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출처 1. 후쿠시마 피난민 카토린이
에일린 스미스의 글을 인용하여 발표하는영상
https://youtu.be/LkgN7_RDosI
출처 2. https://youtu.be/xAU-jQtMdIM
출처 3. https://youtu.be/06eXhhhJ-KI
출처 4. https://youtu.be/emAPGlaPvek
출처 5.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179270/1/질병의%20사회적%20삶%20%28이영진%29.pdf
출처6. https://m.ohmynews.com/NWS_Web/Mobile/amp.aspx?CNTN_CD=A0001444399
‘미나마타병과 후쿠시마 사고에 대응하는 정부와 문제 기업의 10가지 수법’ 을 쓴
에일린 미오코 스미스의 글을 인용함.
에일린 미오코 스미스는 사진작가이자 남편인 유진스미스와
책 <미나마타>를 출간하여 미나마타병을 세계에 알렸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후에는
일본에서 반핵 NGO(Green Action Japan)를 이끌고 있다.
*
미나마타병에대해
1932년,
구마모토현의 한적한 어촌마을 미나마타.
마을의 질소비료공장에서
수은이 포함된 폐수를 바다에 방류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20년 정도가 지난
1954년..
미나마타시 위생과에
이상한 진정서가 들어오는데...
“고양이들이 간질에 걸려 죽어 쥐가 많아졌으니까
뭔가 조치를 취해달라“
미나마타의 길고양이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을 비틀며 펄쩍펄쩍 뛰다가 바다에 뛰어들어 죽어갔다고 한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56년..
미나마타의 병원에 6살 아이가 진료를 받으러 왔다.
멀쩡하던 아이가 말을 제대로 못 하고 걷지도 못하며, 미친 듯이 소란을 피운다고 했다. 며칠 뒤 그 여동생도 같은 증상으로 진찰을 받으러 왔고, 두 자매의 어머니는 옆집에 사는 아이도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첫 환자의 집)
6살의 어린아이는 미나마타병의 공식적인 첫 환자였다
질소제조공장에서 폐수를 통해 방류된 수은은
먹이사슬을 따라 어패류에 서서히 축적되고 있었고
이를 몰랐던 고양이와 주민들이
오염된 어패류를 먹게되어
수은중독증상이 집단적으로 발병하게된것이었다.
특히 산모의 경우, 수은이 태아의 뇌에 축적되기 쉬웠기에
병을 가진 채 태어난 아기들이 있었고
그들은 평생동안을 미나마타병으로 인한 장애로 고통받으며 살아야했다.
당시 원인 모를 질병이었던 탓에
환자들은 여러오해를 입고 차별을 겪었다.
그러나..
당시 질소제조업은 일본의 기간산업..
1956년의 공식적인 첫 환자 보고 후에도
일본정부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기업의 폐수방류를 눈 감아주었다.
1959년에는
질병원인이 폐수 속 수은이라는 보고서까지 나왔으나...
병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
일본정부와 문제기업은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수은이 포함된 폐수는
보고서 발표 후 5년이 지난 1966년도까지
그대로 방류되었고
공장에서 방류된 수은은 모두 150톤에 이르렀다.
피해자들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
1968년,
드디어 국가로부터 공해병으로 정식 인정받았다
정부는 공장가동을 중지시키고 보상문제에 착수했다.
환자회는
소송파와 일임파(정부 산하조직에 보상위탁)로 갈라지기도 하면서 보상에 여러 문제를 겪었다.
피해자를 축소하려는
정부의 미인정 피해자 문제로
2000년대에 까지 소송이 이어졌다.
정부의 인정 후
미나마타 앞 바다는 비로소 관리되기 시작했다..
수은에 오염된 물고기들 가둬두고
토양오염심해서 땅 엎는 공사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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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도의 미나마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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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민주당 출신의 하토야마 총리가
미나마타병이 확인된지 54년만에 발병현장을 찾아
희생자와 환자들에게 공식 사죄를 하였다.
총리가 직접 현장을 찾은 사죄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첫댓글 정말 짜증나..
진짜 소름 돋는다.. 저게 싸패 아니면 뭐란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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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게 없어 시발것들 저게 쟤네의 국민성임
보다가 화나서 내렸다 쟤네 진짜 싸패아니야? 하…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도 저런식이었지..
어휴 일본의 눈막고 귀닫고 그런 정신승리 자세가 진짜 아주 최고수준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