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7325993991
이완용은
한국사를 대표하는 매국노,
매국노의 대명사로 통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대 중국에서조차
이완용은 매국노의 대명사로 통하며
제2의 이완용 드립도 자주 쓰였다는 것
지금은 대만은 물론이고
중국공산당조차 위대한 혁명의 선구자라며
높이 평가하는 쑨원도
1915년에 이완용 같은 매국노라며 지탄받기도 했고
그 후계자였던 장제스도
이완용 소리를 들었다
오늘날 중국에서 매국노의 대명사로 통하는
왕징웨이는 말할 것도 없어서
당시에 이미 오늘날의 진회이며 이완용
이라는 평을 받았다
물론 이런 중국공산당이라고
이런 드립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
조선의 이완용
명나라의 오삼계
같은 당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진회는 송나라 사람
오삼계는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사람이다
이렇듯 이완용은
수백년 전 자기네 나라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악명이 높았던 것
물론 거물 정치인들만
이완용 소리를 들었던 건 아니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매국노라고 공격하면서
제2의 이완용 드립을 자주 사용했다
쑨원의 북벌을 반대했던
베이징대학 총장 차이위안페이는
남방의 이완용 소리를 들었다
당연히 이완용을 소재로 삼은
연극이나 연설회도 있었고
이완용의 매국 이야기가
주제인 경극도 등장했다
이완용이 사망하자
상하이의 한 신문에서는
"중국인들이 경계하여 온 이완용이 사망했다"면서
"중국인들도 매국노하면
누구나 다 이완용이라 한다"
고 할 정도였다
중국공산당의 창립자 천두슈. 후일 그는 공산주의를 버렸다
당대 중국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중국공산당 창립자였던 천두슈는
중국의 이완용, 송병준은 누구인가
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 무렵 중국의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는
이완용이 매국노의 대명사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당시 중국에서는
자기네 사람도 아닌 이완용이
이렇게 유명했을까?
당시 중국인들은 한국 문제에 큰 관심을 두었다
청나라 말기 이후
중국은 외세의 침략과 간섭을 겪으며
준식민지로 전락했고
그러면서 비슷한 시기 식민지가 된
한국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얼마나 관심이 있었냐면
이완용 외에도
안중근 의사를 주제로 한
연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훗날 중국의 총리가 되는
저우언라이와 그 부인 덩잉차오가
이 연극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 진회나 오삼계 등을 비판하는 시각은
한족 중심적 시각이라는 한계가 있었고
왕정 시대의 인물이라
근대 사회와 직접 비교하기 곤란하다는 점으로
이완용이 매국노의 대명사로 사용되었던 것
참고 자료
- 黃永遠,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중국근현대사연구, 90, pp.63-93.
- 대한민국임시정부 옛청사 관리처 편, 석원화 외 엮음, 김승일·이은우 옮김, 『신보-대한민국임시정부 관계기사 선집』, 범우사, 2001.
- 신용하, 『3·1운동과 안성의 4월 독립항쟁』, 안성문화원, 2002.
- Donald Keene, 김유동 옮김, 『메이지라는 시대』, 서커스출판상회, 2017.
댓펌
아마 일본 내부에서도 비슷했을것 비록 아군이지만 개생퀴네 정도 이완용이 경봉궁 일앙 별궁 하자고 의견 냈다는데 이게 나름 당대에는 진짜 파격적인 개짓거리였나보드라고
그거 일본에서도 아니 그 정도까지 할 필요없음;;; 하고 거절했다는 점에서 이완용이 얼마나 대단한 놈인 지 알 수 있음
그 의견 들은게 조선총독부 총독이고 듣자마자 그딴짓거리 하면 민중봉기 일어난다고 개소리하지 말라고 단칼에 끊엇다고 한다.
사실상 침략국 쪽바리보다 악랄한 ㄱhㅅhㄱl가 매국노들임
첫댓글 10쉓 진짜 너무 곱게 뒤졌어 부관참시해서 뼛가루까지 발로 으깨서 ㅈ본에 뿌려야되는데
존나 흥미돋.....
중국에서도 보통명사처럼 욕먹는지는 몰랐네ㅋㅋㅋ
저런놈 후손이 여전히 잘 살고 있다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