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맷집
2019년 여름, 부산에서 전국 독후감 대회 심사가 있었다. 어느 재단에서 주최한 대회였는데, 심사 위원은 작가, 교수 등으로 대략 열두 명 정도였다. 심사 전, 우리는 관계자들과 점심을 먹었다. 멍석 만 깔아 주면 폭풍 수다를 떨 능력이 충분하지만, 낯선 자리인지라 잠자코 밥만 먹었다. 그때 내 옆의 옆에 앉은 작가가 말을 걸었다 "황영미 작가님! 뵙고 싶었어요." '네? 저를요?' 이 말이 당장 튀어나오려고 했다. '제가 왜 보고 싶었을까요? 저 그냥 동네 아줌마인데......' "네, 저도 작가님들 만나서 반가워요." 그냥 인사치레다 싶어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랬더니 현직 고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그가 말을 이었다. "체리새우 작가가 누굴까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나이가 많은 분인 줄 몰랐어요." 그의 말에 다른 이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반응에 익숙했다. 《체리 새우: 비밀글입니다》 작가가 10대나 20대인 줄 알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니까. "비결 좀 알려주세요. 10대의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잘 표현할 수 있었는지." 그는 또 물었다. 뭐랄까. 나를 취재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예상이 맞았다. 그는 계속 질문했고, 준비된 상황이 아니니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막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이쿠, 그는 그 날 나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방송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물론 나한테 허락을 받고서. 알고 보니 그는 꽤 유명한 유튜버였다. 잠깐의 만남을 놓치지 않고 인터뷰를 따낸 뒤, 10여 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올릴 만큼 능력자였다. 그가 링크를 보내 주어 방송을 봤다. 문학상 수상자가 되는 비법을 분석한 내용이었다. '청소년을 진심으로 사랑하라,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도전하라' 등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가운데 나의 관심을 끈 부분이 있었다. 내가 긴 세월 지치지 않고 작품을 썼다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그게 놀랄 일인가?
맞다. 나는 공모에 번번이 떨어지면서도 오랜 세월 소설을 썼다. 최종심에도 몇 번이나 올랐다. 이게 문제였다. 예심에서 떨어졌으면 포기라도 할 텐데, "잘 쓰시네요, 그런데 어쩌고저쩌고......" 하는 평을 듣자 다음에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당선 운이 따르지 않는 사람을 본 적 없다는 소리도 무지하게 들었다. "문운이 없나 보네. 굿이라도 한 번 해 봐요." 나의 지도 교수이자 작가인 임철우는번번이 떨어지는 내가 안타까워 이런 농담을 할 정도였다. 이쯤 되면 그만둘 법도 한데 그럴 수 없었다. 소설 쓰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기도 했다. 나는 김치를 담글 때면 남편에게 '제발 김치 좀 그냥 사 먹으면 안 되냐'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살림도 못하는데, 다른 직업을 가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읽고 쓰는 일이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 없었다. 2005년에 엄마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해 처음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읽고 쓰는 일은 나에게 일용할 영혼의 양식이자 마음 치유의 방편이었다. 긴 호흡으로 몰두할 일이 생기니 슬픔도, 죄책감도 견딜 만했다. 그러니 공모에 떨어지는 게 무슨 대수인가. 물론 발표가 나는 날, 명단에 내 이름이 없으면 속상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대략 이틀만 지나면 감정이 수습된다. 다시 쓰면 되니까. 이런 세월이 10년도 훌쩍 넘었다. 그사이 나는 웬만한 실패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늘 그랬다. 나는 소중한 것들을 실패 없이 그냥 얻은 적이 없다.
패배에 대한 맷집이 있으니 잘나간다 싶을 때도 우쭐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 아닌가? 나는 성공과 실패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인생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승승장구하다가 중년에 추락하는 사례도 많이 보았다. 넘어지지 않고 걸음마를 배울 수는 없다. 작가 생텍쥐페리의 기도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고난, 패배, 좌절은 인생에 주어진 당연한 덤이다. 우리는 그로 인해 분명히 성장할 것이다." 진짜 그렇다. 황영미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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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황영미; 소설가님의
감동의 글 패배의 맷집을
올려 주신 삼태성 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월요일
하루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김문수 님 !
공유하며 다녀가신
고운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사랑과 행복 가득한
멋진 한주되세요
고맙습니다~
^♡^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다녀가신 고운
마음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트는새벽 님 ~
건강과 기쁨
행운이 함께하는
복된 한주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