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박준, 그해 봄에
때로는 한 줄의 글도
이해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사랑은
하물며 인생은
하물며 죽음은
/박재규, 위로의 그림책
초저녁 퇴근길
이른 감이 없지 않은 켜진 카로등
그 아래 거닐다 설움이 복받치더라
오늘 많은 일이 있었는데
다정했던 건 가로등 뿐이라
/나선미, 초저녁 가로등
걸음을 멈추고 잠깐 뒤를 돌아본다
숨가쁘게 달려오던 삶이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무슨 일이냐고 내게 묻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돌아선다
내 앞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삶이 놓여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모든 순간은 영원으로 이어진다
가끔 삶이 무료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황경신, 괜찮아 그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 집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심보선, 청춘
"계속 내 생각만 나지?"
"네"
"어려서 그래"
"나도 계속 네 생각만 나"
"왜요?"
"늙어서 그런가 봐"
/이석원, 보통의 존재
오늘 하루가 너무 길어서
나는 잠시 나를 내려 놓았다
어디서 너마저도
너를 내려 놓았느냐?
그렇게 했느냐?
귀뚜라미처럼 찌르륵 대는 밤
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그 거짓말로 나는 나를 지킨다
/천양희, 하루
오지 마
난 이제 너에게 들려 줄 노래가 없어
잘 가라
돌아누운 나 대신
울어주었던 밤들아
/최영미, 포로
너 거기 있니?
함께 비를 맞으러 왔어
/김우석, 기일
첫댓글 아 다 좋다 진짜.,.,
지우지 말아줘 제발.,.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여혐돌쉴드안받음 22...
그렇기엔 능지처참이 더 징그러운데.. 다른사람 상처일거같아..
잘못된 제목도 아니고 문학의 한 구절인데 왜...?너무 본문이랑 안 맞는 댓글 같음..윗댓말대로 따지고 보면 능지처참이 더 징그러운데?자해한 적 있는 사람들이 보면 상처받을 듯
시 구절에 있는 내용 그대로 쓴 건데 너무 예민한 것 같다 ..
@죄인은 닥 능지처참.예외x. 트리거일수도 있지 이해해...
오늘 정말 많은 일들이 있어는데.. 글보고 위로받아 고마워 ❤️
너무 좋다... 지우지 말아주라ㅠㅠㅠㅠ
글쓴아 이거 한 시집에 있는 거야???ㅠㅠㅠ
@너는 꽃으로 태어났어야 했다 ㅠㅠㅠ넘 좋아서 한 시집이면 사려고 했는데ㅠㅠ고마워!!💖💖
@Robert Fisher 고마워!!
첫번째 시 너무 좋다.. 읽고 또 읽었어. 고마워.. 혹시 어떤 시집인지 알 수 있을까
@너는 꽃으로 태어났어야 했다 그래두 고마워💙
@물만두 악개 고마워! > <
@DanielCaesar 첫번째 시 박준 시인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에 실려있어💙
가엾은 내사랑 빈집에 갇혔네..ㅠㅠ
다 좋다ㅠㅠㅠ 올려줘서 고마워❤️
진짜 좋다..
첫번째 미쳤다
마지막 시 전문 어디서 볼 수 있을까..?
함께 비를 맞으러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