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국대장공주(1334~1365)
남편인 공민왕 왕전에게 노국대장공주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무난했다.
든든한 뒷배경이자 정치적 동반자로 노국대장공주 덕에 친원세력을 견제하면서 공민왕은 개혁정책을 할 수 있었다.
얼마나 서로 순애가 깊었던지, 제위 10년동안 흔하디 흔한 후궁조차 들지 않았고, 들었을때조차 서로간에 아이가 없었기 때문.
그리고 얼마 뒤 노국대장공주는 임신을 하게되었다. 아마 공민왕 일생 최고의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사찰에다가 기도+돈을 주고,사형수들을 사면하면서까지 안전을 빌었던 공민왕이였지만 하늘은 둘 사이의 로멘스를 허락하지 않았는지, 노국대장공주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이때 공민왕은 멘탈이 나가다 못해, 돌아오지 못했다. 정치적 파트너이자 영원의 동반자를 잃은 공민왕은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니였다.
이때 노국대장공주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공민왕은 8년간 동성애 의혹을 남기면서까지 여자들과 만남을 거부했고,만났을때 조차 그 여자가 노국대장공주와 외모가 비슷한 이유였다.그리고 밥 먹을때마다 늘 노국대장공주의 사진 앞에서 먹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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