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일체 만법에 두루 융통 자재하여 걸림이 없는 삶을 원융무애(圓融無碍)라 하나니
그 단적인 방법은 지엽(枝葉)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근본(根本)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엽이라 함은 모순 상대적인 현상계의 일체법을 말하는 것이며
근본이라 함은 일체법을 만들어 내는 자기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제선사 이르시되
마음이 생겨나면 가지가지 법이 다 생겨나고 (심생즉종종법생 心生則種種法生)
마음이 멸하면 가지가지 법이 다 멸한다. (심멸즉종종법멸 心滅則種種法滅)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의 지엽적 분별사량(分別思量心)에 대한 집착을 쉬고 바로 자기 근본 마음으로
돌아가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일체 만법에 두루 융통하여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융무애한 삶)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근본 마음은 본래 청정하여 한 물건도 없이 원융무애하여 일체 만상을 걸림없이 두루 비추어 나타내나
거기에 추호도 물들지 않는 크고 둥근 거울과 같다 하여 부처님께서는 대원경지(大圓鏡智)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무의 지엽이 아무리 무성해도 찬 가을바람이 불면 다 시들고 말듯이
거울에 비치는 영상(映像)처럼 찰라찰라 생멸하는 자기의 분별사량으로 날마다 경영하는 세상일과
애지중지 보살피는 자기 육신 또한 마지막 때가되면 쓸쓸히 사라지는 줄을 깊이 체관(諦觀)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자기 마음속에 비치는 시비선악(是非善惡)과 애증원친(愛憎怨親)과 청황적백(靑黃赤白)과
대소장단(大小長短)과 만상삼라(萬象森羅) 등 일체만법의 허다한 영상에 집착하지만 않으면
바로 저 큰 거울과 같은 원융무애한 자기 근본 마음이 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일체 만법이 자기 마음 하나로 돌아가는데 과연 그 하나인 자기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하고 고뇌하고 의심하는 것이야말로 고래로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근본 화두(話頭)가 되었던 것입니다.
부처님 역시 인간의 생노병사와 자기자신에 대한 근원적 의문이
(나는 누구인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 심층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그 화려한 사시궁과 왕위자리를 초개처럼 버리고
각고의 육년고행과 깊은 의심삼매 끝에 대각을 성취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화두참선 공부는 억겁에 벗어나기 어려운 탐진치 삼독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찬 가을바람 속에서도 결코 시들지 않는 푸른 잣나무처럼(정전백수자)
영원한 광명인 자기 근본 참마음을 밝힐 수 있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이러한 도리를 다음의 원융무애대지송(圓融無碍大智頌)과
만법귀일 일하귀(萬法歸一 一何歸)의
화두법문(話頭法門)으로 밝혀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인생의 가장 중대한 문제로써 항상 자기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자나깨나 잊지 않는
(오매불망:寤寐不忘) 문제를 소위 화두(話頭)라 하는데 이러한 중대한 화두를 마음 속에 가지고
일념으로 세상을 살아 가는 사람은 즉시로 청정한 거울과 같고, 큰 바다와 같고,
끝이 없는 태허공과 같은 자기 본래 마음이 현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반드시 참자기를 밝히는 훌륭한 시절이 도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공부야말로 모순대립과 생멸 무상한 이 세간의 괴롭고 뜨거운 불길 속에서 청정한 연꽃을 피우며,
번뇌 속에서 바로 보리(菩提,大覺)를 얻어 사람사람마다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오직 자기 마음이 주인인 절대독존(絶對獨尊)의 존재임을 자각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대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서
(수처작주:隨處作主)
서는 곳마다 허망하지 않고 진실하여
(입처개진:立處皆眞)
마침내 그 어디에도 걸림없이
쾌활자재(快活自在)하고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병신년 만추일
백화산 임제선원
현봉 법현 근지
첫댓글 위 글은 2016년 부산 영산대학교에서 교수님들과 함께한
세미나에서 발표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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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올려주심에.....
고귀한법문을 접하게되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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