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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항상 생매장으로 끝난다 정한아/회의적인 육식동물의 연애 어쨌거나 네가 갔으니 당분간 나는 안 가겠다 이 정도로 우리 서로 세계를 나눠 가졌으니 그 단어의 그것도 잠시 잠이 들지 않겠나 자자, 자, 자... 김민정/엊그제 곡우 광장으로 오렴 너에게 재의 언어를 훔쳐다 줄게 사육의 밤이 지나고 나는 손이 붉고 손만 붉어서 지독하게 온 몸이 하얀 사람 내가 죽으면 묘지의 거리 말고 광장으로 오렴 리라와 라일락을 뿌리며 눈을 뜨면 나의 말과 몸 사이로 너의 멸시가 오고 멸시와 모멸로 사육의 밤을 피와 솜을 뿌리며 춤추듯 재의 언약을 여성민/언약 쩌렁쩌렁 내 사랑을 무일푼으로도 줄 수도 있다고 8월 땡볕 아래서 하루종일 외쳤다면 너와의 흥정에 내가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다면 그랬다면 내가 돌아나온 운명의 그 골목길에 아직 네가 서 있을 수도 있었을까 김은경/그 때 우리 사랑에 확성기가 있었다면 호흡이 난파선처럼 흩어진다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진다 나는 이 삶의 누수를 막을 힘이 없다 당신의 감은 두 눈 오른쪽 눈 왼쪽 눈 당신의 눈이 보고 싶다 한번만 단 한번만 이제니/작고 흰 공 말을 아끼면 비밀도 많아져 가족끼리는 다 말해도 돼 티백을 건져낸다 칫솔을 변기에 빠뜨리고 아무 말 하지 않았짢아 팬티를 나눠 입는 건 쉬운 일 칫솔모가 하나씩 빠질 때마다 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서로 믿을 수도 있게 된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서로를 우려먹었다 임수현/티백을 우리며 만약 사랑이란 걸 정의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떤 담배나 희귀한 종류의 개라면 낭만적인 소설들로 짜깁기한 교복을 입혀 달콤한 팔뚝을 빨아먹을 수도 있을 것도 같은데 작은 발을 가지고 싶지만 발에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듯이 흰 목덜미를 사랑하는 게 큰 문제는 아닐 거다 임수현/그리고 다른 식어가는 물속에서 누가 누굴 사랑하는지 모른 채 우리의 무릎이 닳는다 어두운데 웅크리고 있으면 팔과 다리가 붙고 무거워지고 그건 바위 같고 빠지면 절제가 안 되고 멈춰지지 않고 병신이 되고 알죠 언니? 그림 그린다면서요? 나보다 돈 많으니까 언니 외로워서 그런 거잖아? 나 언니가 쓴 글 다 뒤져서 읽어요 나는 애인을 만지는 언니를 만진다 오늘은 가지 마요 언니 살점이 떨어져도 사랑은 해야 하니까 손미/돌 저글링 울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이 들어가서 태우는 몸 네 사랑이 너를 탈출하지 못하는 첨단의 눈시울이 돌연 젖는다 나는 벽처럼 어두워져 아 불은 저렇게 우는구나 생각한다 이영광/사랑의 미안 (기껏 복숭아씨만 한 사람의 눈이라는 게 여간 영묘하지 않아서 그것 하나 때문에 생을 다 바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그 눈빛 좋아죽었네 세상 어느 어두운 끄트머리 숨어서 가슴 지워박으며 좋아죽었네 그 눈빛 좋아죽었네 허연/눈빛 잠을 자며 앓는 소리가 기도를 구하는 자같이 들려 엘리 엘리 사랑이 깊으면 종교에 가까워지네 구원을 바라며 불행해지네 주민현/엘리, 엘리, 나는 모든 망각 사이에서 발을 벗는다 그래도 우리 정도면 행복하잖아 거짓말을 한다 조혜은/이방인 나는 지금도 산수를 잘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어 괴롭고 왜 사람들은 부끄러우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릴까 마치 그것이 마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제니/유리코 호텔 앞에는 병이 들고도 꽃을 피우는 장미가 서 있으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장미에 든 병의 향기가 저녁 공기를 앓게 하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라는 말을 계속해도 좋아 허수경/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허연/오십 미터 잠이 외면이라고 생각하니 너의 불면증을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 그런 너의 불안함을 외면한 사람들이랑 놀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기 아무도 안 오고 너만 왔으면 좋겠다 김승일/1월의 책 이름 없는 물고기 떼가 수면 근처를 은하수처럼 헤엄칠 때 네가 그곳을 가리켰어 나는 쳐다볼 수 없었지 너무 낭만적인 것을 너와 함께하면 벼락처럼 너를 사랑해버릴까 봐 네가 나를 보고 등대처럼 웃었어 잠시 눈이 멀었던 것은 비밀로 할게 서덕준/밤의 유영 눈물이 나는데도 너는 흐려지지 않지 진짜 내 앞에 있다고 말해주면 안돼? 사무치게 아름다운 그대야 내 손 잡아줘 같이 가자 응? 서덕준/네온색 다이너마이트 내 나쁜 몸이 당신을 기억해 온몸이 그릇이 되어 찰랑대는 시간을 담고 박연준/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너는 늘 불행했지만 그게 너의 세계라면 난 괜찮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몇 시 부터를 저녁이라 부르고 밤이라 불러야 할 지 알지 못해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너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탁은 조금 더 커져 있고 너무 오래 슬퍼하면 모든 것이 멀어져서 그림자가 점처럼 보인다 아주 작고 아주 작지 지구 반대편의 사람아 널 미워해도 될까? 사랑하는 것보다 쉬울 것 같아서 그래 김소현/수평선이 있는 풍경 그대는 생각만으로 취한다 독주 마신 듯 뼛속까지 절절히 류인순/그립다 보면 나는 여름을 사랑했다 발견해도 소유가 불가능한 보물처럼 김이듬/마법책을 받은 날 사는 게 그런 거지라고 말하는 이의 표정을 기억한다 떠나는 기차 뒤로 우수수 남은 말들 처럼 바람 같은 하지만 그런 알량한 위로의 말들에 속아주고 싶은 밤이 오면 나는 또 내 우울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골목을 걷는다 버려진 말들은 여름 속으로 숨었거나 누군가의 가슴에서 다시 뭉게구름으로 피어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고양이도 개도 물어가지 않았던 말의 죽음은 가로등이 켜졌다 꺼졌다 할 때 마다 살았다 죽었다 한다 사는 게 그런 게 아니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밤 난 내 우울을 펼쳐놓고 놀고 있다 아주 나쁘지만 오직 나쁜 것만은 세상에 없다고 편지를 쓴다 이승희/여름의 우울 |
첫댓글 정말 좋다 잘 읽었어!
와 진짜 하나하나 다 좋다 ㅠ
널 미워해도 될까?
사랑하는 것보다 쉬울 것 같아서 그래
고마워!! 혹시 주민현 시인의 엘리엘리가 어디시집에서 나오는건지 알수 있을까?
다 좋다
진짜 다 좋다
좋다... 좋은글 고마워
너무 좋다.....
너무좋다..
좋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