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https://1boon.daum.net/ziksir/5b92113fed94d20001e11826
아마도 2016년이었을 테다. 계절이 막 봄에서 여름으로 모습을 바꾸던 어느 날 밤, 맥주 한 캔을 손에 쥐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채널을 바꿔대고 있었는데 평소에 들어본 적 없는 그림 장르의 이름이 소개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돼 리모컨의 채널 버튼을 연신 눌러대던 엄지손가락의 동작을 멈췄다.
회색 톤의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 차림에 금속테의 안경을 쓰고 스타일에 과한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는지 어중간한 길이의 머리를 대충 빗어 넘긴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조선 중기나 후기 즈음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동양화가 띄워져 있었는데 대뇌에서 내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라고 명령하게 만든 것은 그림이 아니라 텔레비전에 띄워진 자막이었다.
조선화라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학계에서 동북아시아의 미술사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 작업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러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그림이 당시의 중국 대륙이나 일본 열도에서 그려진 그림과는 달리 반도의 지리적 물리적 특성 탓에 독자적인 형태로 발달해 반드시 구분할 만한 가치가 있어서 이를 동양화라 묶는 것보다 따로 분리해 연구하는 것이 미학적으로 또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지적 합의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저 회색 수트 차림의 남성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요즘은 워낙 다양한 설정의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는 통에 <베스트 논문 코리아>나 <내가 가설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어느새 시청률 고공 행진을 기록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대학과 대학원을 합쳐 열두 학기에 걸쳐 미술을 공부하면서 한 번도 ‘조선화’라는 표현을 읽어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후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프로그램은 <어쩌다 어른>이라는 다소 엉뚱한 이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들이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격식 차린 옷을 갖춰 입고 아무말을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설정인가보다 싶었다.
이런 추측이 확신으로 굳어졌던 것은 그가 자꾸 장승업의 그림이 아닌, 현재 버젓이 생존해 있는 화가의 그림을 가지고 장승업의 그림이라면서 미간에 힘을 잔뜩 주고는 사방에 침을 튀며 “이 천재적인 필체를 보라”며 진지하게 떠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이 나간 직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서 곧장 난리가 났다. 비난 여론은 회색 수트의 남자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부터 시작해 원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고백에 이르렀고 느닷없이 조선화라는 새로운 미술사적 개념을 만들어 나왔던 남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여섯 줄의 사과문을 올리더니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그는 미술사뿐만 아니라 매해 2월에 전국에서 약 2만5천 명의 미술 전공자가 졸업장을 받고 구직 활동을 하거나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업하거나 본격적으로 백수 생활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사기를 치다 걸리는 경우는 일련의 사건이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남아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소재를, 본인에겐 흑역사를 만들면서 적어도 반성이라는 꽤 의미 있는 일을 해볼 기회라도 만들지만 더러는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사기를 치는 통에 보는 이로 하여금 아슬아슬한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중 하나가 학력을 가지고 말장난을 쳐가면서 은근히 학력을 추가하는 경우다.
(중략)
21세기에 진입한 한국 사회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홍역을 치르며 2010년대 구간을 지나고 있다. 이 일련의 과정을 유심히 눈여겨본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가 하나 있었다. 자신의 공부 방법에 특별한 기술이 있다는 책을 써서 유명세를 얻고 최근엔 여러 방송에 나와 열심히 자신을 팔고 있는 한 남자다.
그는 인터넷으로 예일대 학위를 받았다는 식으로든 남의 졸업장을 스캔해 포토샵으로 편집하는 식으로든 절대로, 일체의 허위 사실을 유포하지 않는다. 졸업하지 않은 학교에 대해 졸업했다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수업을 들었다’는 아주 경계가 모호한 어휘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학력을 포장한다. 예를 들면 그가 졸업한 학교는 뉴욕대학교 경영학과 하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여서 옆 학교인 줄리어드 음대의 수업을 들었다”고 말함으로써 마치 줄리어드 음대를 다닌 것처럼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 기술이 대단한 것은 누구에게도 학교를 다녔다거나 졸업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학력위조라는 구시대의 범죄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만을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이 알아서 오해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누가 집요하게 물어보면 “나는 거기 다녔다거나 졸업했다고 말한 적 없다”고 말하면 그만인 셈이다.
그는 줄리어드 음대라는 대학의 이름을 언급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뉴욕대학교와 줄리어드 음대라는 두 개의 대학 이름을 기억하다가 결과적으로 두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이라고 기억해버리면서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만드는 실수를 범한다. 본인은 학력위조를 하지 않지만 사람들에 의해 학력이 추가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 프랑스에서 인문학을 배우려면 적응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르본대학 적응과정을 수료했다.
쉽게 말해 어학당과 다름없는 과정을 ‘소르본대학 적응과정을 수료했다’고 표현하면 사람들은 소르본대학이라는 대학 이름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국가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어학 능력을 검증받아야 하지만 그는 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별 상관없는 사실을 덧붙여 좀 더 구체적이고 모양새가 세련된 것처럼 보이는 문장으로 다듬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권 국가의 학생이 프랑스 대학에서 공부하려면’이라는 조건이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 프랑스에서 인문학을 배우려면’이라는 조건으로 화려하게 둔갑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 소르본대학을 추가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줄리어드 음대와 소르본대학을 간단하게 추가한 그는 마지막에 “에꼴드루브르에 입학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에꼴드루브르라는 학교를 더불어 기억하게 만드는 것까지 성공한다. 그의 이런 일련의 작업에는 전통적 기법의 학력위조가 들어가지 않으며 스스로도 “졸업한 대학은 뉴욕대 하나뿐이다”라거나 “짧은 가방끈이 여러 개 있다”는 식으로 전제를 깔면서 모종의 혐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경력으로 이용하려면 제도권 교육기관이 요구하는 전체 과정을 따라 밟은 후에 ‘졸업’이라는 형태로 공식화 돼 있는 자격까지 확보한 후에 해당 경력을 활용하는 것이 옳다. 어느 학교에 입학했는데 어떤 이유로 졸업하지 않았다면 해당 학교를 본인의 학력에 은근슬쩍 끼워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이건 해당 학교에서 요구하는 모든 교육 과정을 성실히 따라 밟아 졸업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제도권 교육 전체를 희롱하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는 비상한 기술을 동원해 7개국어에 능통한 언어 천재라는 부수적인 타이틀도 거머쥐었는데 역시 학위를 추가하는 방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획득한 것이다. 어떤 자격증이나 시험 점수, 저술한 책이나 논문을 언급하는 대신에 어디서 몇 년 살았고 어떤 언어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식의 설명만을 한다. 그러면서 간단하게 해당 언어로 자기소개를 하면 사람들이 ‘몇 개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맞장구를 쳐준다. 포인트는 이 맞장구에 “부끄럽다”거나 “에이, 그런 건 아니고요”라는 식의 반응을 일절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일상적이고 단순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외국어 실력을 가지고 ‘언어 천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마치며
얼마 전 교육방송의 방송국 로비에 잠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새로 지어진 방송국 로비는 상당히 쾌적했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줄줄이 들어와 프로그램 방청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국 정문을 정면에서 압도하는 초대형 스크린 하나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의 예고편을 쉴새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 둘이 연이어 등장했다. 하나는 ‘소통하는 인문학’이라는 자막과 함께 여전히 회색 수트를 입고 있었고 하나는 ‘언어 천재’라는 자막과 함께 여전히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이들은 마치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하려고 든다. 텔레비전에서 이런 사람들이 나와서 열심히 인문학에 대해 혹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지식을 가졌는지에 대해 떠들면 냉장고 앞으로 가라. 야채 칸에 있는 토마토를 꺼내 씻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유리그릇에 옮긴 다음 싱크대에서 설탕 봉지를 꺼내 듬뿍 뿌리자.
* 외부 필진 최황 님의 기고 글입니다.
전체 글도 되게 흥미로우니까 출처 들어가서 함 읽어봐!
첫댓글 저 짤에나온 사람이 저렇게얘기했다는거지?
저 사람 누구야????
헐.....충격적
헐
‘옆학교’ 수업 들었다랑 무슨무슨 과정 수료했다고하면 아 정식으로 학교 다닌건 아니구나 라고 읽히던데 ㅠㅠ 아닌가 난이사람나온방송 몇번 봤는데 학위 여러개 땄다기보다는 걍 여기저기 청강 많이했다로 기억되어있음
그걸 본인이 직접 방송을 보면서 제대로 느끼면 상관없는데... 일반 사람들끼리 얘기를 나누면 아무래도 와전 될 수도 있으니까ㅠ 그게 거품이 되고 실제가 되고...
그 자동차 유튜버 ㅋㄱ도이렇지않아?
정말 신랄하게 말하는거보면 사짜맞나봐
엥 사짜였어??
나도 오늘 서울대 지나왔슈~ 관련이 깊은 사람이오~~
흥미롭다..저런 화법 배워서 나도 포장좀 잘하고 싶네
교묘하네진짜
음 근데 졸업대학은 뉴욕대 하나고 나머지는 그냥 청강햇고 과정 수료 햇다고 자기가 말하잖아..유투브 보니까 언어, 인문학 쪽으로 지식이 상당하던데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ㅋㅋㅋㅋ나도 여기동의.... 유명한 사짜들은 자기 유명세 이용해서 사기치거나 계약 따내거나 그러지얺나?? 저사람은 걍 뭐랄까 잘난척하는 관종 느낌이라 딱히 사짜는 아니지않나싶음 유명세 악용하는 낌새 보이면 그때까도될듯
2.... 읽으면서 갸우뚱 했음
3...다방면 지식이 있는거 맞잖아...
4
저 사람이 수많은 언어를 다 할 줄 아는 게 아니고 정도껏 조금만 하는 건데 언어천재 타이틀 달고 외국어 잘하는 법 가르치고 다니니 사짜로 인식한 듯 이것도 뭐 그렇게 인식할 수 있다고 봄 자기셀링에서 거짓인데 진짜인 것처럼 속인 부분이 있긴 하니까
이게 사기꾼이 아니면 뭐가 사기꾼이란 말임 댓글만 봐도 말을 교묘하게 해서 속고 혼란스러운 거 같은데ㅋㅋㅋㅋ
@redone 그게 잘못됐다고 하는 거야 ㅋㅋㅋ 그럼 이런 걸 그냥 냅둬...? 이런 사항에서 중립충들까지 다 저런 걸 옹호하고 지지하는 걸로 밖에 안 보여 인생 긴데 앞으로 저런 짓을 하면서 비굴하게 살거나 저런 짓에 속는 인생을 살고 싶으면 뭐 지지하는 거고~~
@캘리포니아 말리부 흠 근데 나는 잘난척이랑 사기꾼은 엄연히 구분되어야한다고생각해서... 나도저사람 보면 좀 재수없깅한데 사기까지는 아닌거같음 학력을 아예위조하거나 거금 떼먹고 달아나거나 7개국어 학원을 차려서 개떡같이 강의하거나 정도는 되어야사기아닌가 저사람은 기껏해야 강연 유튜브 방송 이정도하던데.... 근데모 여시처럼 생각하는사람도 많을거라생각해
@redone ㅋㅋㅋㅋ 으응 판단은 여시가 혼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ㅋㅋㅋ
조승연가짜라고??
근데 강의는 잘하지않아?뭐지
아는거 존나많거 전문적이던데?
걍 학력이가짜라는겨?
근데 본문대로면 사기친게아닌거 맞지않아?
그런가 나는 청강했다고 알아들어서 그냥 말을 너무 재밋게해서 듣고있어 사기꾼같진않아..
조씨보다 본문의 어쩌다 어른 장승업이 더 충격인데. 나 저 영상보고 국뽕 지대로 맞았는데 그게 정보자체가 잘못된거라고??????????????????????????
검증된 자격증도 없고 그 나라 언어 잘하지도 않는데 언어 천재 타이틀 달고 엄청 잘하는 것처럼 책 써서 팔면 사짜 아냐?? 비정상회담에도 언어 전문가처럼 나왔던거같은데
444 거짓된사실가지고 본인이 부인안하고 그 타이틀을 가지고 강연다니고 책내면서 돈벌고있잖아 그게 사짜지;;;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난 책읽었는데 머랄까 공부에 왕도는 없다는 말을 현란하게한... 그런느낌
남자팔아주면안돼 여자소비나하자
마케팅/광고/홍보도 도가 지나치면 소비자 기만 아니냐는 소리 하지않나 그런 차원의 얘기인 거겠지
꼭 대놓고 구라를 쳐야 사짜인가 빠져나갈 구멍 만들어놓고 의도적으로 오해하게끔 유도하는게 사짜지... 사람 속이는사기꾼이다!라는게 아니고 부풀려지는 부분 많으니 조심하라는 취지의 글이자너
유튜브 피터, 카걸 사건이랑 비슷한거아니야? 자기입으로 거짓을 말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오해해도 짚고넘어가지암ㅎ고 거기서 오는 이득을 즐기는 수준? 사기지
22 딱 그사람들 생각남ㅋㅋ 난 내입으로 그런말한 적 없는데? 너네가 오해한거자나~~!
사기지 결국 저렇게 뻥튀기해서 유명해진건데
이사람4개국어 능통이라는데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내가 영어는 잘해서 영어하는 거 찾아봤는데ㅋㅋ 영어는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는 있는데 책낼정도나 누굴 가르칠 정도는..
https://youtu.be/g62U-4iUOvY
이거 프랑스랑 이탈리아어 하는데 할 줄 아는 여시들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좀 해줬으면 좋겠다 ㅋㅋ
중국어는 발음 성조 다 틀림 ㅋㅋ 뭐 본ㅇㅣㄴ이 능통하지는 않다했으니..
PLAY
나 N년차 프랑스 밀시인데.. 이 영상 보니까 본인이 준비한 불어는 잘하긴 해. 근데 오헬리엉이 갑자기 질문하니까, 대답을 너무 단답으로 하는 느낌...? 불어 하라고 멍석 깔아준 자리에서 저렇게밖에 못하다니... 라는 생각은 든당
헐
자기 포장을 잘하긴 하는 듯ㅋㅋㅋ
능력은 있는데 ㅋㅋㅋㅋ 근데 살짝 무게감은 없는..
헐 난 유튜브 너무 재밌어서 구독중인데 ..... 애매하긴하다 ....
사기꾼은 절대 아닌데 ..... 그렇다고 전문가도 아니라는거네? 근데 대우는 전문가 대우를 받고 있다는거잖아?
사실 이 사람 유튜브 보면서 느낀건데 . 일단 잡지식은 많은거 같음.
그러니까 여러가지를 잘 아는것처럼 느끼는거고.
심지어 그럴듯한 학위는 하나라도 있으니까 더 믿게 되는거 같음.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