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에 빠져서 광신도가 되는 사람들의 심리

[무명자]

광신도에 이르는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뉩니다.

퍼스트스텝) 일반인이 신도가 된다.

세컨스텝) 일반신도가 광신도가 된다.

재밌는 점은,

우리는 보통,

'도대체 교주란 작자들은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길래,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구워삶을 수 있었을까?'

를 궁금해하지만,

실제, 종교의 본질은,

신이 아니라, 그 신을 섬기는 "사람들간의 역동" 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Graham과 Haidt 등의 학자들은 종교를 풋볼에 비유합니다.

(참조 : Graham, J., & Haidt, J. (2010). Beyond beliefs: Religions bind individuals into moral communitie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풋볼의 핵심은 당연히 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또다른 관점에서는,

공은 선수들을 한데 묶어주는 일종의 '초월적 존재'일 뿐,

선수들이 특정한 룰 안에서 승리를 위해 뛰어다니며 만들어내는 집단적인 역동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소속감, 희열, 성취감, 충성심 등이야말로

진정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스포츠의 본질일 수 있다는 것.

신은 핑계일 뿐,

종교의 본질은 사람이다.

길거리포교나, 국제구호기구 같은 데서

'저기요' 하고 말을 걸 때,

매몰차리만큼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네..네?? 왜요???'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시간을 뺏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작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나와 타인들과의 경계가 허술한 사람들, 마음의 벽이 높거나 단단하지 않은 사람들.

길거리포교의 일차적인 목적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자함이 아니라,

타게팅인 바로 이 "마음의 문을 열기 쉬운" 사람들을 골라 내기 위함인 거죠. 

PHASE1) 신도가 되는 과정

종교에서 전도란,

설득이나 유혹의 연장선상 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설득하거나 유혹할 때 우리는 흔히,

'내가 어떻게해야 강력한 메세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해야 매력적으로 비춰질 수 있을까?'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대상의 상태"일 수 있습니다.

무슨말인고하니,

이를테면, "공성전" 이라고 해 봅시다.

공성전을 이기기 위해서 쓰는 전략의 대부분은. 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공격에 집중돼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성의 방어력을 약화시키는 거죠.

식수에 독을 타 수비병력을 항거불능으로 만든다거나,

보급을 차단해 굶긴다거나

이를 넘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항거하고자 하는 마음을 꺾고 스스로 성문을 열게끔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히 최고의 병법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똑같습니다.

설득 역시,

내 메세지가 기가 막힌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저항이 약해야한다는 점 또한 크리티칼한 포인트란 거죠.

Knowles와 Linn은 「Resistence and Persuasion(2004)」에서

설득의 방법으로는 알파 전략과 오메가 전략이 상존한다고 설명합니다.

"알파 전략"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접근법으로, 쉽게말해 공격하는 겁니다.

논리나 화술 등의 방법을 통해 직접적으로 설득하는 거죠.

반면, "오메가 전략"은 상대방의 저항을 약화시키는데 집중합니다. 

대상의 마인드를 오픈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설득에 공헌하는 것.

그렇다면,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내가 만약 누군가를 전도해야 한다면,

알파 전략이 더 쉬울까? 오메가 전략이 더 쉬울까?

만약, 사이비 교주에게 뛰어난, 기가 막힌 알파 매직이 있었다면,

그들이 사이비로 남아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지금 주류가 됐겠죠.

누구나 감화시킬 수 있는 뛰어난 교리는 어떤 성문이든지 박살낼 수 있는 최강의 부대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게 없으니, 오메가 전략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겠죠.

상대방의 저항을 서서히 없애는 과정

자원과 열정, 시간을 최대한 쏟아부어,

대상의 마음의 벽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스스로 성문을 열게끔 만드는 것

이 과정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들기 위한 작업이 바로 길거리 포교입니다. 

애시당초, '더 잘' 응해주고 '더 잘' 받아주는 사람들을 골라낼 수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더 쉽게' 저항을 약화시킬 수 있는, 오메가 전략의 철저한 먹잇감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참조 : 이에 관해, 임상/정신의학자인 오카다 다카시는

① 의존성 성격, ② 높은 피암시성, ③ 불균형한 자기애 등

애시당초 타인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높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함)

해와 바람의 내기

해는 나그네를 덥게 만들어,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들었다.

해의 이 오메가 전략은 종교에서의 전도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오메가 전략의 핵심은 결국 교리가 아닌 사람입니다.

타겟에게 최대한 잘 해 주는 겁니다. 친절한 이웃처럼, 절친한 친구처럼. 

타겟을 구워삶아 타겟에게 소속감, ONENESS(하나됨)를 느끼게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었던 환대, 친절, 호의 등을 겪으면서, (가족이나 친구에게서조차 받을 수 없는)

타겟은 서서히 이 배타적이며 폐쇄적인 집단의 일원이 되기 시작합니다.

교리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저 일종의 '초월적 존재'이자 '매개체'일 뿐.

타겟은 이제 특정한 룰 안에서, 그의 동지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며 집단적인 역동을 만들어내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소속감, 희열, 성취감, 로열티 등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즉, 처음엔 신도라기보다는 동호회 같은 유희 집단의 개념으로 출발됩니다.

PHASE2) 광신도가 되는 과정

우리는 보통,

'사이비 교주에게 어떠한 마력이 있길래 사람들을 끌어당길까?'

하고 궁금해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그들한테 사람들의 굳게 닫힌 성문을 맘대로 열어제낄 수 있는 마법의 열쇠가 있는 게 아닙니다.

사이비들이 하는 일은 그저, 성주가 스스로 문을 열게끔 열과 성을 다해 "공작"하는 것 뿐.

사이비들의 이러한 오메가 공작으로 타겟이 신도가 됐다면,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패가망신까지 불사할 정도의 광신도로 발전하게 되는 심리적 과정이란 무엇일까?

가족까지 버릴 정도, 내 모든 재산을 가져다 바칠 정도

이게 의미하는 바는, 내가 내가 아니라 사이비 집단 그 자체가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나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듯, 그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죠.

이런 걸, 사회심리학에서는 "Identity Fusion" 이라고 부릅니다.

(참조 : https://en.wikipedia.org/wiki/Identity_fusion)

이는 쉽게 말해, 나 개인의 자아와 집단의 일원으로서의 자아가 섞여버린 겁니다.

즉, 내가 곧 집단이요, 집단이 곧 나인 상태가 돼 버린 것.

원래의 나와 사이비 신도로서의 나, 그 둘 간의 퓨전

그렇다면, 어째서 한 평범했던 사람의 정체성이 집단과 함께 퓨전돼 버리는 것일까?

Identity Fusion 된 사람들의 특징은 나보다 집단이 우선한다는 겁니다.

사이비 신도들이 전 재산을 갖다바친다거나, 신념을 위해 자살 테러를 강행한다거나..

이걸 다윈(Darwin) 식으로, 즉 진화론적으로 해석하자면,

우리의 구석기 선조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포식자들에 대항하여 끈끈한 집단전을 강행했어야 했을 겁니다.

포식자들과 맞서 싸울 때,

내 안위보다는 집단의 승리를 위해 자기희생마저도 불사하는 일원들을 보유한 집단의 생존 가능성이 더 높았을 테고,

결국 우리는 그렇게 살아남은, Identity Fusion이라는 집단전 능력을 지닌 구석기인들의 후손이 된 거죠.

인류의 역사에서 Identity Fusion(집단을 위한 자기희생)의 사례는 매우 다양합니다.

전쟁, 테러, 종교, 독립운동 등등.

선뜻, 나 자신의 안위보다 집단의 목표 달성을 우선시하여,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의 얘기에

공감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이해 못 할 수 있어요.

숭고한 사명, 신념을 위한 자기희생

우리는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 한 일들에 대해서는 알 지 못 합니다.

Identity Fusion 또한, 발동 조건이 있기에, 그 조건들을 충족시킨 소수의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죠.

『Identity Fusion 의 핵심 발동 조건』 은 다음과 같다고 설명됩니다.

1. 집단을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신념 또는 정수(core essense)를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2. 고통스럽고 스트레스풀한 일들을 함께 헤쳐 나간 강렬한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참조 : Swann, W. B., Jr., Gómez, A., Huici, C., Morales, F., & Hixon, J. G. (2010).

Identity fusion and self-sacrifice: Arousal as catalyst of pro-group fighting, dying and helping behavio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9, 824–841. doi:10.1037/a0020014)

군대를 예로 들자면,

① 애국심이라는 코어 신념, 그리고, ② 고된 훈련과 위험한 실전을 함께 헤쳐나왔다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군인들의 Identity Fusion을 활성화시켜 국가를 위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겠죠.

또한, 사이비의 포교 활동 관련하여,

길거리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수시로 무시를 당하며 포교를 하는 일은 굉장히 스트레스풀한 일입니다.

따라서, 포교 활동은 일차적으로 신자를 포섭하는 역할인 동시에,

다함께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미션을 줌으로써,

구성원들의 Identity Fusion을 가속화시키는 이차적인 효과 또한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여러 사람들이 자로 잰 듯(synchronized) 동작을 맞추는 행위를 하는 것 만으로도

구성원들 간의 신뢰, 협동심, 희생정신 등을 고취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참조 : Wiltermuth, S. S., & Heath, C. (2009). Synchrony and cooperation. Psychological Science)

사이비 종교 행사나 사회주의 군대의 제식을 떠올려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테죠.

얼핏, 오버스러워보이는 이 동작의 맞춤들이 사실은 그들의 Identity Fusion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Identity Fusion된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가 서로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서, (synergistically)

자신들이 마치 불사의 존재처럼, 더 완전하고 위대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고 합니다.

일반인이 신도가 되는 과정,

그리고, 신도가 광신도가 되는 과정.

결국,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사람들간의 역동"이 있습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추억과 끈끈함, 우정과 로열티가 있으며,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끼리는 즐겁습니다.  

사이비들의 이 같은 집단 역동에는 배타성과 폐쇄성이 존재하기에,

필연적으로 그들의 즐거움은 소수만의 성감대에 불과할 뿐,

더 많은 다수를 아우르는 공감대의 영역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겠죠.

광신도들의 세계에서 즐거운 것은 광신도들 뿐입니다.

불행한 건, 사이비 집단에게 가족과 집안의 평화,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남겨진 사람들이죠.

결국, 사이비에 빠진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 는,

과거에 일군 내 모든 것들을 버리고,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채,

오직 나만이 새로운 세상에서 트랜스 상태에 빠진다 가 아닐까 싶습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Quin Snyder]

믿고 보는 그의 글

[조던황제]

자다 깨서 들어와봤는데 오랜만에 무명자님의 재미있는 글을 보네요.

저는 자존감하고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마음의 장벽이 낮은 사람들이 광신도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런지. 자신 안에서 자아를 온전히 유지하기 힘든 이들은 외부에서 누군가 호의적인 접근을 해온다면 자신과 타인의 경계선을 쉽게 무너뜨리고 집단과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은것이 아닐까요? 상대적으로 우리사회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단 자존감이 낮게 길러지는 편이라 보는데 종교단체에 여자가 많은 이유도 그런 맥락 아닐까 싶더군요. 신천지도 추측컨데 여자가 훨 많지 않을까 싶고요

[카즈야정]

자존감에 대한 부분 정말 공감이 갑니다. 타인에게 심리적으로 많이 의존하는 사람들이 광신도가 되는 경우가 있겠네요. 반대 성향의 사람들은 마음의 장벽이 높을 뿐더러 애초에 믿기지도 않고 신용이 안 가는 일에 마음을 쓸 일이 없을 거구요.

[무명자]

오카다 다카시' 심리 조작의 비밀을 보면, 1. 의존성이 높을수록, 2. 피암시성이 높을수록, 3.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높을수록 타인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자존감도 분명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위소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본으로 계급이 나뉘는 사회에, 시간이 지날 수록 세는 더 커질 수 밖에 없겠네요.

[긍정적]

요즘 신천지 때문에 이런 궁금증이 있었는데~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개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Fluke!]

여전부터 국내 사이비 종교들, 혹은 그와 비슷한 단체들을 보며 느낀 것이, 리더들이 품위 있는 말과 행동을 통하여 소위 ‘있어보여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사기친다기 보다는, 오히려 굉장히 자극적이고 유치하고 천박한 싸구려 언어와 퍼포먼스들로 추종자들을 열광 시키는 것이 의아스러웠는데, 말씀하신 오메가 전략과 트랜스를 연관 시켜 생각해보면 좀 이해가 될 것도 같네요.

[[LAL]농구가조아]

믿고 정독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슈팅라이크밀러]

여읔시 믿고보는 무명자님 글.

[Rocker 혁]

감사합니다. 사우던님과 함께 믿고보는 글입니다. ^^

[Go! Rockets!!!]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메가전략이라는 단어가 지금까지 겪어온 많은 궁금증을 해결해주었어요!

[유타로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Bend but dont break]

잘 읽었습니다. 요즘 트렌드에 맞는 글이라서 더 정독했습니다.

[Oh Captain My Captain]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동병백선생]

믿고 보는 무명자님글.. 감사합니다.

[타이론힐]

좋은글 감사합니다. 사이비에 빠지는 사람들 보면 자신의 지식이나 지적수준과는 상관없이 맹신하게 되더라구요.

[국산시민]

포교 활동이 오메가 전략임과 동시에 구성원들의 Identity Fusion을 강화하는 역경이라는 해석이 신선해요.
잘 읽었습니다.

[앨리스]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요즘 ㅅㅊㅈ가 워낙 핫해서 그렇게 대입하고 읽으니까 딱 맞아떨어지네요

[SenesQ]

늘 그렇듯 맞아맞아끄덕끄덕 하고 갑니다!

[열혈청년]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John Havlicek]

팀원이 아닌 공에 집착하는 맘바 멘탈리티를 본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