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주머니
할머니의 주머니
아버지의 노름빚을 받으러
사내가 찾아 왔을 때
할머니는 조그만 칼을
넓고 깊은 몸빼 바지의
주머니에서 꺼냈다
집을 넘겨줄 수는 없다고
차라리 당신을 죽이라고 했다
파르라니 빛을 발하는 칼날을
목에 들이댔다
할머니는 스웨터, 몸빼바지
속곳에 겹겹의 주머니를 가지고 있었다
모자와 버선 속에도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내가 보챌 때마다 그 속에서
사탕이나 동전이 나왔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그 속에 숨어 있던지
물고기 뼈 같은 빗이나
실뱀 같은 노끈
구슬과 비단 손수건 따위
가끔씩은
어디에 넣어두었는지 잊어버려
할머니는 끝도 없이 몸을 더듬었다
지레짐작으로 잘못 꺼낸 열쇠하나로
한동안 어머니와 말을
안고 지냈다
할머니는 몸속에도 주머니를
만들어둔 듯 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속내는
끈으로 꽁꽁 졸라매
소리가 새지 않도록 늘 소심했다
무엇을 숨겨 두었는지
그 주머니들이 묵지근 해진 날이면
눈꺼풀 속 눈동자를 굴리며
잠꼬대를 심하게 하곤 했다
아주 오래된 꿈속에서
아버지를 꺼내면서
할머니는 신귤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선지 할머니의 몸속에
낭종이 되고 곪기도 했던 아버지
몸을 뒤채일 때마다
물컹거리며 툭툭 터져
할머니의 잠자리는 흥건했다
- 좋은 글 - 중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오늘도 좋은글에 힐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안녕 하세요..종소리님
오늘도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즐거운 나날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