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dmitory.com/issue/131712162
원출처: 이야기 조선왕조오백년사
조선 성종은 미복잠행(微服潛行)으로도 유명한 군주였다. 밤이면 편복으로 갈아입고 어두운 한양 장안을 돌아다녔다. 중신들은 만류했으나 성종은 듣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성종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운종가(雲從街·지금의 종로)로 나섰다. 광통교 위를 지나는데 다리 아래에 한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 나이는 마흔 남짓 돼 보이는데 행색이 매우 초라한 시골 사람이었다.
성종이 가까이 가서 누구냐고 부드럽게 묻자 그는 몹시 반가운듯 바싹 다가오며
“예, 저는 경상도 흥해 땅에 사는 김희동이올시다. 마흔이 넘도록 어진 임금님이 계신다는 한양 구경을 못했지요. 오래 벼르기만 하다가 간신히 노자를 구해 가지고 나섰는데 수십 일 만에 겨우 당도하여 누구에게 물으니까 예가 서울이라 하잖은가요. 이제 막 저녁은 사먹었지만 잠 잘 만한 탄막을 찾지못해 여기서 밤새기를 기다리는 중이오."
서울 장안에도 숯 굽는 움짐이 있는 줄 알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댁은 뉘시기에 이 밤중에 나다니시오. 보아하니 생김새도 얌전해 보이시는데 혹시 임금님이 계신 집을 아시거든 좀 가르쳐 주구려”
성종은 속으로 웃으며 사실 어질고 착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를 찾아온 시골 백성이라 생각하고, 그의 소박함과 순진함에 감동했다.
성종은 시치미를 뚝 떼고 “나는 동관에 사는 이 첨지라는 사람이오. 임금이 있는 곳을 알기는 하오만, 만일 알려주면 임금에게 무슨 말을 전하려 하오?”라고 물었다.
시골사람 김희동은 히죽이 웃으며
“무슨 특별한 일이 있겠소? 우리 고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임금님이 백성을 사랑하셔서 우리가 걱정 없이 잘 산다지 않소. 내 기왕 올라왔으니 임금님이나 한번 뵈옵고 돌아가자는 거지요. 빈손으로 뵙긴 뭣할 것 같아 우리 고장에서 나는 전복과 해삼 말린 것을 좀 짊어지고 왔지요. 임금님께 이것을 드려 한끼 반찬이나 합시사 하고. 그래 댁이 어디 임금님을 좀 뵙게 해주시구려”
그때 멀리서 무예별감들이 달려왔다. 성종은 그들에게 귀띔하고는 “이 사람들을 따라가면 임금을 만날 수 있도록 해줄 터이니 안심하고 가시오”라고 했다.
김희동은 "서울 양반은 참 인심도 좋구만!" 하며 무감의 뒤를 따랐다.
이튿날 성종은 편복 차림으로 무감의 집에 들렀다. 그러자 희동은 몹시 반가워하며
“이 첨지는 참말 무던한 사람이외다. 처음보는 시골 사람을 잊지 않고 찾아주시니, 그런데 임금님을 뵐 수 있는건가요?"
옆의 무감들은 희동의 언행을 타박하려 했으나 성종이 눈짓으로 말리고는
“당신의 지성은 돈독하오만 벼슬이 없는 사람은 임금을 대할 수 없게 돼 있소. 내가 뵐 수 있도록 주선해볼 테니, 그렇게 꼭 임금을 뵈려 한다면 무슨 벼슬 하나를 청해보시오. 내가 힘써서 되도록 해보겠소”라고 했다.
김희동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벼슬을 말하라니 난처했으나
“우리 마을에 충의(忠義) 벼슬하는 박충의라는 굉장한 양반이 있지요. 그 충의란 벼슬 좋습디다만, 댁이 무슨 수로 내게 그런 벼슬을 시켜주겠소. 아무래도 임금님을 뵈올 수 없다면 그냥 돌아갈 수밖에요. 그리고 이왕 온 길이니 임금님께 길이 닿으면 이것이나 전해주시지요” 하고는 해삼, 전복을 싼 보퉁이를 내놓았다.
성종은 웃음보가 터지는 것을 겨우 참으며
“내가 힘써볼 테니 하룻밤만 더 묵고 계시오. 혹시 벼슬이 되면 당신이 직접 갖다 바쳐도 좋지 않겠소”
하고는 입궐(入闕) 후 이조판서에게 명해 그를 충의초사(忠義初仕)로 임명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희동은 영문모를 사모와 관복, 나막신을 받아들였다.
"그래 이 첨지는 어디로 갔는지요?"
무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를 대궐로 대려갔다. 희동의 손에는 어김없이 해삼과 전복 짐이 들려있었다. 희동은 전도관(前導官)이 시키는 대로 임금께 세 번 절하고 엎드렸다.
그때 용상에서
“내가 임금이다. 네가 짐을 보러 수백리 길을 왔다지. 겁내지 말고 쳐다보아라”라는 윤음(綸音)이 들렸다.
희동이 머리를 겨우 들고 용틀임하는 붉은 용상에 높이 앉은 임금을 쳐다보니 바로 이틀이나 마주앉아 대하던 이 첨지가 아닌가. 그래서 희동은
“이 첨지가 어떻게 여기 와 있소?”라고 물었다. 그러자 모든 신하의 매서운 눈초리가 법도를 모르는 희동에게 쏠렸다.
그제야 희동은 이 첨지가 바로 임금임을 깨달았다. 그는 황공해서 몸 둘 바를 모르고 벌벌 떨었다. 영문을 모르는 승사 각원들은 엄형을 주장했으나 성종은 희동을 만나게 된 전후 이야기를 해주었다. 희동은 당황한 나머지 가지고 온 해삼과 전복보따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때 성종은 자비가 가득한 눈으로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그것을 주우라고 말한 뒤
“저 해삼과 전복은 희동이 나를 위해 먼 길을 걸어 갖고 온 것이니 내 고맙게 먹지 않을 수 없다.”고 어명을 내렸다.
그리고 성종은 희동에게 후한 상금을 내려 금의환향하게 하였다. 그 후 희동은 충의벼슬로 걸어서 올라올 때와는 달리 말을 타고 고향에 내려갔다.
첫댓글 역시 인생한방
우연 쩐다 어케 잠행할 때 딱 마주쳤냐
뭐야 따수운 이야기네ㅜㅜ동화같다
제목보고 다 썩었을까봐 걱정했는데 해피엔딩이라 다행이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응 말렸다고 적혀있어
진짜일까?! 성종 착하네 말들으려고 성종이 지어낸거아냐?!
ㅋㄱㄱㅋㄱㄱㄱㄱㅋ의심하는데 귀엽고 웃기다ㅋㅋㅋ
마을 사람들도 같이 오순도순 잘 살아ㅛ나봐
그러니까 임금님 덕이라고 임금 얼굴 보겠다고 올라오지..... 그 먼길을......
눈물나ㅠㅠㅠ
인생한방이구만
ㅋㅋㅋㅋ귀엽다
이상하게눈물남ㅠ 좋은사람들이 좋은세상을 만들지
차 존나 달려도 5시간 걸리는곳을 걸어서 산을타고 서울로왔으니 얼마나 대견했겠어ㅋㅋㅋ
ㅠㅠ훈훈한 이야기다.. 흥해면 포항인듯?! 와.. 진짜 먼 거리인데 어떻게 갔지..? 대단하시네..
아 노자? 노자가 당나귀 비슷한거 그건가..
그냥 여행경비를 노잣돈이라 할걸ㅋㅋ
@맥주 좋아하는 냥덕 아하! 검색해봐도 안나와서 뭔가했네 고마워!!
와우 인생한방..근데 그만한 패기와 노력을보였으니 운도따라준듯ㅠ
이거 맹꽁이서당에서 읽었는데 김희동씨 넘나 귀여운 것.. 내가 성종이었으면 끌어안고 볼 부볐을듯! 임금님이 나라를 잘 다스려준 게 고마워서 얼굴이라도 뵙자고 반찬해 드시라고 해산물 챙겨온 그 정성.. 왕이 감동받아서 코끝 찡해지고 눈물날 만해! 나중에 충의 벼슬 시켜주는데 신하들이 “근데 전하, 이 김희동이라는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나랑 친한 사람이라오.” 하고 빙그레 웃어서 신하들이 다 “아~ 그렇구나” 하고 임금님이 신원보증하면 진짜 친할만한 좋은 사람이겠지 ㅇㅇ 하고 넘어가는 장면도 킬포였음ㅎㅎㅎㅎㅎㅎ
우리 조상들 귀엽고 감동적이네 !!!
ㅋㅋㅋㅋ모야 감동적이라서 눈물나ㅠㅠ 귀엽고 훈훈한 얘기닼ㅋㅋ 얼마나 성군이었으면 지방 백성도 저럴까 ㅋㅋㅋ 드라마같다
ㅇ ㅏ귀여웤ㅋㅋㅋ순박하니 좋다
와 흥해면 포항이네 인생한방이다
영조때 엄마무덤서 나무몰래 베서 팔던 나무꾼한테 벼슬준 얘기도
유명하자나 신하들은 낮잡아 원이라 불렀는데 나무꾼은 릉이라 불러서...
근데 왕은 짐이 아니라 과인..ㅎㅎ 짐은 황제가 자기 부를 때 쓰는 말!!
이런거 보면 옛날 백성들은 정말 임금을 아비처럼 생각했나봐 ㅠㅠ
왜 눈물날거 같지 ㅠㅠ 순박한 마음도 따숩고 결말도 훈훈해
희동 귀여워 ..ㅠㅜㅜ
이름도 희동이야..
ㅜㅜㅠ따숩고 귀여운 일화야ㅠㅠ
ㅠㅠ진짜 너무 순박하고 따숩다ㅠㅠ벼슬내린 성종도ㅠㅠ이첨지가 어찌..? 그부분은 진짜 빵터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ㅠㅠㅠ잘 사는 양반도 아니고 평민이 왕 주겠다고 그 먼데서 보자기로 싸온 정성 생각하면 뭐라도 하나 더 쥐어서 보낼듯ㅠㅠ
성덕의 원조ㅋㅋㅋㅋ
개쩐다 왕권이 화끈한 시절이라 저런 미담도 가능하구만 해삼이랑 전복 말려온 보람있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