 된 후 바닥에 설치해둔 뚜껑을 열어서 의자 안으로 쑥 들어갔습니다. 거기는 실로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어두컴컴하고 답답하고 마치 무덤 속에 기어들어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생각해 보면 무덤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저는 의자 안에 기어들어가면서 딱 투명망토라도 두른 듯이 이 인간 세상에서 소멸해 버린 셈이니까.
곧이어 상회에서 하수인이 의자를 가지러 커다란 짐을 들고 왔습니다. 제 내제자가(저는 그 남자와 오직 둘이서 생활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하수인을 응접했습니다. 차에 실을 때 한 인부가 "이거 엄청 무거워."라고 불평했기에 의자 속에 있는 나는 헉 놀랐지만 안락의자 그 자체가 원래부터 상당히 무거우니까 딱히 더 의심받지 않고 이윽고 덜컹덜컹 짐차 진동이 제 몸까지 전해졌습니다.
무척 걱정을 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없이 그 날 오후에는 이제 제가 들어간 안락의자는 호텔 방에 떡 하니 자리 잡았습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개인실이 아니라 사람을 기다리거나, 신문을 읽거나, 담배를 피거나, 여러 사람들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라운지 같은 방이었습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제 이 기묘한 행위의 첫 번째 목적은 사람이 없는 때를 노려 의자 안에서 빠져나와 호텔 안을 돌아다니거나 훔치는 거였습니다. 의자 안에 인간이 숨어 있다니,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습니까. 저는 그림자처럼 자유자재로 방에서 방으로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들기 시작할 때는 의자 속 은둔처로 도망쳐 숨을 죽이고 그들의 얼빠진 수색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당신은 해안 방파제에 사는 '소라게'라는 게의 일종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커다란 거미처럼 생겨서 사람이 없으면 그 주변을 제 세상인 양 돌아다니지만 조금이라도 사람 소리가 들리면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게 껍데기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그리고 기분 나쁜 털북숭이인 앞다리를 조금 껍데기에서 내밀어 적의 동태를 살피는 겁니다. 저는 딱 그 '소라게'였습니다. 껍데기 대신에 의자라는 은둔처를 가지고, 해안이 아니라 호텔 안을, 제 집인 양 돌아다니는 겁니다.
자, 이 제 엉뚱한 계획은 그야말로 엉뚱하기 짝이 없었기에 사람들의 의표를 찔러서 보기좋게 성공했습니다. 호텔에 도착해서 사흘째에는 이제 완전히 눌러 앉게 된 겁니다. 막상 훔치려고 할 때가 되면 솟아나는 두렵고도 즐거운 마음. 성공했을 때의 형언할 수 없는 기쁨, 그리고 사람들이 제 바로 코앞에서 저쪽으로 도망쳣다, 이쪽으로 도망쳤다 난리를 부리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재미. 그게 얼마나 기묘한 매력으로 저를 즐겁게 해주는 걸까요.
하지만 저는 지금 유감스럽게도 그걸 자세히 얘기할 틈은 없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그런 도둑질보다 열 배 스무 배 저를 기쁘게하는 기괴한 쾌락을 발견한 겁니다. 그리고 그걸 고백하는 것이 실은 이 편지를 쓴 진정한 목적입니다.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서 제 의자가 호텔 라운지에 놓인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의자가 도착하니 호텔 주인들이 그 착석감을 맛보았습니다만 그 후에는 휑하고 소리 하나 없었습니다. 아마도 방에는 아무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의자에서 나오다니 무척이나 두려워서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상당히 오랫동안(그저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릅니다만) 작은 소리라도 듣기 위해서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해서 가만히 상태를 살폈습니다.
그렇게 잠시 있으니 아마도 복도 쪽이겠지요. 뚜벅뚜벅 무거운 발소리가 울리는 겁니다. 그것이 두세 걸음 다가오자, 방에 깔린 융단 때문에 거의 듣기 어려운 낮은 소리로 바뀌었습니다만, 곧이어 거친 남자의 숨소리가 들리고, 깜작 놀란 사이에 서양인으로 보이는 커다란 몸이 제 무릎 위에, 쿵 떨어져서 두세 번 출렁거렸습니다. 제 대퇴부와 그 남자의 탄탄하고 육중한 엉덩이는 얇은 가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폭이 넓은 그의 어깨는 딱 내 가슴께에 기대어 있고, 무거운 양손은 가죽을 사이에 두고 제 손과 겹쳐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시가를 피웠겠지요. 남성적인 짙은 냄새가 가죽 틈새를 타고 스며들었습니다.
부인, 가령 당신이 제 입장에 있다고 하고 이 장면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건 뭐라고 해야 할까요, 기상천외한 광경일 테지요. 저는 너무나도 무서운 나머지 의자 속 어둠에서 몸을 꽉 움츠려 겨드랑이 밑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사고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기에 그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남자를 시작으로 그 날 하루, 제 무릎 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갔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제가 거기에 있는 걸 ― 그들이 부드러운 쿠션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실은 저라는 인간의 피가 통하는 허벅지라는 것을 ― 조금도 알지 못했던 겁니다.
깜깜해서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가죽 안. 그게 얼마나 기묘하고도 매력이 넘치는 세계일까요. 거기서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평소에 보고 있는 그 인간하고는 전혀 다른 이상한 생물로 느껴집니다. 그들은 목소리와, 콧김과, 발소리와, 옷이 스치는 소리와, 그리고 몇 가지 둥근 탄력에 싸인 고깃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그들 하나하나를 그 용모 대신에 살갗의 감촉으로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자는 뚱뚱하게 살이 쪘고, 썩은 생선 같은 감촉이 느껴집니다. 그거랑 정반대로 어떤 자는 비쩍비쩍 말라서 해골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밖에 등골이 굽은 정도, 어깨뼈가 열린 정도, 팔의 길이, 허벅지의 굵기, 혹은 꼬리뼈의 길이 등, 그 모든 것을 종합해서 보면 얼마나 체력이 비슷한 사람이라도 어딘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용모나 지문 말고도 이런 전체적인 감촉으로도 완전히 구별할 수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이성도 똑같이 구별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주로 용모의 미추로 그걸 판단하지만, 이 의자 안 세계에서는 그런 건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알몸으로 드러난 육체와, 목소리와, 냄새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부인, 너무나도 적나라한 제 서술에 부디 기분 나빠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거기서 한 여성의 육체에(그것이 제 의자에 앉은 첫 여성이었습니다.) 격하게 애착을 느꼈습니다.
목소리로 상상해 보면 그것은 아직 젊은 이국의 소녀였습니다. 마침 그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만 그녀는 뭔가 기쁜 일이라도 있는 듯이 작은 목소리로 신비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춤추는 것 같은 발놀림으로 거기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숨어 있는 안락의자 앞에 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풍만한, 그것치고는 상당히 나긋나긋한 육체를 제 위에 던졌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뭐가 웃긴 건지 갑자기 아하아하 웃어대더니 팔다리를 퍼덕이면서 통 속에 있는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뛰는 겁니다.
그로부터 30분 가까이 그녀는 제 무릎 위에서 때때로 노래를 부르면서 그 노래에 맞추어 꿈틀꿈틀 무거운 몸을 움직였습니다.
이건 실로 제게 있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경천동지의 대사건이었습니다. 여자는 신성한 존재, 아니 오히려 무서운 존재로 얼굴을 보는 것조차도 주저하던 저였습니다. 그 제가 지금 전혀 모르는 이국 소녀와 똑같은 방에, 똑같은 의자에,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얇은 가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살의 온기를 느낄 정도로 밀착해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무런 불안도 비치지 않고, 온몸의 체중을 제 위에 실어서 보는 사람 없는 편안함에 마음껏 움직이는 겁니다. 저는 의자 안에서 그녀를 껴안는 시늉도 할 수 있습니다. 가죽 뒤에서 그 풍만한 목덜미에 입을 맞출 수도 있습니다. 그 밖에 어떤 짓을 하든 제 마음대로였습니다.
이 놀랄만한 발견을 한 후로 저는 처음 목적이었던 도둑질은 뒷전으로 그저 그 신비로운 감촉의 세계로 빠져들어간 겁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거야말로 이 의자 안 세계야말로 제게 주어진 진정한 거처가 아닐까. 저처럼 추악하고 그리고 유약한 남자는 밝은 광명의 세계에서는 늘 열등감을 느끼면서 부끄럽고 비참한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는 없는 신세입니다. 그것이 사는 세계를 바꾸어 이렇게 의자 안에서 답답함을 참기만 한다면, 밝은 세계에서는 말을 거는 건 물론이고 곁에 있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던 아름다운 사람에게 접근해서 그 목소리를 듣고 살이 맞닿을 수도 있는 겁니다.
의자 속의 사랑! 그것이 얼마나 신비롭고도 도취적인 매력을 가지는 건지 실제로 의자 안에 들어가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모를 겁니다. 그건 그저 촉각과 청각과 그리고 희미한 후각만의 사랑이었습니다. 어둠의 세계의 사랑입니다. 결코 이 세상의 것은 아닙니다. 이거야 말로 악마의 나라의 애욕이 아니겠습니까.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서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곳에서는 어떠한 이형의 무시무시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말로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당초 예정은 다 훔친 뒤에 당장 호텔을 달아날 생각이었으나, 너무나 기괴한 기쁨에 열중한 저는 도망치기는커녕 언제까지고 의자 안에 영원히 살고 싶어서 그 생활을 계속한 것입니다.
밤이 되어 외출할 때는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서 조금도 소리를 내지 않고 또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하기에 당연히 위험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몇 개월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그렇게 조금도 들키지 않고 의자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제가 생각해도 실로 놀랄 일이었습니다.
거의 하루종일 지낸 답답한 의자 속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무릎을 꺾고 있었기에 몸이 저려서 완전히 일어설 수도 없었고, 급기야는 요리장이나 화장실로 갈 때 게처럼 기어갈 정도였습니다. 저라는 남자는 얼마나 미치광이인가요. 그런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기묘한 감촉의 세계를 저버릴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개중에는 한 달 두 달 거기에 살듯이 묵는 사람도 있었지만 호텔이니까 끊임없이 손님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고로 제 기묘한 사랑도 때와 함께 상대가 변해가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연인의 기억은 보통처럼 그 용모에 따라서가 아니라 주로 신체의 체격으로 제 마음에 새겨지는 겁니다.
어떤 자는 조랑말처럼 예리하고 날씬한 육체를 가지고, 어떤 자는 뱀처럼 요염하고 꿈틀거리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육체를 가지며, 어떤 자는 고무공처럼 비대하고 지방과 탄력을 가진 육체를 가지고, 또 어떤 자는 그리스 조각상처럼 탄탄하고 힘차며, 원만하게 발달한 육체를 가졌습니다. 그밖에 어떤 여자의 육체에도 제각각 특징이 있고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자에서 여자로 갈아타는 사이에 저는 또 그것과는 다른 이상한 경험을 맛보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어느 날 유럽 어느 강국의 대사가(일본인 보이의 잡담으로 알게 된 겁니다) 그 위대한 몸을 제 무릎 위에 올린 겁니다. 그것은 정치가라기보다는 세계적인 시인으로서 더 잘 알려진 사람이었는데 저는 그 위인의 살결을 알게 된 것이 두근거릴 정도로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는 제 위에서 두세 명 정도 되는 같은 나라 사람을 상대로 충분히 이야기를 하더니, 그대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물론 무슨 말을 했는지 저는 전혀 몰랐지만 제스처를 취할 때마다 몸을 움직여 보통 사람보다도 따뜻해 보이는 육체가 스치는 감촉이 제게 최고의 자극을 준 겁니다.
그때 저는 문득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혹시! 이 가죽 뒤에서 예리한 나이프로 그의 심장을 노려서 푹 찌른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물론 그건 그가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치명상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의 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정치계는 그것 때문에 어떤 소동이 일어날까요. 신문에는 어떤 극정적인 기사를 써올릴까요. 그것은 일본과 그의 본국과의 외교관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테고 예술 세계에서 봐도 그의 죽음은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대사건이 자신의 손으로 간단히 이루어질 수 있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저는 이상한 우월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유명한 어느 국가 댄서가 방문했을 때, 우연히 그녀가 그 호텔에 숙박해서 딱 한 번이기는 했지만, 제 의자에 앉았을 때였습니다. 그때도 저는 대사 때랑 비슷한 감명을 느꼈습니다만 거기에 더해 그녀는 제게 예전에 겪은 적 없는 이상적인 육체미의 감촉을 주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감촉에 비열한 생각 따윈 조금도 하지 못하고 그저 예술품을 대할 때처럼 경건한 기분으로 그녀를 찬미한 겁니다.
그 밖에도 저는 이것저것 희귀하고 기묘한 혹은 기분 나쁜 경험을 했습니다만 그것들을 여기에 다 적기에는 이 편지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고 오래 걸리기에 서둘러 중요한 이야기로 나가기로 하겠습니다.
자, 제가 호텔에 온 지 몇 개월 후, 제 신변에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호텔 경영자가 어떤 사정으로 귀국하게 되어서 나머지는 전부 끼워 팔아 어느 일본인 회사에 넘긴 겁니다. 그러자 일본인 회사는 호화로운 경영 방침을 고치고 좀 더 일반인을 위한 여관으로서 유리한 경영을 목적을 세웠습니다. 그걸 위해 불필요한 것들은 어느 커다란 가구상에 위탁해서 경매한 겁니다만, 그 경매 대상 중에 제 의자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걸 알고 한순간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기회로 한 번 더 속세로 돌아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까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그 때는 훔친 돈이 상당히 모였으니까 가령 속세로 나와도 이전처럼 비참한 생활을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외국인 호텔을 나온다는 건 한편으로는 크게 실망스러운 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희망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몇 개월 동안 그토록 여러 이성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전부 이국인이었기 때문에 그게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육체의 소유주라더라도, 정신적으로 묘하게 부족함이 느껴지는 겁니다. 역시 일본인은 똑같은 일본인이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없는 것일까요. 저는 점점 그런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마침 제 의자가 경매에 나가는 겁니다. 이번에는 어쩌면 일본인이 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일본인 가정에 놓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제 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저는 일단 조금 더 의자 안 생활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가구점 가게 앞에서 이삼 일 간 상당히 괴로운 생활을 했지만 경매가 시작되니 다행스럽게도 제 의자는 빨리 매수되었습니다. 오래되었어도 충분히 사람의 눈길을 끌 정도로 훌륭한 의자였기 때문이겠지요.
구매자는 Y 시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대도시에 사는 어느 관리였습니다. 도구상 가게 앞에서 그 사람 집까지 몇 리나 되는 길을 상당히 덜컹거리는 트럭에 실려 갔을 때는 저는 의자 안에서 죽을 만큼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구매자가 제 희망대로 일본인이었다는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구매자인 관리는 상당히 훌륭한 저택에 사는 주인으로 제 의자는 그곳 양옥관의 넓은 서재에 놓였습니다. 제게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점은 그 서재는 주인보다는 오히려 그 집의 젊고 아름다운 부인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약 1개월 동안 저는 계속 부인과 같이 있었습니다. 부인의 식사와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는 부인의 늘씬한 몸은 늘 제 위에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부인이 그 동안 서재에 틀어박혀 어떤 창작에 몰두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가, 그것은 여기에 주절주절 적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녀는 제가 처음으로 접촉한 일본인으로, 게다가 상당히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에 비하면 호텔에서 겪은 경험 따윈 결코 사랑이라고 부를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증거로 이때까지 한 번도 그런 걸 느껴보지 못했는데 그 부인에 대해 저는 그저 비밀의 애무를 즐기는 걸로 부족해서 어떻게든 제 존재를 알리고자 여러모로 고심한 겁니다.
가능하다면 부인도 의자 안에 있는 저를 의식해 주었으면 했습니다. 그리고 주제넘은 소리지만 저를 사랑해 주셨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전할까요. 혹시 거기에 인간이 숨어 있다는 걸 노골적으로 알렸다간 그녀는 필시 놀란 나머지 주인이나 사용인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데다 저는 무서운 죄명을 쓰고 법률상의 처형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적어도 부인에게 제 의자를 기분 좋게 느끼도록, 거기에 애착을 느끼도록 노력했습니다. 예술가인 그녀는 분명히 보통 사람 이상으로 기묘한 감각을 지니고 있을 게 틀림없습니다. 혹시 그녀가 제 의자에 생명을 느꼈다면,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하나의 생물로서 애착을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저는 그녀가 제 위에 몸을 던질 때는 가능한 포근하고 다정하게 받도록 마음먹었습니다. 그녀가 제 위에서 지쳤을 때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무릎을 움직여서 그녀의 몸 위치를 바꾸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꾸벅꾸벅 잠들기 시작했을 때에는 저는 아주 조금씩 무릎을 흔들어서 요람처럼 일했습니다.
그 배려가 통한 것일까, 그게 아니면 단순히 제 착각인가, 근래에는 부인이 아무 의심 없이 제 의자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는 마치 아기가 어머니의 품속에 안겼을 때처럼 혹은 소녀가 연인의 포옹에 응했을 때처럼 달콤한 상냥함을 요구해 제 의자에 몸을 묻었습니다. 그리고 제 무릎 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상당히 익숙해 보입니다.
이처럼 제 정열은 나날이 격하게 불타올랐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 부인, 드디어 저는 주제넘는 거창한 소원을 품게 되었습니다. 딱 한 번, 제 연인의 얼굴을 보고 그리고 말을 나눌 수만 있다면 그대로 죽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한 겁니다.
부인, 당신은 물론 이미 눈치채셨겠지요. 그 나의 연인이라고 한 것은, 너무한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실은 당신입니다. 당신의 남편이 그 Y 시 도구점에서 제 의자를 경매로 산 이후, 저는 당신에게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만 불쌍한 남자가 되었습니다.
부인, 한평생의 소원입니다. 딱 한 번 저를 만나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리고 한 마디라도, 이 불쌍하고 추악한 남자에게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없습니까. 저는 결코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 걸 바라기에는 너무나도 추악하고 추해빠진 저입니다. 부디, 이토록 불행한 남자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저는 어젯밤 이 편지를 쓰기 위해서 저택을 빠져나왔습니다. 얼굴을 마주 보고 부인에게 이런 걸 부탁하는 건 상당히 위험하고, 저는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에는 저는 걱정 때문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저택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겁니다.
혹시 이 너무나도 추악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부디 서재 창문 옆 패랭이꽃을 심은 화분에 당신의 손수건을 걸어주시고, 그걸 신호로 저는 한 명의 방문자로서 저택 현관으로 들어오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묘한 편지는 강렬한 기도의 말로 끝나 있었다.
요시코는 편지를 반쯤 읽었을 때 무시무시한 예감으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일어서더니 기분 나쁜 안락의자가 놓인 서재에서 도망쳐서 거실 쪽으로 갔다. 편지 뒤쪽은 읽지 않고 찢어 버릴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거실 작은 책상 위에서 일단 읽었다.
그녀의 예감은 역시 맞았다.
이건 어찌 이리 무서운 사실일까. 그녀가 매일 앉았던 그 안락의자 속에는 낯선 남자 하나가 들어 있다니.
"오, 기분 나빠."
그녀는 등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오한이 들었다. 그리고 기묘한 몸떨림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에 멍하니 앉아서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도무지 종잡지 못하는 것이다. 의자를 조사한다? 어떻게 그런 기분 나쁜 짓을 할 수 있을까. 거기에 가령 이제 인간이 없다하더라도, 음식물 등 그에게 딸린 더러운 것이 아직 남아 있을 게 틀림없다.
"부인, 편지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돌아보니 거기에는 한 시중이 지금 도착한 봉서를 들고 왔다.
요시코는 무의식적으로 그걸 받고 개봉하려고 했으나 문득 그 상서를 보더니 무심코 그 편지를 떨어뜨릴 정도로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아까 기분 나쁜 편지와 완전히 다른 필벽으로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그걸 열어볼까 버릴까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엔 그걸 찢어 움찔거리면서 내용물을 꺼내 읽어갔다. 편지는 지극히 짧았지만 거기에는 그녀를, 한 번 더 경악시킬 기묘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갑자기 편지를 보낸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평소 선생님의 작품을 애독하는 사람입니다. 따로 보낸 것은 제 별볼 것 없는 창작입니다. 보신 후에 비평해 주시면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모종의 이유 때문에 원고 쪽은 이 편지를 쓰기 전에 보냈으니 이미 읽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떠셨습니까. 혹시 졸작이라고 하더라도 선생님을 감명시켜 드렸다면 더없이 영광입니다만.
원고에는 일부러 생략해 놓았지만 제목은 '인간의자'라고 붙이려고 합니다.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드립니다. 이만.
첫댓글 개새끼야 이 원고 불쏘시개 시발럼아
어우 글은 진짜 잘쓰네 쪽바리놈이
존잼...
글 하나는 진짜 잘썼다 미친놈아;;;;;
하 미친 애초에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봣으니 망정이지 저 사람은 개 놀랏겟가 진짜
필력 개오져
ㅆㅂ 글존나잘쓰노 개놈아
이거 이토준지가 만화로 맹글어놓은것도 있음..
존나 잘쓰긴했다 이 새꺄ㅅ ㅂ
삭제된 댓글 입니다.
헐 재밌겠다ㅠ 읽어볼래!!!
뛰어난 소설이라서가 아니라 협박편지 비슷한거잖아 ㅅㅂ 일녀살려
남편도 있는 여자한테 감촉이 어쩌고!! 소설이라고 해도 희롱이다 임마 비싼의자 의뢰만 들어올정도로 상회에서 밀어주는데 음침하게 의자속에서 도둑질이나 하냐 글쓴여시 잘봤어 음침하게 생긴 놈이 행여나 내면이라도 착할까 하는 기대는 버려야한다는 교훈..ㅠㅠ
이 글 식탁 의자에 앉아서 보는데 개소름 돋았어...뭐 이렇게 음침하게 글을 잘 쓰고 지랄이야! 아오 놀래라
오.ㅇ.ㅇ,ㅇ.ㅇ.
으와우오왕우우우....와우 끔찍해..ㅋㅋㅋ
음침해 시발....지도 알고 그런거지 남작가한테 저런 글은 아무런 감흥도 안되고 겁도 못주는거
이거 이토준지 만화로도 있는데 상상가서 소설이 더 소름돋는다.. 진짜 음침해... 으...
역시 못생남들은.. 절레절레......
으
필력 미쳤어...ㅎ
필벽이 무슨 뜻일까..? 글구 두번째 편지가 진실인건 다들 어떻게 안거야? 사실 아직 의자 안에 있는데 혹은 의자에서 나와서 주인공의 손수건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공을 안심 시키기 위해 거짓편지를 보낸걸 수도 잇자네
버릇벽자 써서 글씨체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
@호비튼아싸 오 고마워
란포단편선 읽어보면 ㄹㅇ다 음침함 진짜
와 진짜 어우...와...
너무재밌다.. 초반 읽으면서 혹시 자기가죽을 벗겨서 의자만들어서 죽나? 했는데 진짜 상상이상이네
와 진짜 개음침하다
필력 보소. 존나 빨려드네.. 근데 성희롱오져 ㅎ
존나 이토준지 갬성,,,, 마지막에 거절당하니까 허버허버 뻥이라고 하는거 노갠지 ㅠ
뭔가 다자이 오사무같다..
에도가와 란포.. 이 변태 영감탱ㅋㅋㅋ
재밌닼ㅋㅋㅋ
호우 난 읽으면서 요시코가 모종의 말 못할 작업을 서재에서 하고있을 줄 알았는데ㅋㅋㅋ 그래서 요시코가 의자를 쓰윽.. 돌아보는걸로 끝날줄.. 예상못한 결과네 ㅋㅋㅋ
와 글읽으면서 소름돋았어..
그럼 마지막에 요시코가 편지를 받고 경악한 문장이 "원고에는 일부러 생략해 놓았지만~" 이부분이야?
아래 전체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