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답을 찾다
5년 전, 취업 준비생인 나는 여러 회사에 문을 두드렸다. 하나 돌아오는 것은 불합격 통보뿐이었다. '불합격'이라고 쓰인 글씨가 사회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경고장처럼 느껴졌다. 창밖을 보니 가을볕 아래 은행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걷기 좋은 날씨여 서 였을까. 미루고 미룬 국토 대장정이 떠올랐다. 나는 바로 짐을 싸고 다음 날 출발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400킬로미터를 걸었다. 걷기에만 집중하니 딴생 각이 들지 않았다. 발밑으로 사각거리는 흙을 느끼고, 상쾌한 새벽 냄새 를 맡고,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사이 하루가 훌쩍 지났다. 하나 위험한 일도 많았다. 덤프트럭들이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걸을 때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두려움도 들었다. 발은 물집으로 부르텄고, 10킬로 그램짜리 배낭은 어깨와 허리 를 짓눌렀다. 그래도 묵묵히 걸으니 점점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걷는 내내 생각했다. 국토 대장정이 인생과 닮았다고. 힘들고 고되지만 언젠가는 도착하며, 걸어 봐야 그 길이 어떤지 알 수 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도 있었다. 경북 문경시를 지나 상주시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한참을 걷는데 길이 산길과 평지로 갈렸다. 비교적 낮은 산이었기에 고민 없이 산길을 올랐다. 한데 가파른 경사가 계속되고 중간중간 길이 끊기기도 해서 평지를 걷는 것보다 몇 배 힘들었다.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숙소까지 는 걸어서 1시간 40분.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야행해야 할 판이었다. 밤에 걷기엔 많은 위험이 따랐다. 나는 급히 근처에서 묵을 곳 을 찾기 시작했다.
겨우 도착한 마을에는 주민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 거리가 한산했다. ‘이대로 노숙해야하나.’ 눈앞이 깜깜했다. 설상가상으로 휴대폰 배터리 까지 얼마 남지 않은 그때,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걸어왔다. "어이구 무시라. 여서 뭐 하는 겨?" 할머니는 나를 보고 적잖이 놀란 눈 치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걷고 있는데 해가 져서요. 어디 잘 곳이 있 을까요?" 할머니는 나를 가만히 보다 대뜸 물었다. "저녁은 들었나?" 고 개를 젓자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집에 내밖에 없는데, 개안으면 하루 자고 가그라." 여든 살 김점례 할머니와의 첫 만남이었다. 할머니는 녹초가 된 나를 위해 우거지와 고구마,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 를 끓여 주었다. "입맛에 맞을랑가 모르겠네." 자작한 국물을 한 술 떠 먹자 달큰한 된장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밥에 찌개를 쓱쓱 비벼 우물 우물 씹으니 피로가 말끔히 풀렸다. 지친 몸뿐 아니라 마음도 데우는 한 끼였다. 그날 할머니와 마주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50년 전 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내고 사 남매를 홀로 키웠다고 했다. 농사부터 방앗간 일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할머니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 다. "뭐 한다꼬 부산꺼정 걷는 겨?" "대학교도 늦게 들어가고, 졸업했는데 취업도 못해서 계속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토 종주를 하면 조금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서 걷게 됐어요." 할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부끄러븐 얘기지만 내 가 글을 일흔다섯에 배웠어. 그때까지 내 이름 석 자를 못 썼어. 근데 일 흔다섯에 글을 배우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대단한 할매라 카대? 일곱 살 에 배워야 할 걸 일흔다섯에 배운 내도 있어. 그러니까 학생은 하나도 안 늦은 기야." 할머니의 말이 아랫목처럼 따뜻했다. 그동안 나를 짓누른 불안함과 조 급함은 훌쩍 사라지고 그 자리에 희망과 용기가 몽글몽글 차올랐다. 할 머니는 피곤할 텐데 어서 자라며 깨끗한 이부자리를 폈다. 방은 아늑했 고, 모로 돌아누운 할머니는 쌕쌕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시골의 밤은 불빛 한 점 없이 깜깜하고 고요했다. 가슴 한쪽에 있던 그늘을 어둠 속 에서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다음 날, 할머니는 든든히 먹어야 잘 걷는다며 달걀프라이 두 개가 올 라 간 아침상을 차려 주었다. 달걀프라이를 입안 가득 넣는데 괜스레 눈물이 났다. 큰 신세를 진 듯해 텔레비전 위에 몰래 만 원짜리 석 장을 올려놓고 나왔는데, 할머니는 점심이라도 사 먹으라며 내게 만 원을 쥐 여 주었다. 받지 않으려는 나와 기어코 주려는 할머니의 실랑이는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고 나서야 끝났다. 할머니의 집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부산으로 떠났다. 할머니는 점처럼 작게 보일 때까지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로부터 5일 뒤 부산역에 도착했고, 몇 달 후 취업에도 성공했다. 여전 히 미래에 대한 불안은 찾아오고, 그럴 때면 마음을 어둑한 곳에 밀어 넣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누워 김점례 할머니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 시 따뜻한 구들장 위에 데려다 놓는다. 늦은 시기란 없고, 그렇기에 조 급할 필요 없다는 할머니의 말을 되새기며. 정연주 | 경기도 부천시 제7회 청년이야기대상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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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안녕하세요
고운글로 공유하신
동트는아침 님 !
감사드립니다~
여유롭고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길에서 답을 찾다..
귀한글 담아주신 망실봉님.
감사히 즐감 합니다.
고맙습니다..
추워요..
따뜻하게 여미시고 다니세요..^^
반갑습니다
그저께까지 포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매서워졌네요
추위에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고운 흔적 주셔서
고맙습니다~
핑크하트 님 !
부산까지 걷겠다는 용기가 인생을 바꾸었네요
반갑습니다
단테아짐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훌륭한 멘트글 감사합니다~
늘 건승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나날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