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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m.fmkorea.com/best/5325307100
"Tilda Swinton Loves to Play With Bong Joon Ho"(Karen Han), VULTURE, 2022-12-15
잡지 Little White Lies의 에디터가 봉준호를 주제로 책을 쓸 것을 제안했을 때, 봉준호의 오랜 팬인 나는 즉시 "하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Bong Joon Ho: Dissident Cinema>는 지난달에 출간되었고, 책에는 봉준호와 연관된 영화 관계자들의 인터뷰가 포함되어있다.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 중에는 무려 틸다 스윈튼이 있다.
"봉준호 감독은 배우가 자유롭게 상상하도록 격려합니다. 아주 이상한 생각조차도, 숨기지 말고 밀어붙여보라고 용기를 북돋습니다." <설국열차>와 <옥자>에서 과장되고도 섬세한 연기를 펼친 틸다 스윈튼은 봉준호와의 협업이 "감독과 배우 그 이상의 창조적인 관계"였다고 말한다.
틸다 스윈튼은 1986년 데릭 저먼 감독의 <카라바조>에서 데뷔한 이래로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고, 현 시대 가장 영리하고 변화무쌍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마이클 클레이튼>을 통해 미국 아카데미상과 영국 아카데미상에서 연기상을 수상했고 2013년에는 뉴욕타임즈 선정 <21세기의 위대한 배우>에도 이름을 올렸다.
틸다 스윈튼은 봉준호와 함께 한 2개의 작업물(3개의 캐릭터)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해냈다. <설국열차>의 장관 '메이슨'과 <옥자>의 '루시 미란도'와 '낸시 미란도'. 그녀는 연기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악마적인 면모가 있으면서도 묘하게 동정심이 가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Q. 당신이 처음 본 봉준호의 영화는 무엇이었나요?
<괴물>이었습니다. 막 뉴욕에 도착하고 친구와 아침을 먹으러 나온 참이었습니다. 작은 카페의 화장실 복도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에 놓인 뉴요커 잡지, 그 안의 <괴물>의 리뷰를 보았습니다. 크리처가 묘사된 아름다운 삽화를 기억합니다. 그날 오후, 저는 그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끝내줬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의 모든 영화를 찾아보았죠. 봉 감독이 자꾸만 숨기려고 하는 <플란다스의 개>도 간신히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2011년, 칸영화제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황금카메라상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왔다고 하더군요. 다음날 아침 약속을 잡았습니다.
Q. "자꾸만 숨기려고 하는 <플란다스의 개>"라는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봉 감독은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제발 <플란다스의 개>를 보러 가지 마세요! 되게 멍청한 영화거든요."라는 말을 항상 했더라고요. 그 영화에 대해서 얘기 나눠보셨나요?
그런 말이 그 영화를 더 보고 싶게 만들죠! 아무튼 그가 그 영화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 만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화를 언급할 때 매우 수줍어했습니다. 무척 당황하더군요.
Q. 칸에서 아침을 같이 드셨다고 했는데, 처음 만났을 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나세요?
무엇을 먹을지 정하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주문을 하고 나서는 금방 친해졌습니다. 물론 제가 그의 작품을 사랑해서기도 했지만, 그는 제가 바라고 있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친절하고, 재치있고,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그날 친구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그는 <설국열차>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저에게 "아무래도 <설국열차>에는 맞는 배역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었습니다. 윌포드의 비서 '클로드' 역할을 내가 잘 할 수 있는지 50분 정도 얘기하다가 나온 결론이었죠. 칸에서 헤어진 후, 봉준호는 종종 나에게 클로드 역을 맡을 수 있는지 연락해왔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함께 일하고 싶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죠.
그러고 나서 몇 주가 흐르고, 어느 날 그가 나에게 편지와 함께 대본을 보내왔어요. 그냥 재미삼아 읽어봐달라고요. 나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 좋은 남성 캐릭터 '메이슨' 장관 기억나시죠? 그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왔습니다. 결국 우리는 <설국열차>라는 진흙탕에 함께 입수했습니다.
Q. 봉 감독이 왜 메이슨 역을 염두에 두고 떠보았는지 말해준 적 있나요?
아뇨. 저 대신 봉 감독에게 물어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Q. 당신이 맡았던 메이슨 역이, 원래는 '정장을 차려입은 온화한 성품의 남성'이라는 점이 재밌네요. 영화에서는 그것과 정반대로 묘사되니까요. '메이슨의 코'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특이한 코 분장에 대해서 당신은 '캐릭터의 필수요소'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봉 감독과 메이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그런 말을 이미 나눴었습니다. 아마 칸에서 아침을 먹을 때 "'콧대 높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것 같아요. 아주 간단하고 저렴하게, 투명테이프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할수 있는 그 분장은 흥미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캐릭터의 태도 같은 것들이 만들어지죠. 나중에 봉 감독이 "그러면, 그 정장을 차려입은 온화한 남자를 어떻게 표현할거야?"라고 물어왔을 때 대답해버렸죠. "음, 우선 그 코를 할 거야!"
그 분장을 구현하기 위해서 최두호(봉준호의 오랜 제작 파트너)와 제 절친한 의상 디자이너 캐서린 조지가 많이 애썼습니다. 우리는 메이슨의 구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메이슨을 가지고 놀기로 했습니다. 처음 봉 감독이 저희에게 건네 준 메이슨의 이미지는, 우리가 '앵무새 아가씨'라고 부르는 한 여성의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속 그녀가 누구인지는 전혀 모르고, 제복을 입고 어정쩡하게 허리를 굽힌 모습, 머리에 뭔가가 올려져 있는 모습이 앵무새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이 일종의 시발점이었죠.
캐서린이 온갖 종류의 물건들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한 일은 물론 테이프로 콧대를 세운 것이었죠. 그렇게 우리는 6살짜리 아이들처럼 놀았어요. 사이키델릭 수준으로 이것저것 얹어보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두호와 캐서린은 저에게 유니폼을 입히고, 가발을 씌우고, 가짜 훈장, 리본 같은 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보내다가 메이슨 캐릭터를 얻게 되었죠.
Q. 멋집니다. 목소리 컨셉도 그때 만든 건가요, 아니면 나중에 만든 것인가요?
그때 만든 것 같아요. 봉 감독이랑은 계속 이런 식으로 일을 했죠. 봉 감독은 배우가 자유롭게 상상하도록 격려합니다. 아주 이상한 생각조차도, 숨기지 말고 밀어붙여보라고 용기를 북돋습니다. 그렇게 해서 '메이슨'과 '미란도' 두 자매를 만들었죠. 꽤나 기괴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이었습니다.
Q. 그럼 루시 미란도와 낸시 미란도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설국열차> 때보다 훨씬 일찍, 한창 각본 작업 중일 때 <옥자>에 캐스팅되셨다고 들었습니다. 봉 감독이 '옥자'의 스케치를 처음으로 보여준 때가 언제인가요?
<설국열차> 시사회 참석 차 서울에 갔었고, 다음날 아침 봉 감독은 우리들을 공항까지 배웅해 주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봉 감독은 큰 돼지 곁에 작은 소녀가 있는 스케치를 보여주면서 말했습니다. "다음 영화는 이거예요." 저는 외쳤습니다. "What the...!"
봉준호와 내가 공유하는 많은 유대감 중 하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사랑입니다. 특히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대한 사랑이요. 우리는 괴물처럼 보이면서도 매우 동정심이 가는 캐릭터들을 사랑합니다. 봉 감독이 보여준 스케치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오마주처럼 느껴졌습니다.
Q. <옥자>에서 루시(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와 낸시(루시의 쌍둥이 언니)는 비록 얼굴은 똑같지만, 그들의 스타일은 너무나 다르게 표현됩니다. 그들이 정확히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나요, 아니면 각각의 외모가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나요?
우리는 우선 '루시와 낸시는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전제하고 캐릭터를 만들어갔습니다. 다만 루시가 주어진 그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낸시는 피부며 헤어스타일이며 의상에 많은 돈을 쓰는 사람으로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낸시에게 그렇게 많은 변화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조금 독특한 머리 모양에 명품을 걸쳤을 뿐이고, 루시만큼 촉촉한 피부가 아닌 정도였습니다. 둘다 나이가 쉽게 짐작가지 않는 캐릭터지만 루시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마스코트, 낸시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뒷모습인거죠.
Q. 낸시를 연기할 때 '낸시는 항상 목베개를 가지고 다닌다'는 설정을 잡으신 걸로 압니다.
공항에서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목베개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것이 재밌는 특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목베개를 하고 돌아다닐 뿐인데 약간의 뻔뻔함이 드러나죠. "나는 어디서든 목베개가 필요할 뿐이고, 누구든 신경 쓰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존경스럽기도 하죠. 그녀의 의상에 관해서는, 골프 중독자이기 때문에 골프 웨어 비슷한 것을 입혔습니다.
Q. 당신은 캐릭터의 배경이나 서사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시나요? 봉 감독은 캐릭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고 배우들이 알아서 생각하도록 한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배우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캐릭터의 부수적인 이야기들을 상상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설국열차>에서 메이슨을 연기할 때는, 기차 안에 '메이슨 전용 칸'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는 어떤 물건들이 있을까 생각했어요. '메이슨은 사실 대머리고, 가발을 쓰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 메이슨 전용 칸에는 가발들이 널려 있겠지?'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봉 감독에게 '가발이 날아가서 대머리라는 점을 들키는 장면'을 넣으면 어떨지 말했지만 결국 반영되지 않았죠.
그것 말고도 '메이슨은 어느 순간 이를 뽑는다', '메이슨은 진짜 여자인가?' 같은 이상한 상상들을 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루시와 낸시를 연기할 때도 이런 상상들을 했는데, 단순히 재미로 한 것뿐이에요. 그런 상상을 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찍는 데 아무런 차질이 없겠지만, 스스로를 즐겁게 만들 순 있죠.
Q.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당신의 말이 떠오릅니다. "나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를 하고, 촬영이 시작되면 그 세계에서 놀 뿐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생각하는 것들에는 또 무엇이 있나요?
봉 감독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은 너무나 광범위해요. "이 캐릭터들은 실제 인물일까? 사람이긴 할까?" 그런 상상들을 게임처럼 하곤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농담들을 나누지 않았다면 캐릭터가 완성되지 않았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런 농담들은 멋진 옷을 계속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캐릭터의 또다른 내면과 삶을 떠올려보는 것이죠.
촬영 중에도 이런 농담들은 계속됩니다. 봉 감독은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워지길 원해요. 그와 동시에 편집감독과 함께 일할 때는 규율 잡히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일합니다. 촬영한 다음 즉석에서 예비 편집을 하고, 배우들에게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그것은 꽤나 제약이 강한 연출방식처럼 보이지만, 매우 자유로운 방식이기도 해요. 아마도 그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방금 당신의 연기는, 이 샷에서 당신이 떠난 방식이자 다음 샷으로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즉, 배우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원하는 대로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얻는 정확한 연기, 그 감각적이면서도 사람들의 기억에 두고두고 남는 배우의 매력이 봉 감독이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봉 감독은 모든 동료들이 매우 자유롭게 활동하고, 그것에 빠져 들고, 그들 스스로 즐기는 경지가 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첫댓글 재밌다 ㅋㅋㅋ 기생충밖에 안봤지만 정말 여러면에서 대단한 사람같아 ㅋㅋㅋ 설국열차 봐봐야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