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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fmkorea.com/7383333742
구약성서에서 가장 사악한 악녀로 묘사되는
왕비 이세벨은
이스라엘 왕국의 7대왕 아합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 종교적인 부분을 떠나서(사실 종교적 비난과 반대로 아합 시기 이스라엘은 전성기를 누렸으며, 아합은 세속적인 시각에서 볼 때 굉장히 유능한 군주였음) 페니키아의 막대한 부를 등에 엎은 그녀가 이스라엘의 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을 개연성은 '역사적인 시각'에서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야...
이 기원전 시대의 여성은
아득한 시간을 넘어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그녀의 이름을 써 두어디라의 교회에서 큰 세력을 누리던 여성을 비난하던 걸 비롯하여
'화장한 이세벨'이라는 표현이
서구권에서 '닳고 닳은 여자'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이고
흑인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이세벨이 쓰이는 등
기독교 문화권에서 이세벨이라는 이름은 악명일지언정 잊히지 않고 오랜 생명력을 발휘하였지...
특히 '강력했던 여성 권력자' 이세벨의 이미지는
기독교 문화권에서 반대파들이
여성 권력자를 공격할 때 쓸 수 있는 유용한 무기였는데
프로테스탄트들은 메리 1세를 이세벨로...
카톨릭교도들은 엘리자베스 1세를 이세벨로...
각각 부르기도 하였어
* 현대에도 마가렛 대처의 반대파들이 그녀를 이세벨로 칭하기도 하고... 카말라 해리스 역시 보수적인 목회자들로부터 이세벨이라고 공격 받는 등 이세벨은 기독교 문화권에서 여성 권력자를 공격하는 매우 흔한 무기로 사용됨.
중세 유럽의 여성 권력자이자
외국(고트족)의 공주로서 프랑크인의 나라에 시집온
브룬힐트 또한
이세벨의 이미지가 씌워진 대표적 인물인데...
* 브룬힐트는 동시대 존재했던 또 다른 여성 권력자 프레데군트(프레데군트는 왕비가 되기 위해 브룬힐트의 여동생을 살해함)와의 라이벌리로 유명한 인물이며...
* 그녀의 삶은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나오는 브룬힐트 여왕의 모티브가 됨
관련하여 중세 프랑크인들의 역사를 다룬
'프레데가르 연대기'는
브룬힐트가 모의를 꾸며 암살한 실세관료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힐난하면서
특별히 반역죄로 그녀에게 고발당해 처형당한 한 귀족의 죽음과 관련하여서
실제로는 브룬힐트가 그 귀족의 땅을 왕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 수작을 부린 것이라고 주장하지
그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이는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구약의 대목을 연상하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야...
브룬힐트의 사후
그녀와 대립하였던
콜룸바누스(아일랜드 출신으로 카톨릭 성인 중 한 명)의 뒤를 이은
보비오 수도원의 원장이자
프레데군트의 자손들과 협력관계에 있었던
요나스는 콜룸바누스를 기리며
'성 콜룸바누스의 생애'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브룬힐트는 대놓고 늙은 뱀(사탄)에게 미혹된 '두 번째 이세벨'로 칭해져
요나스는 사실상 콜룸바누스를 엘리야로, 브룬힐트로 이세벨로 캐스팅하였는데
브룬힐트는 이 카톨릭 성인의 대적자로서
자신의 증손자들에게 축복할 것을 거부(콜룸바누스는 브룬힐트의 영향력 하에 있던 손자 테우데리크 2세에게 정부들을 두지 말고 합법적인 아내를 둘 것을 조언하였는데, 이는 궁정에서 자신 이외의 왕비가 등장하는 것을 경계하던 브룬힐트의 역린을 건드렸지)하고
그들은 죄악으로 태어났으니 왕의 재목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한
콜룸바누스에 대하여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분노하며 온 집안이 떨리고 모두를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지
이는 구약성서에서 자신의 예언자들을 학살한 엘리야에 대한 이세벨의 분노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만드는데
브룬힐트는 콜룸바누스를 반대하는 음모를 꾸몄고
그 계획은 너무도 완벽하였으나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콜룸바누스는 신의 도움으로 그러한 위기들을 극복하며
엘리야가 아합의 집에 멸망을 선언하듯이
테우데리크 2세의 집안에 멸망을 선언해
물론 이세벨과 마찬가지로
브룬힐트 또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그녀들의 최후에는 공통적으로 말이 등장하는데
이세벨은 내시들에게 배반당하여 추락사 한 뒤 예후의 말에 짓밟힌 후 개들에게 먹히는 것으로 성서에 묘사되며
브룬힐트는 요나스의 기록에 의하면 말꼬리에 묶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함
* 프랑크 왕국을 재통일한 클로타르 2세가 브룬힐트를 잔인하게 처형한 것은 복수의 기록들을 통해 전해지는데, 말들에 의해 거열형을 당했다는 기록들도 존재함
* 어쨌거나 공통적으로 브룬힐트의 처형에 말이 동원되었으며, 엠마 제인 토마스 박사는 이세벨과 브룬힐트를 연결시키기 위한 도구로 말이 선택되어졌다고 보기도 해
요나스가 쓴 글에서
이세벨로 등치되는 브룬힐트와 함께 엘리야 등치되는 콜룸바누스의 모습들도 물론 찾아볼 수 있는데
아합 가문의 신하였지만, 엘리야의 목소리를 전하는 오바댜처럼
테우데리크2세에 충성을 다했지만, 콜룸바누스의 전령이 되어 그의 예언을 전하는 신하가 등장하기도 하며
왕명을 받들지 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병사들의 애원에 따라 일부러 잡혀주는 모습은
아하시야의 죽음과 관련하여 그를 대하던 세번 째 오십부장과의 에피소드를 연상하게 해
물론 역사학적 시각에서 성서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 만큼이나
'중세인' 요나스의 기록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데...
왜냐하면 요나스가 전하는
콜룸바누스의 일대기에는
그가 범죄자들이 우글거리는 감옥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탈출한다던지(ㄷㄷㄷ)
콜룸바누스를 아일랜드로 보내려는 계획과 관련하여
거센 폭풍우가 몇 차레나 배를 다시 해안가로 돌려보냈다든지 하는 이야기 등이 실려 있거든...
그러므로 우리는 요나스의 기록은
성서의 인물을 이용하여 특정 인물을 정형화한 일종의 문학적 기법으로서 연구할 가치는 있겠지만
역사 기록물로서는 당연히 비판적 검토를 거쳐야 하는데...
브룬힐트가 귀족들에 대한 숙청을 했고... 콜룸바누스의 대립 외에도 데시데리우스를 숙청하는 등 일부 카톨릭 성직자들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 그녀의 궁중에서 왕비를 경계했던 것(자신과 같은 서고트 공주였던 며느리를 쫓아내게 만드는 등)
그리고 권력을 위해서라면 손자와 증손자들에게도 무자비했던 것 등
요나스의 주장대로 악을 행하다가 처참한 최후를 맞은 '빌런'으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그녀의 삶에 많았던 것은 사실이나
현대의 세속적 시각에서 고대 이스라엘 왕국 오므리 왕조의 통치에 대한 성서의 기자와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처럼
브룬힐트의 통치기 만들어졌던
'킬데베르트 법령'은
프랑크인 호족들의 반발을 샀을망정
프랑크인과 갈리아인의 민족 차별 금지, 법률에 의거하지 않은 사적인 복수의 금지, 여성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강제적 혼인의 금지와 같은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진보적'인 내용들이 담겨있으며
유능한 행정가였던 브룬힐트는 로마 제국의 행정을 본떠서 행정을 개혁하였고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넓은 도로들을 만들었으며
빈민들을 구제하고 병원들을 짓기도 하였어
심지어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그녀는 '기독교인 통치자(본래 아리우스파를 믿는 서고트족이었지만, 프랑크인에게 시집오면서 카톨릭으로 개종)'로서
대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그로부터 '성녀'로 추앙받기도 하였고(만약 그녀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면, 브룬힐트의 이름 또한 그레고리우스 1세의 후광 속에 카톨릭 성인 중 한 명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
많은 수도원들을 후대에 유산으로 남겨주었으며
앵글로 색슨족의 '복음화'에 공헌한 인물이기도 해
콜룸바누스와의 관계 또한 현대적 측면에서 본다면
콜룸바누스는 일종의 '근본주의자'로서 이교도 신앙에 대해 무조건적인 배척과 모든 이교도들을 강제로 개종시키려 하였는데...
브룬힐트가 그에 반대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어
영국에 대한 선교 사업에 주요한 후원자였던 그녀는
자신이 보냈던 선교사들이 콜룸바누스와 똑같은 실수를 초기에 했던 것을 보았고
그로 인한 실패 또한 이미 경험하였거든
그리고 그 선교사들이 보다 유연한 태도를 취하였을 때
'복음화'가 훨씬 더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음 또한 경험하였고(브룬힐트는 유대인에 대해서도 관용적인 통치자였음)...
물론 현대적 시각으로 과거사를 보는 것 또한 한계(다만 콜룸바누스가 만든 수도원의 규칙은 중세의 시각으로 봐도 가혹한 측면이 있었다고 평가를 받으며 베네딕토에 의해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지자 바로 버려질 정도였음)가 있으며..
사실 브룬힐트와 콜룸바누스의 대립 또한
세속의 권력자와 종교인 사이에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던 흔한 대립 중 하나로서...
'종업자'를 장악하기 위한 권력다툼적 성격이 컸어
* 프랑크계 귀족들에게 콜룸바누스에 의해 전파된 아일랜드식 수도원은 갈리아-라틴계 귀족들과는 차별적인 종교적-정치적 권력의 획득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함
* 마지막으로 브룬힐트의 삶의 전반기는 그녀의 후원을 받던 투르의 그레고리우스 덕분에 매우 잘 포장되었는데... 반대로 브룬힐트의 라이벌 프레데군트의 악행들 또한 그 역사가에 의해 과장되었다는 주장 또한 존재하니 참고 요
* 글을 마칩니다.
*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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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너무 재밌다!! 중세시대 글쓰기 흥미롭다 아침부터 여시덕에 또 새로운걸 알게됐네
중세시대 글 ㄹㅇ 흥미돋
와우 이세벨이라는 인물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넘 흥미돋이다 글 고마워!!
흥미돋
존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