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8월 윔블던과의 경기에서 넣은 60야드 골과 관련된 얘기)
데이비드 베컴 曰:
"에릭 칸토나는 내 영웅 중 한 명이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한테 <데이비드, 엄청난 골이었어>라고 말해줬다."
"칸토나의 말은 60야드 골과 거의 맞먹을 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보스(알렉스 퍼거슨 경)한테도 다가갔었다."
"나는 보스가 <대단한 골이었다>라고 말해주면서 나를 감싸 안아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보스는 <곧장 버스에 타, 누구하고도 얘기하지 마>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날 보호하는 보스의 방식이었다."
"보스는 60야드 골이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떤 미디어와도 얘기하지 않길 바라셨다."
(빅토리아 베컴 및 이적과 관련된 얘기)
데이비드 베컴 曰:
"내 인기가 많아지면서 나와 보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히 빅토리아와 사귀기 시작한 뒤로 더욱 그랬다."
"나는 내 커리어의 시작과 끝이 '맨유'일 거라고 항상 생각했다."
"어떤 순간에도 맨유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다른 클럽에서 뛰고 싶지 않았다."
"맨유를 떠나고 나서 3년 동안 TV로 맨유 경기를 보지도 못했다."
"오랫동안 맨유에 몸담고 응원해 왔으니 당연히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관련된 얘기)
데이비드 베컴 曰:
"경기가 끝나고 차에 탈 때마다 눈물을 흘리곤 했다."
"내가 어떤 경기를 펼치든 간에, 아버지는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들을 항상 지적하셨다."
"내 기억 속에서 아버지가 <아들아 해냈구나 or 아들아 잘했다> 같은 말을 해주신 적은 '잉글랜드 국대로 100경기를 치렀을 때'가 유일하다."
(데이비드 베컴과 디에고 시메오네)
(98년 월드컵 16강전 퇴장과 관련된 얘기)
데이비드 베컴 曰:
"지금도 거의 매주 그 일을 생각한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 일은 여전히 나한테 영향을 끼친다."
"당시에 힘들었지만, 나보다 우리 가족이 더 힘들었다."
"감정적인 상태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가족의 힘듦이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웠다."
"할아버지가 나한테 전화로 <데이비드, 네가 온 나라와 온 가족을 실망시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집 문을 두드리고 있어, 내가 저 사람들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니?">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난다."
"나는 런던 쪽에서 운전할 수가 없었고, 런던을 걸어 다닐 수도 없었다."
"식당에도 갈 수 없었고, 술집에도 갈 수 없었다."
"심지어 친구들도 나랑 밖에 돌아다니고 싶어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내가 대차게 까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신호에 걸리면 사람들이 내 차를 치거나 침을 뱉었다."
"그런 일들이 정말 몇 년 동안 매일 있었다."
+
"16강전 패배 이후에 당시 국대 감독이었던 '글렌 호들'이 잉글랜드의 탈락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걸 최근에야 알았다."
"그 사실에 놀랐지만, 사람이라면 열받아서 얘기할 때가 있다."
"그때는 모두가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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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는 한 명의 리더가 있었다."
"(16강전 이후에) 나는 당연히 심란했다."
"그런데 '토니 애덤스'가 나를 감싸 안으면서 <걱정하지 마, 실수한 거니까 잊어버려>라고 말해줬다."
"애덤스는 나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대해줬다."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https://theathletic.com/4661667/2023/07/03/beckham-messi-cantona-mufc/?source=emp_shared_article
번역-https://www.fmkorea.com/best/5944710313
첫댓글 와 겁나 힘들었겠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베컴도 빡쳐서 나갔죠 ㅎㅎ
와 애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