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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앞에서 <비밀의 언덕>의 명은에게 |
글 안희연(시인) |
명은아, 나는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좋아해. 스크린 속 어린이들은 항상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지. 영화 <우리들>에 등장하는 선과 지아, <벌새>의 은희처럼, 너희는 어른들의 우매한 눈으로는 차마 다 들여다볼 수 없는 '어린이라는 세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해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야. 너도 그랬어. 너는 영리하고 사려 깊은 아이였고,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는 존재였지. 너를 보는데 나를 보는 기분이 들었어. 우리 사이엔 몇 가지 공통분모가 있었거든. 스스로 반장에 지원할 정도로 적극적인 성향이라는 것도, 가족으로 인한 문제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도, 글쓰기를 좋아하고 재능이 있다는 점도 비슷했지. 그래서 더 애틋했나 봐. 너를 보며 나의 유년을 떠올리고 그때의 나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나 가늠해 보기도 하면서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어린 나를 깨울 수 있었어. 너는 여러 고민을 씨앗처럼 품은 존재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족'이라는 단어를 가장 힘들게 품고 있는 것 같았어. 반장은 돈도 많이 드는데 왜 덜컥 일을 저질렀냐며 당장 무르고 오라는 엄마의 불호령에도, 글짓기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아왔더니 왜 최우수상이 아니냐고 받아치는 아빠 얼굴을 볼 때도 너는 고슴도치처럼 바늘을 세워야 했을 거야. 시장에서 젓갈 장사를 하는 부모님이 창피해 거짓 부모를 만들어 내고, '세상엔 수많은 가족의 보기들이 넘쳐나는데 우리 가족만 보기에 없는 것 같아요'라며 글을 써 내려가던 네 마음의 풍경을 생각해. 기대와 실망이 어지러이 뒤섞여 있었을 그 마음을. 그런 너에게 굉장한 사건이 생겼지. 교외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두 개나 받게 된 거야. 글감은 가족이었는데 이 무슨 신의 장난인지, 가족에 대한 마음을 뺏속까지 훤히 드러낸 글은 대상을 받았고, 감출 것은 감추며 적당히 써 내려간 글은 장려상에 그쳤어. 결과적으로 너는 주최 측에 전화를 걸어 대상을 포기하는 놀라운 선택을 했어. 네 솔직한 글이 신문에 공개되면 가족들이 틀림없이 상처받을 거라는 이유에서였지. 그리고 너는 비밀의 언덕에 올라 너의 글을 땅속 깊이 묻었어. 누구에게도 영원히 들키지 않기 위해서. 명은아, 나는 너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해.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지 못해 아쉬워하는 선생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너의 주관대로 행동하는 모습, 근사했어. 중요한 건 상의 이름이나 개수가 아닐 거야. 너에게는 명확한 선택 기준이 있었고 그 결과를 책임질 줄도 알았지. 그렇게 너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냈어. 모두에게 행복한 엔딩을 선사해 주었지. 명은아, 이번 일을 겪으며 너는 조금 더 현명하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그런 너를 지켜보며 내 비밀의 언덕은 어디에 있나, 나는 선택 앞에서 무엇을 고려하는 사람인가 생각해 보게 됐어. 매일매일이 주관식 문제 같은 이 삶을 우리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걸까? 어떤 선택이 좋은 선택일까?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모두를 위한 행복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 그래도 너로 인해 깨달았어. 우리에겐 비밀의 언덕이 있고, 그곳에선 온전히 마음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마음이 복잡할 땐 비밀의 언덕에 오를 테니 그곳에서 만나. 언덕 위에서 환하게 손 흔드는 네가 보이는 것도 같구나. |
“Can’t Take My Eyes Off You” (Frankie Valli) Jazz Cover by Robyn Adele And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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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공유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도 보람되고
기쁨이 함께하는
좋은 하루보내세요
~^^
글짓기 대회는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마음이 훤히
들여다 보여야 대상을 받아요.
진실은 거짓을 이기는 것입니다..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오늘도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편안한 저녁 시간 이어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