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공진
1010년 음력 12월 28일 고려 현종은 피난길에 오른다
그런 반면 1011년 음력 1월 1일 거란군 개경 입성 (1,2일 먼저 입성 가능했으나 일부러 새해 첫날에 맞춰 입성)해 태묘,궁궐,민가 모두 불태워 버리고 거란의 선봉대는 창화현(현 경기도 양주) 도착, 피난길에 오른지 얼마 안된 현종은 이 당시 오늘날 경기도 광주시 까지 밖에 못도망가서 사태가 위급해진다.
하공진은 현종을 알현하여 이런 말을 남긴다
"거란(契丹)은 본래 역적의 토벌을 명분으로 삼았고 지금 이미 강조를 체포하였으니, 만일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한다면 저들은 반드시 군대를 철수할 것입니다."
“契丹本以討賊爲名, 今已得康兆, 若遣使請和, 彼必班師.” (출처 국사편찬위 홈페이지 고려사)
그리고 하공진은 고영기와 함께 표문을 받들고 거란 선봉대가 있는 창화현으로 간다.
거란 : 국왕은 어디 계시냐?
하공진 : 지금 강남( 江南)으로 가고 계시는데, 계신 곳은 알지 못한다
거란 : 강남이 먼가, 가까운가
하공진 : 강남은 너무 멀어 몇 만 리 인지 알 수 없다
契丹問, “國王安在?” 答曰, “今向江南, 不知所在.” 又問, “遠近?” 答曰, “江南太遠, 不知幾萬里.” 追兵乃還. (출처 국사편찬위 홈페이지 고려사)
거란 선봉대는 고려 국왕이 멀리 있다 오판하고 북쪽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하공진은 얼마 뒤 다시 거란 진영으로 가서 군대를 철수할 것을 간청하니, 거란 성종이 그것을 허락하였지만 대신 하공진을 억류하기로 하였다
거란까지 끌려간 하공진은 탈출을 궁리하다 거란 성종에게 말하길
"우리나라는 이제 이미 망하였으니, 원하옵건대 저희들이 군사를 이끌고 점검하여 오고자 합니다" “本國今已喪亡, 臣等願領兵, 點檢而來. (출처 국사편찬위 홈페이지 고려사)
거란 성종이 허락하며 하공진의 탈출이 성공할 뻔 했으나 얼마 안가 고려 현종이 개경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거란에 전해지며 허락은 취소되고 하공진을 연경(오늘날 베이징시)에서 살게 하고 양가의 딸과 결혼시켜 완전한 거란인으로 만들려 했다.
이때까지 거란 성종의 하공진에 대한 대우는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공진은 포기하지 않고 좋은 말을 많이 사서 연경에서 고려까지 가는 길마다 차례로 말들을 배치해두며 탈출을 꾀하다 발각된다.
거란 성종이 그를 국문하자 하공진은 상세히 사실대로 대답하고, 또 말하기를
"저는 우리나라를 감히 배반할 수 없습니다. 죄는 만 번 죽어도 마땅하나 살아서 대국을 섬기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거란 성종이 하공진을 의롭게 여기고 그를 풀어주며 절개를 바꿔 충성을 다할 것을 다시 설득하자 하공진의 말투가 더욱 강경하고 불손해지니, 마침내 그를 죽이고 앞 다투어 심장과 간을 꺼내 먹었다.
후에 고려 문종(고려 현종 아들)이 하공진을 상서공부시랑으로 추증했다.
KBS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하공진은
" 고려의 하늘이.. 고려의 땅이 보고 싶구나.." 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형대에서 수많은 화살을 맞아 죽는 것으로 연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