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믿음의 하나됨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하나됨에 도달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4:13)
제 1장 인사말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찬양 및 성도를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
제 2장 무조건적 은혜에 의한 성도의 구원과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제 3장 이방인 구원과 관련된 교회의 비밀 계시와 교회의 영적 성숙을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
제 4장 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근거와 성격 및 변화된 성도의 새 삶의 기본 원칙과 대인 관계
제 5장 성도의 대신관계와 성도의 신앙 생활에 대한 결론적 권면 및 바람직한 부부 상
제 6장 성도의 부모와 자녀 주인과 종에 대한 바른 관계와 성도의 영적 싸움 및 끝맺는 말
에베소서 설교 차례
하나님 이 우리를 예 정 (豫定)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 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끼 치 는 능력
성도가 알아야 할 신앙의 지혜
구원 얻은 자가 힘쓸 선한 일
그리스도께서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복음을 통한 이방인들의 축복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지는 풍성함의 특징
교회 의 표지
그리스도의 사랑의 위대성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시는 목적
그리스도를 배운 자의 거듭난 모습
빛의 자녀된 성도가 변화되어야 할 것
선한 부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할 때 임하는 축복
그리스도인의 생활 태도
에베소서 서론
1. 제목
헬라어 원전의 제목은 '프로스 에페시우스'( ), 즉 '에베소인들 에게'로 되어
있는데, 이는 본서 수신지의 지명을 따라 붙여진 것이다. 한편 본 서신의 수신자에 대하여는 전통적으로 에베소 교회로 여겨져 왔으나, 19세기 이후 현대 비평학자들이 강력한 반박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① 1:1의 '에베소에 있는'( , 엔 에페소)이라는 말이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시내산 사본(H), 바티칸 사본(B) 등에 나타나지 않으며, ②에베소는 바울이 제 2차 전도 여행시 전도하고(행 18 . 16), 제 3차 전도 여행시 3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사역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독자들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처럼 보인다(1'15;3:2;4:21)는 것이다. 그러나이러 한 문제 는 본 서 신이 에 베 소를 비롯한 그 주변 교회들을 위한 회 람 서 신(回覽雲信)으로 쓰여졌다고 볼 때 해결된다(골 4 : 16 참조). 즉 본 서신은 아마도 에베소를 비롯하여 소아시아 각 지역 교회로 회람되어 읽힌 후에 다시 에베소에 보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본 서신을 '에베소서'라 칭한것 이 다.
2. 저자와 기록 연대
본 서신의 저자가 사도 바울(Paul)이라는 사실은 1세기 이후 19세기까지 거의 아무런 비판없이
인정되어 왔다. 그런데 19세기 이후 현대 비평학자들은 첫째, 언어 ․ 문체 등이 다른 바을 서신.들과 다르며, 둘째, 바을과 에베소 교회의 친밀한 관계를 생각해 볼 때 바울의 다른 서신들처럼 개인적인 문안이나 인사가 나오지 않으며, 셋째, 본 서신의 사상이 바울적이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바울의 저 작권을 의 심하였다.
그러나 본문의 내중(內證)에 의해 우리는 본서 저자가 바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먼저 엡 1 . 1과 3 . 1에서 본서 저자가 바을 자신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평강과 은혜'라는 말을 묶어 문안하는 바울만의 독특한 문체도 본서가 바울의 저작임을 입증한다(엡 1 : 2). 또한 저자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일로 인해 갇힌 자'(엡 3:1;4:1)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은 본서가 바울의 옥중 서신임을 증거한다. 이러한 내적인 증거 외에도 외증(外證)으로서 이레니우스(Irenaeus, A.D.120-1朝),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出ex, A.D.150-213), 터툴리안(Te탄ullian, A.D.1脚
- ? ), 이그나티우스(Ignatius), 폴리캅(Policarp), 히폴리투스(Hippo◎us) 등의 초대 교부들도 본
서신을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말시온 정경(Marcion Cannon, A.D,1端)과 무라토리 단편
(Muratorian Fragment, A. D.2齡)에서도 본서를 바울서신으로 분류하고 있다. 본서 저자로서의 바울의
생애나 활동에 대해서는 서신서 개론 특별자료 '바울의 연대기'를 보라.
한편 본 서신을 기록한 연대는 그 기록 장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엡 3 . 1;4. 1), 이는 본서가 옥중에서 기록된 것임을 말해 준다.
그런데 바울의 생 애 에서 편지 를 쓸 정 도로 오랫동안 감옥 생 활을 한 것은 세 번이 다. 즉 가이 사랴에 서 의
2년간(행 23'22-26 : 32, A.D.S8-脚), 로마에서의 약 2년간의 1차 감옥 생활(행 28 : 30, A.D.61-
63), 그리고 로마에서의 2차 감옥 생활(딤후2:9;4:6, A.D.67)이 그것이다. 이러한 세 번의 옥살이
중에서 바울이 에 베소서를 기록했다고 생각되는 때는 로마의 제 1차 감옥 생활기이다. 이때 그는
비록 갇혀 있는 형편이었으나 자유스럽게 저술 활동을 할 수도 있었고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바울은 이 로마 감옥 생활 중에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도 그 중 중요한 한 사람이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빌레몬서를 기록하였고 또한 그와 함께 빌레몬이 몸담고 있던 골로새 교회에 보낼
골로새서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또 제 2, 3차 전도 여행시에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목회한 에베소
교회와 인근 교회를 위해서도 본서를 기록하여 두기고 편에 골로새서는 골로새 교회에, 그리고 본서는
에베소 교회에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에 베소서는 골로새서 및 빌레몬서와 같이 바울의 제 1차
로마 감옥 생활 중이던 A.D.61-62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에베소서의 기본 구성
遠溜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1 성도의 바른 신앙 생활 문단구쳔 1'1 1:15 2'1 3:14 4'1 4'17 5:22 6:106:24 삼위 하나님 의 구속 성 도 개 인을위 한 기 도 성 도의 구원과교회 의 본질 교회를위 한 기도 교회 의일치 성 도들의새 생 활 가정생활 영적전투 주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 부르심에 합당한 삶 문체 교회 일치를 위한 교리적인 내용과 생활 지침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서간문 장소 에베소 교회를 비롯한 인근 소아시아 교회들 기간 A. D.S1-70년 경
4. 신학적 집필 동기와 배경
사도 바울이 에 베소서를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에 대해 본서는 그 어떠한 언급이나 암시도
주고 있지 않다. 이로 볼 때 바울은 본서를 기록함에 있어서 본서의 수신자인 에베소 교회나 그
인근 소아시아 교회들이 당시에 직면하고 있었던 어떤 구체적인 현안들의 해결을 위해서라기 보다
당시 대부분의 초대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었던 여러 상황들을 염두에 두고 그러한 상황들을 수신
지역 교회들이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원리적(原理的) 교훈들을 체계적으로 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당시 초대 교회는 대내적으로 구속사(救蹟史)가 구약 시대에서 신약 시대로 갓 이전되었으나
아직 구약과 신약의 상관관계 및 제반 관련 요소들의 관계 곧 율법과 복음의 관계,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등에 대한 신학적 정립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과도기적(過渡期的) 상황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유대인 및 이방인 출신 성도가 함께 어울려 교회 공동체라는 새로운
틀 안에서 생활함으로 인해 유대인과 이방인간에 많은 갈등을 겪게 되었으며 교회의 질서 유지와
성도간의 일치와 화합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당시의 양대 이단인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와 영지주의(Gnosticism)의 발호로
인하여 교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위기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골로새 교회의 설립자인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 교회가 당시에 직면했던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은
후에(골 1 : 7, 8) 더욱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극히 부패한 헬라 문화가
교회 안에 침투해옴으로 인하여 성도들은 가정 생활과 사회 생활에 있어서 심각한 윤리적 위기에
직면하게도 되었다. 이는 소아시아 지역의 중심 도시로서 상업과 교통이 활발하였으며 아데미(Arte-
mixt) 여신을 숭배하는 등의 온갖 이방 종교들이 득세하고 있던 에베소의 경우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특별히 에베소 교회는 바울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곳으로, 바울은 제 2차 전도 여행 당시 잠시
들러 복음을 증거하였고(행 18 : 19-21), 제 3차 전도 여행 때 다시 방문하여 약3년간 머물며 눈물과
정성으로 사역을 하였던 곳이다(행 19 . 1-41).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유달리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사실은 그의 제 3차 전도 여행 귀환 때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권면한 사실(행 20 : 17-35)과 훗날 디모데를 파송하여 성도들을 지도케 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딤후 4 : 5). 이에 바울은 본서를 통해 먼저 에베소 교회를 비롯한 인근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올바른
교회관(敎會觀)을 심어주기 위한 일련의 신학 원리적 교훈들 곧 교회의 근원, 교회를 설립하신 하
나님의 목적, 교회 본질에 대해 기록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불문하고 모든
성도들이 일치(一致)하고 화합(和合)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에 근거하여
성도 간의 일치와 화합, 및 성도의 가정 생활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성결한 삶과 영적
성숙을 위한 신앙의 무장에 관한 일련의 실천적 교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5. 에베소서의 내용 전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더불어 옥중 서신으로 분류되는 본서는 교회를 설립한 하나님의
목적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유기적(有機的) 공동체로서의 교회 등에 관한 교리를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이 현실 교회가 구원을 성취시키는 바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구심점으로 한
통일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본서를 서신서의 기본 구조를 기준으로 나누자면 도입부(1 : 1-23)와
본론부(2 : 1-6 : 20) 및 종결부(6'21-24)로 삼등분 할 수 있다. 이러한 본 서신의 내용 전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시작하는 말(1 : 1-23)
본 단락은 본서의 서론격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여기서 바울은 수신자들에 대한 간단한 인사말(1 '
1, 2)을 마친 후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 곧 성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1 : 3-6), 성자 에수
그리스도의 구속(1 . 7-12), 성령 하나님의 인치심(1 : 13, 14)을 찬양하고 이어 성도들이 이러한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통찰력을 얻도록 기원하는 바울의 중보 기도를 한다(1 : 15-
23). 특히 이러한 내용의 본 단락은 실제적으로 교회 구성원으로서의 성도의 지위와 교회의 본질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2 : 1-3 : 21의 도입부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교회의 근원(根源) 및 교회 설립의
목적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2) 본론부(2 : 1-6 : 20)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대주제로 하는 본서 본론부는 다시 교회 구성원으로서의
성도의 지위와 교회의 본질에 관한 교리적인 내용을 다루는 전반부(2 . 1-3 : 21)와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실천적인 교훈을 기록한 후반부(4 ․ 1-6 : 20)
로 나뉜다. 이러한 본론부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ㄱ. 성도의 구원과 교회의 본질(2 : 1-3 . 21)
본 단락은 본 서신 본론(2 . 1-6. 20)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본 서신의 핵심적인 내용인
교회 구성원으로서의 성도의 지위와 교회의 본질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즉 여기서 바울은 성도의
구원(2 . 1-10)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불문하고 모든 성도들이 함께
연합한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질(2 : 11-22)과 이방인 성도가 유대인 성도와 동일한 교회의
구성원이 되게 된 구속 경륜(3 : 1-12) 및 교회에 관한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 섭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회 공동체의 영적 성숙을 기원하는 바울의 중보기도(3 : 14-21)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의 내용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로서 성도들은 민족이나 신분의 구별에 구애없이 일치하고
유기적으로 연합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보여 주고 있다. 즉 그 첫 이유는 모든 성도들은 다
동일하게 과거 공중 권세자 사탄(Satan)의 지배 하에서 세상의 악한 풍습을 좇아 살던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었던 자들이었으나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로서 결코 자기 자랑을 내세우며 다툼을 일으킬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모든 성도들은 본질상 하나님의 시민이요 권속이며, 또 천국 기업을 물려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필연코
화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L. 성도의 바른 신앙 생활(4 : 1-6 : 20)
본 단락은 본서 본론(2 : 1-6: 20)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본론의 전반부(2 . 1-3. 21)가
교회의 본질과 관련된 교리적인 내용을 주로 다룬데 반해 여기서는 그 교리적인 내용에 상웅하는
실천적 교훈으로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로서 삶 속에서 보여야 할 바른 신앙
자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4 : 1-16에서는 교회 구성원인 성도들간의 일치와 교회
조직을 통한 유기적 연합을 교훈한다. 이어 4 : 17-5 : 21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받은
자로서의 성도 각 개인의 생활과 관련된 윤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바울은 성도의 신앙 생활의
기 본 원칙 (4 : 17-24)과 성 도의 대 이 웃 관계 및 하나님 과의 관계를 구체 적 으로 제 시 하고 있다(4 : 25-
5. 21). 다음으로 5 : 22-6.9에서는 좀더 신앙 생활과 관련된 구체적인 교훈으로서 성도들의 가정
생활과 관련된 교훈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바울은 성도의 성경적인 바른 부부 관계(5 : 22-33),
부모와 자녀 및 종과 상전과의 관계(6 : 1-9)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6 : 10-20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받은 성도들이 새 생활을 온전히 영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수행해야 할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 임함에 있어 하나님의 전신 갑주(全身甲雷)로 무장하고 성령 충만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3) 끝맺는 말(6 : 21-24)
본 단락은 본서의 최종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여기에는 본 서신의 전달자인 두기고에 대한
소개(21, 22절)와 본 서신의 수신자인 에베소 교회 및 인근 교회들에 대한 축복 기도(23, 24절)가
언급되 어 있다.
6. 에베소서의 주제들
본 서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일치와 화합 및 성도의 바른 신앙 생활'이라는 대주제 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본 서신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섬기는 교회가 세워지게 된 근원(根源)과 본질(本質)을
설명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일치해야 하며 교회의 구성원인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교회의 본질과 성도의 바른 교회 생활과 가정 생활에 관한 신학적이면서도
체계적이며 또 실제적인 교훈들을 기록하고 있는 본서는 비단 본서의 수신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해당하는 신학적, 실천적 교훈들인 것이다. 이에 본서에 나타난
주요 주제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성부 하나님은 그와 크신 사랑 안에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 하사 예수 그리 스도로 말미 암아 자기 의
아들로 삼으셨으며(엡 1 : 4, 5),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흘리심으로 구속 사역을 이루셨다(엡 1 : 7). 또한 성령님은 우리의 구원을 인치셨다(엡
1 : 13, 犯). 이렇듯 교회(Church) 존재의 궁극적인 기원(起原)은 일시적인 세속의 영역 속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과 그 뜻을 이루시는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② 태초 에덴 동산에서 화평을 누렸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인간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파괴되고 하나님과 인간은 원수 관계가 되었으며 또 이의 파생 결과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불화하게
되었다(엡 2 : 1-10).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妨esus Christ)의 십자가 구속 사역 성취로 말
미암아 일차적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다시금 에덴 동산에서와 같은 화평의 관계로 회복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화해의 사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화평에 이르게 하셨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로 막혔던 장벽을
무너뜨리사 둘로 하나를 만드셨던 것이다(엡 2 : 11-22).
③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성도들이 연합된 유기적 공동체이다. 따라서 각 성도들은 다른
성도들에 대하여 마치 자신의 몸을 보살피듯 겸손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며 인격적인 유대 관계와
교제를 통해 온전한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이 교회 공동체가 온전한 성숙을
도모할 수 있으며 또 원수 사탄의 세력을 꺽을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④ 본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은 후 세상과 전혀 다른 관계 속에서 ,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것은 소극적으로는 자연인으로서 구원받기 이전의 세상과 육신을
좇던 옛 사람의 생활 방식을 벗어버리고,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거
룩함과 성령의 충만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성도의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보여져야 한다.
⑤ 이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인 사탄은 기회만 있으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성도들을 실족케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한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마귀들을 대적해야
한다. 특별히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고 마귀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한다(엡 6 : 10-20).
7. 에베소서의 그리스도
주지하다시피 본서는 넓게는 교회론(敎會論), 좁게는 '예수 안에서의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강
조하고 있는 서신이다. 즉 본서는 교회의 근거와 기준은 오직 한분 예수인 바 그 예수 안에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필연적으로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야함을 강조하고 있는 서신이다. 이는 본서에 '그
리스도 안에서'(헬, 엔 크리스토)라는 말이 35회나 언급되고 있는 사실에서 알수 있다. 실로 그리스도
(christ)께서는 교회를 구속하셨으며 또한 친히 교회의 머리가 되어 주시고 몸된 교회에 여러 은사를
공급하심으로 교회가 유지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이처럼 본서에 나타난 교회와 교회를 세우시고
유지하시는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각각
구원하신 각 성도가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상호 어떠한 자세로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 깨닫게 된다.
1) 교회를 이룬 성도를 구속하신 그리스도
태초에 제 1위 성부 하나님과 맺은 언약(창 2 : 15-17)을 파기한 인간은 죄의 노예가 되어 그
죄값으로 영원한 멸망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 1위 성부 하나님(God, The Father)은
자신의 지혜와 방법으로 인간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제 2위 성자(God, The Son)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피흘리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목제물로 삼으셨고
(롬 3 : 25 ;고후 5 : 21 ;히 9 . 22)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여 친히 십
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각 개인 성도들을 구속하셨다. 한편 교회란 결국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의
지상 공동체인 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교회 존재의 근원이 된다(엡 2'1-22).
2)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을 구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즉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만물 위에 교회(敎會)의 머리로 주셨기 때문이다(엡 1 : 20-
23). 그리스도(christ)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는 것은 그분이 교회를 대표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부활과
영광에도 함께 참예하게 된다․. 한편 그리스도는 몸된 교회의 머리로서, 육체에 속한 다른 지체들과
몸에 대한 머리의 관계처럼 생명의 근거가 되고, 또는 행동과 판단의 기준이 되시며 교회를 직접
지도하신다. 머리가 몸에서 떨어질 때 육체의 생명이 끊기는 것처럼 교회가 그리스도와의 연합(辯合)
을 상실할 때 더이상 생명력을 발휘할 수 없다.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지혜와 용기를 공
급하시므로 교회는 힘을 얻어 사탄의 세 력과 싸을 수 있으며 또한 그분이 각양 은사를 교회 에 주시므로
교회는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고전 12'1-31 ; 엡 4'7-16),
8. 에베소서에 나타난 주요 지명들
9. 에베소서의 핵심 단어, 핵심 절, 핵심 장
1) 핵심 단어 :그리스도 안에(In Christ)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본 서신의 핵심 단어는 '그리스도 안에'('7? 7ff-
7r슬 엔 크리스토)이다. 이것은 바울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 그의 전체 서신서들에는 1脚회가 나
타나며, 본 서신에만도 35회가 사용되었다. 본서에서 이 '그리스도 안에'라는 용어는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구원과 교회의 존재의 근원이 되시며(엡 1 : 7-12 ; 20-23) 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근거가
되심(엡 2 . 1-22)을 보여 준다. 이 용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본서 제 1장 자
료노트를 참조하라.
2) 핵심 절 :1:10;4. 13
․ "하늘에 있는 것에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 : 10)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4 : 13)
3) 핵심 장 :제4장
앞서 거듭 강조하였거니와 본서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라는 주제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 본
서에서 이러한 주제가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장이 바로 제 4장이다. 즉 제 4장은 앞의 교리적인 설명을마치고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교훈이 시작되는 전환을 이루는 장으로, 여기서 바울은
직접적인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촉구한 후에, 교회 연합과 일치의 근거를 설명하고 교회 안에 있는
여러 직분들은 결국 교회의 일치와 영적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직으로서 서로 유기적 연합을
이루어야함을 갇줄한다. 나아가 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해 성도 각자가 신앙 생활 가운데 보여야
할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10. 에 베소서와 현대 성도
성도들의 구원(救援)을 위한 삼위 하나님의 섭리와 교회의 일치, 부름받은 성도의 세상에서 구별된
삶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는 본서는 당시의 에베소 교회와 주변의 소아시아 교회들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죄의 담을 헐어 버리는
화해의 사역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화와 갈등의 대표적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중간에 막힌 담을 헐어 버리고 둘로 하나를 만드는 화해의 사역을 하심으로
본질상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로 연합과 일치를 이루게 하셨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하여
교회의 본질을 망각하고 극심하게 분열된 현대의 교회를에 커다란 도전이 된다. 오늘의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허물어 버린 담들을 다시 쌓아 올리는 모습들이 있지 않는지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의 인간적인 편견이나 여러 가지 욕심으로 인하여 교회가
나뉘어지고 서로의 사이에 높은 장벽들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역에 정면으로
거스리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일치라는 명분으로 불의의 타협이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것들을
경계하며 나뉘어 짐을 막고 힘써 하나됨을 지켜야 한다.
② 부르심을 입은 성도(saint)는 그 부르심 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 것은 곧 세상 속에서 의
구별된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한복판에서
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살아감을 말한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 특히
가정과 직장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현대의 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앙 생활이 어느 한 영역에만 국한될 수 없다. 그러므로 본서
4장에서 6장까지 나타나는 각 영역 속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보여야 할 모습은 현대인들 또한
따라야 할 중요한 교훈이다.
71. 에베소서의 특징
① 바울의 다른 서신이나 다른 어떤 성경에 비해 '교회론'(敎會論)에 대하여 심도 깊게 다루고
있 다.
②바울의 특징적 용어인 '그리스도 안에'(헬, 엔 크리스토)가 바울의 다른 서신에 비해 많은35회가
사용되 었다.
③몸, 성전, 신부, 병사 등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이상적인 교회상(敎會像)을 제시하고 있다.
④ 바울의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⑤ 골로새서와 내용적으로 유사하나 골로새서에 비해 교리적으로 다룬 것이 특징이다.
에베소서서론특별자료
에베소 시와 에베소 교회
에베소시(the C◎ of Ephesus)는 로마 제국의 지방 총독이 다스리는 아시아 주
최대의 도시였다. 비록 로마의 지배를 받기는 했지만 매우 자유로운 도시로 있었고,
해상 교통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의 육로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상업과
문화와 종교 등의 교류가 활발했고, 그 결과 수리아의 안디옥과 애굽의 알렉산드
리아와 더불어 경쟁을 이루는 지중해 통부의 3대 국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이곳에
세워진 에베소 교회는 이러한 에베소의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인 여건에 힘입어
양적으로. 질적으로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는 사도 바을 뿐 아니라
사도 요한(계 1 : 11) 디모데(딤전 1 : 3) 등도 활동했을 만큼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
교회의 중심 교회로 발전했던 것이다.
이에 에베소시와 에베소 교회에 관하여 간략히 나마 살펴봄으로써 본서의 배경
이해를 돕고자 한다.
1. 에베소 시(The City of Ephesus)
1) 위치 및 역사
에베소시는 소아시아의 서쪽 해안에 있는 항구 도시로서, 북쪽의 '헤르무스'(Hermus) 강 하구에
있는 서머나와 남쪽의 '메안더'(Meander) 강 하구에 있는 밀레도의 중간을 흐르는 '카이스터'(Cays-
text) 강의 하구에 있다. 한편 카이스터 강은 전자의 두 강보다 규모는 작지만 두 강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고, 또 에게 해와 접한 만(瀉)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이 강의 하구에 있는 에 베소시는 아시아의
여러 도시 중 외부와 해상 교류를 가장 활발히 할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갖출 셈이었다.
또한 에베소시에는 그 도시의 심장부를 뚫고 지나는 큰 대로가 동쪽으로 뻗어 있었고, 그 도로가
당시 정치적 ․군사적 상업적 중요성을 지녔던 도시였던 라오디게아, 골로새, 아파메아, 비시디아
안디옥, 다소와 시리아 안디옥을 따라서 연결되었다. 때문에 에 베소시는 해상 교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의 육로 교통의 중심지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동 ․서의 교차로가 되었고,
일찍부터 상업적인 번창과 동방과 서방 종교와 문화의 뛰어난 융합을 이루었다.
이 도시는 B.C.1000년경 아테네 왕의 아들 안드로클루스(Andro틴us)와 이오니아인들에 의해 건설된
후 헬라의 통치하에서 헬라의 문명을 받아들였고,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게 되었다. 그후 B.C.S60년경
루디아(Lydia)의 공격을 받았고, B.C.S46년에는 페르시아에 정복되었으며, B.C.334년에는 알렉산
더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정치적 변혁에 따라 지배자가 바뀌다가 B.C.133년
이후에는 줄곧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에베소에는 여러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어
발전하였다. 한편 에베소시가 급격히 번영을 누리기 시작한 때는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27-A.D.14년) 시대였고, 이때부터 에베소는 확고부동한 국제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이곳에는 당시의 가장 큰 규모의 아데미 신전이 있던 고대 종교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도 널리
알려졌고,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아시아 교회의 중심지로서 초기 기독교 역사에 매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2) 당시의 전경(全景)과 주요 상황
지중해 전역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로마 제국에 있어서 대륙과 해양이 접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에베소시는 매우 중요한 상업적 ․군사적 중심지였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로마와 지방 행정부와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곳에 지역적인 자율성도 부여해 주었고, 이로써 에베소는 더욱 발전하여
당시 인구 약25만명이 거주하는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유명하고 부유하며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되었다.
체베소시의 도시 구조를 살펴보면, 무엇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아데미 신전을 볼
수 있다. 에베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아데미의 숭배인 만큼 아르데미손(Artemison)이라 불리웠던
아데미 신전의 광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신전은 B.C.S59년에 지금의 터어키에 있는 아야소룩
(Ayasoluk)과 피온 산(Mt. Pion)의 두 언덕 사이에 세워졌고, B.C.356년에 전소된 후, B.C.350년경
그 폐허 위에 다시 세워졌다. 이 신전은 그 크기가 100x梨m로 1齡개가 넘는 기등을 가졌으며, 높이가
17m나 되었고,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전 뜰이 있었다. 이는 오늘날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51. Peter's Basilica) 면적의 약 2.3배나 되는 고대 세계에서의 가장 큰 건물이었다.
또한 피온 산 골짜기의 경사진 곳에는 바울을 대항하여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큰 극장이 위치해
있었다. 이 극장은 직경이 약 150m이고 약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로서, 그곳에서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정면에는 우상을 경배하는 모습이 조각되었다. 이곳에 대해서는 행 19장 자
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그리고 에베소시에는 '아르카디아네'(Ar◎diane)라 불리우는, 대리석으로 포장한 lim의 넓은 도
로가 극장에서 항구까지 600m정도 전개되어 있었다. 이 거리는 웅장하게 두 줄의 기등이 늘어서
있었고, 그 뒤에는 상점과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으며, 아름다운 이중 아취문인 하보르문(HaborGate)
이 항구와 연결이 되었다. 헬라 양식의 아고라(시장터)는 극장 남서쪽과 남쪽에 있으며, 로마 양식의
광장은 아르카디아네 북쪽에 많은 화려한 건물들과 연결되었다.
그외에도 에베소시에는 시장거리, 마그네시아 문, 공회, 목욕탕, 쿨테스 거리, 음악당 등 장대한
건축물과 도로가 있었다. 이처럼 에베소는 당시 어떠한 도시들보다 더 융성했으며 활기가 찼음과
동시에 이교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한편 바울이 복음을 가르쳤던 두란노 서원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훗날 이 시가지에 세워진 '성 요한의 저스틴 교회'나 '성모 마리아의 교회',
'잠자는 일곱 사람의 카타콤'(the Catacomb of the Seven Sleepers) 등의 기독교 교회들은 기독교가
이 이교적인 도시를 장악한 사실을 여실히 증거해 준다.
2. 에베소 교회(The Church of Ephesus)
1 ) 기원(起源)
에베소에 복음이 처음 전파된 것은 마을의 제 2차 전도 여행 중인 A.D.S0년경이다. 즉 그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등지에서 전도 여행을 마치고 유대 지역으로 돌아가는 중에 에
베소에 들러 단기간 전도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남겨 두고 떠났다(행 18 . 18-23). 그후 바울은
제 3차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를 다시 방문하여 적어도 2년 3개월 이상 머물면서 활발히 복음을
전하였다. 즉 당시 바울은 처음 3개월동안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말씀을 전했지만 유대인의 반발로
회당 사용이 불가능해지자 두란노 서원에서 약 2년동안 선교를 하며, 에베소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력을 다하였다. 바울의 전도를 받고 마술사들이 자기들의 마술책을 다 불태워 버린 사실이나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리라' 등의 표현에서도 나타나듯 이 곳에서의 바울의 사역은 매우
성 공적 이 었다(행 18. 24-26 ; 19 : 18-20) .
2) 특징 및 관련 역사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한 이후에도 에베소 교회는 디모데(딤후 4 : 12)와 사도 요한(계 1 .
11;2:4, 5)의 가르침을 받아 온 것으로 추정된다. 에베소 교인들은 초기에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을
행함으로 그들의 신앙을 모범적으로 나타내 보였는데, 이는 에베소 교회가 당시 세계 문화와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에 편승하여 소아시아 일대의 복음 전파에 크게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즉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계 2, 3장)들이 지리적으로 볼 때 에베소를 중심하여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부채 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나, 또 당시의 소아시아의 문화와 교통이
에베소와 연결되어 있었음을 통해 볼 때 당시 에베소 교회의 복음 전파가 소아시아 다른 지역으로
크게 파급되었음을 익히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에베소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에베소 교인들이 초기에는 성도간의 사랑이 풍부했으나
점차로 교회 안에는 서로 순수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여 여러 인간 관계에 심각한 갈등을 느끼는
교인들이 많아졌던 것 같다(엡 5:1;6:9) . 또 이런 사실은 사도 요한이 쓴 계 시 록에서 도 나타나는데 ,
곧 에베소 교회는 바른 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여러 시련 중에도 인내했으나 처음의 성도간의
사랑을 잃어버린 냉랭한 교회가 되버린 것 같다(계 2 . 2-4).
그렇지만 에베소 교회가 초기 기독교 시대에 매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음은 훗날 세워진 몇몇
대규모 교회의 유적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으며, 또한 A.D.431년에는 이곳에서 제 3차 종교회의가
개최되어 그리스도의 양성론(兩性論) 교리가 확정되는 등 교회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3. 의의
에베소는 바울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복음을 전파한 곳이며 동시에 가장 성공적인 선교 결과를
거둔 곳이기도 하다. 즉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때에 이곳을 방문한 이래 3차 선교 여행 때에 적어도
2년 3개월 이상, 추정컨데 3년 정도 머물며 복음을 전했다. 누가는 바울이 거둔 선교 결과에 대해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 : 1刻,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 : 20)라고 말하며 바을 적 대자들도 '바울이 에베소 뿐만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행 19. 26)라고 말함으로써 바울의 영향력을
두려워 했다.
실제로 성 경에 나타난 결과로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와 더불어 (계 2, 3장) 드로아, 맛소,
아드라뭇데노, 밀레도, 드로구리움, 히에라볼리 등 초대 교회 당시 교회들도 바울의 에베소 전도에
의한 결실들로 보여진다. 이처럼 정치 ․상업 ․군사의 요지였던 이곳은 전도의 황금 어장이었으며
이곳에서 마을의 열정적이며 회생적인 사역으로 교회가 굳건히 서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이러 한 에 베소 교회 의 모습과 바울의 활동을 통하여 비 록 이 교적 이 며 세속적 인 면모가 강한 지 역 이 라
할지라도 성령의 변화하는 능력을 힘입으면 주의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스스로는 물론 자신이 처한 모든 공동체를 성령의 능력이 역 동적으로 활동하는 공동체로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의 신속한 건설에 이바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제 1장 인사말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찬양 및
성도를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
1장 본문&자료노트 강해주석 주제, 원어&교리설교
예화 핵심 성구관주 Q. T 금 언
구속사적 개관
전 21권의 신약 서신서는 신 ․구약 성경 駱권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도의 구속(救續) 구원의 원리와 이의 성도의 실제 생활에서의 실천적 원리
및 적용에 대하여 계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본 에 베소서는 세상 끝날까지 전신약 시대 성도들의 신앙 생활의 중심이 되는 교회(敎會)를 설립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성도들의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질에 관한 신학적 원리, 그리고 교회 성도들간의 온전한
일치(一致)와 연합(聯合) 및 성도 개개인의 신앙 생활과 관련된 실천적 교훈들을 기륵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서가 기록될 당시는 A.D.30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숭천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초대 교회가 태동되기 시작한지 불과 30여년 정도 지난 때로써 아직까지 교회
조직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은 교회관(敎會觀)조차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한 때였다. 특히 이때까지만 해도 기독교와 유대교의 본질적 차이가 세인(世人)들에게
분명하게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이 함께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인해 초대 교회는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여러 지역의 교회들에게 을바른 교회관을 심어주고 교회 안에서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가 일치하여 함께 화목하는 가운데 신앙 생활하도록 하기 위해 교회의 본질에 관한 신학적
원리와 그에 입각한 교회 생활에 관한 제반 실천 사항들을 본서를 통하여 교훈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본서를 시작하는 첫 장인 본장은 한 장 전체가 다 본서의 도입부에 해당한다.
이러한 본장은 본론 전반부 2 : 1-3 21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 성도의 지위와 유기적 공동
체로서의 교회의 본질에 관한 신학 원리를 언급하기에 앞서 성삼위 하나님의 인간 구원 사역에
대한 찬양과 함에 간접적으로 교회와 관련된 몇 가지 사실들, 곧 성도 개개인에 대한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 섭리와 그들을 교회의 구성원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성도 각자가 소유하기를 간구하는 바울의 중보 기도를 기록하고 있는 부분이다. 좀 더 상술하면 먼저 전반부 1, 2절은 공식 문안 인사로 본서의 수신자 및 발신자, 그리고 사도권에 근거한 바울의 축도를 기록하고 있다. 중반부 3-14
절은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찬양과 함께 교회의 구성원들인 모든 성도들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救續) 사역에 의해 구원받은 자들임을 기록함으로써 결국 교회의 근원(根源)이
삼위일체 하나님임을 시사하고 있다. 후반부 15-23절은 삼위 일체 하나님이 성도들을 구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각 성도들에게 약속된
축복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갖도록 기원한 바울의
증보기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내용의 본장을 구속사적으로 개관해 볼 때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실로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구속(救蹟)의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천국
구원이 확정된(요 3. 16;5:24) 성도들의 유기적 공동체인 교회는 원대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실로 태초 아담의 타락 직후 제 1위 성부 하나님(God, The
Father)이 세우신 구속(救蹟)의 법은 구약을 관통하여 각종 예언과 예표(sign)로 주어져 오다가
제 2위 성자 하나님(God, The Son)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 수난으로 일단 성취
되었다. 그러나 오고오는 세대의 모든 택한 성도들이 주의 구속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을 충분한 시간의 확보를 위하여 주의 구속 사역이 완전히 실현되는 것은 세상 끝날 주의 재림과 전우주에 대한 심판 이후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천국으로 유보되도록 섭리되었다. 그
리하여 구속의 법이 예수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구약의 성취로 초림하신 주님은 일단 구약(舊約)의 말씀대로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고 세상 끝날에 이루어질 당신의 재림과 그
이후의 천국 구원에 대한 새 약속 곧 신약(新約)을 남기시고 일단 승천하셨다.
그리하여 이제 예수의 초림으로 개시된 같은 신약시대이기는 하되 예수께서 직접 세상에 계시던
때 와는 달리 주께서 일단 구속 사역을 성 취 하시 고 승천하신 이후 그리 고 구속 사역 이 최종 실현되 는 역사 종말까지의 장구한 중간기의 구속사(救續史)가 전개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에는 비록 구속 사역의 결과가 최종적으로 온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예수의 사역으로 구속 사역 자체가 성취되기는 하였는 바 그 결과 근본적으로 인간과 하나닌의 관계를 단절하던 죄의 문제가 법 적으로는 해결되어 인간과 하나님이 교제할 길이 열렸다(히 4 : 14-16). 그리하여 제3위 하나님 (God, The Holy Spirit)이신 성령께서 오순절 강림 사건으로 역사속에 임 하였으며 향후 각 성도의 심령속에 내주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성도는 택한 성도의 모임인 교회(敎會)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영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후반부 15-23절에 기록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 속에서도 기록된
바 우리 모든 성도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구원받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여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깊은 구속사적(救讀吏的) 통찰력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고리고 교회와 교회의 구성원들인 성도들의 구원(救援)에 관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태초에 세우신 구속 계획에 따라 지금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도하게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은 실로 그리스도께서 신약(新約)으로 약속하신 대로 교회의 구성원들인 각 성도들에게 장차 천국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반드시 주어질 것에 대한 보증이 되는 것이다(1 : 14, 18 ; 롬 8 : 18),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일치하며 화목하는 신앙 생활을 영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1장 본문&자료노트
원어연구- 보감-
신학용어- 인물연구-
신학용어- 지리배경-
지도-1:1, 에베소의 위치
도표-1 : 1-14 본문에 묘사된 하나님
1 찬송 받으실 주(3절)
2 영적인 복 주시는 주(3절)
3 창세 전부터 우리를 택하신 주(4절)
4 우리를 아들로 삼아주신 주(5절)
5 우리에게 거 저 은혜주시는 주(7절)
6 우리를 구속하신 주(7절)
7 기쁘신 뜻의 비밀을 계시하신 주(9절)
8 만물을 통일되게 하신 주(10절)
9 모든 일을 뜻대로 이루시는 주(11절)
10 우리를 인치고 보증하신 주(13, 14절)
신학용어-1:7 '그리스도 안에서
이 용어는 전 27권의 신약 서신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표현 중 하나로서 바을
서신서에서만도 무려 1訓회나 사용되었
다. 이는 특히 엡 ․빌 ․ 글 은 등의 옥
중서신 가운데 많이 등장하며 가장 많
게는 에베소서에 30회나 사용된다. 이
처럼 이 용어는 신랴 성경의 주요 단
어로서 바울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 줄
뿐 아니라 기독교 구원론의 관된을 함
축적으로 암시하는 용어이나.
1. 용어의 정의
'그리스도 안에서'(료 chri덟)라푸 용
어는 신약 서신서에서 매우 다양한 의
미펄 사용되었으나 이를 대략적으로 뚠
류해 보면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압축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는 사죄(․純.온)
의 근거로서의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법
적 연합을 나타낸다. 즉 이는 성도가
죄없으신 톰으로 성도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음
으로 그와 법적 연합을 가짐으로 사죄를
얻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툴째,
이뜬 성화(빗77)의 ◎거로서의 그리스
長.와 성도와의 영적 연합을 나타낸다.
즉 이는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성화의 삶은 오직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악의 영 적 연합을
근거로(롬 8 1-11), 또 그것을 통해
서만(갈 2'20) 가능함을 보여 주는 것
이다. 특히 이 영적 연합은 그리스도와
성도 양자가 하나님 앞에서 법적 音동
체를 이루는 것으로 그치는 법적 연합
이상으로 성도가 유기적으로 그리스도
와 견합하여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호흡하며 생활하는 그리스포와
의 실존적 ․ 신비 적 연합을 말한다.
한껸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은 물론
이와 관련된 주요 신학 주제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롬 5장 연구자료를 보라.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복
? 천각의 신령한 복을 받음(엡 1 3) 2 참새전에 택할 받음(엡 1 : 4) 3 하나닌의 턱친심을 받음(닌후 1 9) 4 ◎속을 얻음(롬 3 . 24) 5 사죄 함을 얻음( 엡 4 : 72) 6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게 됨(롬 7:1, 2) 7 하나넋께 대해 간 자가 ◎(롬 6 11) 8 영적 생명을 얻음(엡 1 : 料) 9 새로운 피조물이 될(고후 5 : 17) 10 하나님의 아톤이 뇔(간 ? 77) 11 남대 함을 가짐 (몬 1'a) 12 평안함을 언류( 몰 1 : 20) 13 정욕을 십 자가에 뭇박음(갇 5 : 24) 14 다른 성 도들의 잘못을 용서 함(엡 4 : 3f) 15 르리 스포 안에서 만 자랑함( 빅 1 : 26) 16 경건하게 삶(덖考-3 : IS) 17 선한 인을 행 한( 엡 2 : 17) 18 고난받음(살전 2 : 쩠) 19 띤음이 온전해 됨(굘 1 : f8) 20 천◎? _7친을 얻음( 님 후 ?'10)
3. 의의
기독교 구원 신학의 핵심을 한축져으
로 나타내는 '기리스도 안에서'(In rh-
n.it)라는 맡을 통하여 먼저늘 또든 성
틴는 우리의 존재의 판거가 리 시며, 또
칭의와 성화 곧 우리 전 수원의 원동력이
되 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인시을 새롭게
하여야겠다. 농시에 육신의 정욕과 안
목의 정은와 이 생의 사랑을 좇으며 .-?
리스도를 떠나 살려고 했던(요일 2 : IS,
16) 과거 우리의 그룻된 삶의 태도를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
아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현재 나
자신의 위치를 돌이켜 보게 된다.
강해주석 145
원어연구-1 : 4, 택하사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엑셀렉사
토'(777Aff7r? )로서, 기본형인 '에
클레고'(77A777)의 부정과거 중간태
7177.
'에클레고'는 전치사인 '에크'(77)
와 동사인 '레고'(Afl7)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합성어로 문자적인 의미는
'골라내다'(choose out), '집어내다'
(prick out)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나 사물로부터 밖으로 분리되어 나
감을 뜻하는 '~밖으로'(7ut from)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와 '모으다'(ga
thor), '고르다'(eleft). '말하다'(say,
마 1'20), '부르다'(call, 마 2 : 23)라
는 뜻을 가진 '레고'가 합척진 것으로,
어떤 사람을 어떤 집단으로부터 불러
밖으철 끄집어 내었다는 의미가 있다.
한편 본문에서 '에클레고'는 과거에
단 한 번 있었던 일을 나타내기 위해
부정과거형으로 쓰였으며, 또 자기 자
신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였음을 나
타내기 위해 중간태형으로 쓰였다. 따
라서 '엑셀렉사토'는 자기 자신을 위하
여 어떤 장소나 사물에 속해 있던 것을
불러서 밖으로 끄집어 내어 구별시켰다
는 함축적인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엑셀렉사토'는
과거에 이미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위
하여 자기 백성들을 세상으로부터 불러
내어 구별해 두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여기서 '과거'란 '창세(刻곽)
전'을 가리킨다.
이 단어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가 하
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어떤 자격이나
조건 때문이 아니라 태초에 이미 우리를
택하닌 하나님의 은총에 따른 섭리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도표-1 22: 23 만물과 그리스도의 관계 골 1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1 : 22, 23 주의 몸된 교회와 성도의 관계 엡 4장 자료노트 참조
1장 강해주석
1:1, 2 문안 인사
1:3-14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 찬양
1:15-23 성도들의 영적 성숙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
1
1 : 1, 2 문안 인사
바을 서신은 대체적으로 시작하는 말, 본론, 끝맺는 말의
고대 서신의 전형적인 형태를 취한다. 그리고 시작하는 말은
다시 공적인 문안 인사와 찬양. 감사 기도의 전형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제17권 서신서 개론의 '구조적
특징' 부분을 참조하라. 본서 역시 이러한 구성 형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하에서 본장은 본서의
시작하는 말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1. 2절은 공적인 문안
인사를. 3-14절은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찬양을.
그리 고 15-23절은 에 베소 성 도들을 향한 바울의 중보 기도를
각각 언급하고 있다.
이제 문안 인사를 언급하고 있는 본문을 보면 바울의 다른
여 러 서신서 들과 마찬가지 로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고(1절)
축복의 말을 하고 있다(2절). 이러한 문안 인사의 형식은
역시 바을 서신서의 전형적인 형식(갈 1 1-5 ;골 1 1.
2)으로 고대 서신의 관습적인 형태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런데 바을은 그의 서신서 에서 공통적으로 발신자로서 자
신의 이름을 밝힘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이라는 또하나의 전형적인 자기 소개법을 사
용하고 있다. 이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의 신적 권위를
강조함으로써 그의 권면이 자신의 사사로운 교훈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임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한편 본서의 수신자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들이 있는데.
본서는 대체로 에베소 교회를 중심한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보내어진 '회람 서신'(回覽書信)으로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
전파에 힘쓴 바울에게 있어서 에베소와 그 주변의 소아시아
지방은 잊지 못할 사역지 중의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에베소는 그가 3차 전도 여행시에 3년간이나 주재하면서
목회 를 했던 곳(행 19장)으로 그에 게는 감회 가 깊은 곳이 었다.
그런데 당시 에베소클 비롯한 소아시아 지방의 대부분의
교회들 내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공존하고 있었으므로 늘
분열의 위험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를 염려하던 중에 바울은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에 대
해서는 엡 서론. '신학적 집필 동기와 배경'을 참조하라.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분열을 대비하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유기체적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의 일치와 연합을 강
조하고자 본 서신을 기록한 것이다.
1: 1 하나님의 뜻으로‥‥사도된 바을. 발신자의 자기
소개로, 사도직에 대한 바울의 신성한 자의식이 뚜켠
하게 드러나고 있다(고전 1:1;고후 1:1; 갈 1:1;
골 1 1). 고전 1 1 주석 참조. 그런데 이와 같이
발신자를 먼저 밝히고 수신자와 축복 등을 말하는 것은
고대 서신서의 일반적인 양식이다. 또한 바울의 서신서
중에 발신자를 자기 이름만을 단독으로 밝힌 것은 본
서와 로마서뿐으로 그외 그의 다른 서신서 에는 모두
다른 사람의 이름이 발신자로 함께 언급된다. 한편
여기서 '사도'(7πdfrOAOT , 아포스톨로스)는 '보내
다'라는 뜻을 가진 '아포스텔로'(凉繼桃껼긴낀)에서
유래된 말로 '사자'(빌 2 25), '보냄을 받은 자'란
의미를 갖는데, 본래는 왕이나 권세자의 권한을 위임
받아 특정한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송된 자를 가리
킨다. 성경에서는 만왕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의 자격으로는 ①주님께서 친히
임명하신 자(막 3 : 14), ② 요한의 침례로부터 승천시
까지 예수와 동행한 자(행 1 : 21), ③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자(행 1 : 22) 등으로 성경에서 '사도'란 보통
예수의 12제자만을 가리키는 칭호였는데 점차 그 개념이
확대되어 주께 직접 임명되지 않은 '바울'과 '바나바'
(행 14 : 4, 14), '실루아노'(살전 2 : 6), '주의 형제
야고보'(고전 15:7;갈 1 . 19) 등도 '사도'라 욜리워
졌다. 물론 바울은 바나바, 실루아노, 야고보 등과는
달리 주님에 의해 특수한 방법으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서는 행 9 : 15, 16 주석을 참조하
라. 또한 '사도'의 일반적인 의미와 관련해서는 행 1장
자료노트 '사도의 이해'를 보다 참조하라. 그리스도
예수. 대부분의 권위있는 사본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난다. 그러나 바울의 후기 서신인 본서를 비롯한
옥중 서신에는 '그리스도 예수'로 많이 나타난다. 사실
순서의 차이에서 의미상의 차이는 발견할 수 없고 상호
교호적으로 사용된다. 다만 '예수'가 먼저 나타날 때는
인성이 보다 강조되며, '그리스도'가 먼저 나타날 때는
신성이 보다 강조된다. 한편 '그리스도'와 '예수'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마 1:1 주석을 참조하라. 에베
소에 있는 성도들과‥‥신실한 자들. 수신자에 대한 언
급이다. 여기서 '성도'(遣벗O? , 하기오스)는 종교적
경외심을 뜻하는 '하고스'(7γor )에서 유래된 말로
'신성한 자', '봉헌된 자'란 의미를 지닌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바천진 자', '구별된 자'의 의미로 제사장과
같이 기름부음 받아 성별된 자를 가리키기도 하고 이
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하였으나(신 33 : 3),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 즉 영적 이
스라엘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거듐남을 받은 자, 세상으로부터
성별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
(Hodge). 다음으로 '신실한 자'( πf7:r(릇 , 피스토스)
는 '믿다', '신뢰하다', '의지하다'의 뜻을 가진 '페
이도'(π7招7)에서 유래된 말로 '믿을 만한 자', '신
임하는 자' 등의 뜻을 지닌다. 그러므로 본절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들임을 시사한다. 한편 일부 권위 있는 고대
사본(시내산, 베자 사본)에는 '에베소에 있는'(i?'E7-
i77, 엔 에페소)이라는 말이 없다. 때문에 본서의
수신자가 에베소 교인들이 아니라는 견해들이 제시되
었다(Orison, Goodspeed. Ab◎餘, Scott). 그러나 대부
분의 사본들과 학자들은 본서 의 수신지 로 에 베소 교회 를
지지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 그리스도와 성도가 성령
침례로 인해 신비적 결합을 한 상태를 지칭하는 표현
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 '그리스도 안에서'
를 보다 참조하라.
1:2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이
그의 대부분의 서신서 에서 사용하고 있는 축도의 전형
적인 형태이다. 여기서 '은혜'(r70ff , 카리스)는
'총애', '호의'의 뜻을 갖는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며 값없이 주시는 죄인에 대한 구원의 은혜'
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다(갈 1 : 3, 6, 15 ; 딤전 1 :
2, 14). 또한 '평강'(e쑤7i7? , 게이레네)은 '합하다',
'연결하다'의 뜻인 '에이로'(틴즌7)에서 유래되었으며
'평화', '화평', '일치'의 뜻을 지닌다. 이 말은 구약
히브리어 '샬롬'(n17☞, 꽐름)의 개념을 나타내
강해주석 147
는 신약 용어로 전쟁에 반대되는 의미의 '평화'보다는
구원의 은혜의 결과로 주어지는 영적인 의미의 평화,
즉 하나님과의 평화또는 화목을 나타낸다. 한편 은혜를
비는 것은 헬라인들의 풍속이며, 평강을 비는 것은
유대인들의 풍속이다. 결국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의 사
도된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의 간격을 초월하여 그리
스도인의 새로운 인사법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유대
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간
접적으로 시사한다. 하여튼 이와 같은 '은혜와 평강'은
본서신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본서신에서 바울은 하나
님과 죄인들과의 '평강'뿐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은
혜로 인한 성도들간의 평강을 강조하고 있다(엡 4 : 3).
1:3-14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 찬양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고 축복의 말을 함으로써 공적인
문안 인사를 마친 바울(1, 2절)은 이제 본문에서는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양하고 있다. 사실 본서는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기 위해 쓰여찐다. 그래서
본서는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의 일치와 연합에 초점을 맞춘
교회론(敎齒論)이 그 중심을 이룬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중심 주제를 다루기에 앞서 일종의 서른격으로 본문을 통해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 한 본문을 보면 교회 의 구성 원들인 성 도의 구원을 위 한
성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3-6절). 보혈로써 인간 구원의
역사를 친히 이루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7-12절),
인간 구원을 인치시고 보중하시는 성령의 사역(13, 14절)을
순차적으로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찬양의 내용은
결국 성도 개인의 지위와 성도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의
근원이 성부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사실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및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와 성령의
인침을 통한 성도 개개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구속 효과의
적용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우리의 인간적인 의지나 어떤
노력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한편 여기서 '예정'(predestination)이란 인간의 구원에 관
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가리키는 말로, 이미 창세 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의해 성도가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을 가리킨다. 이런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관련해서는 그랜드 종합 교리 '신론' 중 '하나님의 예
정' 관련 부분을 보다 참조하라. 즉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파괴되고 분열된 인간의 세계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
키시고 통일시키려는 계획을 세우시고 당신의 주권으로 당
신의 백성들을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 이러한
구원 계획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
자가의 구속 사건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대
속의 죽음을 죽으심 으로써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죄에서
구속하겼으며.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하
늘의 기업을 얻게 하셨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그들을 인
치심으로 구원의 확실한 보중이 되게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구원은 삼위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이다.
그런데 삼위 하나님께서 이처럼 당신의 백성을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선택하시며 십자가에서 구속하심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
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그 무한하신 영광을 찬양케 하기 위
함이다(6. 12, 14절 ;시 1齡 : 3 : 113 3 ;사 43 : 21 ;계 5 :
12, 13). 이러한 사실은 성도들의 營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의 영광을 찬양하는 데 맞추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1 : 3찬송하리로다. '찬송하리로다'( ,율로게토스)는 '칭찬하다', '찬양하다'. '축복하다'의
뜻을 가진 '율로게오'(e닌oγf7)에서 유래된 말로
'칭찬받은', '축복받은', '찬양받을 만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본절에서 이 말은 단순히 '찬양받으실'
의 뜻을 넘어 '찬양받으실 가치가 있는'의 뜻을 가지
는데(Ab◎散), 이는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
당한 분이심을 시사한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하늘에 속한'( 7π07f77fOT , 에푸라니오스)은 '위
에'의 뜻인 전치사 '에피'(7πff)와 '하늘', '하늘 세
계', '천국'을 뜻하는 '우라노스'(077α77? )의 합성
어로 하나님의 축복의 장소를 나타낸다. 그리고 '신령한
복'은 하나님의 축복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로, 그 의
미 는 다음 두 가지 로 해 석 될 수 있다. ① 물질적 인 구약
시대의 복에 대하여 신약 시대의 영적인 축복을 의미
한다(Grotius, Ch틴sostom, Ma成night). ⑦성령을 통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의미한다(Vincent, AHord, Cla-
rke). 본장에서 사도 바울이 성부, 성자, 성령의 구속
사역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기록하고 있음을 볼 때
여기서의 '신령한 복'은 죄인의 구원과 관련된 복으로
보아 ②의 의견이 더 타당하다고 하겠다. 한편 그것들이
신령한 것은 영혼과 관계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으
로부터 유래한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의 내재하심과 그
영향력을 행사하심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커다란 복인 것이다(Hodge). 이러한 '신령한 복'에는
'부활의 소망', '불멸의 약속', '천국의 약속' 등이
내재되어 있다(The떳oret). 우리에게 복 주시되. '복
주시되'(e닌oγ77:α』 , 율로게사스)는 '잘', '좋게'
'을게'의 뜻을 지닌 헬라어 '유'(77)와 '말씀', '진술'
의 뜻을 지닌 '로고스'(A7γoT)의 합성어인 '율로게
오'(e닌7γi7)의 제 1부정과거 능동태 분사로서 '칭
찬하다', '축복하다', '찬양하다', '은총을 베풀다'의
의미를 갖는다. 한편 '찬송하리로다'(7談071◎ ,
율로게토스)가 이 단어에서 유래된 사실에서 성도들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은혜와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 수 있다.
1 '긱 본절에서 6절까지는 3절의 '신령한 복'의 구
체적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그 유명한 예정 교리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예정과 관련하여 이 세 절이 함
축하고 있는 내용을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예정의 근거 하나님의 기쁘신 뜻(5절) 예정의 시기 창세 전(4절) 예정의 방법 그리스도 안에 서 (4절) 예정의 이유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4절) 예정의 내용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5절) 예정의 옥적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6절)
한편 예정 교리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그랜드 종합 교리 중 신론, '하나님의 예정' 관련 부분을
참조하라. 창세 전. 하나님의 예정의 시기이다. 이 때는
148 에베소서 1 장
모든 우주의 역사 이전으로 인간의 시간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때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죄인에 대한 선택의
때가 '창세 전'임을 밝힘으로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의
깊이와 그 넓이의 무한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예정의 방법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i? Xff7:l푸 , 엔 크리스토)는 바을 신학의 기본 전
제요 핵심 사상을 나타내는 말로 그의 서신에서 1龍회나
사용되었고 본서에서만도 36회 이상 쓰여진 바울의 애
용구이다. 본절에서는 바울의 구원론의 전제로서 이
구절이 사용되었다. 즉 하나님의 창세 전의 택하심의
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 안에서 하
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죄인들은 구원의 복을 받게 된
것이다. 아울러 이 말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선재성
(先在性)을 나타낸다(골 1 15, 17). '그리스도 안에서'
의 의미와 관련해서는 본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우
리를 택하사. 여기서 '택하사'( ◎7Ai7αrO , 엑셀렉
사토)는 '선택하다', '고르다'는 뜻의 '에클레고'(iN-
Ai77)의 부정과거형 동사로, 하나님의 선택이 과거의
단회적 사건임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선택은 그의
주권에 의해 창세 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한편
'엑셀렉사토'는 예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실 때(요 6
70 , 13 : 18)와 가를 유다를 대신할 자를 선택할 때(행
1 : 24)에도 사용되었는데, 결국 이 단어는 ① 많은 것
중의 택함과 ②그와 아울러 많은 사람의 유기(遺棄)를
내포한다.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
나님의 예정의 이유로, 그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①
'도덕적 선'이라는 견해(Calvin, AHord, Ab◎It)와 ②
'하나님 앞의 성결한 삶'이라는 견해(Zahn, Meyer)가
있으나 대체로 전자가 일반적인 견해이다. '거룩하고'
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택한 적극적인 이유라면, '흠이
없게'는 소극적 이유라 할 것이다. 한편 '거룩하고 흠이
없게'라는 말이 이 세상에 사는 성도들의 완전한 의
로움을 시사하지는 않는다. 성도들은 비록 예수 그리
스도로 말미 암아 구속의 은혜 를 입었다고는 하나 여 전히
죄성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흠하
거나 무죄할 수 없다. 다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자로 취급되는 것 뿐이며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곧 종말에 이루어진다. 이 종국적인 완성이 바로 하
나님의 선택의 이유인 것이다.
1 : 5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의 근거를 나타내 주는
말이다. 여기서 '기를'(77707◎ , 유도키아)은 '좋
은'(73, 유)과 '의견'(7077f, 도코스)의 합성어로
'선한 의지', '선한 기쁨', '즐거움', '소원'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러한 단어의 의미에 의해 이 말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한 의지,
즉 소망을 뜻한다는 것이며(Ch틸sostom, Calvin, Me-
rer, AHord), 둘째는 하나님의 즐거움, 즉 만족을 의
미한다는 것이다(Beza, Harness). 그런데 이 두 가지
의견은 서로 대치된다기 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의한
것은 또한 하나님께 기쁨과 만족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의지인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
았다. 즉 하나님께 기쁨과 만족의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창 1 : 31).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의 예
정이 사람의 그 무엇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서만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를 예정하사.
'예정하다'( npoo길전? . 프로오리 조)는 '전에', '먼
7', '앞서서' 등을 의미하는 헬라어 '프로'( Rp? )와
'결정하다', '확정하다', '경계를 짓다' 등을 의미하는
'호리조'( 77딘? )의 합성어로 '미리 결정하다','~
의 운명을 미리 정하다'의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본문에서는 이 말을 부정과거형 분사로 사용함으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예정이 단회적 사건이며 그 결
과가 계속적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 예정은 하나님의
선택의 근거가 되며 논리적으로 선택보다 앞선다. 그
러나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에서 이루어진 선택과 예정의
사건은 시간적으로는 우선 순위를 생각할 수 없으며
같은 일의 표리(表裏)와도 같다.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정의 내용이다. '아들되게 하다'(7;0θ7-
77'α, 회오데시아)는 법정 용어로, 양가 입양을 나타
내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양자 입양에
비유한 것은 당시 로마법을 반영한 것으로, 로마법에
의하면 양자는 중인을 통하여 한 가족이 되고 참 아들과
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졌다고 한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하여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고
아들의 특권과 의무를 주신 것이다. 따라서 성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며 성도들 각
자에게는 다만 믿음이 요구될 뿐이다(요 1'12 ; 름 8 :
15) ,
1:6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4절의 '그리스도
안에서'(7? Xff訓◎ , 엔 크리스토)와 같은 뜻이다.
이처럼 바울은 하나님의 예정과 구원 교리를 언급하면서
계속해서 '말미암아', '안에서'의 전치사를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의 그리스도 중
심의 신학 사상이 잘 드러난다. 거저 주시는 바. 아무런
조건과 대가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의
특성을 보여 주는 말이다.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정의 종국적 목적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고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로 거룩하고 홈
없게 하려는 것이지만 보다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은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찬미의
대상임을 깨닫게 한다.
1 : T그리스도 안에서‥‥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구속'(7πOA71P777? , 아플
뤼트로시스)은 본래 노예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사서
해방시키는 것을 뜻하던 말이다. 이것이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므로 그들을 죄와 하나님의 진노에서 해방시키신
사실을 가리 키 는 말로 사용되 었다(고전 6 . 20;7. 23) .
한편 본절은 이러한 구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루어졌
으며, 그 동기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이고 그 방
강해주석 149
법은 '그리스도의 퍼'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 : 8모든지혜와총명. 본절과 관련해서는①복음의
일반적 별칭(Calvin, Beza), ② 하나님으로부터 죄사
함을 받을 때 오는 선물(Bengel, Meyer), ③ 하나님의
속성(Grotius, Afford)이라는 견해가 있다. 문맥상 ①
②의 견해가 합당하다. 한편 '지혜'( 707◎ , 소피아)
와 '총명'( 솔킨7777ff , 프로네시스)의 차이에 대해서
는 '지혜'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관련된 것을 가리
키며 '총명'은 인간 생활과 관련된 것이라는 견해(Pillo)
와, '지혜'는 사물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지식이고
'총명'은 지혜의 속성 또는 결과를 가리킨다는 견해(Vi-
ncent)가 있는데 이 두 가지를 엄밀히 구분하기는 어
렵다. 하여튼 성도들에게는 지혜와 총명이 넘치게 주
어지는데 바로 이러한 지혜와 총명으로 세상의 역경과
시험을 견디며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9절). 우
리에게 넘치게 하사, '넘치게 하다'( π7pf7777脚 ,
페릿슈오)는 '풍부한', '지나는'의 뜻을 가진 '페릿소
스'( π7ff7토긋 )에서 유래된 말로 '풍부하다', '넉넉
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어진다. 본문에서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지혜와 총명이 성도들을 구원하고 성화
시키는 데 충분함을 묘사하고 있다.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비밀'
(긴77r77f0? , 위스테리온)은 '비법을 전수하다',
'비밀을 전하다'의 뜻을 가진 '위에오(틸7i7)에서 유
래된 말로 '신비' 또는 '비밀교리'를 가리킨다. 본문
에서는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는 명확하게 계시하시지
않았다가 예수 그리 스도로 말미 암아 계시 하신 그의 구원
계획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그리
스도 안에서의 만물의 통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10
절).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러 예정하신
것이니. 여기서 '경륜'( Oi7070길◎ , 오이코노미아)
이라는 말은 '청지기가 되다', '관리하다'의 뜻을 가진
'오이코노메오'(0◎070길i? )에서 유래된 말로 문자
적으로는 '청지기직'을 가리키나, 일반적으로는 '관
리', '경영', '행정'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구속 역사를 계획하고 진행하시는 것을 뜻한다.
한편 여기서 '때'(7α린◎ , 카이로스)는 어떤 결정
적인 순간을 나타내는 말로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戚肉身)으로 인류 구속의 대업이 실현된 때를 가리킨다
(갈 4 : 4). 그 때를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는 것은 그
리스도의 구속이 어떤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원 계획의 성취임을 보여 준다.
1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響에 있는 것. 본절에
대해서는 ① 유대인과 이방인(Locke, Koppe), ⓒ 구
약시대 성도와 신약 시대 성도(Beza, Flatt), ③ 하늘의
천사와 땅의 사람의 영(Ch틴sostom, Origen)을 가리킨
다는 해석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을 어떤 특정한 것으로 보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범우주적이고 영 ․육을 포함한 구속의 광
대한 범위를 가리킨다고 봄이 좋다.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통일되게 하다'(77α777αAα7d? , 아나
케 팔라이 오오)는 '머 리 ' . '두목'을 뜻하는 '케 팔레 ' (77-
7αA7)에서 유래된 말로 '모으다', '요약하다'의 뜻을
갖는다. 즉 다양한 것을 한 머리 아래 다시 하나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Barth, Robinson, Abbott), 본문
에서 는 하나님 의 선하신 뜻 아래 조화롭게 창조되 었으나
죄로 말미암아 혼란하게 된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죄의 영향을 제거하고 그리스도 아래로 모든
것을 모아 조화롭게 회 복시 키 는 구속 사역 을 의 미 한다.
1'71 우리가 예정을 입어‥‥기업이 되었으니. '기
업이 되었으니'(i7◎낀쏘街◎7? , 에클레로데멘)는
'기업을 얻다'. '제비를 쁩다'의 뜻을 가진 '클레로오'
(7A7P77)의 단순과거 수동태로 '제비뽑아 결정하
다', '제비뽑아 얻다', '몫을 받다'는 의미가 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비뽐아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것을 의미했으나(민 34 : 14 ;신 3 : 18 ; 15 :
4), 신약에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천국
기업을 받게 됨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성도들이 구원받아 천국 기업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
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은혜의 선물로 주셨듯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한 것이다. 이는
본구절이 수동태로 되어있다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이처럼 예정 교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하는 데서 출발한다.
1 : 12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여기서 '우리'를 13절의 '너회'와 대조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를 유대인으로, '너회'를 이방인으로 보기도 하
나(Wetstein, Harness) 14절과 연계해 볼 때 단지 저자와
독자의 구별을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Zahn,
Salmond). 그리고 '전부터 바라던'에 대해서도 이방
인에 앞선 유대인들의 메시야 대망 사상에 대한 언급
으로 보는 견해(Beza, Grotius, Bengel)와 현대의 그리
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을 가리킨
다는 견해(De Wette)가 있으나, '우리'가 성도들을
차이없이 통칭한 것으로 본다면 이 말은 하나님의 예
정에 의해 그의 기업을 얻게 된 성도들이 그것이 실
현되기 전부터 소망 가운데 사는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 이 합당하다.
1 : 13진리의 말쏨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의 구원에 이르는 과정
이다. 즉 인간은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어 구원에 이
르게 되는 것이다(름 10 . 14 ; 갈 3 : 2). 한편 복음이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은 구약이 예시하는 실제이자
이방 종교의 사술과 달리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
부터 누차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사 32 '
15;桃 : 3 ;겔 36'26;을 2 : 28;슥 12 : 10), 그리스
도께서도 이를 거듭 확증하셨다(요 7. 39; 14 : 16).
그러한 약속에 따라 성령께서는 예수의 숭천 이후에
강림하셨다(행 2 1-4). 한편 여기서 '인치심을 받았
15G 에베소서 1 장
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스프라기스데테'(i77f-
αγ◎θ7r? )는 '봉인', '도장', '인장'의 뜻을 가진
'스프라기스'( e◎◎γ◎ )에서 유래된 '스프라기조'
(에◎齋γ考? , 인치다. 중명하다. 봉인하다)의 수동형
이다. 그런데 인치는 것은 보통 ① 문서의 진실성을
보존하거나(에 3 : 12) ② 자기의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 한 조치로(아 8 6) 여 기 서 는 하나님 께 서 우리를 그의
소유로 표시하신 것을 가리킨다. 유대인은 할례로써
선민의 표식을 삼았고 이방인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기호를 몸에 표지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는 육신이 아닌 보이지 않는 마음에 성령으로 하
나님의 소유가 된 표지를 받는다(롬 8 : 16;요일 3 .
14). 실로 성령의 내주는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
었다는 표식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성령의 내주
하심의 외적 표지로 침례를 받는다(Foulkes).
1 : 14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중이 되사. '보중'(dP-
린숫쑈7, 알라본)은 고대의 상업적 계약 문서에서 '최
초의 분할 불입금', '담보', '보중금', '공탁금' 등을
의미하던 말로 본문에서는 보증금이 보중하는 것과 별
개의 것이 아니라 그것의 첫 부분인 것 같이 성도 안에
내주하는 성령은 성도들의 천국 기업, 즉 구원의 보중이
되사 성도들이 미래에 받을 완전한 구원을 오늘날 미리
맛보게 하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성령이 구
원의 보증이 되시는 이유에 대해서는 고후 5 5주석을
참조하라.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여기서 '얻으신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포이에시스'( π7f7π0 -
쏜7ff)는 본래 '남은 것'을 의미했으나 점차 '취득한
것', '소유한 것'을 뜻하게 되었는데, 여기서는 '그리
스도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그리
스도인의 소유주로서 장차 그들을 완전히 구속하사 영
화롭게 하시며 그들로 당신의 영광을 찬미케 하실 것
이다.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삼위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노래하며 성부의 구속
계획(3-6절), 성자의 구속 성취(7-12절), 성령의 구
속 적용(13-14절)의 각각의 마지막 절(6, 12, 14절)
에서 하나님 의 구속의 궁극적 인 목적 이 구속받은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함임을 강조하고
있다.
1 : 15-23 성도들의 영적 성숙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언급하기에 앞서 그
서른격으로 교회의 구성원들인 성도의 구원을 위한 삼위 일체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해 찬미한 바울(3-14절)은 이제
본문에서 자신의 관심을 구원의 수혜자(受惠者)인 에베소
교인들에게 돌려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
이러한 본문을 보면 바울은 먼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신앙 생촬 속에서 그리스도와 이웃을 향한 신실한 믿음과
사랑의 실천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감사해 마지 않는다(15,
16절). 그리고 곧이어 바울은 脚 구훤자이신 하나님(17절)과
潑 성도들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교회의
지 체 가되 게 하신 하나님 의 뜻과 성 도들에 게 주어 진 축복 약속
(20-23절)에 관하여 성도 각자가 영적으로 통찰할 수 있기를 간구한 것이 다.
한편 이러한 본문은 우리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한다. ①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비밀을 온전히 아는
지 식은 하나님 께서 보내주신 지 혜 와 계 시 의 성 령을 통해 얻은
영적 통찰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성도는 이러한
영적 통찰력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들째. 성도는 교
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 주님의
영광스런 통치에 참여하게 된다.
1 : 15 이를 인궁7. 이 구절을 13,14절을 받는 것
으로 보기도 하나(Eadie, Meyer) 3-14절의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찬양 전체를 받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Ch◎sostom, Harness). 즉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사랑과 믿음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
속의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蠻한 사랑을.
성도들의 사랑과 믿음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표시요 증거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은 신앙의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관계로서
신앙인에게 필수적이며 상호 보완적인 것들이다. 즉
성도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며 이웃에 대한
사랑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 이
러한 믿음과 사랑의 원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밝히
보여진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이러한 성숙한 신앙
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는데 오늘의 모든 성
도들도 이러한 신앙 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것 이 다.
1 : 10 너희를 인하여‥‥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
하노라. 감사와 기도는 바을 서신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특색이다(롬 1 : 8, 9 ; 빌 1 : 3, 4 ;골 1 : 3,
9 ; 살전 1:2;살후 1 . 3. 11). 여기서 '말하노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므네이안 포이우메노스'(칠77쏘?
『7(07친7707 )는 '밝힌다'는 뜻으로, 바울이 에베소
교회와 거기에 속해 있는 개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
도한 사실을 가리킨다(Wood). 실로 바울은 에베소 교
회의 신앙과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였으며(15
절), 그들의 신앙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성도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이다(17-19절).
이러한 감사와 기도는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두 요소라 할 수 있다. 감사없는 기도는 원망에 지나지
않으며 기도없는 감사 역시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
는다.
1 IT 본절에서부터 19절까지는 바울이 에베소 교
회를 위해 한 기도의 내용이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정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
(π77수腦)는 '바람이 불다', '숨을 쉬다'라는 의미의
동사 '프네오'( π7f? )에서 유래된 말로 '바람'
'영', '성령'의 뜻을 갖는다. 그런데 혹자는 본절의
'프뉴마'를 관사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의 정신으로 해
석하기도 하나(Ch틴sostom, Theodoret, De Wette) 지
혜와 계시를 주시는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이 본문의
777? 151
문맥 상 적 합하다(Ellicott, Meyer, Vincent). 한편 '지 혜 '
와 '계시'는 성령의 역사의 특별하신 방법으로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을 이해하는 일
반적인 이해력을 나타내며, '계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나타내 보
이신 모든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여
기서의 '알다'( jπ7γf7교77? , 에피기노스코)는 '위
에'를 의미하는 '에피'( jπ71 )와 '알게 되다', '인식
하다', '이해하다'라는 의미의 '기노스코'(γf7고7'77)
의 합성어로 '정확히 알다', '충분히 이해하다'의 뜻을
지닌다. 이 단어는 바울의 옥중 서신서 에서 자주 나
타나는데(19절 ; 엡 3 : 10:4:13 ? 빌 1'9). 어떤 피
상적 지식이 아니라 경험된 지식으로 구원받은 자가
고려할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기업을 차지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께 소유되어 그의 기업이 되는 것 또한
큰 소망이요 영광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f'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 것의 세번째 것이다. 즉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의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게 하시기를
구하였는데 이 하나님의 능력은 구체적으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이다(20절 ;름 8 : 11). 한편
바울은 본절에서 동의어를 중첩하여 사용함으로 장엄
하고도 강력한 표현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묘사
가리킨다. 즉 성도들은 하나님에서 보내신 지혜와 계
시의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구속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고전 2 : 6-16).
1 : 18 본절과 다음절은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두번째 기도 내용이다. 여기서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세 가지
사항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 너희 마음눈물 밝히사.
여기서 '밝히사'( 『777r77尸f707f , 페포티스메누
스)는 '빛'에 해당하는 '포스'(◎◎)에서 유래된 '포
티조'(771린7, 비추다. 조명하다)의 완료분사 수동
형이다. 그리고 '마음눈'은 '육의 눈'과 대조하여 아
담의 범죄로 타락하여 어두워진 인간의 영적 안목을
가리킨다. 즉 바울은 인간의 어두워진 마음에(롬 1 : 21)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어 에베소 교인들이 영의 일을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했는데, 이는 어두운 곳에 '빛이
있으라'(창 1 . 3)하신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비교하여
죄로 어두운 인간의 마음에 빛을 비취시는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을 염두에 둔 말이다(고후 4:6; 벧전 2 :
9). 한편 앞절의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와 본구절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전자가
객 관적 이 라면 후자는 주관적 으로 같은 하나님 의 사역 을
묘사한 것이다.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 것의 첫번째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 예정되고
선 택 되어 부르심 을 받은 자들은 영 광스런 소망을 가지 게
된다. 그것은 그들의 구원이 완성되고 만물이 주 안에서
통일됨으로 그들 또한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롬 8 : 30) .
아마도 에베소 교인들은 성도들이 필히 갖추어야 할
세 덕목(고전 13 : 13) 가운데 믿음과 사랑은 갖추었으나
(15절) 소망은 아직 미흠했던 것으로 보인다(Hendrik-
sect).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바을이 에
베소 성도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깨닫게 되기를 기
도한 것의 두번째 것이다. 이는 첫번째인 '소망'의 구
체적인 설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그 기업'
에 대해서는 ①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차지할 기
업이라는 견해(Stott, Hendriksen)와 ② 성도들로 구성
된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견해(Zahn, Stier)가 있다.
대체로 전자가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나 후자의 견해도
'힘'( 短r? , 이스휘스) : 내적이며 본질적인 힘. ②
'강력'(꾸온◎Of , 크라토스) ' 정복하는 힘. ③ '역사'
(iyifγ77α, 에네르게이아) :신적이며, 초인간적인
힘이나 강력이 실제에 역사하는 효과적인 힘. ① '능력'
(7777尸7f , 뒤나미스) . 능력적 견지에서 본 힘.
1 : 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하나
님께서 신자들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 안
에서 역사하신 그 능력임을 보여 준다. 죽은 자들 가
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부의
역사(행 2 : 24)인 동시에 성자 자신의 권세에 의한 것
이었으며(요 10. 18), 또한 성령의 역사의 결과로(롬
8'll), 기독교의 기본적인 신앙 고백이자 핵심적 교
리이다(행 2'32-35 ;롬 8 34).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그와 연합된 신자들에게 실제
적으로 적용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백성
들의 미래의 부활의 첫 열매일 뿐 아니라(고전 15 : 20,
23) 현재의 營 속에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는
능력이 된다(롬 6 : 4). 그리고 성도 안에 내주하는 성
령은 그들의 미래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죽은 것과 같이 그와 함께
살아나 새 생명을 얻게 될 힘을 제공한다(롬 6 : 6-11 ;
8 : 12-14 ; 골 2'20;3:1). 자기의 오른편에 않히사.
시 110 : 1의 반영이다. 여기서 '자기의 오른편'이란
성부의 보좌 우편으로, 성부의 보좌와 나란히 있는
최고의 위치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으로, 본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를 우주 만물의 통치자로 삼으신 것을 가리킨다.
1 : 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 여
기에 나타나는 명칭은 성경에서 선한 천사나 악한 천
사를 구분하지 않고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천사들을 지
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롬 8 : 38 ;고전 15 : 24 ;골 1
: 16). 흑자는 여기에 나타나는 명칭이 천사의 직급을
나타낸 것으로 높은 데서 낮은 데로의 순서를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한다(Meyer). 하지 만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근거는 없다. 다만 바울은 그리스도가 이 모든
것 위에 초월해 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에
베소를 수도로 하고 있던 소아시아 지역은 천사 숭배가
152 에베소서 1 장
횡행했었는 바(골 2 : 18) 바울은 이를 염두에 두고 경
배받으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시며, 천사들은 그리
스도의 주관 아래 있음을 강조한 듯하다. 이 세상뿐
아니라오는 세상에 일컫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준으로 대칭되는 두 세대를
지칭한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두 세대 모두에서 진정한
'주'가 되신다. 모든 이름 위에 튀어나게. 예수 그리
스도께서 모든 권세 자들과 시 대를 초월하여 모든 세 대 와
사람들의 주관자가 되심을 강조한 표현이다. 실로 그
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시요, 죄로 오염된
만물을 회복시키실 재창조의 구속주시며 마지막 날의
심판주로 오실 영원하신 왕이시다(골 1 : 15-18).
1 : 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풍하게 하시고. 본
구절은 시 8 : 6을 인용한 것이다. 시 8편에서는 하나
님께서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게 하심에 대해
노래한 것인데(창 1 : 26-28) 이를 바울이 둘째 아담
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고전
15'27 ; 히 2 : 6-9) . 고전 15 : 24-28에서 는 시 8 : 6의
말씀이 시 110 : 1의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는 말씀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피조물을 하나님의 위
치에 을려 놓았던 것을 그리스도께서 구속 곧 회복시
키시어 만물이 그리스도 발 아래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를 만몰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바을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비유한다. 그런데 머리는
몸을 지배하며 통제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심을 의미
한다(Foulkes).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만물의 통
치의 기관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지배한다(계
20 : 4, 6). 이와 같이 본절은 그리스도-교회-만물로
연결되는 교회론의 웅장한 사상을 보여 주는데. 이는
본서의 가장 큰 주제 중의 하나로 엡 2 : 긴-3 . 21에서
상론되 고 있다.
1 23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
만이니라. 본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①그리스도는 교회에 의해 충만케 된다
(Calvin, Hendr泣son).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충만케 된다(Stott, Wood). ③ 하나
님의 충만하심이 그리스도 안에 영속적으로 거하신다
(Blarikie). 이 가운데 ⑦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실로
만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며, 그리스도는 하나님
의 충만(πA7077α, 플레로마)으로서 그의 몸인 교회
를 충만케 하신다(골 3 : 16). 그리스도와 교회는 단순한
통치와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내적인 연합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충만은 곧 그리스도의 충만인 것이다.
여기에 교회와 성도 각자의 존엄성이 드러난다.
1장 핵심 성구관주
1장 주제, 원어 &교리설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끼치는 능력
성도가 알아야 할 신앙의 지혜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豫定)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구분 : 교리설교
본문:1:3-14
찬송 : 31, 201, 303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예정, 곧 미리 정하셨다고 말합니다(4절). 혹자는 이러한 성경의 '예정 교리'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예정'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행 4 : 28, 30 :롬 8 : 28, 29 ;고전
2 : 7).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예정 교리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논쟁을 하기 보다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예정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이에 대해 살펴보고 함께 지혜를
얻도록 합시 다.
1. 영적 순결을 위해서입니다(4절).
본문 4절을 보면 우리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전에 우리를 잭하셨다고 말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되 단지 멸망받지 않도록 하는 것에만 머무는
그런 구원이 아니라, 더러운 죄에서 완전히 깨끗하여지고 당신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게 되도록 작
정하시고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곧 당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택한
백성도 거룩하게 하심으로써 당신과 화목케 하고 하나가 되게 하시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들은 과연 이러한 하나님의 뜻대로 순결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히려 옛 사람의 구습을 좇아
죄 가운데 방황하며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을 좇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요일 2 : 15,
16) 또 공중 권세자 사탄이 지배하는 이 죄악된 세상 풍조에 이리저리 쉽쓸려 다니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이제 우리는 결코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영적 순결은 결코 간단히 유지될 수 있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 삶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예정에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뚜렷한 의식과 진지한
태도만이 우리의 영육간의 순결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2.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0, 12, 14절).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신 최종적인 목적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 또 우리가 성결한 삶을
사는 것, 이 모든 일의 최종적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로우시며 영화로우신 분임을 온 우주
가운데 드러내기 위 한 목적과 연결되는 것입 니 다. 여 기 에서 주의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 자체를 하나님 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셔서(12절) 그의 영광을 찬미토록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입술로만 찬미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한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 인격과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 인격과 그것에서 표현되는 말, 행동 등 삶의 태도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성도에 대한 예정의 최종적인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
대신 사회 변혁이나 봉사로 대치시키려는 주장들이 있는데 이는 단호하게 거부되어야 합니다. 물론 사회
변혁이나 봉사는 매우 중요한 것이며 구원의 목적에 일면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최종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 그를 영화롬게 하는 삶을 바르게
사는 순간, 그러한 삶 자체가 바로 이 사회를 밝게 비추는 빛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할 것은 우리는
우리의 전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장소가 교회나 특정한
한 장소에 제 한되거 나, 그 시 간이 예배시 간과 같은 특정 한 시 간에 만 국한된다면 그것은 결코 성 경 이 가르치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의 현재의 삶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예정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경륜적 비밀에 속하는 예정을 우리의 이성의 논리로 잘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태초에 이미 뚜켠한 목적 속에서 예정하셨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결과, 우리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 그를 영화롭게
하기를 목적삼고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구원받은 우리의 현재의 삶은 과연 하나님의
이 목적하심에 부합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매일 우리 자신에게 물어져야 할 심각하고도 진지한 질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가운데 속한 자신의 삶의 무게를 책임있게 느껴야 할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 : 21)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
구분 : 원어설교
본문:1'4-11
찬송 : 27, 211, 322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누군가를 선택하기도 하며, 반대로 누군가에 의해 선택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선택'에는 항상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흑은 어떤 중요한 지위에 선택될
때 거기에는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인간 관계가 이러할진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자녀로 선택하신 것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더욱이 본문에서 '택하사'( 皓7Af7αr? , 엑셀렉사토)
라는 단어가 밖으로 '뽑아내다', '선택하다'(눅 6 : 13 :행 15 : 22)는 뜻의 동사 '에클레고'(77A릇? )의
제 1부정과거 중간태 직설법으로, 이는 하나님의 택함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일부에게만
은혜로 행하여 졌음을 의미함으로 그 택함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들 중에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 거룩하고 臺이 없게 하시려고(4절).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홈이 없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거룩한'(7γfor, 하기오스)이란 이 세상의 부정한 것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봉헌된'
상태를 의미하며, '홈 없는'暇◎脚친Of, 아모모스)은 도덕적 ․종교적으로 허물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뜻
합니다(히 9 : 14;벧전 1 : 19). 그러면 본래적인 죄인일 뿐 아니라 날마다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며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께 합당하게 봉헌될 수 있겠습니까? 똴만 아니라
앞의 두 단어는 결코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하나님의 신적 속성과 관계된 단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는 그 일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흘리신 대속의
피가 갖는 신적 사람과 은총, 그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는 해결함을 받으며 불완전한 인격은 완전하여
지며 하나님을 위해 바쳐질 수 있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를 자연인으로서의 연약하고 죄많은 우리들의 모습에서 찾지 말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2. 거저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미케 하시려고(6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두번째 이유는 죄인을 은혜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거저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거저 주시는 바'( 7rap◎? -
777, 에카리토센)는 '은혜롭게 하다', '값없는 은혜로 방문을 받다'(눅 1'28)는 뜻의 동사 '카리토오'
( 3:7p7rd? )의 제 1과거로서,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구원을 이미 주신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것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완료적인 것이지 미래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지금 세상에 살지만 이미 구원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와
영광을 이 땅위에서부터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하시려고(11절).
본문에서 '우리가 기업이 되었으니'( irA狂◎軌◎7? , 에클레로데멘)는 '제비를 뽐아 지정하다', '기
업이 되다'는 뜻의 동사 '클레로오'(7A껫d脚 )의 제 1부정과거 수동태로 신약에서는 이 부분에서만 단
한번 사용되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 기업을 제비를 卷음으로써 결정하였으며, 한번 기업으로 부여받은 것은 자자손손에게 유산으로 물려
졌습니다(민 36 : 4;수 14 2). 바울은 본문에서 바로 이러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이 단어를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며, 둘째 이유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영원히
유지하며 하나님 아버지가 베푸시는 영광과 부와 자유와 사랑과 평화와 행복의 극치를 누리는 신분임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이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복된 기업으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기업으로 부름받은 것을 감
사하며, 또한 하나님의 기업이 된 그분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기업으로서 영원한 보호와 영광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사랑 안에서 그의 기쁘신 뜻대로 죄인되었던 우리를 택하사 구원하시
이유를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가지 항목이 인 간편에서 충족시켜야 하는 구원의 조거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구원의 이유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구원의 조
건이라면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선택되어 구원 받았음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찬양함으로써 하나님께 보답해야 하겠습니다(14
절7.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끼치는 능력
구분 ' 주제설교
본문 ' 1 : 11․-14
찬송 : 19, 182, 405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그분의 기업이 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인침을 받고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성도들의 선택받음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특히 본문은 우리에게 예수의 복음의 능력에
대해 교훈해 주는데, 우리는 그 복음의 능즐윽 우◎긍흘 글즉보고 그로 연근 푹족극 흔늘출 긍극푼 골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에게 어떠한 능력을 끼치는지 살펴븝시다.
1 . 구원을 줍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는 기쁜 소식입니다(마 4 : 23). 곧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서 절망과 좌절과 낙심
가운데 있던 자들에게 광명을 가져다 주는 구원의 신호인 것입니다(마 4 : 16, 17). 예수께서 전파하신
천국의 복음만이 유일한 구원의 소식이요, 사망의 늪에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석서 복음을 전파하심은 믿는 자에게 멸망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복음을 들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세상을 심판하시려 함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려는 것을(요 3'16, 17) 우리들은 분명히 깨닫고 그 복음이 가진 구원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와 십자가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기억하고 주님의 복음의 능력에 다시 한 번 더 깊은 감사를 돌려야 할 것입니다.
2. 치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육간에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회를 쉬게 하리라'(마 11 : 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은
곧 우리들의 영혼과 육신을 다 평안하게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예수님께로
온 수많은 무리들이 그들의 영육간의 병을 고침받고 돌아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마
4'24 ;눅 7 : 11-16 ;요 4 : 1-26).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이 영혼과 육체를 치유하고 은혜를 베푸는 하
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이 복음을 믿고 의지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께 맡겨야 할 것입니다. 복음만
이 모든 고통을 평안하게 치유할 수 있습니다.
3. 화평을 이룹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평화의 메시지입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막혀있던 죄악의 담을 헐어버리는
화평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기에(고전 14 : 33)
원수된 우리와 화목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보내시고, 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화평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로 인해 생겼던 하나님과의 장벽을 깨뜨리시고 우리들에게 화평의 복음을 주실
수 있었습니다(엡 2'14). 그리하여 그 화평의 복음을 받아, 화목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고 나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화평케 되는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화평의 능력을 가진 복음으로 인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에게 어떠한 능력을 끼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이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 암아 어떤 영 향을 받고 있습니까 ? 이 복음은 우리 에 게 구원을 줍니다. 또한 영육간에 치유하는
놀라운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화평을 가져다 주는 큰 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믿어 그 복음의 능력 안에서 큰 은혜를 누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성도가 알아야 할 신앙의 지혜
구분 : 주제설교
본문:1.15-19
찬송 : 18, 209, 313
본문은 바을 사도가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복음의 신령한 진리를 온전히 깨닫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여기에서 바울사도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성도들간의 아름다운 교제와 화목을 도모한 에베소 교인들을 칭찬하며, 앞으로도 서로
화합함을 유지하고 더욱 깊이있게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얻도록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간절히 구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은 더욱 신령한 지혜들을 깨닫고 영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뜻을 따라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는
그러한 바울의 간구를 통해 성도들이 알아야 할 신앙의 지혜는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그 지혜를 힘입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1. 부르심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미천한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창세전부터 택하시고 예정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놀라운 은혜를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를 알고 하나님의 그 부르심의 뜻을
먼저 깨달아 그 뜻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서도 '너회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 하여 ' 라고 하지 않습니까 ? (엡 4 : 피 이 제 하나님 의 특별하신 부름을 받은 우리 는 우리를 이 악한 세상에서
택 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백 성 이 며 ,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자 하시 는 하나님 의 뜻을 따라 그에 부끄럽지
않은 정결한 양심과 순결한 믿음의 생활을 지켜 나갑시다(요일 3 : 3), 또한 영광 받으시고자 우리를 부르시고
영화롭게 하시고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골 1 : 27)를 존귀케 하는 삶으로 우리의 초점을
모읍시다.
2, 베푸신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바을 사도는 성도들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큰 것임을 알기를 구했습니다. 성도들이
구원과 영생에 이르고, 믿음 안에서 큰 역사와 능력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의 약함을 고백할 때입니다(고후 12'9). 성도들의 모든 믿음의 역사는 그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 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함으로써 이 루어지는 것입 니 다(골 1 : 29).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움직이시며, 참된 구원과 생명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 앞에 피조물된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심을 믿어야 할 것
입니다. 또한 능력의 원천을 알고 항상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믿고 나갈 때 신앙의 승리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실로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자가 진정 신앙의
지혜를 소유한 성도임을 기억하고 잊지 맙시다. 그리하여 참되고 영원한 능력의 소유자로서 악한 세력을
능히 물리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을 다하는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
3. 기업의 영광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다음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신앙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본문 18절을 보십시오.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된 성도들에게 천국의 기업을 허락하셨으며,
그 기업의 영광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이 땅에서의 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되고 풍성한 천국의 기업을
말입니다. 세상에서의 기업은 겉으로 보기에는 풍부하고 부족함이 없는 것 같으나 실상은 완전하지 못하고
영원함이 없는 빈궁한 것 아닙니까? (계 3 : 1◎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현세의
것을 추구하고 그것에서 쾌락과 만족을 느끼기 보다는, 장래 우리에게 안겨질 하나님 나라의 영원하고도
완전한 영광의 기업을 생각하고 넉넉함과 만족함의 신앙을 영위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늘
기업의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가중히 여기시는 이 땅의 것들을 과감히 끊고(엡 5's-7), 그
하늘 기업의 영광만을 사모하며 그를 위해 자신과 삶 전체를 헌신하는 을바른 성도의 자세와 자녀된 도리를
지켜 나가는 것이 지혜있는 신앙 생활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의 영광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밝히 알아야 할 신앙의 지혜가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참된 신앙의 지혜를 소유하여 을바른 신앙을 지켜 나가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그 뜻을 알아야 합니다. 장래 우리가 받을 기업의 영광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능력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온전히 알아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 같이 지혜로우며 독수리같이 용감한 신앙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이
됩 시 다.
1장 예화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 엡1 :3-7/롬3:25
무디가 어느 탄광촌을 방문하여 구원에 대한 설교를 마쳤을 때 한 광원이
찾아와서 말했다.
"무디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구원이 공짜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인데,
세상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값이 있건만 공짜라는 것이 어쩐지 믿어지지
않는군요. 뭔가 값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의 말을 듣고 무디가 말했다.
"당신은 오늘 갱속에 얼마나 깊이 들어갔습니까?"
"수백 피트나 들어갔지요."
"그렇게 깊은 곳에 어떻게 내려 갔습니까?"
"그거야 간단하죠. 승강기를 타고 내려갔으니까요."
"그럼 승강기를 탈 때 돈을 냈습니까?"
"돈을 왜 냅니까? 처음에 승강기 회사에서 자신들의 돈을 들여서 다
설치해 놓았는데요. 그냥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
광원의 말을 듣던 무디가 즉각적으로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당신이 승강기를 탈 때 버튼만 누르면 되듯이 하나
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그 대가를 다 지불하
셨으므로 우리의 구원에는 아무런 대가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승강기의 버튼만을 누르고 이용하듯이 구원 역시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 는 것 입 니 다. "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아무런 값없이 우리가 구원 받았으니 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가.
그러므로 그의 기뻐하신 뜻에 따라 거저 구원얻은 자된 우리가 어찌
그 은혜에 찬양과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있으랴.(임 택 진)
1장 금언
聾 마치 해뜰 무렵부터 해질 무렵까지 하루 종일 태양에서 빛이 오듯, 은혜는 처음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처럼 계속적으로 그로부터 오는 것이다. (2절 /조나단 에드워 즈)
聾 그리스도는 더럽혀진 세상에서 인류의 구속을 이루게 하기 위해 계획된 분이시다. 그는 가르치고 순종하며 사랑하고 죽기 위해 오셨는데, 그의 죽음을 통해 마침내 인류는 구원받게 되었다.
(4, 5절/에드먼드 드 프레센스)
聾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을 받는 것 보다는 하나님을 찬송(讚頌)하는데 있다.
(11-14절 /마르틴 루터)
聾 감사하는 마음은 상대에게 바치는 깨끗하고 향내나는 아름다운 감정의 열매이다. (16절/김말봉)
聾 그리스도의 교회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22, 23절 /5.불가코프)
1장 Q. T
1: 2 바을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
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애수 그리
스도로부터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우리도 다른 성도들에
게 세상 것으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로부터 말미암는 은헤와 평강을 늘 기
원하는 쟈가 되어야 하겠다.
聾롬1 . 7 : 벧후3. 18(塊3, 474)
1 : 0, 12, 14 주께서 우릴 구원하
신 목적은 당신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
하심이다. 과연 우리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구원의 주님에 대한 감사와 기
쁜 찬양의 샘이 끊이지 않게 하고 있
는가 ?
●사43 7:빌1 : 11(35. 487)
? : 10 서로 떠나 있었을지언정 바
울은 에 베소 성도들을 위해 계속적으로
기도했다. 우리 주변에도 혹 멀리 떠나
있는 선교사. 사역자. 군에 간 형제 등
우리가 계속적으로 기도해야 할 성도
들이 너무 많지 아니한가? 그동안 잊
고 있었다면 다시 기도의 끈을 이어보
자.
●롬 1:9; 딤후 1 3(369. 483)
1 : 20-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이며, 오직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하는
곳이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그리스
도의 몸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는가?
●고전 12 : 27 : 골 2 : 10(82, 100)
제2장 무조건적 은혜에 의한 성도의 구원과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2장 본문&자료노트 강해주석 주제, 원어&교리설교
예화 핵심 성구관주 Q. T 금 언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성도의 지위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욜문하고 모든
성도들이 연합되는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질 및 이방인 구원과 관련된 교회의 비밀 등에
관련하여 신학 원리를 기록한 본론 전반부 2 : 1-3 : 21까지의 일련 기사의 개시 부분으로서 교회
구성원들인 성도들의 지위와 교회의 본질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런 문맥하의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된다.
먼저 전반부 1-10절은 교회 구성원들인 성도들의 지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본래 죄 가운데
멸망받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하나님의 피조물이 됨으로 인해(고후 5 : 17 ; 갈 2 : 20) 얻게된 성도의 새 신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는 본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성 취 된 인간 구원(人間救援)의 본질적 속성 과 구원받은 성 도가 이 지 상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 자발적으로 동참하여야 할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명명백백히 보여 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인류의 시조(始祖)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영적 죽음의 상태에서 이제 원죄(原罪)와 자범죄(自犯罪)로 인해 최후 심판날 영 육이
함께 영 원한 멸망을 받는 일만을 남겨놓고 있던 전인류 가운데서 실로 하나님 의 무조건적 인 사랑과 은혜로 택함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영적 생명을 부여받고 이제 영육의 영원한 멸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게 되었다. 이를 간단하게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인간 구원의 본질적 속성은 영적 죽음의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는 전혀 천국 구원의 가망이 없던 자들이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의 선물로 얻게 되는 것(8,9절)이다. 즉 로마서에서 인간 구원의 방법으로 이신 득의(以信得義)의 원리를 말했다면(롬 3 : 19-31) 여기서는 인간 구원의 본질적 속성으로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를 강
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인 각 성도들은 자신의 선한 행위나 공적에 의해서나
민족이나 신분상의 우열함 때문이 아니라 동일하게 멸망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태에서 하나님의
무조건적 인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로서 서 로 자기 자랑을 내세우거 나 남을 멸시 할 수 있는 차별적 인 입장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행해야 할 존재들임 을 매우 잘 보여 준다. 이처럼 실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갖는 자신의 신분 또는 지위가 어떠함을 분명히 깨달을 때에만이 수직적인 대신(對神)과의 관계와 수평적인 대인(對人)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이 가져야 할 구속사적 자세를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후반부 11-22절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유기적 공
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회의 본질(本質)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즉 '교회'(church)는 근본적으로
죄로 말미암아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교제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케하시는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회복된 자들 곧 혈통적, 민족적 차이를 불문하고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전 구
속사에 등장하게 되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룬 유기적 공동체이다. 태초에
세우신 성부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그 계획의 전개 도중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으로 주어진
구속 계시와 언약의 법은 바로 이러한 유기적 교회 공동체에 속한 전역사 속의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때문에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들간에는 민족적, 혈통적 차별이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구약 시대 동안에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이스라엘 민족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으나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구속사의 경륜(經繼)과 방법상 세계 만민을
대표하여 먼저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속의 법에 관한 구약 계시와 언약의 법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구약의 예언과 예표의 성취로 예수께서 성육신(Incarnation)하시고 십자가 대속 회생으로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졌던 구속의 법을 성취하선서 오고오는 모든 세대의 세계 만민이
믿음으로 성령에 의해 구속의 법을 적용 받아 구원을 얻게 하셨다(행 2 : 17-21 ; 38-41). 따라서
하나님의 구속 경륜상 일시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민족적 장벽이 주어진 것일 뿐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태초부터 세계 만민 중에 택한 백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따라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민족적, 혈통적 차별이 없는 세계 만민중
택한 성도들(saints)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유기적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2 . 18-22). 그리고 이렇게 전시대를 초월하여 이방인이나 유대인을 불문하고 함께 유기적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은 곧 각 성 도들 안에 내 주(內住)하시 는 성 령 (the Holy Spirit)이 동일하신 분이시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각 성도들을 연결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교회의 본질, 교회의 형성과 관련된 구속사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세밀한 계획 가운데 교회와 관련된 당신의 구속 역사를 전개해 오신 하나님의 섬세하심과 이방인들인 오늘날의 우리들까지도 거룩한 교회(Holy Church)의 구성원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내하여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2장 본문&자료노트
원어연구- 보감-
신학용어- 인물연구-
신학용어- 지리배경-
도표-2 : 1-10 구원받기 전후의 인간에 대한 본문의 묘사
구원받기 전
1 세상 풍속을 좆음(2절)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름(2절)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함(3절)
본질상 진노의 자녀임 (3절)
허물과 죄로 죽음(5절)
구원받은 후
주의 큰 사랑 입음(4절)
그리스도께서 살려주심 (5절)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 짐(6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짐 (6절)
하나님의 계속적인 은혜를 받음(7절)
주요주제-2:4 원어로 살펴본 사랑의 개념 요일 3장 자료노트 참조
신학용어-2:4, 하나님의 속성 출 34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2:14-10 화평이신 그리스도를 닮아 성도가 허물어야 할 담
밖에 있을 때 인에 있음 때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었음(3절)
허물로 영이 죽어 있었음(5절)
소망이 없었음(12절)
의문에 속한 계명 아래 있었음(15절)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었음(16절)
이 땅의 시민이었음(19절)
하나님의 성전을 못이룸(20-22절)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음(7절)
영이 살아남(5절)
소망을 가지 게 됨(13절)
그리스도의 복음 가운데 있게 됨(15절)
하나님과 화목하게됨(16절)
하늘의 시민이 됨(19절)
하나님의 성전을 이룸(20-22절)
원어연구-2: 15, 폐하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타르게
오'( rαr77γf7)이다. 이는 전치사인
'카타' (77f? )와 '아르게오' (來◎f? )
의 합성 어 이 다.
이 단어는 '~로부터 아래로'(down
from)라는 뚠의 '카타'와 '하는 일이
없어 마냥 빈등 빈등 놀고 있다', '시
간을 소비하며 지체하다' 등을 뜻하는
'아르게오'(777γf7)의 합성어로 다음
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1 어떤 사물이나 사람이 아무 쓸모가
없어 내버려 둔다는 의미에서의 '내버
리다'(눅 13 : 7), 2 과거에 세웠던 어
떤 법의 법적 효력을 없앤다는 의미에
서의 '취소하다'. '무효화하다'. '폐기
하다'(름 3 : 3. 31), (j) 쓸모 없게 된
사물이나, 사람을 없앤다는 의미에서의
'파괴하다'(살후 2 : 8), '전멸시키다'
(히 2 .犯), 4 어떤 인격체와 교제하던
일을 중단하고 떨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의 '분리되다'(갈 5 . 4) '해방되다'(롬
7 : 6) 등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카타르게오'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회생을 통하여 구
약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셔서
이제 그릎 믿는 성도들에게는 율법이
아무런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하게 하
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롬 8'1의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
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주요주제-2 : 14-18 십자가 수난을 통한 구속 성취의 이해 마 27장 자료노트 참조
보감-2: 18 인간의 구원을 위한 삼위의 공동 사역 눅 23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2:19-22 신약 교회에 대한 성경의 주요 묘사
1 기도하는 집(눅 19 : 46)
2 한 무리(요 10 16)
3 하나님 이 자기 피로 사심(행 20 : 28)
4 한 몸(름 12 : 4,5 : 고전 10'17)
5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고전 1 : 2)
6 하나님의 교회 (고전 1 : 2)
7 하나님의 밭(고전 3 : 9)
8 하나님의 집(고전 3 : 9)
9 그리스도의 지체(고전 6 : 15)
10 그리스도의 몸(고전 12 : 27)
11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 전(고후 6 : 16)
12 하나님의 권속(엡 ? : 19)
13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전(엡 2 21)
14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엡 2 . 22)
15 그리스도의 신부(75'23,32)
16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 : 15)
17 영적인 집(벧전 2 5)
18 (1 하나님의 양 무리 (벧전 5 : 2)
19 새 예루살렘(계 21 : 2)
20 어린양의 아내(계 21 : 9)
도표-2:20-22 주의 몸된 교회와 성도의 관계 엡 4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2:15 율법과 복음의 본질 비교 갈 3장 자료노트 참조
2장 강해주석
2:1-10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
2:11-22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1
2 : 1-10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
지난 장(1장)으로 본서의 시작하는 말이 끝나고 본장에
서부터 본격적으로 본서의 본론뚠 1-6 20)이 시작된다.
이러한 본론은 다시 크게 나누어 교리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부분(2:1- ? : 21)과 실천적 인 문제를 언급하는 부분(4 : 1
6 : 20)으로 나뉜다. 그런데 교리적인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본론의 전반부(2 1-3 21)는 여러 신학의 주제들 가운데
특히 개인의 구원 문제를 다룬 구원론(救援論)과 구원받은
무리들의 집합체 문제를 다룬 교회론(敎會論)을 주로 언급
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본문은 특히 구원론에 대한 가
르침이다. 물론 이러한 구원론은 이후에 언급될 교회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따로 메어 놓을 수 없다.
이러한 맥락하에서 본문을 살펴보면 바울은 구윈받기 이
전의 죄악 가운데 거하던 성도의 과거 모습과 그리스도 안
에서 구원받은 이후 누리는 현재의 삶을 대조함으로 성도가
받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드러내고
있다. 사실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의 상태는 죄로 인해 하
나님과 영적으로 단절되어 육체대로 행함으로써 본질상 진
노의 자녀가 되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소망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1-3절).
그런 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 의 사랑과 그리 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 가되 었을 뿐만 아니 라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과 영 광의
자리에 함께 참여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4-7절).
물론 우리가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것은 우리에게
무슨 공로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무 공로나 자격이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은혜로 선택하신 것이다.
따라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다만 우
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믿음으로
수납하고 그 은혜의 선물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뿐이다(8-10
절).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퉁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닫게
된다. 點 구원은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깨달아 성도는 스스로 자고하지 말고 오직 겸손히 감사함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살후
2 . 13). ②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선한 일을 도모하시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힘쓰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롬 15 '
9 :고전 10 31-33).
2 : 1 바울은 1-3절에서 구원받기 전의 인간의 상
태를 논하고 있다. 이는 4-10절에서 논하게 될 구원
론의 전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여기서 '허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프토
마'(『707『17길α)는 '곁에', '함께'를 의미하는 '파
라'( 玲띤◎ )와 '떨어지다', '넘어지다', '엎드러지다'
를 의미하는 '핍토'( π◎r? )의 합성어 '파라핍토'
( π77απ永굴? )에서 유래된 말로, '위반'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죄'(수쪼띤l◎ , 하마르티아)는 '과
녁을 맞히지 못하다'의 뜻을 지닌 동사 '하마르타노'
(수레;Or777)에서 유래된 말로, 이는 죄가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나게 행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그런데
'허물'과 '죄'에 대해서는 그 차이점을 규명하려는 다
양한 시도가 있었다. 즉 ? 어거스틴(Au링stile)은
'허물'은 고의성이 없고 '죄'는 고의성이 있는 것으로,
② '제롬'(Jerome)은 '허물'은 생각에서 범죄를 계획
하는 것 이 고 '죄 '는 실제 로 행 한 것을 의 미 하는 것으로,
③ '빈센트'(Vincent)는 '허물'은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이며 '죄'는 일반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
였다. 이 가운데 어느 해석을 취하든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바울이 '죄'와 '허물'의 두 단어를 사용하여
인간의 죄악에 대해 포괄적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것이
다. 한편 본절의 '죽었던'은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곧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어
영적으로 소외된 비참한 상태를 묘사한다. 이러한 인
간의 비참한 상태는 이미 인간 타락 이전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선악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경우 인간에게 반드시 임할 것임을 경고한 것으로(창
2 : 17) 인류의 타락의 결과로 실제로 임하게 된 것이다
(창 3. 24).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여기서
'행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파테오'( π7f7πα -
ri7)는 '~에 관하여', '주위에'를 의미하는 '페리'
( π7p71 )와 '밝다'를 의미하는 '파테오'( παrf? )의
합성어로 '걸어 다니다', '따라다니다', '살아가다'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그 때'는 앞절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때이며 '그 가운데서'는 '허물과 죄 가운데서'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허물과 죄 가운데
행하여 영적인 죽음 아래에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처럼 인간은 자연인의 상태에서는 원죄(原罪)로 인해
이미 죽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죄와 허물을 따라 범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처지인 것이다. 이
세상 풍속율 雲고. 여기서 '세상'이란 일반적인 의미
로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신약 성경에서 독특하게 사
용하는 의미인 하나님에 대적하는 죄악된 욜신앙의 무
리들의 세상을 가리킨다(요 17'14). 그리고 '풍속'
( 긴고? , 아이온)은 '시대', '끝이 없는 시간', '영원'
의 뜻을 지닌다. 따라서 본 구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이 세상의 세대를 따라'이다. 바울은 '세대'를 '세상'
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죄악된 세계를
묘사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롬 12 : 2). 그러므로 여기
서의 '세대'도 하나님께 불순종적인 죄악의 시대의 속
성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세상'과 '세대'
두 단어는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인간 세계의 잘못된
가치 체계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Stott).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유대적
사고에서 유래된 마귀에 대한 표현이다(Meyer, Har-
ness). 유대인들은 우주를 삼충으로 구분하여 일충은
땅으로 사람의 거주지며, 이충은 공중으로 마귀의 거
주지요, 삼층은 천국으로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창 1장 자료노트 '히브리인의 하늘
개념'을 보다 참조하라. 따라서 본절은 에베소 교인들의
과거 신분이 마귀에 종속되어 그의 지배를 받던 자들
임을 보여 준다. 불순중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 '불순종의 아들들'은 전형적인 히브리적 표현 용
법을 사용한 말로(삼하 7 : 10 ; 잠 31:5;살전 5:5;
살후 2 3 ; 벧전 1 14) 본절의 '세상', '세대'와 같은
의미이다. 즉 하나님께 대적하여 불순중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지배에 반항하려는 불순종적인 악인들의
일반적 속성이다. 한편 '역사하다'(i77pγi? , 에네
르게오)는 '일하는', '활동적인', '힘있는'이란 의
미가 있는 '에네르게스'(7띤깆깃◎ )에서 유래된 말로
'일하고 있다', '활동하다', '동작하다'의 뜻을 지닌
다. 결국 이 말은 이 세상의 모든 악행의 배후에는
마귀의 강한 역사와 조정이 있음을 보여 준다. 성령께서
순종하는 영흔들 가운데서 선한 일에 역사하듯이 사탄은
악인들 가운데서 악한 일로 역사하는 것이다.
2'S 전에는 우리도. 흑자는 전절의 '너회'를 '이
방인'으로 보고 본절의 '우리'를 '유대인'으로 본다
(Robertson). 그러나 전절의 '너회'나 본절의 '우리'는
단순히 본서의 수신자와 바을 자신을 구분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 좋다(Milton, Fou拉es).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770f , 사륵스)는 성경
7H7? l63
에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데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바울은 이 '육체'를 중생한 자
에게 있어서 '성령'과 대조되는 것으로 묘사한다. 또한
중생한 자 안에서 육체와 성령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롬 8'12-14). 이와 같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악인들의 삶의 형태이며, '성
령'의 인도에 따라 사는 것이 의인의 삶이다. 성경은
육체를 따라 사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고 영을 따라
사는 자는 반드시 살 것임을 말하고 있다(롬 8 . 13).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본질상'( f777f , 쥐
시스)은 '낳다', '생기다', '생산하다'란 의미의 '쥐
오'( f7脚 )에서 유래된 말로 '자연', '천성', '성질'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진노의 자녀'는 '불순종의 아들'
兆절)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식 표현법으로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즉 모든 인류는 누구를 막론하고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천성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죄로 인해 하
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이다. 결국 본절에서 바울은
모든 인류가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본질적으로 죄 가
운데 살고 있음을 밝혀(롬 5 12-14)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소망없는 존재였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 이 다.
2:4 한글 개역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헬라어
원문에는 본절 앞에 '그러나'를 의미하는 '데'(7i )가
있다. 이는 1-3절에 언급된 구원받기 이전의 인간의
상태와 4-10절에 언급된 구원받은 후의 인간의 상태를
대조하는 역할을 한다. 긍흘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여
기서 '긍흘'(7A707, 엘레오스)은 '은혜', '자비',
'동정심'의 뜻을 지니는 말로 단순한 동정의 차원을
넘어 실제적인 도움을 베푸는 동정을 의미한다(Eadie).
그리고 '풍성하신'( πA077f07․ , 플루시오스)은 '채우
다', '성취하다'의 뜻을 가진 '핌플레미'(π구저77f )
에서 유래된 말로 '부유한', '풍부한'의 뜻을 지닌다.
따라서 본절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긍흘이 매우 구
체적이요 넘치도록 풍성한 것이었음을 보여 준다. 우
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여기서 '사랑'
( 려◎눈? . 아가페)은 성경에서만 독특하게 사용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의 어떠한 사랑과도 비교될 수 없는 독특한 것이
므로 신약 성경 저자들은 다른 곳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헬라어 '사랑하다'(쳐γ財글脚, 아가파오)의 명사형을
사용한 것이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은 죄인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하나님의 풍부하신 공출을 베푸
시어 진노의 자녀들을 축복의 자녀로 만드심을 의미한
다. 한편 헬라어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는 '아가
페'외에 몇 종류가 더 있다. 이에 대해서는 요일 3장
자료노트, '원어로 살펴본 사랑의 개념'을 참조하라.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여기에서의 '죽음'은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고 '삶'도
영 적 인 삶을 의 미 한다(름 6 : 11-14 ; 갈 2 : 20 ; 골 2 '
13). 그러나 '삶'은 현재적인 의미와 미래적 의미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적
인 부활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영적인 부활은
곧 미래의 육체의 부활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한편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
으로 다시 태어나는 현재적인 부활의 의미는 침례 의
식에서 잘 나타난다(를 2 . 12). 이와 관련해서는 행 8장
연구자료, '침례의 이해'를 참조하라.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구원을 얻은 것이라'(777띳곡◎
i70(, 세소스메노이)는 '구원하다'(777? , 소조)의
현재완료형 분사이다. 이는 구원이 이미 이루어진 과
거 의 사건일 똴 아니 라 현재 에 도 계속적으로 이 루어 지 고
있는 사건임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미래적인 구원의
완성은 현재의 구원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한편 바울은
본절에서 독자들에게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하며 구원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8절에서 더 자세히 언급된다.
2 : ?또 함께 일으키사‥‥함께 하늘에 않히시니. 바
울은 앞절과 본절에서 세 가지의 동사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함께 앉히시니'를 사용하여 하나님
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들을 구속하신 사건을 설
명하고 있다. 위의 세 개의 동사 '살리다', '일으키다',
'앉히다'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 일어난 연속적인
사건으로 '부활', '숭천', '보좌에 앉으심'을 의미한
다. 성도들은 예수의 구속을 믿음으로 그와 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살아, 일으킴을 받았고(골
2 : 12;3:1)그와 함께 하늘에 앉았다(빌 3 20). 한편
여기서의 세 개의 동사는 모두 부정과거 형인데, 이는
과거에 이미 이루어져 변함 없는 결정된 사건임을 뜻
하는 것이다. 즉 성도들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믿음 안에서 이미 성취된 것이다. 물론 이는 영
적인 것으로 그 온전한 성취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게 된다. 한편 이 구절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
이었던 성도들의 엄청난 신분 상승을 보여 줌으로 하
나님의 긍흘과 사랑의 풍성함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2'T 이는‥‥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본절은 하나님의 죄인에
대한 구속의 동기와 목적을 기술하고 있다. 즉 그리
스도를 부활시키시고 존귀케 하심으로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보이신 하나님(엡 1 : 19, 20)께서는
성도를 부활시키시고 존귀케 하심으로 '그 은혜의 지
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세대에 나타내고자 하신 것
이다. 한편 여기서 '오는 여러 세대'에 대해서는 零
본서가 기록될 때부터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의 세대
(Ellicott, Clarke, Grosheide), ②그리스도의 재림 후의
세대(Ab◎11, Lenski, Salmond), ③미래 전체(Hendrik-
son, Hodge, Scott, Calvin) 등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가운데 7의 견해가 가장 적절하다. 왜냐하면 하
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이 땅과 영원한 세상에 이르기
까지 영원히 나타날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2:8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164 에베소서 2 歌
얻었나니. '은혜'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면 '믿음'은
인간에게 속한 것으로, '은혜'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값없고 조건 없는 긍흘이며 '믿음'은 인간이 겸손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은혜'는 '믿음'의
근본 원인이 된다. 죄로 죽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
혜의 역사로 인간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행
18 : 27 ;빌 1 : 29).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유일한
인간의 조건으로 보이는 믿음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이 완전한 은혜임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본절의 '이것'( rofro ,
투토)의 의미에 대해서는 (1) '믿음'을 가리킨다는 주장
(Ch핀sostom, Jerome, Bengel, H럴ge)과 ② '구원'을
가리킨다는 주장(Meyer, 칠短rd, Ellicott)이 있다. 그
러나 문법적으로 볼 때 '이것'이 중성이고 '믿음',
'구원'은 여성 명사이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믿음
으로 구원받는 사실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타
당하다(Theophylact, Macknight, Robertson).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 구절은 앞절의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아마도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율법을 행함
으로 구원받는다는 잘못된 교리를 염두에 두었던 듯하
다. 실로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믿음 이외의 어떠한 인간의 조건도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의 교리가 믿음에 있어서 행함의
필요성을 배 제 하는 것은 아니 다. 믿음 속에 는 하나님 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순종적인 행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약 2 26).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
니라. 하나님께서 완전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
적과 이유를 부정적인 표현으로 묘사하였다. 이를 긍
정적인 면으로 표현하면 '이는‥‥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 '
6)이다. 즉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있어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역사이므로 인간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2.10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만드신 바'(πof'-
7친α, 포이에마)는 동사 '만들다'( πOf:? , 포이에
오)에서 유래된 명사로 '만들어진 것', '작품', '피조
물'의 뜻을 가진다. 여기서 하나님의 인간 창조에 대
해서는 ① 육적인 창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
(Basil, Tertullian), ② 육적, 영적 창조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Pelagius, Bullinger), ③영적인 중생,
곧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으로 보는 견해(Salmond, Ea-
die, Ab◎It) 등이 있다. 바울이 죄인의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본문의
내용을 볼 때 ③의 의견이 타당하게 보인다. 한편 헬
라어 원문에서는 '그의'( α7r0? , 아우투)가 본절의
맨 앞자리에 위치하여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앞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계속해서 죄인의 구원 사건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 '지으심을 받은'
( 7r77θf7r7f', 크티스덴테스)은 '창조하다'(7r-
린? , 크티조)의 부정과거 수동태 분사로 '창조되다'
의 뜻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창세 때의 하나님의
창조 사역 을 가리키는데 쓰이기 도 했지 만(엡 3:9; 골 1
1刻, 여기에서는 '포이에마'(π7긋친α , 만드신바)와
마찬가지로 도덕적이며 영적인 회복, 즉 중생을 가리
키는 의 미로 사용되 었다(15절 ; 엡 4 : 談) . 이 는 본절의
'예수 안에서'라는 구절을 보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한편 성경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재
창조(고후 5 : 17)를 같은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창조와 구속의 밀접한 관계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본래의 창조를 배경으로 이해되
어걱야 하는데, 인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피조계 속에
나타나야 할 하나님의 영광이 죄로 인해 왜곡되어진
상태를 다시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기뻐하시는 뜻대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 구속 곧 재창조인 것이다. 즉
하나님이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던(창 1 : 31) 처음
창조받은 피조계의 선한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 그리
스도 안에서 만물을 새롭게 다시 창조한 것이 구속인
것이다(벧후 3 : 12, 13). 한편 여기서 '선한 일을 위
하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재창조하
신 목적을 보여 준다. 여기서의 '선한 일'은 '허물과
쬐'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인간이 타락하여 허물과 죄로
행하기 이전의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일 때에 하나님의
창조 속에 계획 되어지고 의도되어진 하나님의 뜻을 의
미한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창조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선한 일 가운데로 행하기 위해
구속, 즉 재창조된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에 의해 죄와
죽음에서 의와 영생으로 부활하는 인간의 구속도 이루
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11-22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지난 단락(1-10절)에서 바울은 개인적 차원의 구원 문
제를 다룬 구원론 교리를 서술했다. 이제 본문에서부터 엡
3 21까지에서는 그 시각을 성도 전체로 들려 본서의 주
관심사라 할 수 있는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에 관한 문제,
곧 교회론 교리를 언급한다. 그중에서도 본문은 하나님의
구속 경륜상 구약 시대 동안에만 주어졌던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둘로 나누었던 장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속사가 구약 선민 이스라엘
중심에서 세계 만민에게로 확장되어 철폐된 사실과(11-18
절),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유기적으로
하나된 우주적 교회를 이루게 된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19-
22절) .
사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 만민 중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 경륜상 먼저 구속의 법을
계시하시기 위한 수단으로써 하나님이 세계 만민의 대표격
으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다. 따라서 구약 시대 동안에는
일시적 현상으로 이스라엘 민족 이외의 민족이나 나라들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서 제외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유대인들도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민족만을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으로 착각
하여 여타 이방 민족을 배척하였다.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항상 갈등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
스도께서 십자가 회생을 퉁해 태초 세계 만민 중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 세우신 구속의 법을 완전히 성취하심으로 말
미암아 이방인들도 유대인과 동등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셨으며, 또 모든 인종적, 문화적, 혈통적 편견의
장벽을 제거하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다. 이와
같이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우주적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 다.
그러므로 교회(敎7)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
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받은 자들의 집합체임을 알 수 있다.
구원받은 성도 각 개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
전이며(고전 3 : 16:6:19), 그 각각의 성전은 또 성령으로
말미암아 유기적으로 연합된 하나의 성전인 우주적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해서는 그랜드 종합 교리.
'교회론' 부분을 보다 참조하라.
한편 이상의 사실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1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회생을 통해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인간, 수평적으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제거하고 화해의 역사를 만들어 내셨다(골 1 19, 20) 따
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 위에 세워진 교회는 마
땅히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여 화해와 교제가 넘치는 장이
되어야 한다(행 1 42-47). 런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기초로 하여 세워진 새 언약의 공동체이다. 그런즉 이
십자가의 도를 외면하는 교회는 이미 교회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각 개교회는 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 위에 굳게
서야 할 것이다(고전 ,1 : 11-15).
2 :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그러므로'는 1-10절의
내용 전체를 받는 것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실을 전제로 생각해 보라는 뜻이
다. 육체로 이방인이요. 여기서의 '육체'는 성령과 대
조되는 의미로 사용된 3절과는 달리 문자적 의미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본절에서는 영적이고 윤리적인
의미보다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혈통적인 관계가
대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란 말은 유대인들
에게 있어서 멸시와 무시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자손으로
서 여호와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선민 의식(選民
意識) 속에서 유대인 이외의 이방 사람들을 민족적으
로나 종교적으로 매우 멸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유
대인들의 관습은 예수님과사마리아 여인의 대화 중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요 4 : 9, 20).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 '무할례당'은 이방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또 하나의 멸시적인 칭호로 유대인들이 모두 할례를
받았던 것을 배경으로 생긴 말이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도록 명하신 언약의 징
표로 태어난지 8일째 되는 남아의 생식기의 머리 부분을
덮고 있는 표피를 자르는 의식인데 하나님께서 아브라
함에게 직접 명하신 것이다(창 17'9-14). 이에 대해
서는 수 5장 자료노트, '할례'를 보다 참조하라. 따라서
유대인들은 할례를 선민 의식의 상징으로 여기고 이방
인에 대해 무할례당이라 칭하며 자신들의 특권에 비해
이방인들의 언약에서 제외됨을 인하여 멸시하였던 것
이다. 바울은 본절에서 전에 유대인들에게 멸시당하였
던 이방인 신자들의 과거의 비참한 처지를 언급하여
그들에게 상기시킴으로 구원받은 지금의 상태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케 하려 한 것이다.
2 12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육적으로 이
방인이요 무할례당이었던 것보다 이방인들의 본질적인
비참성은 그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는 것이다. 여
기서 '밖에 있었고'( 業7f◎ , 코리스)는 '떠나서'
'따로이', '없이'의 뜻을 지닌다. 따라서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는 것은 에베소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였
다는 말이 아니라 유대인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이 없는 상태였음을 묘사하는 것
이다(Calvin, Bullinger, Grotius). 즉 여기서 '그리스도'
(◎7f7r07, 크리스투)는 이스라엘이 대망했던 '메시
야'를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로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메시야의 언약(창 13 :
15) 속에서 메시야를 대망하였지만 이방인들은 메시야
의 도래에 대한 기대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
유대인들의 메시야 대망 사상과 관련해서는 막 서른
특별자료를 참조하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
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의 구체적인 설명으로 이
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메시야에 대한 약속의
언약을 이방인들이 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 언약은
구약 성경의 주제를 이루고 있는데 대표적인 언약들은
아브라함 언약(창 13 : 15 ; 15'18 ; 17 8), 이삭과 야
곱의 언약(창 26:3;28 : 13), 모세 언약(출 19's ;신
30 : 10), 다욋 언약(삼하 7 : 14, 15), 새 언약(렘 31
31) 등이 있다. 이방인들은 이러한 구원의 축복에 대한
언약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저주받은 자들이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 '하
나님도 없는 자'( 7θ7of , 아데오스)는 70인역(LB朧)
에는 전혀 나오지 않고 신약에는 이곳에만 나온다. 이
단어는 부정사 '아'(7)와 '하나님'을 의미하는 '데오
스'( θ77f )의 합성어로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을 적 대 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름 1 : 18-
32). 고전 헬라어에서는 이 말이 '신에게 버림을 당한'
이란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본문의 뜻에도 잘 부
합된다(Abbott, Meyer, Ellicott). 이와 같이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았고 메시야에 대한 언약도 없이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았던 자들로 소망이 없었던 비참한
존재 들이 었던 것 이 다.
2 : 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본절의 '이제는'이 앞절의 '그 때'와, '그리
스도 안에서'가 '그리스도 밖에'와 대조되어 이방인의
구원 이전과 그 이후의 상태가 대조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앞구절의 '멀
리'와 본구절의 '가까이'는 구약에서 이방인들과 이스
라엘을 구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왕상 8 41 ;사 5 .
26 ; 57 . 19).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
166 에베소서 2 장
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겠
다는 언약(창 17 : 7, 8) 관계로 인해 가까운 사이로
인식되어졌다.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우리에
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 : 7)는 모세의 말에서도 확인되어진
다. 반면 이방인들은 아무런 언약도 없이 하나님과는
무관한 자들이었다. 이처럼 동물의 피로 맺어진 옛
언약은 이방인과 하나님. 이방인과 이스라엘간에 담을
쌓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퍼'
로 맺어진 새 언약은 옛 언약과는 달리 하나님과 이
방인들의 관계를 회복시켜 가까워지게 하였으며, 유대
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놓인 담을 헐어 서로 하나가 되게
하였다. 그런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 게든지 평강이 있을지
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사 57 : 19)라고 한 구약 예
언의 성취인 것이다.
2 :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화평'(? e쑤-
군깃, 헤 에이레네)은 관사가 붙어서 절대적인 화평을
말한다. 이 말은 '합하다, 연결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에이로'( 린즌w )에서 유래된 듯하며 '평화', '일치',
'조화'의 뜻을 지니고 히브리어의 '솰롬'(717☞ )과
같은 뜻으로 전쟁의 반대되는 개념에서의 화평이 아닌
죄와 반대되는 영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평화와 조화가 깨어진 불일치와 갈등의 관계였던 것을
그리스도께서 중재자가 되시어 평화와 조화와 일치의
상태로 회복시키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적 화평의 성취로 보아야
한다(사 9 : 5, 6 ; 52:7;미 5:5;슥 9 : 10). 둘로
하나를 만드사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여기서 '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키며 '하나'(f? , 엔)는 화해와
일치, 동일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었다(갈 3 :
28). 그리고 '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라그모스'(낀린-
α7틴77)는 '담을 쌓다', '울타리를 치다'는 뜻의 동사
'프랏소'(◎◎777)에서 유래된 말이다. 예수님 당시
의 성 전 뜰에 는 이 방인의 뜰과 이 스라엘의 뜰을 분할하는
간막이 벽이 있었고, 그 담에는 이방인이 더 나아가는
것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osephus). 이
담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갈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의 구속 사역을 통해 이러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영적인 의미의 구분을 제거하신 것
이다.
2 : 15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 유
대인과 이방인의 원수됨은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을 배경으로 한다. 율
법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지켜야 했던 하나
님의 명령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었기 때문에 언약의 상징인 율
법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는 막힌 담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자기 육체로 페하셨으니. '자기 육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심을 가리킨다. 그리고 '폐
하다'(7αr77γi7, 카탈게오)는 '작동않게 하다'
'무력하게 하다', '폐지하다'의 뜻으로 사용된다. 예
수께서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
하여 나누었던 율법을 폐하시고 복음 안에서 통일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바울의 이러한 주장은 그리스도께
서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키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마 5 : 17)과 정반대의 주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도덕법에 대해 말씀하셨고
바울은 의식상의 율법을 가리키고 있음을 이해하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행 15장 연구
자료, '예루살렘 공의회'를 보다 참조하라. 할례 의식,
먹고 마시는 문제,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골 2 : 11, 16-21) 등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갈라놓는 육체 적 인 구별들이 었는데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 자가를 지 심으로 새 언약을 성 취 시 키 시 어 복음 안에서
이 모든 장벽을 제거하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율법의 요구인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완성
하심으로 죄인들에 대한 율법의 정죄를 폐하셨던 것이
다.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한
새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새롭게 된
사람들의 연합체인 '새로운 인류'(Bruce), 즉 우주적인
교회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안에서는 유
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여자나 남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모두가 다 하나인 것이다(갈 3 : 28 ;골 3 : 11). 한편
'짓다'( 71련? , 크티조)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재창
조적 성격을 보여 준다. 10절 주석 참조.
2. 16 십자가로‥‥하나님과 화목하게. 앞절에서 그
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수평적인
화목과 연합을 강조한 바울은 이제 본절에서는 교회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의 화목을 언급하고 있다. 이
러한 하나님과 교회와의 화목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궁극적 목적이다. 하여튼
복음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수직적인 관계와 인간과
인간과의 수평적인 관계가 언제나 동시에 언급되어 지
는데 이와 같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웃과의
교제와 연합이 함께 이루어지는 곳이 그리스도의 교회
이 다.
2 : IT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 하셨으니. 본절은 사 57'19의 인
용으로 이 방인과 유대 인들을 하나되 게 하신 그리 스도의
복음 사역이 구약에 나타난 메시야 예언의 성취임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은 복음의 내용인
것이다. 한편 여기서 '오셔서'라는 말에 대해서는 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Ha긴ess, Ch틴sostom), ②부활
후의 현현(Bengel), ③ 성령으로 오셔서 제자를 통해
역사하신 사실(Ab◎tt, Salmond)이라는 견해가 제시되
고 있는데 문맥의 흐름상 ③의 견해가 적합하다.
2 18한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나아감'(R7O7α777쑨, 프로사고 게)은 '가까이 감',
'접근'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한 성령'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없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복음을 믿어
장해주석 167
하나님께 구원받음을 강조한다. 한편 본절의 '나아감'
은 동양의 궁전에서 백성들이 왕을 알현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바울은 구원을 더러운 죄인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왕이신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장면 속에서 우리는 구속 사역을 이루시는 삼위
하나님의 각각의 역할을 보게 된다(엡 1 : 3, 7, 13).
2. 19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외인'
( fiyor , 크세노스)은 '외국인', '손님', '이방인',
'나그네'의 뜻으로 쓰인다. 그리고 '손'( 刷추Of7O글 ,
파로이코스)은 '이웃 사람', '낮선 사람', '나그네',
'외국인'의 뜻을 지닌다. 이는 그 당시 이방인들이 유
대인들에게 차별을 당하며 멸시당하던 처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바울은 이제 예수를 믿는 자들은 더 이상 하
나님의 언약과 고의 나라에서 소외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
님의 ◎속이라. 여기서 '성도들'에 대해서는 유대 민
족을 가리킨다는 견해(Bengel, Clarke)와 구약 시대의
성도들을 가리킨다는 견해(The어octet) 등이 있으나 시
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일컫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Ch틴sostom, Eadie, Ab◎It), 그리고
'동일한 시민'(刻◎貯oA◎7r , 쉽폴리테스)은 '외인'
과 '손'의 반대어로 이제 영적 이스라엘의 한 구성원
임을 뜻한다. '권속'( 0◎7iOT , 오이케이오스)은
'오이코스'( 0:70? . 집)에서 유래한 옛 단어로서
신약에서는 본절과 갈 6 10 ; 딤전 5 : 8에만 나오는데
'친곡', '식구'란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이제
이방인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은
민족과 성 별과 지 위 에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 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딤전 3 : 犯 ; 히 10'21 ; 벧전 4 17). 여
기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의 성도들이 한 시민일 뿐
아니 라 한 가족임 을 밝힘으로 성 도들간의 연 합과 일치를
강조하고 있다.
2'20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본 구절에 대해서는
?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바로 터임을 나타낸다는 견해
(Ch딘sostom, Theophyla건 Ab◎tt)와 ② 사도들과 선
지자들이 닦은 터라는 견해(Calvin, Bengel, Meyer, El-
licott)가 있다. ①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 ( r7? 7π0-
7:l祉7? 7α: RO떨7f77, 톤 아포스톨론 카이 프
로페톤)가 '터'(◎길린fOr , 데멜리오스)와 동격임을
표시하는 속격으로서 '-으로 구성된'이라는 뜻을 가
짐으로 문법적인 면에서 지지를 받는다. ⑦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모두 가르치는 직책이므로 그들의 예수 그
리 스도의 복음에 대 한 교훈을 기 초로 교회 가 세워 졌다는
점에서 신학적인 지지를 받는다.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 : 11)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⑦의
견해가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여기서 '선
지자'가 누구를 가리키느냐에 대해서도 ① 신약의 사
도에 대별되는 구약의 선지자로 보는 견해(Ch틴sostom,
Ca◎n, The럼oret)와 ② 신약의 선지자로 보는 견해
(Westcott, Ab◎11, Salmend)가 있는데 ⑦의 견해가 타
당하다. 왜냐하면 '사도와 선지자'라는 순서가 그것을
뒷받침 할 뿐만 아니 라(고전 12 : 28) 신약 시 대에 선지 자
직분이 별도로 존재하였기 때문이다(고전 12'10 ; 엡
4 : 11). 구약의 선지자들도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의
말씀을 전했으나, 보다 구체적인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약 시대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되었고(행
13:1;16. 32 : 21 : 9) 그 위에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던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
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모퉁이 돌'은 건물의 벽과 벽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지는 것으로, 여기서부터 건물의
벽을 쌓아나가기 때문에 건물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벽과 벽을 연결하는 까닭에 건물의 중심이 된다. 또한
여기서는 건물의 소유주의 이름을 새겨 건물의 소유권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는 성도와 성도를
연결하여 우주적 교회를 세워 나가게 하는 중심이요
기초이며, 그 교회의 소유주이시다.
2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여기서
'건물마다'(π凉7α 0◎0凍◎幸 . 파사 오이코도메)는
직역하면 '각각의 건물'이란 뜻이다. 성도 각 개인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고전 3 : 11)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하여 온 우주적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서로 연결하여'(77틴띤칠oleoγo7길i7? , 쉬
나르몰로구메네)는 '같이'( 7'7? , 쉰)와 '관절'( 7f
칠(긋, 하르모스)과 '말하다'( Ai7? , 레고)의 합성
어인 '결합하는'(수◎OAdrOf, 하르몰로고스)의 이중
합성어로서 바울이 만든 단어임이 분명하다(Robert-
s7n). 어쨌든 바울은 건축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각각
성전인 신자 개인들이(고전 3 : 16) 그리스도 안에서
서 로 연 합하여 우주적 인 교회 로 통일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안에서'는 각각의 신자들의 유기적
연합이 오직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전제로 하는
것임을 강조한 말로 바울은 이를 통해 교회의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를 조화롭게 표현하고 있다.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성전'에 해당하는 헬라어
'나오스'( 777T )는 '거주하다'는 뜻의 동사 '나이오'
( 77(iU )에서 유래된 말로 헬라어 원문에는 '하기온'
, 거룩한)의 꾸밈을 받아 '거룩한 성전'으로
즉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곧
성전인 것이다. 구약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께
서 이스라엘 중에 함께 거하심을 상징했으나(대하 5 :
13, 14)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직접
오셔 서 육신으로 자기 백 성 들과 함께 거 하심으로(요 1 :
14) 구약의 성전이 예표하던 것을 성취시키셨고(요 2 :
19),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으로 모든 신자들 속에 거
하시어 성도들 각 개인이 성령이 거하시는 처소인 성
전이 되었다(고전 3 : 16). 바울은 바로 이러한 성전으
로서의 성도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우주적 교회가
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 22 너희도‥‥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방인들도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즉 교회로 연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어져 가느니
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노이코도매이스데'(fr770-
(No凍◎e論θe )는 '건설하다', '함께 짓다'는 뜻으
로 흔히 쓰이는 동사 '쉬노이코도메오'(7770f7070 -
친:w)의 현재 수동태 직설법으로 계속적인 과정을 나
타낸다(Robe란son). 이것은 성부, 성자, 성령의 구속의
역사가 계속 진행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본절에서는 삼위 하나님이 다 등장하는데 성령은
성도들 속에 역사하시는 이로, 성자 그리스도는 구원
받은 성도들로 구성된 성전의 모퉁이 돌로, 섣부 하
나님은 바로 그 성도들로 구성된 성전에 거하시는 분
으로 묘사되어지고 있다. 즉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지는 것을 성전의 개념 속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 이 다.
2장 핵심 성구관주
2장 주제, 원어 &교리설교 그리스도께서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구원 얻은 자가 힘쓸 선한 일
구분 . 주제설교
본문.2:8-10
찬송 : 27, 266, 375
본문에서 바을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얻은 자들이 선한 일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을 주지시켜 주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1절)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심으로 구원하셨기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과분한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힘쓸 선한 일들은 무엇일까요 ?
1, 경건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자들입니다(10절). 그러므로
항상 의롭고 경건한 신앙을 지키려고 애쓰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딛 2 : 7). 이것이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참된 성도의 길이고, 신앙 안에서 힘쓸 요건들입니다. 특별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미 하나님의 선한 존재로 세움을 입었으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끊임없이 우리를 미혹하고 넘어뜨리려 하므로, 우리는 단호히 이러한
우리 안의 쬐성과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우며, 선하고 거룩한 행실로서 우리의 신앙을 지켜서 온전한 경건을
이루고 승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며, 선한 일을 위해 새롭게 지음받은 자로서의 본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항상 선하고 거룩한 행실로 경건의 생활을 이루어감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더욱 드높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합니다.
선한 일이 란 도덕 적으로 의 로을 뿐만 아니 라 사람에 게 진정 유익을 주고, 크게는 하나님 보시 기 에 아름답고
기뻐하시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가장 선한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 생명을 구하고
영원한 기쁨과 축복을 얻도록 하는 일보다 더 귀하고 유익한 일이 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잃어버린 자녀들을 불러 모으는 일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주님 안에서 성도들이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지극히 선한 일이 바로
참된 구원과 생명의 소식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먼저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은 모두 복음에 빚진 자로서(롬 1'14, 15),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3. 구제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나 의지에서가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 이고 은혜로운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이에
대해 자랑치 말고, 교만치 말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과분한 사랑을 나눠 주고 베풀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바로 구제 사업입니다. 주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고자 힘쓰는 자들은
주님 께로부터 받은 사랑과 축복을 이 웃에게 나눠주기 를 좋아하고 즐겨 베풀어 야 하는 것 입 니 다(딤 전 6 . 18).
우리의 이런 착하고 아름다운 행실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지 않습니까? (마 5 : 16)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라는 이름만 있을 뿐 그에 합당한 사랑의 원리들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온전히 깨달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기억하고 이웃을 위해 온전히 나누어 주는 삶을 삽시다
(마 10 : 8).
성도 여러분 ! 진정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을 영위하려면 우리는 어떤 선한 일들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까?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신 하나넘이 원하시는 선한 사업들에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로
이제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자답게 경건 생활에 힘쓰십시오. 그리고 가장 선한 사업인 복음 전파와
구제에도 힘쓰십시오. 그리하여 진정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구원받은 성
도로서의 선한 삶을 살아가시 길 바람니다.
그리스도께서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구분 : 주제설교
본문 :2:14-22
찬송 : 25, 218, 325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손수 지으신 만물을 보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창 1 : 4,
10, 31), 이것은 만물들의 겉모습만 보기 좋았다는 뜻이 아니라 천하 만물이 각자의 지음받은 목적에 따라
하나님 안에서 서로 협력하여 평화롭고 하나되는 세상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이같은 세상의 화평함과 하나됨은 깨어지고, 죄와 불신으로 담을 쌓아 서로간에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창 3'12-19;4:8;11 : 7, 8). 그러나 본문을 보십시오. 이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담을 허시고 서로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그럼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어떤 담을 허시고
화평케 하셨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1.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담을 허셨습니다.
인간이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사람은 서로 사랑과 화평 안에서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
죄함으로 말미암아 죄의 담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아 사람을 생명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갈라놓고
사망에 이르게 하였습니다(름 5 : 12).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므로 죄와 함께 하실 수 없기 때
문입니다(시 5 : 5, 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사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의 죄를 사함 받고 드디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인 죄의 담을 헐게 된 것입니다(고후 5 : 19). 즉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아직도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으로 여기시며 사망의 어둠에서 방황하고 계십니까?
그리스도께로 돌아오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모든 죄의 담을 허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여러분은 아직도 쬐로 인해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지 못하고 사망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2.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을 허셨습니다.
사람의 범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만을 갈라 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도 갈라 等았습니다.
한 몸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이제 서로 잘못을 떠 넘기게 되었고(창 3 : 12), 그들이 낳은 자식은 형제를
미워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창 4. 8).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미움과 불신과 다툼의 담이 쌓이게 되고
끝없는 분열과 전쟁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 사이의 모든 불신과 미움과 다툼의 담을 허셨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바로 화평의 복음이요(행 10 . 36), 사랑의 복음입니다(요 13 : 34).
그런데 아직도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미움과 질투가 가득차 있습니까? 이제는 마음속에 있는
미움과 불신, 다툼의 담을 헐어 버리십시오. 주안에서 모두를 사랑하고 하나가 되십시오. 이로서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입니다(요 13 : 35),
3. 사람과 자연 사이의 담을 허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람은 모든 자연으로 더불어 평화롤게 지냈습니다(창 2 19). 그러나 사람이 범죄한
후 땅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사람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창 3 . 17, 18). 자연의
짐승들과 천재지변(天災地變) 때문에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고, 사람들의 무분별한 행동과
탐욕 때문에 자연은 황폐해졌습니다.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분쟁의 담이 가로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색어짐에서 해방하심으로 인간과 자연 사이에 놓인
담을 허셨습니다(롬 8 : 18-25). 이제 사람과 자연은 하나님 안에서 서로 돕고 가꾸어야 할 존재가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이 자연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오히려 자연을 황폐화
시키는데 일목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사람과 자연 사이의 담을 허셨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분의 창조물인 자연을 아끼고 사랑합시다.
성도 여러분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 으로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놓인 모든 담을 헐어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도 미움과 불신과 다툼의 담속에서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 모든 해방과 하나됨의 자유를 누리십시오. 그리고
나아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세상의 모든 막힌 담을 헐고 화평으로 하나되게 합시다.
2장 예 화
● 어머니의 중보 ● 엡2 13-l6/롬5: 1
어떤 늙은 부부에게 한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
늙으막에 얻은 아들이라 그야말로 금이야 욕이야 하며 키웠다.
어느덧 이 아이는 자라 청년이 되었는데 귀여움만 받고 자라서 인지 여간
버릇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무슨 이유에선지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급기야는 집을
뛰쳐 나가 버렸다.
그러나 아들의 버룻없는 태도에도 늙은 부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였고,
매일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아들은 끝내 소식이 없었다.
급기야는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가 끝내 몸져누워 생명이 위
급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아버지는 이 소식을 신문에 광고를 내고 아들에게
어서 속히 집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뒤늦게 어머니가 위 독하다는 사실을 신문에서 본 아들은 부랴부랴 집
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그와 아버지와는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이들의 시큰등한 모습을 본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한쪽 손과
아들의 한쪽 손을 잡아 자기 몸 위에 포개어 얹고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죽었다.
그러나 이 아들은 말없는 어머니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있었고, 결국
아버지께 용서를 빌고 화해하게 되었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아들과 남편의 중보자 역할이 되어 서로 화목케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한 중보자가 계시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께 불순중하고, 그 죄로 말미암아 원수되었던 우리를 예수 그
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로서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님과 우리로 화목케
해 주셨다.
바로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2장Q. T
2 : 1-5 우린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큰 사랑
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산 자가 되었다. 죽었던 자가 다시 사는
것보다 더 큰 기적과 은혜가 어디 있
는가 ! 이를 생각할 때 우리가 어찌
주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
1눅15 24 ;름5 7(s2,477)
2 : 9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
나님의 선물일꽐 인간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에게 행위로 된 모든 것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만
자랑하라'(고전 1 31)고 말씀하신다.
7삿 7:2: 딤후 1 : 9(343,413)
2 10 우리는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은 피조물인데
과연 이 지어진 목적에 합당하게 믿음
의 선한 행위를 나타내고 있는가?
●시 脚 8 ;딛2'14(77, 404)
2 14-16 전에는 죄로 인해 하나
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다. 그
렇다면 그리스도를 모신 우리 또한 평
안이 없는 곳에 평안을 주고 화해가
넘치도록 하는 화평의 중재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1사9: 6;롬5.1(85,467)
2 21, 22 과연 우리의 몸과 마음
은 하나님이 거하실만한 처소로서 합
당한가? 또한 모퉁이 돌 되시는 예수
안에서 다른 성도와 더불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잘 이뤄 가고 있는가?
●고전 3 : 16 : 고후 6 : 16(211, 2lB)
2장 금언
聾 이 세상은 참으로 물거품 같고, 저녁 노을과 같고, 더러운 것을 담은
놋은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아니된다.
병(槪)과 같다. 그런고로 각각
(2, 3절 / 대 장경 )
聾 사람의 구원은 행위에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믿기 어려운 하나님의 절대의 사랑을 믿음
(8, 9절/우찌무라 간조)
으로써만이 얻는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는 하나님을 알거나 이 해하지 못한다.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용서 와
(14절 /마르틴 루터 )
은총을 받지 못하며 아버지께 오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십자가는, 세로로는 하늘과 땅이 화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로로는 과거와
미래의 모든 인류가 차별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정신이다.
(16절 /사무엘 러 더 포드)
오직 한 하나님만이 존재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마땅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성도들이
사랑의 심줄로 하나로 묶여있는 것만큼 참 종교를 더욱 결실있게 하는 것은 없다.
(19절 /토마스 왓슨)
제3장 이방인 구원과 관련된 교회의 비밀 계시와 교회의 영적 성숙을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
3장 본문&자료노트 강해주석 주제, 원어&교리설교
예화 핵심 성구관주 Q. T 금 언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성도의 지위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모든
성도들이 연합되는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질 및 이방인 구원과 관련된 교회의 비밀 등에
관련하여 신학 원리를 기록한 본론 전반부 2 : 1-3 : 21까지의 일련 기사의 종결 부분이다. 앞
장에서 바울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불문하고 구속사의 전(全)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형성하게 된 교회의 본질(本質)에 대해
설명한데 이어 본장에서는 이방인 구원과 관련된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구속 경륜 및 섭리와
그것에 대한 성도들의 이해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된다.
먼저 전반부 1-12절에서는 바을 자신의 이방인 전도 사역은 결국 구속사의 전시대에 하나님이
택 한 모든 성 도들의 유기 적 공동체 인 교회 (church)의 형 성 과 관련된 하나님 의 구속 경 륜(救讀經淪)에 따른 섭리의 결과라는 사실과 바을 자신이 그러한 교회 형성과 관련된 구속 비밀 계시를 이방인에게 전파하여 이방인들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하는 사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개관해 볼 때 먼저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됨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교회의 구성원이 된 것과 관련된 구속사적 의의는 하나님의 구속사(救續史)
가 구약시 대 동안에 는 이 스라엘 민족을 중심 으로 전개 되어 오다가(신 32:9; 사 43:1;45:4;48
: 1) 신약시대에는 세계 만민에게로 확장된 구속사적 사실(출 2 : 23 ;롬 11 11)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에 관해서는 본서 ◎ 11장 연구자료 '이스라엘에서 세계 만민에 로의 구속사의 확장'을
참조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 경륜상 일시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민족적 장벽이 주어진 것은
사실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성취와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이 세계 만민(世界萬民)에로 확장 전파되면서 사실상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민족적 장벽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이후 오고오는 모든 세대의 세계 만민 중 택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순간 교회의 구성원이 되게 된 사실과 관련된 구속사적 의의 및 교훈에 관해서는 본서 제 2장 개관을 참조하라.
다음으로 후반부 14-21절은 이제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따라 세계 만민 중에 택한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 중 믿는 자들이 교회(church)의 구성원이 되는 것과 관련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오고오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깊은 통찰력을 얻는 교회 공동체의 영적
성숙을 구하는 바울의 중보기도와 송영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대할 때 우리 모든 성도는 교회 생활을 함에 있어서 자기
한 사람의 개인 구원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 즉 특정한 한 시대 혹은
한 지역의 교회가 아닌 이 땅의 전역사(全歷吏) 속의 모든 세대의 교회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깊은 이해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이는 각
성도들로 하여금 단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만을 바라보는 근시안적 태도에서 벗어나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원대한 구속사(救蹟史)의 한 노정에 선 자신의 시대의 교회에 주어지는 구
속사적 사명의 본질을 분명히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상 끝날에 교회 공동체 전체가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숙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이 맡기신 구속사적(救蹟史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함으로 얻게
될 천국의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빌 3 : 12-14)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구속사적 포부를
가지게 하며 그러한 포부를 실현하기 위하여 성도들간에 더욱 일치와 사랑을 가지기에 힘써야
함을 깨닫게 한다.
3장 본문&자료노트
원어연구- 보감-
신학용어- 인물연구-
신학용어- 지리배경-
인물연구 -3:1, 바울 롬 1장 연구자료 참조
도표-3 : 1-13 이방인의 구원에 관한 주요 구약 예언들 롬 11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3:1-13 본서와 골로새서의 유사한 내용들
1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구속 곧 죄사함(엡1 7;골1: 14)
2 서두의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엡1.15-19:골1:3-12)
3 성부와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것(엡1:23;3:19:골1:19:2:9)
4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된 사도 바을(엡 3 1-13:골1 23-29)
5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 위 에굳게 섬 (엡 3 . 17 : 골 2 . 7)
6 서로 용납하라(엡4․:2:골3: 13)
7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성도의 연합(엡4 16:골2: 19)
8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엡 4 : 22,23 : 골 3 : 9, 10)
9 주께서 용서 하신 것처 럼 서로 용서 하라(774'32,골3: 13)
10 탐심은 곧 우상 숭배 임(엡5:5:골3:5)
11 세월을 아끼라(175:16;골4:5)
12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하라(엡 5 : 19 : 골 3 : 16)
13 남편과 아내의 사랑과 복종의 관계(엡5: 22,23:골3'= 18,19)
14 부모와 자녀 사이의 을바른 태도(76 : 1-4:골3 20,21)
15 상전과 종의 의무(엡6: 5-9:골3: 22-24)
도표-3:3,4 성경에서 하나님의 비밀로 기록된 것들 골 2장 자료노트 참조
주요주제-3 : 11, 12 구원 확신의 근거들 롬 8장 연구자료 참조
보감-3:8 사도 바울의 겸손함의 특징
1 성도들 앞에서 늘 겸손히 행함(행 20 : 19)
2 자신을 복음을 위해 부르심 받은 종이라 부름(름 1 : 1)
3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섬기는 자리에 섬 (고전 9 : 犯-22)
4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유익을 먼저 구함(고전 10 : 33)
5 자신을 사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로 여김(고전 15 : 9)
6 자신의 부족한 면을 솔직하게 고백함(고후 11 : 6)
7 자신의 약한 것들을 오히려 자랑함(고후 12 : 8,9)
8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로 여 김(엡 3 : 8)
9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음(살전2:6)
10 자신을 모든 죄인 중에 괴수로 여김(딤전1 : 15)
신학용어 -3:11, 하나님의 예정 본서 1권 성경교리 신 론 참조
원어연구-3 : 13, 낙심치 말라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메 엥카케
인'(r? 777α77i7)이다. 여기서 '엥
카케 인' 은 '엥 카케오' (777α77? )의
부정사(不定詞)형이다. 여기서 '엥카케
오'는 어떤 구역의 범위내를 가리키는
'~안에'(in)라는 뜻의 전치사 '엔'
(77i과 '나쁜'(◎d), '악한'(evil)의
뚠을 가진 '카코스'(7α7◎)에서 유래
한 '나쁘게 행동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형용사 동사 '카케오'(『α7f7)의 합성
어이다. 따라서 '엥카케오'는 마음에
있는 신념 이 나 용기 가 약한 것으로 인해
래앗겨진 상태 또는 마음에 악만이 지
배하고 있고 다른 것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용기를 잃다' '지치
다'. '무력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리고 부정사형 '엥카케인'은 본문에
서 동사 '엥카케오'와 같은 의미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부정사(不定7Pl)
'메'(r7)를 가진 '메 엥카케인'(r?
777α77i7)은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용기를 잃지 않도록'이 된다. 한글 개
역 성경에서는 이것이 명령문처럼 번역
이 되어 있으나 실상은 이 문장이 '너
회에게 구하노니'라는 말과 연결되어
'너회에게 용기를 잃지 않도록 구하노
니 '가 된다.
이는 바울이 자신이 당하는 환난 때
문에 에베소 교인들이 용기를 잃지 말
도륵 당부하는 내 용이 다. 여 기 서 우리 는
환난을 당하고 있는 자신을 염려하기
보다 오히려 자신의 환난받는 것 때문에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낙심할 것을 먼저
염려하는 바울의 모습을 통하여 참 지
도자의 정신에 대해 깨닫게 된다.
도표-3 : 19 하나님의 부요 하신 것 10가지 롬 11장 연구자료 참조
신학용어-3:21 그리스도 안에서 엡 1장 자료노트 참조
3장 강해주석
3: 1-13 이방인 구원과 관련된 교회의 비밀
3: 14-21 교회 공동체의 영적 성숙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와 송영
1
3 : 1-13 이방인 구원과 관련된 교회의 비밀
전장 두번째 단락(엡 2 11-22)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
스도의 십자가 회생으로 말미암아 언약에 대하여 외인이었던
이방인과 선민 이스라엘 사이의 장벽이 철폐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유기적 연합체를 이룸으로써 '한
새 사람' 곧 우주적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이어
본문에서도 바울은 그의 간중 형식을 빌어 가장 커다란 신뢰
중의 하나인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일치되었
다는 교회의 비밀이 바을 자신에게 계시되어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그 일에 헌신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는 전장 두번째
단락(엡 2 : 11-22)과 교회를 위한 기도를 언급하고 있는
다음 단락(14-21절) 사이의 삽입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본문을 보면 바울은 먼저 그의 사도됨이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經淪)이라고 부르고 있다(1, 2절). 과연 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의 소명(召命)은 바을 개인뿐만 아니라 이
방인들을 위해서 큰 은혜의 경륜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 때 복음중거 를 위 한 사도로 부르심 을 받았고 이 방인을 위 한
하나님의 크신 뜻을 하나님의 계시로 깨달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3. 4절 : 행 9 : 15). 그런데 이러한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뜻은 과거에는 하나의 비밀이었다. 물론 구약의
선지자들도 명확하지는 않으나 복음의 비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사 11 : 10 :호 1 : 10 :말 1 : 11). 그러나 그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으며 신약 시대에 이
르러서야 비로소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사실은 바울조
차도 회심하기 이전에는 이 비밀을 알지 못하다가 회심 이후
성령의 조명에 의해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5절).
이 비밀이란 바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외인이었던
이방인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민
(選民)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의 기업을 얻는 후사가
되고, 함께 교회의 지체가 되고. 함께 소망의 약속에 참여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7절). 이는 결국 이방인과 유대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어 유기적인 연합체를
이룬다는 것으로 우주적 교회의 본질의 설명에 대한 핵심이라
할 것이다. 마을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깨달은
교회의 비밀을 중거하기 위해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고, 또
그것을 믿음으로 그어 떠 한 시 련과 환난에 서 도 담대 함은 물론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7-13절). 그리고
바울은 현재 자신에게 계시된 교회의 비밀을 전하다가 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1, 13절).
한편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1 바울은 그의 구원이 이방인에게 복음 중거를 하도륵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확고한 소명감에 사로잡혀
생명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복음을 중거했다(8절). 그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 역시 분명한 소명 의
식을 갖고 그 자신의 현위치와 은혜대로 받은 은사를 따라
어떠한 모양으로든 복옴 중거에 매진해야 함이 마땅하다(롬
12'6-8 :고전 7 : 17). 1요 성도들은 자신들이 구원얻게 된
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은혜의 결과임을 깨닫고
결코 자만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에 합당한 營을
살아야 한다(마 10 : 37 ;골 1 : 10 :살후 1 : 5).
3:1 이러하므로‥‥나 바울은. 본절은 일종의 독립
구로 다음절과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여러 견해들을 제시하고 있
다. 즉 ? 2-13절을 삽입구로 보고 본절을 14절과 연
결시키는 견해(The떨fret, Eadie, Ab◎株), ② 2-7절을
삽입 구로 보고 본절을 8절에 연결시 키 는 견해 (Grotius) ,
潑 2-12절을 삽입 구로 보고 본절을 13절에 연 결시 키 는
견해(Zanchius, flamer) 등이 있다. 이상의 견해들 가
운데 본절의 '이러하므로'라는 말이 14절에 다시 반복
되는 것으로 보아 ①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게 여겨진다.
그렇다면 바울이 여기서 갑자기 논지를 중단하고 다른
176 에베소서 3 장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하나
님께서 이방인들을 위해 바을 자산을 사용하신 사실을
밝힘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이방인과 유대인을
그리 스도 안에서 연합시 키 는 도구가 되 었음을 설명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갇힌 자. 문자
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로, 그리스도의 일로
말미암아 갇힌 자라는 뜻이다. 즉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거하는 일로 인하여 갇힌 자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이방인들도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전파
함으로 유대인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그 결과로 체
포되었던 것이다(행 21 : 27-36).
3 : 2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 '경륜'( o◎oHo -
칠쑈, 오이코노미아)은 '집'( 0:70f , 오이코스)과
'경영하다'( 77길티 , 네모)의 합성어인 '오이코노모
스'( 0◎077칠O? , 가정 관리자, 청지기)에서 유래된
말로 '관리', '경영'의 뜻을 지닌다. 성경에서는 특히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과 실행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
되어진다. 그런데 본절의 '그 은혜의 경륜'에 대해서는
①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사도직 자체를 가리킨다는
견해(Luther, Aretius)와 ②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바
울에게 사도직을 주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는 견해(Ch-
틴sostom, Eadie)가 있다. '경륜'의 단어의 뜻에 따라
②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하겠다. 즉 바울은 복음 안에서
이방인들을 구원코자 자신을 사도로 세우신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구속의 계획과 실행을 언급하고 있는 것
이다.
3'3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계시'
(7π077A7건7f , 아포칼륑시스)는 '베일을 벗기다',
'숨은 것을 드러내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인간들
에게 당신에 관한 어떠한 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가리
킨다. 그리고 '비밀'(尸77'r77f0? , 위스테리온)은
'입을 다물다'라는 의미의 '위오'(친77)에서 유래한
말로, '감추인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유대인과 이
방인의 구별이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믿음
으로 구원받아 한 교회를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
획을 가리킨다(고전 1 : 22-24). 이 계획은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로 이 사실을 밝히
알게 된 것이다. 한편 이 비밀이 언제 바울에게 계시
되었느냐에 대해서는 ①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 직후
7.◎◎◎ Linc7◎), ②회개 후 아라비아 생활 중(갈 1 :
17),"③ 고향 다소에서 은거 생활할 때(행 9 30), ④
안디옥에 체류할 때(행 13'1) 등의 견해가 있으나 어느
견해가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위의 어느
때일 것은 거의 확실하다.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본 구절에 대해서는 ①본 서신 이전에 바울이
에베소에 보낸 분실된 편지가 있었음을 나타낸다고 하는
견해(Calvin, Ch틴sostom)와 ② 본서의 앞에서 언급되
어 진 부분을 가리킨다는 견해 (Ellicott. Eadie, Alford)가
있다. 고전 5'9의 예가 있어 ①의 견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엡 1 : 9, 10:2:13-22 등에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과 비밀이 언급되어
있음을 보아 ⑦의 의견이 더욱 타당하다고 하겠다.
3 : 4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깨달은
것'(77777교 , 쉬네신)은 '지각', '이해력', '통찰
력'의 뜻을 지닌다. 바울의 설교는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리
스도의 비밀에 대한 바울의 통찰력은 그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증거였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비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
이 없어져 복음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3 :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사도'와 함에 '선지자'도 신약 시대의 직분을 가리킨
다. 엡 2 : 20 주석 참조. 그리고 '거룩한'은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음으로 인해 신성
성을 가짐을 의미한다. 또한 그들의 사명이 성령의
역사를 따라 그리 스도의 복음의 비 밀을 전파하는 신성 한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령으로 나라내신 것. 하나
님의 복음의 비밀의 계시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보여 준다. 바울은 본서에서 성령을 '계시의 영'이라고
묘사하면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러한 성령이 임하여
그들이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다(엡
1 : 17). 성령께서는 성경의 기록을 위해 역사하셨을
뿐만 아니라(딤후 3 16) 성도들이 기록된 계시의 말
씀을 읽고 깨 달을 수 있도록 역사하기 도 하시 는 것 이 다.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아니 하셨으니.
'다른 세대'는 성령의 계시로 복음의 비밀이 알려진
'이제'(신약 시대)에 대조되는 말로 '구약 시대'를 가
리킨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들'은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대조되어 성도가 아닌 자들을 가리킨다.
3.6 이는 이방인들이‥‥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
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거의
같은 뜻의 말이 세 번 반복되어 강조적 이다. 여기에
언급된 세 가지 표현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 결과적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첫번째 것은 그들의 특권을, 두번째 것은 그들의
상태를, 세번째 것은 그들의 신분을 나타낸다. 바울은
이전의 이방인의 소외된 상태(엡 2 : 11. 12)와 대조되는
복음 안에서의 복된 상태를 묘사함으로 복음의 비밀이
어떠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3 : T 이 복음을 위하여‥‥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일꾼'( 7f◎劣070f , 디아코노스)은 '하인', '봉사
자'. '집사', '섬기는 자'의 뜻을 지닌다. '복음의 일
꾼'은 '그리스도의 사도'(엡 1 : 1), '그리스도의 죄수'
(1절)와 함께 바울의 자신에 대한 칭호이다. '그리스
도의 사도'가 영광스러운 칭호라면 '그리스도의 죄수'
는 수욕적인 칭호요, '복음의 일꾼'은 그 양면성을 다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여튼 바울의 이러한 자신에
대한 칭호는 그의 그리스도와 복음 중심적인 삶을 나
장해주석 177
타내 준다.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일꾼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고백하고 있
다. 이는 자신이 복음을 핍박하는 중에 하나님의 강
권적인 역사로 구원받고 이방인을 위한 복음 전도자로
세우심을 받았음을 가리킨다(행 9'15 ; 22 : 21 ; 26 :
18) .
3 : 8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iAα것f7r7r7pof , 엘라키스토테
로스)은 '작은'(7◎틸7f, 엘라퀴스)의 최상급인 '가
장 못한', '제일 떨어지는'( 씬77f7rOT , 엘라키스
토스)의 비교급으로 강한 자아 부정을 나타낼 때 사
용되는 말이다(Robertson). 성경에서 본절에서만 나오
는 이 단어는 이중 비교급으로 가장 강한 표현이다.
바울의 이러 한 자의 식 은 이 전에 복음을 핍 박했던 자신의
뼈아픈 과거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자의식이 그로 하여금 항상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느끼게 했다(름 5 20).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측량할 수 없는'
( 777츠J:7◎7r0? . 아넥시크니아스톤)은 부정 접
두어 '아'(7)와 '탐지하다'를 의미하는 '엑시크니아
조'( 진릿7f'77? )의 합성어로 '파악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찾아낼 수 없는'의 뜻을 지닌다.
신약 성경에서는 이곳 이외에 롬 11 33 단 한군데에서
더 나온다. 70인역(LB朧)에서는 욥 5:9. 9'10에서도
나온다. 구약에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와 섭리를 표현하는 데 사용된 반면, 바울은 이
방인과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 계획과
섭리를 묘사하는 데 사용했다. 한편 '그리스도의 풍성'
은 복음 안에 있는 구원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풍성
함은 그리스도가 소유하고 계시며 자기 백성들에게 수
여해 주신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칠
었던. '만물'( π77rα , 판타)은 '모든 것'을 뜻한다.
여 기 서 는 가견 적 인 물질 세 계와 불가견적 인 정 신 세 계를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의미한다. 본절에
서의 강조점은 '영원부터'로 하나님의 구속의 비밀의
경륜이 영원부터 계획되었던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엡
1 : 4).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
심이라. 여기서 '비밀의 경륜'은 이방인이 유대인과
같이 구원에 동참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드러나다'
(77r7'r7, 포티조)는 '빛', '불'(◎◎ , 포스)에서
유래된 말로 '비추다', '조명하다'의 뜻을 지닌다. 즉
하나님 안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바울의 마음속에 비추어졌고, 하나님은 다시
바울로 그 비밀의 경륜을 만천하에 비추도록 하셨던
것 이 다.
3 : 7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알게 하려 하심
이니.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은혜를 베풀어 사도로 삼
으시고 이방인에게 비밀의 경륜을 전파하게 하신 목적
이다. 즉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비밀의 경륜을 전하게
하심으로 교회를 탄생케 하고, 이제 그 교회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망라한 모든 자와 하늘에 있는 천
사에게까지 비밀의 경륜을 알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결국 교회는 우주적인 선교의 모체임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 교회의 중요한 의의가 있다.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 이 말은 성경에서 주로 천사들에 대해 사용하는
말로 악한 천사를 의 미 하기 도 하고(고전 15 : 24 ; 엡 6 '
12 ;골 2 : 15), 선한 천사를 가리키기도 하며(골 1 .
16;2:10), 양자를 모두 가리키기도 한다(름 8 : 38).
본절에서는 양자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Eadie, Salmond). 성경은 천사들도 복음의 비밀을 살
펴보기를 원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벧전 1 : 10-
12).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천사들에게도 지상의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의 비밀을 알게 하신 것
이다.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각종'( πOA7π0◎( -
AOT, 폴뤼포이킬로스)은 '많은', '오랜', '넓은',
'깊은'을 의미하는 '폴뤼스'( πOA7f )와 '잡다한',
'여러 가지의', '다채로운'을 의미하는 '포이킬로스'
( πOf7激Of )의 합성어로 '여러 가지의', '한 없는'의
뜻을 지닌다. 한편 본절의 의미에 대하여는 ① 교회를
통해 나타나게 된 하나님의 변화성 있는 다양한 지혜를
나타낸다는 견해(Vincent)와 ⑦ 모든 인종과 문화가
다채롭게 어우러져 통일된 교회를 이루는 하나님의 새
로운 사회에 대한 묘사라는 견해(Sto7)가 있는데 두
가지 다 가능한 견해이며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과 섭리 속에 나타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의 오묘함과 무한함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3:11 영원부터‥‥예정하신 뜻대로. '영 원부터 ( r7?
α』고777. 톤 아이오논)의 문자적인 뜻은 '세대들'로
'뜻대로'과 연관되어 '영원하신 목적에 따라'(엡 1 :
11)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여러 세대를 통해 하나님의
목적이 계속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대는 바뀌어도 하
나님의 예정하신 뜻은 변치 않고 지속된다는 것을 의
미한다. 그리고 '예정하다'( πOfi? , 포이에오)는
문자적으로 '만들다', '행하다', '하다'의 뜻이다. 때
문에 학자들간에는 이 단어를 '정하다'의 뜻으로 해석
하여 본문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것'으로
보는 견해(Calvin, Beza, Bengel)가 있는가 하면 '성취
시키다'의 뜻으로 이해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시켜
나가는 것'으로 보는 견해 (Meyer, Stier, Grotius, Theo-
doret)가 있다. 본문의 문맥상 전자의 견해를 취하는
것이 뜻을 더욱 분명케 한다.
3. 72 우리가‥‥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담대함'( π77f77◎ , 파르레시아)은 '모
든', '온'( 운틀 , 파스)과 '말'(린77◎ , 레시스)의
합성어로 '자유로운 말', '대담한 말', '명백', '확신'
의 뜻을 지닌다. 성경에서는 대체로 정신적 자유, 즐
거운 신념을 표시하는 데 사용되었다(요 7 : 4, 13, 26 ;
16 : 25 ; 행 2 : 29).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
178 에베소서 3 장
하는 자의 신앙적인 확신과 죄에 대한 자유로움을 의
미하고 있다. 그리고 '당당히'( π7π0招7(』 , 페포
이데시스)는 '설득시키다. 확신을 가지다'( π7招? ,
페이도)에서 유래된 말로 '확신', '신뢰'의 뜻을 지닌
다. '당당히 나아감'은 '담대함'과 함께 관련되어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받아 하나님께 부끄러움이 없이
떳떳하게 나아가는 믿는 자의 확신에 찬 모습을 묘사
하고 있다.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
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자들의 대담성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즉 십자가의 구속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두려움 없는 담대함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
음의 결과로서만 생길 수 있는 것이다(고후 1 15 ; 3
4) .
3 : 13 그러므로‥‥낙심치 말라. '그러므로'는 2-12
절의 내용을 받는다. 이것을 바로 앞절과 연관시키려는
의도도 있으나(Meyer) 본절의 내용이 1절의 내용, 즉
바을 자신이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것으로 시작한 것의
결론 부분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앞의 전체 내용을 받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Salmond). 한편 '낙심하다'(jγ-
77xi7, 엥카케오)는 '위에'(i? , 엔)와 '나쁜',
'사악한', '부패한', '해로운'( 7α77f , 카코스)의
합성어로 '낙담하다', '실망하다', '피로하다'의 뜻을
지닌다. 아마도 신앙이 약한 일부의 성도들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힌 것을 복음의 패배로 인정하며 크게
낙심하였을 것이다(빌 1 : 12), 이에 바울은 그의 갇힘이
오히려 하나님의 깊은 섭리에 의한 것으로 교회에 영
광이 되는 일임을 설명함으로써 그들이 악에 굴복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3 14-21 교회 공동체의 영적 성숙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와 송영
주지하다시피 계시로 나타난 교회의 비밀을 바울이 간중
형식으로 언급하고 있는 앞단락(1-13절)은 문맥상 삽입
부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본문은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는 엡 2 11-22에 연결되어 이어지는 부분으로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와 송영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기도의 대상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바울의
간절한 심정을 언급하는 부분(14. 15절)과 기도의 내용을
언급하는 부분(16-19절). 그리고 하나님의 신비성에 대한
송영 부분(20, 21절)으로 나뉜다.
한편 바울의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도들의 속 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해지기를 간구했다(16절).
둘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성도들 안에 내주
하시기를 간구했다(17절). 셋째 성도들이 사랑으로 굳게
서기를 간구했다(17절). 넷째,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이르기를 간구했다(18. 19
절). 이러한 바울의 기도 내용은 사실상 성도들의 영적 성
숙을 위한 기도(엡 1 17-23)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다만 엡 1 : 17-23의 기도가 성도 각 개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본문의 기도는 성도들 전체. 곧 교회적 차원의 기
도라는 차이점이 있다 하겠다.
3 : 14이러하므로. 본절은 1절에 연결되는 것으로(1
절 주석 참조), 본절 이하에서는 2-犯절의 내용을 전
제로 교회을 위한 바울의 기도의 내용이 이어진다. 이를
보면 바울은 계시된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와 비밀을
근거로 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처럼 모든
간구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야 하는데,
이는 기도를 통하여 인간의 뜻이 아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요 15:7;요일 5 : 14).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즉속에게. '족속'( παIf죠 , 파
트리아)은 '아버지', '조상', '선조'( πα170 , 파테
르)에서 유래된 말로 공동의 조상에게서 나온 후손, 곧
'부족'이나 '종족'을 뜻한다. 즉 바울은 땅위에 있는
각계 각충의 인간들과 하늘에 있는 각계 각층의 천사
들이 모든 만물의 아버지되시는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며, 또한 그 하나님께 각 족속의 명칭을 부여
받았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3 : 15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하나님께서 하늘의
모든 천사들과 땅의 모든 족속들의 창조주로서의 보편
적인 부성(universal fatherhood)을 갖고 계심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이름'은 그 자체의 인격을 표시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위상을 묘사한 것이다(Theoph-
ylact, Zahn). 한편 기도에 있어서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께서 본을 보이셨고 가르치신
것으로(마 6:9;요 17장), 이처럼 하나님과 원수였던
인간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은 그리
스도의 구속 사역이 갖는 화해적 성격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하겠다. 무릎율 器고 비노니. 이는 매우 간곡한
기도를 드리는 자세이다(눅 22 : 41 ; 행 7 :脚 ; 20.
36 ; 21 : 5). 유대인의 기도의 자세는 이외에도 서서하
는 기도 자세(막 린 : 25 ;눅 18 11)와 엎드려 기도하는
자세(스 10 1 ;눅 18 13)가 있었으나 신약에 들어와
초대 교회에서는 주로 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것이 일
반화되 었다(Abbo7).
3 : 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
암아. '영광의 풍성'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표현하는
말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의미한다. 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은 성도들을 구원
하는 근원일 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역사하여 그들을 영적 전투에서 승리케 한다.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속 사람' ( ? f7?
7:7777πOf, 호 에소 안드로포스)은 성경에서 바을
서 신 에서 만 나오는 단어 로(롬 7 : 22 ; 고후 4 : 16) , '겉
사람'(? f77遣76p7πOf , 호 엑소 안드로포스, 고후
4 16)와 대조되는데, 겉 사람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
적인 면을 가리킨다면 속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려는 도덕적 자아를 가리킨다(Salmond). 이 속 사
람은 하나님의 뜻을 찾으나 겉 사람이 그것을 방해하
므로 여기에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롬 7'19-23). 이에
바울은 성도들의 속 사람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강
건해짐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한 것이다.
3 : IT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강해주석 179
'계시다'(7αrofri? , 카토이케오)는 '․..에 따라서:
'같이'(7αrd , 카타)와 '살다', '거주하다', '머물
다'( 0◎i? , 오이케오)에서 유래한 말로 '정착하다:
'거주하다', '살다'의 뜻을 지닌다. 그리스도께서 성
도의 마음에 계심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의 내주하심
으로 이루어진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성도들 속에
내주하실 것을 약속하셨고(요 14 : 20) 바울도 성도들의
몸을 성 령 이 거 하시 는 성 전으로 묘사하고 있다(고전 6 .
19).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성령의 내주하심을 간구한
것은 성령이 성도들 속에 계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욱
강한 역사로 성도들의 믿음이 견고해지기를 구한 것이다
(H떴go).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본구절은 앞구절과만 연관되어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신 결과로 '성도들이 사랑 가운데 깊이 뿌리 내리고
견고한 기초를 소유하게 된다'(NEB)는 뜻이다. 즉 바
울은 식 물과 건물에 비 유하여 성 도들의 신앙의 바람직 한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원수까지도 포용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들의 삶의 '근본적'이요 '기초
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엡 4 .2 ;요일 4 : 7-
11) .
3 18능히‥‥지식에 넘치는‥‥사랑을 알아. '넘치다'
(토'7fβ7AA? , 휘페르발로)는 '~위에','~넘어서'
( ◎루 , 휘페르)와 '두다', '던지다', '넣다'(◎-
AA? , 발로)의 합성어로 '지나치다', '능가하다',
'뛰어나다'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알다'(γf7고777,
기노스코)는 '알게 되다', '인식하다', '깨닫다'의 뜻
으로 체험적인 확실한 지식에 대해 쓰인다. 따라서
본절의 의미는 인간의 지식을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사
랑을 비 록 인간은 알 수 없지 만 그리 스도께 서 그들 속에
거하심으로 능히 알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사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지식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만으로는 알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체험 속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을
그때에만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고전 8 1 ; 13
:2;빌 4:7).
3. 19 그 넓이와‥‥어떠함을 깨달아. '깨닫다' (7αf -
αA77β777. 카탈람바노)는 본래 '붙들다', '잡다',
'빼앗다'의 뜻을 지니며, 본절에서는 '파악하다', '이
해하다'의 뜻으로 쓰였다. 여기서의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다. 즉 ① 구속의 비밀(Ch딘sos-
trim), ⑦ 그리스도의 교회(Koppe, Stier), ③ 하나님의
속성(Ambrosiaster, Matties), ① 그리스도의 사랑(C◎
vin, Meyer, 刻licott. H여go) 등이다.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①가 가장 타당하다. 한편 본절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온 유대인과 이방
인을 포함할 정도로 '넓고' 영원토록 지속될 정도로
'길며' 가장 타락한 죄인에게까지 미칠 정도로 '깊고'
그를 하늘로 올리을 정도로 '높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Stott).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무한성을 세상
의 척도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충
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헬라어 원문에서의 '하나님의 모든 충만'(π7? rdrA-
7777α r0? θ70參 , 판토 플레로마 투 데우)의 속격이
목적격 속격이냐 주어적 속격이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
진다. 만일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목적격 속격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충만하심은 그가 부여하시는 은
혜의 충만이 될 것이고, 주어적 속격으로 본다면 하나님
자신의 충만, 즉 하나님의 완전함이 된다. 문법상으로
명확히 분별할 수는 없으나 전치사'에이스'( 7if )가
쓰인 것으로 보아 후자로 해석함이 타당할 듯하다. 즉
본절은 '하나님께서 너희로 점점 충만하게 하사 하나
님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시기를 구한다'는 뜻
이다. 이 말씀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
심과 같이 너회도 온전하라'(마 5 . 48)는 예수님의 명
령과 그 맥을 같이한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성도들이
하늘나라에서 최종적으로 완전해질 상태를 구하고 있
는데, 이는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이요 약속이기도 하다
(롬 8 29 ;요일 3 2).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약속과
명령하신 말씀이 성도들에게 성취되도록 우리가 기도
해야 함을 교훈받는다.
3 20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
도록 능히 하실 이. '더 넘치도록'( ◎'7f77◎긴f? -
7o7, 휘페레크페릿수)의 문자적인 의미는 '과다하게',
'남아 돌아가게', '넘치게'의 뜻을 지닌다. 이 단어는
바울이 만들어낸 '최상급' 부사들 중의 하나로 영역
성경들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N財) 또는
'많은 것보다도 더욱 무한하게', '무한하게 많이'(AG,
JBP) 등으로 번역되었다. 바울은 이 용어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기도에 대한 웅담과 은혜의 역사가 한없이
크고 풍성하다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다(롬 8 : 28;빌
4 7).
3 :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교회'는 그리스도
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로서 서로 연합되
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계시하셨고, 교회는 그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
나는 곳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과 그리스도 안은 하
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두 영역이다. 이러한 교회와
그리스도는 신부와 신랑으로 실제로 영원히 함께 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살전 4 : 17 ; 계
22 . 17). 아멘. '아멘'(소칠牙? , 아멘)은 '진실한'이
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의 '아멘'( 17N )에서 온
말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사회자의 기
도나 시, 찬양 등의 끝에 그에 대한 찬송과 공명 (共鳴)의
표시 로 '아멘'으로 화답하였다(신 27 : 15-26 1 대 하 16
: 36 ;느 5 13 ; 8 6 ;시 106 : 48). 이 전통이 신약
교회에도 이어져 교회 예배에서 사용되었다(고전 14 :
16 ; 갈 1 : 5). 예배에 참여하는 청중들의 화답으로 사
용된 이 낱말의 정확한 뜻은 '과연 그러하다', '그것은
진실이다'. '그대로 될지어다'이다. '아멘'과 관련해
서는 대상 16장 자료노트에서 상술하였는 바 그곳을
보다 참조하라.
3장 핵심 성구관주
3장 주제, 원어 &교리설교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지는 풍성함의 특징
교회의 표지
그리스도의 사랑의 위대성
복음을 통한 이방인들의 축복
구분 : 주제설교
본문 :3:1-7
찬송 : 36, 215, 4ss
성도 여러분, 본문에서 바울은 이방인들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을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었으나 복음으로 인해 그들도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의 반열에 이르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종이 된 후, 복음의 빚진 자로서 평생 이방인들의 사도로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사역했던 것입니다(갈 2 : 8), 그리고 그러한 바울의 노력과 여러 복음 전파자들의 복음 전파를 통해 오늘날 이방인이었던 우리 역시 복음이 전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에 여기서는
이 방인이 었던 우리들이 복음을 통해 누리 게 된 주님 의 놀라운 축복을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 다.
1 . 후사가 되었습니다.
먼저 이방인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이을 하나님의 후사로서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롬 8 : 17). 과거에는 외인이요 손이었던 이방인이 택한 백성인 유대인과 동일하게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된 것입니다(엡 2 : 19). 성도 여러분, 바로 여러분이 이 놀라운 축복의 자리에 참예한
자들임을 믿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후사가 된 우리들은 영생의 소망과 은혜를 입었으니, 또한
이 복음을 위해 후사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딛 3 : 7, 8).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사서 감추인 보화를 차지한 사람처럼(마 13 :썬), 하나님의 후사들은 이 세상의 헛된 것들과 자기를
부인하고 회생하는 삶을 살 때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대를 잇는 후사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육체와
세상을 위한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참된 하나님의 후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지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우리 성도들은 전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방인이었으나 이제는 복음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믐을 이루는 각 지체들이 되었습니다(고전 12'27). 많은 성도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지체
된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하고, 각 지체들을 살피고,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야 합니다. 분쟁이 없이 마음을 같이 하고 돌아보는 일을 통하여(고전 12 : 25),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이루는 지체로서의 성도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육신의 일들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성결하고 깨끗한 주님의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이전에 그리스도 밖에서 행하던 육신적인 이방인의 일, 곧 음란과 악한 정욕과 탐욕을 버리고 성령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골 3 : 5). 그리할 때 진정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된 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생명과 영광의 나라에 이르게 될 수 있습니다.
3.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전에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 외인으로서 소망이 없던 우리들이 이제는 구원의 복된 소식인
복음으로 인해 오히려 그 약속의 언약들을 선포하고 소망을 주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일꾼으로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하나님의 복음의 사자가 되어 만민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하나님의 대사인 우리들은
얼마나 당당한 일꾼들 입니까 ! 그리고 보십시오. 전도자로서 택함받은 우리가 세상의 핍박과 조롱속에서도
복음 중거자로서의 임무를 온전히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습니까?
(계 2'10)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의를 위하여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여러분을 포함한 모든 이방인에게 진정 축복이 된 복음의 의미를 깨닫고 있
습니까? 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던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귀한 후사가 되
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음 증거의 일꾼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제 우리는 무한한 감사와 감격을 가지 고 이 복음을 위 해 살고, 복음을 위 해 죽을 수 있는 순교자적
믿음을 소유하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이 됩시다. 우리는 결코 복음의 귀한 축복을 받아 누릴만한 자가
못되는 죄악된 사람의 아들들이요, 이방인이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지는 풍성함의 특징
구분 : 주제설교
본문:3:8-13
찬송 : 39, 178, 410
성도들에게 가장 큰 기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랑과 평안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고통받고 방황하던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고후 8 : 9).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한 자가 아니라
주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은혜는 세상이 주는 것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지는 '풍성함은 세상 것들과 어떻게 다를까요?
1. 결코 부족함이 없는 풍성함입니다.
사람이 베풀 수 있는 은혜의 풍성 함이란 언제나 제한적 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지는 풍성함은 그 양적인 면에서 무제한적 입니다(애 3 22).
원수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가 하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 일흔 번 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대답은(마 18 : 21, 22) 죄인을 용서하는데 있어서도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비와 은혜의 풍성함이
무한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이처럼 우리에게 임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는 모든 성도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을 만큼 풍성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이처럼 풍성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누리며
기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세상의 제한적인 은혜를 의지하며 힘들고 불안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십시오. 누구든지 주께로 나아오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결코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2. 결코 변함이 없는 풍성함입니다.
처음에 다욋을 굉장히 아끼고 사랑했던 사을 왕은 다원의 인기가 백성들 사이에서 자기보다 더 높아지자
다윗을 미워하고 죽이려 하였습니다(삼상 18 : 6-11). 이와같이 사람이 베푸는 사랑과 은혜의 정도는 상황에
따라 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녀들에게 임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은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히 6 : 17). 사람의 마음은 쉽게 바뀌고 약속을 어기기도 하나, 하나님은
한 번 하신 언약을 결코 파(破)하지 아니하고 입술에서 낸 약속을 변치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시 89 34).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어떤 고난에 처해 있어도, 때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에도 변함없이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없다고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기쁠때나
슬플때나, 고난중에 도 항상 변함없이 풍성하게 여러분에게 임하고 계십니다(시 42 : 5).
3. 영원히 풍성합니다.
사람은 그 행사가 영원하지 못하나 하나님의 인자와 그 약속은 영원하며 대대에 미칩니다(시 100:5;사
26 4). 이와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는 은혜의 풍성함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영원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 : 6)고 하실 하나닐의 얼약과 '내가 세살 끝 날까진 너횐완 할살 함71 앗으린란'(만
자에게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된 우리가 세상 끝 날까지 두려움없이 담대하게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을 바로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그 은혜의
풍성함을 깨닫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 오십시오. 그리스도의 은혜가 주는 풍성함은 이미 여러분의 것
입니다. 그의 주시는 은혜는 부족함도 변함도 없으며 영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교회의 표지
구분 교리설교
본문 3:10-21
찬송 : 45, 245, 367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교회란 이런 곳이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표지(標識)가 무엇이냐? ' 즉 '그것으로 교회의 본질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것
또는 그것으로 어떤 교회의 바름과 그름을 결정적으로 가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받게 되면 우리 중 적지 않은 분들은 지엽적인 내용들로 그 대답을 대신할지도 모릅니다. 곧 예배,
교제, 봉사 등이 그것입니다. 물론 이런 대답들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대답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란 것들은 교회의 본질에서 우러나온 현상입니다. 그러면 이제 신약 성경 자체가 강조하는
교회의 근본 표지들을 살펴봄으로써 이제 우리 가운데 교회다운 교회 곧 참 교회를 만들어가려는 열망이
더욱 새로워 지기를 원합니다.
1. 말씀의 참된 선포와 성례가 있는 교회71 참 교회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최초로 세워진 예루살렘 초대 교회 이후로, 말씀은 교회에서 끊임없이 선포되어져 왔
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들에게 결코 새로운 사실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참되게 선포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다만 예배 시간에 청중들 앞에 좋은 음성으로 멋진 설교를 행하는 것을 뜻하는 것
입니까? 물론, 설교에 있어서 그런 요소들도 매우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말씀의 참된 선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말씀의 참된 선포란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왜곡됨이 없이 그대로 선포하는 것,
또 선포하되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권위있게 선포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말씀
보전과 선포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값싼 설득과 구술림으로 말씀을 도구삼아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등지려는 자들을 향해 영원한 결단을 요구하고 선포하는 권세의 자리인
것입니다. 이 권세는 음부의 권세라도 당치 못할 권세입니다(마 16 : 18, 19).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받고 복종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나, 그것을 거부하는 자 위에는 영원한 심판의 선언과 집행이
따를 것입니다(눅 20 : 18). 그러나 이 권세는 또한 겸손한 권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방식으로 죄인들의 결단을 요구하셨듯이, 교회도 겸손함으로 모든 죄인들이 구원 얻도록 하기
위해 이 권세를 행사해야 합니다. 한편 말씀의 참된 선포와 함께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성례가
있습니다. 성례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한 의식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가 각
신자들에게 전달되는 통로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례에는 침례와 성찬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례의
정당한 시행은 그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실행하고 있다는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따라서 성례도
말씀의 참된 선포와 밀접하게 연관된 참 교회의 표지입니다.
2. 신실한 권징(勸懲)이 시행되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교회의 가늠할 수 없는 고결함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이 지불되어 세워진 성령의 전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고전 3 : 16 ; 벧전 2 . 5). 뿐만 아니라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이라고
중거합니다(행 20 : 28). 그리고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엡 1 : 22, 23). 곧, 교회는 성삼위 하
나님의 전 인격에 의해 세워진 하나님의 전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과 순결을 표지로
가집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물로 썬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습니다(엡 5 : 26, 27). 이처럼 성삼위 하나님의 전 인격에 의해 세워진 교회의 순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이단자나 범죄자를 징계 또는 축출하는 것을 가리켜 권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들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세우신 교회라는 사도 바울의 의미 심장한 선언과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 값과 거룩한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교회의 순결과 거룩을 지키고 이루려는 노력에
반영되거나 드러나고 있습니까? 세속 사상들의 거친 물결 앞에서 우리들의 교회는 거룩함과 순결함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노력해 왔습니까 ? 그리고 교회의 구성원들인 각 성도들의 그릇된 생활에 대해 교회는
어떤 조처를 행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개인의 세상적인 안락과 체면 유지를 위해서는 깨끗한
도덕성보다 몰염치한 이득을 택하는, 그 어느 시대보다 부패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악한
사조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언제라도 하나님 앞에서의 거죽성과 순결을 더럽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도들에 대해 교회가 아무런 권면이나 책망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방관할 때,
오히려 그러한 성도들에 의해 교회 전체가 악한 세상에 쉽쓸릴 때,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권징을 포기한 교회는 이미 참 교회가 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권징의 시행으로 거룩한
순결을 지키는 교회가 참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운동 선수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또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견딥니다. 하물며,
영원한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고귀한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세워진 교회, 그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 사업에
전력해야 할 교회가 자신의 표지를 뚜렷이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흔들림 없이
바른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정당하게 실행하며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자신의 거룩한 순결을 지키기
위해 권징을 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표지를 삼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라야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을 힘있게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위대성
구분 . 주제설교
본문 . 3 : 17-19 찬송 : 2o, 141, 4o7
본문에서 우리는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은 인간의 지식으로나 마음으로 온전히 깨달을 수 없는 초월적인 것으로
사랑의 원천입니다(요일 4 : 8). 또한 주님의 그러한 초월적인 사랑은 구원의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고 바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의 위대성을 깨달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지식에 날로 자라갈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는 바른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토록 중요하고 위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1. 넓은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넓은 사랑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적용되는 것으로(름 3 : 2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름 10. 13).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예수님은 사랑을
베푸실 때 차별을 두고 신분의 귀천을 따지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큰 사랑을 나눠 주시지 않았습니까? 어느 사람이든지, 모든 사람의 주(主)가 되셔서 당신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평안으로 부요하게 하신 것입니다(롬 10 : 12).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은 넓고도 큽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조건없이 사랑한다 하면서도 자신에게 유익과 덕을 끼치는 자에게
또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친척 등에게만 국한되어 사랑을 베풀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제 온 인류를
자기 몸을 내어주심까지 온전히 사랑하신 예수님의 넓은 사랑을 본받아사락의 범위를 넓혀 나가야겠습니다.
주님의 넓은 사랑을 본받아 더 많은 자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베풀어 보다 많은 자들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합시 다.
2. 높은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또한 높은 사랑입니다. 인간들의 얕은 사랑과 같이 쉽게 변하거나, 즉각적이고
감정적이며 단순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이 동일하십니다.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께서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지 않습니까?
(히 13 : 5)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선하고 유익한 길로 이끄시기 위해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징계로,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높고 초월적인 사랑의 계획으로 말입니다(히
12 : 6).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러한 주님의 높은 사랑을 알아 그 사랑에 순종할 꽐만 아니라, 항상
변함없고 지혜로운 사랑의 실천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깊은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끝없이 깊은 사랑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무한한 용서의 사랑을 말합니다.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마 18'22)는 것은 예수님의 깃은 사랑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회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회 천부께서도 너회 과실을 용서하신다'(마 6'14)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의인의 자리에 이른 것은 바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 때문임을 깨닫고 우리도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의 용서받지 못할 죄를
무조건 용서해 주시는 그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가 오늘도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주님을 찾고 부르짖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에게 껏지 못할 지를 범한 자일지라도 사랑으로 용서하고, 악을
선으로 갚는 자 되어(롬 12 : 21) 주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의 깊은 사랑이 무수히
죄를 반복하고 죄에 굴복하는 우리에게 소망의 등대가 됨을 깨달아 우리 또한 끝까지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야겠습니 다.
성도 여러분 ! 진정한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이야말로 사랑의 원천이요,
본질 아닙니까? 모든 인류에게 향하신 무한히 넓은 사랑, 항상 신실하신 모습으로 그 뜻을 혜아릴 수
없을만큼 지혜롭게 행하시는 높은 사랑,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끝없이 용서하는 깊은 사랑, 이러한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는 아무 조건없이, 아무 자격없이, 아무 공로없이 구원과 생명을 축복으로 받아누리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바로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받아 누린 자로서 이 사랑을 온전히
본받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장 예 화
● 원숭이가 된 사람 ● 엡3: le-l9/롬7:22
몹시 굶주리고 오갈 데 없는 사람이 직장을 찾아다녔다. 이리저리 일할
곳이 없나하고 혜메다가 한 사설동물원 주인을 찾아가서 사정을 얘 기 했다.
그랬더니 동물원 주인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밥을 먹여주겠다는 것이
었다. 그 말에 그는 너 무 기떠서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약속을 받은 동물원 주인은 그를 데리고 창고로 가더니 원숭이
탈을 꺼내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쓰고 원숭이 우리에 가서 마음껏 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절대로 소리내어 말하면 안된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밥을 먹기 위해 원숭이 탈을 쓰게 된 이 사람은 매일마다 시간을 지켜
출근했고 원숭이 노릇에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원숭이 노룻을 하던 그는 그네를 타고 힘껏 을라갔다가
실수하여 호랑이 우리에 떨어졌다. 너무나 놀란 이 사람은
"어머니 ! "하고 소리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쪽 구석에 있던 호랑이가 얌전하게 그의 곁으로
오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너도 내 팔자와 같구나 ! "
이 이야기는 193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기에 나온 이야기이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여 탈을 쓰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거룩한 탈을, 또 어떤 사람은 속된 탈을 쓰고 사람을 속이 고
있다. 그러나 사람된 본성, 즉 속사람은 바로 하나님 앞에 드러나는 것
이므로 숨길 수 없다.
그렇다면 당신의 속사람은 어떠한 모습인가?
성경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속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날로 새롭고 강건하여지고 있는가?(유관지)
3장 금 언
차라리 나의 오른팔을 잘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聾 나는 내 주인의 심부름꾼에 욜과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나의 의무를 게을리 한다면,
(1절 /더들리 A.팅)
蘿 하나님의 일꾼이 되도록 하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소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꾼이 되도록 하라.
(7절/제임스 허드슨 테일러)
聾 믿음은 하나님께로 가는 캄캄한 터널을 밝게 비추어 주고, 죽음의 깊은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세워서.
자연이 퍼할 수 없는 충격을 부수고 더 먼 강가에 우리의 생각이 안착하게 한다.
(12절 /에드워드 영)
聾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실 목적으로 주시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쟁론하며 낙
심하라고 보내시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시려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13절/죠지 루이스 프렌티스)
聾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생긴다. 그 능력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그
종에게 주는 것이다.
(16절 /토마스 칼라일)
3장 Q. T
3 : 1, 13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
혔을지라도 바을은 낙심하지 않고 꾸
준히 성도를 권면하기 위해 서신을 띄
웠다. 환난 가운데에서도 낙망치 아니
하고 성도들을 격려하며 하나님께 영
광을 돌리는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당
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7721'33 : 7112 : 5(271, 375)
?'T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라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린 어떠한
가? 내 일이 비록 작은 것이라해도
하나님의 선물인줄 알아 감사하며 충
성을 다하고 있는가?
●고후3 6 : 약4 : 6(256. 378)
3 8 주님은 바울을 구원하사 이
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마찬
가지로 주님이 우리 각 개개인을 부르
신 목적도 이와 같으리라. 지금 내게
있어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할 가장
가까운 대상은 누구인가?
蓼행 9. 15 ; 고전 15 : 9(277. 313)
3.74-18 성도와 교회를 위한 바
을의 기도를 보라. 그런데 오늘날 우
리는 다른 성도와 교회를 위해서는 기
도치 않고 자신만의 필요를 위해. 현
세의 축복만을 위해 기도했던 이기적인
자들은 아니었는가 ?
●잠 15 : 29 ; 요 17 : 20(3飾. 5酪)
제4장 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근거와 성격 및 변화된
성도의 새 삶의 기본 원칙과 대인(對人) 관계
4장 본문&자료노트 강해주석 주제, 원어&교리설교
예화 핵심 성구관주 Q. T 금 언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지금까지 본론 전반부에서 교회의 구성원들인 성도의 지위나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본질에 관한 신학 원리를 제시한 데 이어 보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교회의
일 치 와 연합 및 변화된 성 도 개 개 인의 신앙 생 활과 관련된 교훈들을 주고 있는 본론 후반부 4 : 1-6: 20까지의 일련 기사의 개시부분이다. 여기서는 교회의 일치(一致)와 연합(聯合)을 권면하면서교회 연합의 근거와 성격에 대해 기록한 후 이어 구원받은 성도에게 요청되는 새로운 생활의
기본 원칙과 대인 관계(對人關係)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된다.
먼저 전반부 1-16절에서는 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근거와 성격에 대해 소개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각 성도들간에 서로 일치하고 연합하여야 하는 동기(動機)를 제시하고 있다. 즉 본론 전반부
2 : 11-22에서 소개한 바 교회의 본질(本質) 자체가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불문하고 구속사의
전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하여 유기적 연합을 이룬 것임을 대전제로 하여
교회 안에서 각 성도들이 유기적 연합(有機的辯合)을 가지게 되는 실제적인 근거가 무엇이며
또 그 성격은 어떠한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상술하면 1-3절은 교회 일치의
명령에 대해, 4-6절은 교회 일치와 연합의 근거에 대해, 7-16절은 교회 연합의 성격으로서 조직
(組織)을 통한 교회의 유기적 연합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대할 때 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오고오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의 신앙 생활의 중심인 교회 안에서 성도들간에 일치하고 연합해야 할 필연성에 대한
구속사적 의의를 발견하게 된다.
즉 '교회'(길orC교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근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당신의
사도들을 통하여 설립하신 성도들의 거룩한 공동체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여러 예언과
약속의 성취로 일단 성육신을 통해 초림(初臨)하시고 십자가 수난을 통하여 구속 사역을
완수하셨다. 그리고 이제 새로이 옛언약 곧 구약(舊約)의 모든 내용을 승계하시면서도 이를 더욱
확장하여 당신의 구속 사역 의 복음을 믿고 회 개 하는 자에 게는 훗날 그 구속 사역 의 최종 실 현으로서 영 원한 천국 구원을 주시 겠다는 새 약속 곧 신 약(新約)을 세우시 고 승천하셨다. 그리고 그어 간에 곧 당신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당신의 구속 사역의 복음을 보존할 기관이요 또한 그 복음을 믿고 회 차한 성 도들의 지 상 공동체 로서 의 교회 를 이 미 당신의 공생 애 때부터 직 접 세우시 고 훈련시 키 시 고 교회 설립의 대명(大命)을 맡기신 사도(使徒)들을 통하여 건립하셨다(마 28 : 19, 20 ; 행 1 : 8). 그리하여 이 교회내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후진에게 신앙을 전수함으로써 세상 끝날까지 주의 복음이 이 땅에서 보존되며 확장되게 하셨다. 그리하여 결국 교회 안에서 신 ․ 구약의 모든 말씀이 함께 보존되며 신 ․구약 구속사가 연속성(連續性)을 가지고 진행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거룩한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church)로 모인 성도들은 세상 끝날까지 곧 구속사가 종결되는 그 날까지 오고오는 모든 세대의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구원 얻도록 하기 위한 복음 전파의 사명 수행과 또 우리 성도들 개개인이 교회 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숙되어야 하는(4'13) 성화(聖化)의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복음 전파 사명의 효율적 수행과 교회 생활을 통한 성도의 자질 향상을 위해서는
교회 조직이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 조직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의 분량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맡은 직 분자들로 구성되는 바 이 직분들은 성도들간에 계급적인 차별을 주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교회 사명의 효과적 사명을 위해 주어진 것인 바 이를 위해 비록
직분은 서로 다르지만 성도들간에 서로 유기적으로 연합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조직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초대 교회 당시의 교회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그 조직이
매우 비대해져 있는 현대의 교회들에게 교회 조직이 갖는 구속사적 의의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달아 교회 조직 내에 속한 각 직 분자들간에 서로 다툼이나 분쟁이 아니라 오직 지체 의식을
가지고 사랑과 관용으로 서로 유기적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전시대를 초월한 구속사적 교훈을
보여 주고 있다.
다음으로 중반부 17-24절은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 생활과 관련된 일련의 교훈들을 기록한
4 : 17-5 : 1의 개시 부분이다. 여기에서는 교회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인 개개인
성도(聖徒)의 신앙 성숙이 필연적인 바 구원받은 개개인의 성도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새로운
삶의 기본 원칙으로서 구원받기 이전의 죄악된 옛생활을 버리고 성화(聖化)의 과정에로 나아가는
새생활을 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과거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공중 권세자 사탄(2 : 2)의
지배하에 세상 풍속을 좇으면서 살던 자들이었으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蹟)에 힘입어
구원받아 영적으로 새 생명을 얻었으며 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존재(存在)의 변화를
얻은 만큼 성도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성화(聖化)의 삶이 필연적으로 요청된다(롬 8 : 3-14)는
구속사적 교훈을 준다. 이에 관한 세부 설명은 제 2장 개관을 참조하라.
끝으로 중반부 25-32절은 넓게는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 생활과 관련된 일련의 교훈들을 기록한
4 . 17-5 . 21의 연속부분이다. 그리고 좁게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마땅히 요청되는 새 삶의 방
법으로서 대인(對人) ․ 대신(對神)관계에 있어거의 성도의 태도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4 : 25-5 :
14에 기록된 일련 기사의 개시 부분으로서 먼저 성도간의 대인 관계에서의 성도의 태도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본문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救蹟吏)의 한 노정에서 한 성도는
다른 여러 성도들과 필히 같은 지체로서 연관을 맺고 동일한 구속사적 시대에 즈음한 동일한
사명을 수행하게 되는 것인 바 서로 성령(班oxy Spirit) 안에서 소극적인 측면에서 말에 있어서나
행동에 있어서 타 성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를 넘어서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스도(Christ)의
박애정신을 본받아 사랑과 용서와 관용으로 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구속사적 교훈을 주고
있다(빌 2 : 1-5). 이는 구원받은 성도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제 2대 강령(마 22 : 37-40) 중
이웃 사랑에 대한 강령의 실천임과 동시에 구속사의 한 시대에 같은 사명을 소유한 지체된 형
제들끼리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이다.
4장 본문&자료노트
원어연구- 보감-
신학용어- 인물연구-
신학용어- 지리배경-
도표-4: 1-6 모든 성도들을 하나로 연합시키는 것 12가지
내용
한 신: 유일신 하나님 아버지(신 6 : 4)
한 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고전 12 . 5)
한 몸: 교제 ․ 역사하는 성령(고전 12'4)
한 마음: 주 예수와 연합된 몸(고전 12 : 12)
한 침례: 그리스도와 합한 침례(롬 6 3,4)
한 마음: 주를 사랑하는 마음(마 22 : 37)
한 생각: 생명과 평안을 위 한 생각(롬 8 : 6)
한 믿음: 주의 복음에 대한 믿음(갈 1 : 23)
한 사랑: 사랑을 통한 용서와 이해(엡 4 : 2)
한 소망: 영생에 대한 소망(엡 4'4)
한 길: 천국 구원에 이르는 길(빌 3 : 14)
한 교리: 정통교리에 의 한 교리(딤전 6 : 3)
보감-4 : 4, 7-16 한 몸에 속한 지체로서의 성도 상호간의 자세 고전 12장 자료노트 참조
보감-4: 1.4 하나님의 소명의 목적 고전 1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4 : 4-6 교회의 6대 속성
도표-4 : 13,14 신앙이 미숙한 자와 성숙한 자에 대한 성경의 주요 묘사
고전 3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4 : 15,16 주의 몸된 교회와 성도의 관계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든 성 도가 각 지 체 로 서 로 연결된 유기 체로 모사하고 있다. 이것은 단적으로 한 주 (主), 한 성령 안에서 자기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연합 ․ 교제하는 성경의 교회관을 선명히 반영하는 비유인 것이다. 이제 성경에 나타난 교회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한 말씀을 도표화 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주는 교회 의 머 리이심(엡1.22)
2, 성도는 교회의 각각의 지체임(고전 12 . 27)
3, 각 지체는 머리에 순종해야 함(엡 1'10)
4, 각 지체는 상호 연합해야 함(B? 4 16)
5, 각 지체는 자기 역할을 감당해야 함(고전 12 . 4-26)
6, 각 지체는 성령 안에서 하나됨(엡4'3)
보감-4 : 17-5. 7 본문에 언급된 새 사람의 변화된 모습
1, 거짓을 버리고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함(4 : 25)
2, 분노가 일어도 오래 품지 않고 그것으로 죄짓지 않음(4 : 26)
3, 다른 이들에게서 부당한 이 익을 취하지않음(4 28)
4,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 라 이웃을 위해노동의 수고를 행함(4 . 28)
5 더러운 말을 버리고 선한 말로 이웃에게은혜플 끼침 (4 : 29)
6 모든 악한 것들은 일절 끊어버 림(4 : 31)
7 이웃을 인자하게 대하고 긍휼히 여 김(4 : 32)
8 하나님께 죄용서 받았듯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함(4'32)
9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은 이름조차부르지 않으며 멀리함(5 3)
10 불신자들과 어울려 죄짓지 않음(5 : 6,7)
원어연구-4 : 12, 온전케 하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로스 톤
카탈티스몬'( n77r r7? 7α17fr7? -
길교)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카
탈티스몬'인데 이는 '카타르티조'(7α-
r77런◎)에서 유래한 명사 '카탈티스
모스' (7α1770 『設◎ 7r )의 목적 격 이 다.
여기서 '카타르티조'는 '완전하게 록
맞추다' '어떤 일을 위한 만반의 준비
를 갖추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르티조'
(77.f77)7?'777771'(th.ou77y)ㄹ?
는 뜻을 갖는 전치사 '카타'(7α17)의
합성어로서 그 기본적인 의미는 '철저
하게 꼭 맞추다'. '완벽하게 준비하다'
이다. 여기서 '성품상 마음을 온전케
하다'(눅 6 脚)라는 은유적인 의미가
파생되어 나왔다. 이 단어가 수동태형
으로 쓰일 때는 '수선하다'(막 1 : 19)
'부족함을 채우다'(살전 3 : 10). '이전
의 잘못된 상태를 바로 잡다'(갈 6'1)
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에서 유
래한 명사 '카탈티스모스'는 '완벽하게
꼭맞는 적응'.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
한 완벽한 자격'이라는 뚠을 갖는다.
한편 전치사 '프로스'(考)dr)가 목
적 격 을 취할 때 는 어떤 방향으로 가까이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을 향하여'(to-
wards),'-에 가까이에'(in the vicinity
of )라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프로스 톤 카탈티스몬'은 문
자적으로 직역하면 '완벽한 자격을 갖
추도록 하기 위하여'가 된다. 이는 그
리스도께서 사도와 선지자 및 목사와
교사를 세우신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한 봉사
의 책임을 촐릉히 감당케 하며, 또 그
인격이 점차 성화(壟化)하여 그리스도
의 몸을 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임을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이것은 달리
말하면 성도의 성장의 2대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보감-4:20,21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목적
성도에 대한 모든 가르침의 지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본문에서도
바울은 우리의 가르침과 배움이 '그리
스도에 대한' 지식적인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것.
곧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으로 주께
순종하며 따름으로써 얻게 되는 것임을
강조해 준다. 그렇다면 이렇듯 성도들
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
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겠다.
1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기 위해(출 18 . 20)
2 자신의 허물을 깨닫게 하기 위해(욥6'24)
3 주의 뚠을 행하게 하기 위해(Al 143: 10:름12:2)
4 천국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케 하기 위해(마 28 . 20)
5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해(엡4'll,12:골2'7)
6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기 위해(73 4 11, 12)
7 그리스도의 장성 한 분량까지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엡 4 . 13, 15, 16)
8 다른 교훈에 유혹되지 않게 하기 위해(엡4: 14)
9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해(딤후3 : 14, 15)
신학용어-그리스도 안에서 엡 1장 자료노트 참조
4장 강해주석
4 : 1-l6 교회의 일치를 위한 권면
4 : 17-24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칙
4 : 25-32 그리스도인의 대(對) 이웃 관계
1
4 : 1-l6 교회의 일치를 위한 권면
본서의 본론(2'1-6.: 20) 가운데 전반부에 해당하는 2 1
-3 . 21에서 바울은 교회른을 중심한 교리적 교훈들을 제
시했다. 이제 본서 본론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4 1-6 20
에서는 앞서 언급한 교리적 교훈에 상웅하는 실천적 교훈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본장에서는 교회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교회의 구성원을 이루는 성도들간의 교회 안에서의
일치와 각 성도들의 대 이웃 관계에서의 성결한 삶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이런 맥락하에 본문은 교회의 일치를 강
조하고 있다.
이제 본문을 보면 바울은 먼저 교회가 하나로 일치할 것을
촉구하고. 그러한 일치를 위해 각 성도들이 가져야 할 덕
목들을 제시하고 있다(1-3절). 그리고 이어 교회가 하나로
일치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4-6절). 나아가 그리
스도께서 성도 각자에게 은사의 분량에 따라 주신 다양한
직분은 교회의 일치와 각 성도들의 신앙 인격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도록 하기 위한 교
회의 사명 수행을 위해 필연적으로 교회 조직의 정비가 요
청되어 주어진 것인 바 각 성도들은 비록 직분은 다르지만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그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고 또 각
직분자들간의 다툼없이 유기적 연합을 이룸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온전히 세워 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7-16절).
이상의 본문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여기서 말하는
교회의 일치나 통일성이 모두가 획일적으로 동일한 존재가
되는 단일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다만
우리의 몸이 하나의 개체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각 지체의
조화로운 연합이 있어야 하듯,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온전히 세워지기 위해서는 각 지체로서의 성도들이 유기적
으로 연합하여 한 통일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몸의 각 지체가 다양하듯 통일된 교회 안에서는 각각의 다른
은사와 직분을 받은 성도들의 다양성이 무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몸이 다양한 지체들의 조화로운 연합으로 성장하듯
교회 안의 성도들의 다양성은 교회를 온전히 서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도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교회
안에서 그들이 받은 직분에 높고 낮음이 없음을 알아 서로
반목과 질시를 피하고 사랑 안에서 은전히 합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히 세워 나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골 2 19 ;
벧전 4.7-11).
4 : 1 그러므로‥‥권하노니. '그러므로'는 앞에 언급
된 모든 내용(엡 1-3장)인 교리 부분 전체를 연결시
키는 것으로 보인다(Salmond). 바울의 서신은 대부분
교리와 실천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믿어야 할 것'으
로부터 '행해야 할 것'으로, '이론적인 신학'으로부터
'실생활의 구체적인 문제'로 나아간다. 본서에서도 앞
부분(엡 1-3장)은 교리적인 문제를 다루고 됫 부분(엡
4-6장)에서는 실천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여
기서 '권하다'(π7Pα7αAi? , 파라칼레오)는 '곁에',
'가까이', '함께'를 의미하는 '파라'( π7iO관 )와 '부
르다', '초청하다'를 의미하는 '칼레오'( 7αAi? )의
합성어로 '간청하다', '권고하다'의 뜻을 지닌다. 이는
바울이 강압적이고 명령적인 자세가 아니라 사랑에 바
탕을 두고 간청하듯이 권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여기서 '합당
하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악시오스'( 777'7r )는 '-
에 비길 수 있는', '당연히 보답할'이란 의미의 '악시
오스'( 칩프of )에서 유래한 말로, '가치 있게', '어
7Hi:i? 191
울리게'란 의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며
그들이 세상과 분리되어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
다. 따라서 성도 흑은 교회가 하나님의 부름에 할당하게
행하는 것은 통일성과 순결성을 지키고 실행하는 것이
다. 바울은 본절 이하에서 바로 그와 관련하여 교훈하고
있다.
4 : 2 본절은 교회 또는 성도들이 일치를 이루는데
필수적인 덕목들을 언급하고 있다. 겸손. '겸손'(『απ-
77707f0777깃 타페이노프로쉬네)은 자신을 자기의
가치 이하로 낮게 생각하며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 자세를 가리키는 말로 본래는 '굽실거리며 복종
하는 노예의 모습'을 나타낼 때 사용하던 말이다(Tre-
nch, Bruce). 따라서 헬라인들은 겸손을 덕으로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어
종의 형태로 성 육신하시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모범을
통해(빌 2 : 3-8) 기독교 신앙의 미덕 가운데 매우 중
요한 미덕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은유. '온유'(考核d-
r7, 프라오테스)는 '친절한', '너그러운'( 딘◎(◎ ,
프라우스)에서 유래된 말로 '온화', '정중'의 뜻을 지
닌다. 그러나 '온유'는 결코 연 약함을 의 미 하지 않는다.
은유는 오히려 강한 자가 자신을 억제하고 조절함으로써
남을 부드럽게 대하고 섬기는 자세이다. 즉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성품을 뜻한다(Findlay). 결국 겸손과 은유는 다같이
자신을 부정하는 마음이라 하겠다(마 11 : 29 ;고후 10
: 1). 오래 참음. '오래 참음'(길α7PO凍◎◎ , 마크
로뒤미아)은 '긴', '먼 거리의'를 의미하는 '마크로스'
(깃껜띨◎)와 '분노'를 의미하는 '뒤모스'( 亂◎◎ )
의 합성어인 '마크로뒤모스'(칠α7fO凍◎고』 )에서
유래된 단어로, 상대의 나쁜 감정이나 노여움 혹은
잘못에 대해 응징할 수 있는 상황하에서도 참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특히 성경에서 하나님의 죄인들에
대 한 심 판을 오래 참으시고 구속하심 을 의 미 하는 것으로
자주 사용된다(롬 2 . 4 ;딤전 1 : 16).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앞서 언급한 '오래 참음'이 확대된 미
덕으로, '용납하고'는 상대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성도들은 형제들의 잘못에 대해 오래 참을
뿐만 아니 라 그들의 잘못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 할
때 진정 일치를 이를 수 있는 것이다.
4.3 평안의 매는 줄로. '평안'(e◎운7, 에이레
네)은 '합하다. 연결하다'( 틴즌? , 에이로)에서 유래
된 말로 '평화, '화평', '일치', '조화'의 뜻을 지닌다.
한편 골 3 : 14을 보면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절의 '평안의 매는 줄'을 '평안을 이룩하는 줄'로
이 해하고 그것을 '사랑'으로 본다(Bengel, Theophyla건
barless). 사실 사랑이 없이는 어떤 평화도 없다. 오직
사랑만이 성도들을 하나로 묶어 평화와 조화를 이룩하며
궁극적으로 일치를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
서는 자기를 회생하는 사랑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원수되었던 관계를 회복시켜 화목하게 하셨으며 유대
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을 제거하고 하나되게 하셨다
(엡 2 : 14-18).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하나
되게 하신 것'(i77r7rα . 헤노테타)은 '하나'를 의
미하는 '헤이스'( 을◎ )에서 유래된 말로 '단일성',
'일치', '연합', '통일'의 뜻을 지닌다. 결국 이 말은
'평안'과 비슷한 의미로 본구절은 성도들의 평안과 일
치가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 준다. 성도들
서로간의 일치와 연합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힘써 지키라. '힘쓰다'(7π077777, 스푸다
조)는 '서두르다', '부지런히 하다'의 뜻을 지닌다.
본절에서는 현재분사형 을 취하여 성도들이 교회 일치
라는 목표를 향해 진지하고도 부지런히 매진해야 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4 : 4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몸'은 그리
스도의 신비의 몸, 즉 우주적인 영적 교회를 가리킨다
(롬 12:5;고전 10. 17).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
나됨은 한 성령에 의해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즉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된 것이다(고전
12 : 13).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유대
인이나 헬라인이나 하나님의 부르심의 궁극적인 목적에
있어 같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한 소망'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예비하신 종말론적 의미의 구원을 가리
킨다. 이처럼 부름받은 자들이 한 가지 소망을 갖고
산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성도와 교회를 일치케 하는
원 인이 된다.
4'S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
이요. 모든 성도들의 '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므로 그 분에 대한 믿음과 침례도 하나임은 당
연하다. 믿음이 주께 대한 내적이고 실제적인 것이라면
침례는 내적 믿음의 외적 표현이요 상징인 것이므로
한 대상에 대한 믿음과 침례는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러한
세 례를 통하여 그리 스도에 대 한 신앙을 공적 으로 알리고
고백했으므로 그들의 믿음이 하나인 것 같이 침례도
하나인 것이다. 한편 '침례'는 성도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했음을
나타내는 외적 표징으로, 이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사
실에 대해서는 행 8장 연구자료, '침례의 이해'를 참
조하라.
4 : 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 라.
바울은 하나됨의 마지막 원리로 만유의 아버지로서의
'한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한다. 하나님의 유일성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 신앙으로부터 내려온 신앙의 유
산이다(신 6 : 4), 이는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시라
는 신앙에서 시작된다고 하겠다. 여기서 '만유'에 대
해서는 모든 피조물로도, 모든 인류로도, 모든 성도들
로도 볼 수 있으나 본문의 문맥이 교회의 일치에 대한
언급이므로 모든 성도들로 보는 것이 좋다. 한편 바울은
4-6절 사이에서 성부 ․성자 ․성령을 언급함으로써 삼
192 에베소서 4장
위 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위에'( 7π71 , 에피)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나타내며,
'통일하시고'( 淡◎ , 디아)는 문자적으로 '관통하시
고'의 뜻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내고, '가운데'
(i? , 엔)는 하나님의 내재하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교회를 초월하여 계시는 동시에 교회 속에 함께 거하
시며 교회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통치하◎다.
4:T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여기서의 '은혜'( 깃주7f , 카리스)는 하나님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엡 2 : 5, 8)와는
달리 '은사'(r70f77α , 카리스마)의 의미로 쓰였다.
즉 구원의 은혜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주어지지만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 각 성도
에게 선물로 주시는 은사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는
것이다(고전 12 : 4-31).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은사의 분량에 따라 각 직 분자들을 세우신
것은 교회의 일치와 영적 성숙 및 교회의 사명 수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인 바 이러한 직 분자들간에 유
기적 연합이 있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4 : 8 그러므로 이르기를‥‥하였도다. 바울은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앞절의 내용의 진실성을 입중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구약의 예언의 성취임을
밝힘으로 복음이 진리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위로 을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
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시 68 : 18의 인용으로, 이는
본래 다욋 시대에 법궤가 시온으로 옮겨진 것을 여호
와가 그의 성으로 입성한 것에 비유한 노래이다. 바울은
이런 장면을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켜 그리스도께서 높
아지셨을 뿐만 아니라 각 성도에게 은사를 분량대로
내려주시는 것을 하나님의 승리를 그린 이 시편의 성
취로 본 것이다. 실로 그리스도는 세상의 정사와 권세를
무찌르고 숭리 의 왕으로서 하늘 아버 지 의 보좌 우편으로
을리우셨으며(엡 1 : 20-22 ;골 2 : 15) 성령을 보내사
그를 믿는 각 성도들에게 분량대로 은사를 주고 계신다.
그런데 시편의 구절과 바울의 인용 구절간에 차이가
나타나 문제가 되고 있다. 즉 시편에는' '받으시니'로
되어 있는데 바울은 본절에서 '주셨다'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① 바울이 임의로 변경
하였다는 견해(Ellicott), ② 당시 유대인들이 이 시를
변경하여 사용하던 것을 바울이 그대로 인용했다는 견해
(Ab◎紅, Theodoret), ③ '받는다'는 히브리어 동사에
'가서 취해 온다', '주기 위해 취한다'의 뜻이 있다는
견해(AHord, Meyer, Eadie) 등이 있다. ③의 견해가
어휘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는 있으나 ②의 견해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어쪘든 당시 정복자들은
전리품들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상례였다(삿 5 :
30;삼상 30 : 26-30;시 68 : 12 ;사 53 : 12). 한편
본절에서 또 한 가지의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사로잡힌
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원수인 사탄으로 보는 견해(Calvin, Bengel, Meyer)와
마귀 에 게 사로잡혔던 성 도들을 가리킨다는 견해 (austin.
Theodoret)가 있는데, 본절이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
의 승리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자의 견
해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4: 9 을라가셨다 하였은즉, '올라가다'(77αβ☞-
고7, 아나바이노)는 '위로', 위'(켜7션 , 아나)와
'걷다', '가다'( β77fr . 바시스)에서 유래된 말로
여기서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영광 중에 승천하신
것을 가리킨다(엡 1 : 20, 21;2:6),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 본구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다양한
해석이 있다. 즉 ① 그리스도의 숭천 후에 교회에게
주시는 은사들에 관한 말씀이 됫 문맥에 이어짐으로
오순절 성령 강림을 의미한다는 견해(Caird), ⑦ 벧전
3 19과 연관하여 그리스도께서 음부로 내려가신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Tertullian, Irenaeus, Jerome, Meyer,
AHord), ③그리스도의 죽음과 장례를 가리킨다는 견해
(Ch틴sostom. Theophylact, Bullinger), ① 요 3 : 13의
'하늘에 올라간 자'로부터 추론하여 '땅 아랫 곳'(f?
7αl고r7fα l숫 깃◎, 타 카토테라 테스 게스)에서
'테스 게스'를 소유격으로 보고 '땅의 아랫 곳'은 단지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가
리퀸다튼 견해(雲alvln, H여go, Grot;us, 街e;ss, 넛b음꼬
등이 있다. ①은 그리스도의 내려오심이 본문의 문맥상
승천 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숭천 전에 있었던 일이며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선물을 주신 사건은 그의 강림
사건보다는 그의 숭천 사건과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8절) 타당성이 없다. ②는 벧전 3 : 19이 무
엇을 의미하든지 본절에는 음부나 지옥에 관한 언급이
없는 면에서 타당성이 없다. 또한 ③의 견해도 문맥상
쪄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④의 주장을 취하는 것이
타당하며 이에 덧붙여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굴욕의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낮아지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Stott, Hendr◎seA).
4 : 10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
스도의 숭천 목적이다. 여기서 '만물을 충만케 한다'는
것은 온 우주에 임재하는 것과 은 우주를 주권적으로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Bruce). 결국 그리스도의 승
천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림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그로의 충만임을 알 수 있다.
4 : 11 본절은 7절과 연결되어 그리스도께서 성도 각
자에게 나눠주신 각양의 은사에 따라 주신 교회 직분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되는 교회 직분은 고전 12 :
28에 소개되는 직분과 거의 차이가 없다. 사도. '사도'
(凉◎◎◎OAO글 , 아포스톨로스)는 동사 '보내다'(凉π-
07:rfAA7, 아포스텔로)에서 유래된 말로 '보냄을 받
은 자'라는 뜻이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대
하여 사용되어 그리스도의 대사요 중인으로서 세상에
파송됨을 의 미하는 말(요 13 : 16 ; 17 : 18 ; 20 : 21). ⑦
교회의 사도들로서 교회의 사명을 맡아 교회에 의하여
파송된 자들을 가리키는 말(고후 8 : 23 ;빌 2 : 25). ③
그리스도의 사도들로서 예수님의 12제자와 바울과 주의
장해주석 193
22 ; 10 : 40-44 ;고전 9:1;15 : 8-9). 본절에서는 하여 섬기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도와 주도록 하기
③의 의미로 쓰였다. 엡 1 . 1 주석 참조. 한편 ③에 위해 세움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해당하는 사도직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은 행 1장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직분자를 세우신 세번
성경에서 '선지자'는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한 자',
'여호와의 입으로부터 말하는 자'로 불리웠다(렘 23 :
16-32). 즉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변자요 직접적인 계
시의 전달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선지자는 초대 교회에
사도직과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그들은
때로는 미래를 예견하기도 했다(행 11 28 ; 21 : 9, 11).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함으로써 인간들로 죄를 깨
닫게 하는가 하면(고전 14 : 24) 훈계의 말씀으로 교회에
새로운 힘을 더하여 주기도 했다(행 15 . 32). 신약의
선지 자의 직 분은 사도직 과 마찬가지 로 한정 된 직 분으로
교회가 굳게 서가고 성경의 기록이 완성되면서 곧 사
라졌다. 안디옥 교회의 유다와 실라(행 15 : 32)를 비
롯하여 빌립의 네 딸(행 21 : 9)등은 초대 교회의 이름난
선지자들이었다. 한편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이 종교
생활을 주도하였으나 신약 시대에서는 사도들이 주도
권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계시의 충족성을 보여 준다 하겠다. 복음 전하는 자.
이들의 임무는 사도들 밑에서 여러 각지를 순회하면서
전도하는 것이었다. 빌립은 '전도자'라고 불리웠고(행
21 8) 디모데는 '전도인의 일을 하라'는 사도 바울의
교훈을 받았다(딤후 4 : 5). 목사와 교사. '목사'(πo(-
77i7, 포이멘)는 '목자'라는 뜻이다. 즉 목자장이신
그리스도(히 13 : 20 ; 벧전 2 . 25;5. 4)의 양무리(요
21'15-17 ; 벧전 5 2)를 맡아 영적 양식으로 먹이고
그들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직분를 뜻한다.
그리고 '교사'( 灰獻룬7α人O? , 디다스칼로스)는 '가
르치다'(崙灰곤7? , 디다스코)에서 유래된 말로 목사
와 거의 같은 의미를 갖는다. 많은 학자들은 헬라어
원문에서 목사와 교사 앞에 관사가 하나밖에 없다는
이유로 같은 한 직분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Bengel. Meyer. Eadie). 즉 '목사'는 직분의 관
점에서, '교사'는 목사가 갖는 직무의 한 측면인 가르
치는 일을 하는 것과 관련해서 반복하여 기록했다는
것이 다.
4 : 12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직분자를 세우신
목적에 대한 언급이다.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
께서 교회에 직분자를 세우신 첫번째 목적이다. 여기서
'온전케 함'( 7αr7:71꺾◎7f , 카탈티스모스)는 '완
전하게 하다', '준비하다', '연합하다', '채우다'란
의미의 '카탈티조'(77r70r런? )에서 유래된 말로
'완성', '준비', '연단', '훈련'의 뜻을 지닌다. 즉
교회 직분자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여
영적으로 성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세움을 받은 것이다
(갈 6. 1 ;히 11 : 3).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
도께서 교회에 직분자를 세우신 두번째 목적이다. 여
기서 '봉사'( 灰◎7077α , 디아코니아)는 '하인, 봉사
자, 집사'( 7f77070T , 디아코노스)에서 유래된 말로
'섬김', '원조', '집사직'의 뜻을 지닌다. 즉 교회 직
4 : 13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있어서 교회 직 분자들이 힘써야 할 과제이다. 즉 교회
직분자들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여기서 '아는 것'
( jπ쏜777fr , 에피그노시스)은 '위에'( jπ(', 에피)
와 '알다'(γr7고77? , 기노스코)의 합성어인 '정확히
알다, 인식하다, 이해하다'(j『」것7쑈777, 에피기노
스코)에서 유래된 말로 '넘치게 알다'의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적 지식뿐만 아니라 깊은
교제를 통한 인격적인 앎을 의미한다. 한편 '하나님의
아들'이란 명칭은 바을 서신에서 그가 즐겨 사용하는
'그리스도'에 비해 드물게 나타나는 것으로(름 1:4,
갈2 : 20 ;살전 1 10), 바울은 본절에서 교회의 믿음과
지식의 대상으로서 궁극적으로 그 안에서 교회의 통일
성이 성취되어질 주님에 대한 묘사에서 주님의 독특한
지위인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Ro-
binson). 하여간 교회는 성도간에 신앙의 일치를 이를
때 온전히 세워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치를 이루는
기본 조건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일치이다. 그리
스도에 대한 지식이 일치하지 못할 때 교회는 분열될
수밖에 없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온전한'(f린7-
fOrt , 텔레이오스)은 '끝', '종말'을 의미하는 '텔로
스'( r킨of )에서 유래된 말로 '목표에 도달한',
'완전한', '성숙한'의 뜻을 지닌다. 즉 충분히 성장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고전 2 6 ; 14 : 20 ; 히 5 :
14). 그리고 '사람'( ◎77? , 아네르)은 '어른', '인간'
의 뜻이다. 따라서 '온전한 사람'은 '장성한 사람'을
가리키며 14절의 '어린 아이'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결국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라는 말은 성도들이 그리
스도에 대한 신앙과 지식으로 하나되게 '한 새 사람'을
이루는 것을 시사한다(엡 2 : 15).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성도 개인과 교회의
영적 성숙의 목표이다. 여기서 '장성한'( 77A(7◎ ,
헬리키아)은 '얼마나 많이', '매우 거대한'을 의미하는
'헬릭스'( 7A씬 )에서 유래된 말로 '성숙한', '키',
'신장'의 뜻을 지닌다. 즉 연령적인 면의 성숙(barless,
Koppe)과 신체적인 성숙(Ch린sostom, Grotius, Bengel)
의 양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본절에서는 상징적인
의미로 성도 또는 교회의 영적인 성숙의 의미로 쓰였다.
한편 성도와 교회가 이와 같은 완전한 성숙을 이루는
때가 언제인가에 대해서는 현세라는 견해(Theophylact,
Luther, Meyer)와 내세라는 견해(Theodoret, Calvin)가
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그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그의 몸된 교회를 세워
나가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까지 이르도록 하기 위해 직분자를 세우셨던 것이다(13
절).
194 에베소서 4장
있는데, 신학적으로 볼 때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현세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음은
분명 하다.
4 : 14어린 아이, 13절의 '온전한 사람'과 대조되는
객 념 으로 영 적 으로 미 성숙한 자를 가리 키 는데 (고전 3 :
1, 2 ; 히 5 13), 바울은 거짓 교사의 궤흘과 유혹에
넘어가 믿음이 흔들리는 성도를 바로 이러한 어린 아
이로 묘사하고 있다.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흑. '궤
술'(77β7◎ , 퀴베이아)은 '정육면체', '주사위'를
뜻하는 '퀴보스'( 77f7of )에서 유래된 말로 '주사위
놀이', '교활', '속임수'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유흑'
( 『α7o7길γ◎ , 파눌기아)은 '어떤 일을 할 준비가 된'
( πα70i늘γOf , 파눌고스)에서 유래된 말로 '영리함,
'교활', '간교'의 뜻을 지닌다. 이 두 말은 다같이 도
박꾼이 상대방을 속일 때 쓰는 악한 기공(技工)을 나
타낼 때 쓰는 말이다. 즉 바울은 궤술과 유혹으로 성
도들을 속이고 교회를 해치는 거짓 교사를 남을 속여
자기 배를 채우는 도박꾼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여기서 '밀리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페로'( 『琴껸iP? )는 '앞뒤로
운반하다', '지니고 다니다'는 뜻이다. 또한 '요동하
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뤼도니조마이'(7A77777f_
77rα」 )는 '큰 물결', '파도'를 의미하는 '클뤼돈'
(7A7777)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을 아쩔하게 만드는
격렬한 진동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다'라는 말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미성숙하
여 거짓 교사들의 교훈에 흔들리고 놀아나는 상태를
묘사한다. 본절은 바로 이러한 상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직분자를 세워 성도들을
양육하게 하셨음을 밝히고 있다.
4 :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괸 것을 하여. '참된 것을
하다'(려커낏◎凉暇, 알레듀오)는 '사실을 말하다', '진
실되이 말하다', '정직하다'의 뜻을 지닌다(갈 4 : 6).
그러나 본문에서는 '말하다'의 의미보다는 '진리를 보
존하고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Westcott, Vincent).
'사랑'과 '진리'는 항상 동반자적 관계로서 진리를 떠난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사랑 안에 있지 않은 진리를 행함도
있을 수 없다. 진리와 사랑은 신앙의 기본 요소이며
교회의 기초인 것이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진리와 사락 가운데 성
장하는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
하신 사랑과 진리에 이르는 것이다.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에 복종하여 따름으로 교회는 그리스
도를 점점 닮아가며 성숙하여지는 것이다(마 5 : 48 ; 11
. 29;고전 11 : 1).
4 : 16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마디'(却? , 하페)는 '동이다', '록 붙들어 매다'
(7πr? , 합토)에서 유래된 말로 '힘줄', '관절'의
뜻을 지닌다. 이 단어를 '합동', '연합'으로 해석하기도
하나(Bengel, Stier, AHordi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마디'로 이해하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
이다(Calvin, Ellicott, Eadie). 즉 본절은 몸의 각 구성
마디마디가 연결됨으로 성장과 진정한 기능이 가능한
것을 교회에 비유하여 성도들이 서로 연합하여 하나를
이루어 주님의 지시에 온전히 순종할 때 교회가 성장
하고 그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한편 여기서 '도움을 입음'은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는
말로, 성령은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교회를 연
합케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각 지체인
성도들 개개인에게 전달함으로 몸된 교회가 온전히 자
라게 하신다. 작지체의 분량대로역사하여. 이는 교회
안에서의 직분과 은사의 다양성 속에서 성도들 각자가
맡은 바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분수대로 감당해
나가야함을 의미한다.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랄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각 지체들의 분량대로 역사하는
목적이 단순히 자신을 세우고 성장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몸의 성장과 세움을 위한 것임을 보여 준다.
즉 몸이 머리의 통제 아래 협력하여 성장하듯이 성도
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의 사랑 안에서 각자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교회를 자라게 하는 것이다.
4:17-24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칙
지난 단락에서 바울은 실천적 권면의 첫번째 사항으로
성도들간의 교회 안에서의 일치를 촉구하였다(1-16절).
이제 본문에서부터 엡 5 : 21에서는 실천적 권면의 두번째
사항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받은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생활과 관련하여 권면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본문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일반적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즉 옛
사람의 어두운 생활을 청산하고 새 사람의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다.
에베소 교인들은 과거 그들이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하나님 없는 營을 살았다. 그래서 그들은
허망한 마음과 어두워진 생각과 내적 무지로 인하여 무감
각해지고 방탕하며 욕심으로 가득 찬 더러운 생활을 하였다
(17-19절),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공통된
모습이다(롬 1 : 21-25).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하신 경륜
으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입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들었으며. 또한 그의 가르침을 받
았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들의 옛 사람의 생활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서의 삶의 마땅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20-22절 :
고후 5 . 17 :갈 3 . 27). 특별히 바울은 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권면하고 있다. 첫 째는 심 령으로 새 롬게
되라는 것이다(23절).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부패한 심령
가운데 새롭게 창조하신 정한 마음(시 51 : 10)을 지속적으로
유지 하여 타락한 옛 본성 이 일으키는 부패 하고 타락한 요구를
철저히 억제할 것을 요구하는 말이다. 둘째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이다(24절). 이는 자신을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과 형상을
본받는 새로운 인격체로 변화시키라는 말이다.
정녕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형상으로 새
롭게 지음받은 자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형상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만일 성도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성품으로서의 의와
거룩함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의 중생한 자라
할 수 얼을 것이다(요일 2 : 29:3:10).
강해주석 195
4'IT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여기서 '증거하다'
(길7ior770rα」 , 말튀로마이)는 말은 엄숙히 선언하며
하나님을 두고 명령하는 것을 뜻한다(행 20 : 26 : 26 :
22 ; 갈 5 : 3, Salmons). 그리고 '주 안에서'는 '주의
이름으로'라는 의미이다(GNB). 그러므로 본절은 바을
자신이 주님의 권위를 힘입어 명령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 마음의 허망한것. '마음'( 70i◎ , 누스)은
'정신', '이성', '생각'의 뜻을 지니며 바울에게 있어
서는 행동에 관련된 도덕적 판단에 관계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허망'(길α『α77r7r , 마타이오테스)은
'헛되이', '아무 목적없이', '맹목적으로'( 길◎r7? ,
마텐)에서 유래된 말로 '헛됨', '어리석음', '거짓 종
교'의 뜻을 지닌다. 본문에서는 이교도들의 불경건한
삶 전체의 특성을 묘사하고 있다. 이교 사회는 인간
삶의 진정한 목적과 완성에 대한 개념조차도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들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무모하게
방황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 없이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허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 18 본절은 이방인들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이유에 대한 언급이다. 통명이 어두워지고.
'총명'( 7f◎77fα , 디아노이아)은 '․..을 통하여'
( 7f? , 디아)와 '인지하다', '이해하다', '깨닫다',
'생각하다'( 70fi? , 노이에오)의 합성어로 '사고',
'이해', '목적'의 뜻을 지닌다. 본절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전인격적인 지식을 가리킨다. 그리고 '어두워지
다'(7'701린? , 스코티조)는 '어두움', '흑암'을 의
미하는 '스코토스'(7․77rof)에서 유래된 말로 '어둡
게 하다'의 뜻을 지닌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도록 창조되었으나
죄로 인해 그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무지함과‥‥마음이 굳어 짐으로 말미암아. '무
지함'(쓴낀07α , 아그노이아)은 어떤 사실에 대한 단
순한 무식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종교적, 도덕적 맹목
상태를 가리킨다(행 3 : 17 ; 17 : 30). 그리고 '굳어짐'
(π교p77ff, 포로시스)은 '돌같이 되다'( π7f永? ,
포로오)에서 유래된 말로 '무감각', '완고', '우둔'의
뜻을 지니는데,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를 나타낸다. 바로 이러한 무지와 무감각이 하나
님과 원수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
도다. 무지함과 마음의 굳어 짐으로 총명이 어두워진
결과이다. 이러한 결과는 인류의 원죄로 말미암은 것
으로 인류는 그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빛을 거역
하는 죄를 범하였던 것이다(름 1 : 18 ; 2 12).
4 19저희가 감각없는 자되어. '감각이 없다'(7π-
α거γi7, 아팔게오)은 '~부터 떨어진'(凉곯 , 아포)과
'고통스러워하다'( ◎大γi? , 알게오)에서 유래된 말로
'고통스러움이 그치다', '굳어지다, '무디다'의 뜻을
지닌다. 즉 고통이나 슬픔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로 죄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양심에 젤
림을 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신을 방탕에 방
임하다. 여기서 '방임하여'( 『琴α77'77길』 , 파라디도
미)는 '-부터', '곁에'( π7i7? , 파라)와 '주다','S
탁하다', '제물로 바치다'(77f77칠f, 디도미)에서 유
래된 말로 '양도하다', '포기하다'의 뜻을 지닌다. 이
말이 예수께 적용되었을 때는 그가 세상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내어 주신 것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롬
4 : 25 ; 갈 2 : 20 ; 엡 5 : 5, 25). 그러나 이방인들은
자신을 방탕에 내어 주었다. 여기서 '방탕'(려7킨γ-
7fα , 아셀게이아)은 '무절제'. '방종', '호색', '음
란'의 의미를 지니는데 보통 난폭한 행동 흑은 어떤
개인적 기준이나 사회적 기준을 무시해 버리는 생활을
가리킨다. 이처럼 이방인들이 자신을 방탕에 내어주었
기 때문에 하나님 역시 이들을 단념하셨다(름 1 : 24-
32).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욕심'(πAe-
777f쏘 , 플레오넥시아)은 본래 창녀의 욕망을 가리
키던 말로서(Grotius, Bengel, Koppe) 성적인 방종을
비롯하여 돈에 대한 열망 등 원래 자신의 몫이 아닌
것에 대한 탐욕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영혼이 무감각해진 자들은 자제력을 상실하여 그 삶의
만족을 모르고 결국 탐욕에 젖어 방탕한 생활에 빠지는
것 이 다.
4 : 20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
하였느니라. 여기서 '너회'는 성도를 가리키는 말로
전절의 이방인을 가리키는 '저회'와 대조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배우지'는 그리스도의 인격 자체
가 배움의 목적임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의 '배움'
은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적 내용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교통을 통한 체험적이고 전인격적인 앎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배움'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믿
음'이란 말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
4 : 21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
았을진대. 에베소 교인들이 복음을 받았음을 가리키는
말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배웠다는 의미이다(공동
번역).
4 22색어져 가는 구습을 雲는 옛 사람을 벗어 버
리고. '썩어져 가는'( 7狂낄수770? , 프데이로메논)
은 '파괴하다', '색히다', '망쳐놓다'라는 의미의 '프
데이로'(7◎쑤미 )의 현재분사형 이다. 즉 현재에도
계속해서 썩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멸망으로 다
가가는 옛 사람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다. 또한 '옛
사람'은 '새 사람'(24절)과 대조하여 죄로 오염되어
타락한 자연인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벗어 버리
다'(凉緖r7智幣긴 , 아포티데미)는 '~부터 떨어진'
(7π? , 아포)과 '위치하다', '배치하다'( r7'流◎? ,
티데미)에서 유래된 말로 '버리다', '젖혀두다', '옷을
벗다'의 뜻을 지닌다. 결국 본절은 죄악된 상태에서
해방되어 죄와 결별하라는 말이다. 이러한 죄와의 결
별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함께 죽음으로써 만 가능
하다(갈 2 . 20).
4 : 23오직 심령으로 새롬게 되어. '심령'(r? πu-
196 에베소서 4장
7구順r? r0? 707f, 토 프뉴마티 투 노오스)의 문자적
의미는 '마음의 영'이다. 그런데 혹자는 본절의 '프뉴
마티 '가 성 령을 가리킨다고 보고 본절을 ․'성 령으로 너 회
마음을 새롭게 하라'로 해석 한다(Theophylact, Ellicott,
Houlden). 그러나 성령이 '마음의 영'으로 불린 곳은
한 곳도 없다. 따라서 여기서 '프뉴마티'는 '사람의 영'
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본절은 '오직 너회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라'는 의미가 된다. 한편 여기서
'새롭게 되다'(凉7α777? , 아나네오오)는 '위로',
'위'(려7◎ , 아나)와 '어린', '새로운'(띤고◎깆Of,
네오테로스)의 합성어로 '새롭게 하다', '갱신하다'의
뜻을 지닌다. 본절에서는 이 동사의 시제가 현재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심령의 변화와
갱신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심령의 새로워 짐은 성령이 그 안에 함께 거하심으로
가능케 되며 이로 인해 그 사람의 사고 방식이 새로
워지며 생활이 변화되어진다(롬 12 : 2).
4 24 하나님을 따라‥‥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을
따라'(7αf◎ θ777, 카타 데온)는 경우에 따라 ①
경건하게(Hofmann), ② 하나님의 뜻과 예정을 따라
(고후 7 : 9-11, Ab◎It), ③하나님의 형상을 따라(Ea-
die, Salmond)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본절의
유사 구절인 골로새서 3 : 10에서 새 사람을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라고 묘사하고 있으므로 본절에서는 ③의 견
해가 타당하다고 하겠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진리의 의와 거룩함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하여튼
'의와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들로서(요 14 :
6)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재창조된 인간들에게 전가되
어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생활 속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의 속성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재창조 역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자
라고 밖에 볼 수 없다(약 2 : 26). 한편 여기서 '의'와
'거룩함'은 거의 비슷한 의미를 가지면서도 엄격히 구
별된다. 즉 '의'는 모든 생활에서의 올바른 태도를 의
미하는 반면, '거룩함'은 보다 특수한 의미에서꼭 의,
곧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성결한 삶을 가리킨다. 새
사람을 입으라. 22절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와 대
조되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새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속 사역을 통해 재창조하신
자, 곧 '중생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러한 자는 육욕이
아닌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산다.
4 : 25-32 그리스도인의 대(對) 이웃 관계
지난 단락에서 바울은 새 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생
활의 일반적 원칙을 논했다(17-24절). 이어 본문에서는 새
사람의 생활의 보다 구체적인 적용으로서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을 보면 주로 이웃에 대한 악덕을 경계한 후에
성도들이 이웃에 대해 적극적으로 베플어야 할 덕을 제시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辯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는 것이다(25절). ② 분노함으로 죄에 이
르지 말고 오래도륵 분노를 품지 않음으로써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26, 27절). ③ 도적질하지 말고
오히려 빈궁한 자를 구제하기 위해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
라는 것이다(28절). ④더러운 말을 하석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고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는
것이다(29절). 한편 바울은 30절에서는 이상에서 제시한
권면의 종합으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31, 32절에서는 다시 25-29절에서 제시한 덕목들 가운데
교회의 일치에 해를 끼치는 악덕과 교회의 일치에 덕을 끼
치는 미덕을 구분하여 제시하는 동시에 악덕을 버리고. 미
덕은 적극적으로 행할 것을 재삼 권면하고 있다.
그런즉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외인으로 있을 때의
생활 모습인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고. 지체
의식을 가지고 형제된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헌신 붕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한 삶의 태도가 진정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자세요, 자기에게도 유익을 끼치는 삶인 것이다(골
3 : 10).
4 : 25거짓을 버리고‥‥참된 것을 말하라.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자에게 있어
거 짓을 버 리 고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은 제 일 중요한 실천
중에 하나이다. 여기서 '거짓'은 모든 종류의 부정과
속임수 혹은 궤계를 가리키는데, 옛 사람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골 3 : 9). 그런데 본절에서 '거짓'을 나타낸
헬라어에는 정관사 '토'(rd )가 사용되었다. 때문에
본절의 '거짓'을 특정한 것, 즉 바울이 롬 1 : 25에서
'거짓 것'으로 표현한 '우상 숭배'를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다(Stott).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사도 바울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여야 할
이 유를 일반적 인 도덕 에 호소하지 않고 그리 스도 안에 서
새 사람으로 지음받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성
도들의 새로운 신분에 호소하고 있다. 교회의 지체들
에게 요구되는 것이 사랑과 연합인데 서로에게 거짓과
속임이 있다면 이러한 지체들의 특성이 약화되어질 것
이 기 때문이 다.
4 : 26분을 내어도 죄틀짓지 말며, 시 4 : 4의 70인역
(L)7)의 인용이다. '분을 내다'( d7γ전? , 을기조)는
'충격, 자극, 진노'( 77γ? , 을게)에서 유래된 말로
'화나게 하다', '노엽게 하다'의 뜻을 지닌다. 즉 어
떠 한 일에 자극을 받아 흥분한 상태를 의 미 하는 것 이 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에 대해 언급하고 있
는데(요 3 : 36 : 계 6 : 16) 구약 성경에서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위 한 의 분으로 하나님 께 축복을 받기 도 하였다
(민 25 : 6-13). 그러나 연약한 인간이 온전히 의로운
분노를 내기는 어려우며 죄에 빠질 우려가 많으므로
바울은 이를 경고한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성내기
도 더디 하라'(약 1 : 19)는 말과 일맥 상통한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해가 지도륵'은 유대인들이
해가 지는 시간을 경계로 삼아 날을 계산한 것의 반
영으로 분을 여러 날 동안 품고 있지 말라는 의미이다
(Eadie, Estius). 여기서의 '분'(『αeofγ77'길 77, 파
로르기스모스)은 '속타게 함', '노여움', '안달'의 뜻
을 지니는 말로 앞에 나오는 '분'과는 구별되어 분노가
지속되어 개인의 원한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비록
강해주석 197
의분이라 할지라도 분을 오래 품고 있으면 개인적인
분노가 되어 죄에 빠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4 : 27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바울이 전절의
사실을 말하게 된 이유이다. 분노를 오래 품고 있는
것은 마귀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에 침입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게 된다. 왜냐하면 분노는 미움과 오해,
악의와보복감 등을 조장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도록 조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전절의 금지 명령을 하게 된 것이다.
4 : 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짙하지 말고, 도
적질을 금함은 십계명의 여덟째 계명에 언급된 것으로
(출 20'15) 단순한 절도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또한 넓은 의미로는 자신의 노력이 아닌 타인의 노동의
대가로 사는 나태함을 포함하기도 한다(Peile). 한편
본절은 에베소 성도들 가운데 회개하기 이전의 습관을
그대 로 행 하여 도적 질을 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암시 한다
(Calvin, H걸go, Bullinger).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믿는
자의 경제 생활에 있어서 '도적질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권면과는 달리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제시한다. 여기서
'수고하다'(70π◎妙 , 코피아오)는 '고된 일', '애씀'
'고난'( 77πOf , 코포스)에서 유래된 말로 '피곤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성
경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며(딤전 4 : 10;5'17). 또한 육체적인 노동을
의미하는 데도 사용되었다(고전 4 : 12). 그리스도인은
주의 일에나 세상 일에나 결코 힘든 일을 부끄러워하
거나 회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살전 4 : 11 .살후
3 : 10-12).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수고의 목적은 자기
일을 돌볼 뿐 아니라 빈궁한 자들을 돌보는 선한 일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면에서
자신을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행 20 : 34, 35 ;살후
3'7-9).
4.29무룬 더러운 말은‥‥내지 말고. '더러운'(rα-
진◎, 사프로스)은 '썩게 하다', '색히다'(7운? ,
세포)에서 유래된 말로 '썩은', '무가치한'의 뜻을 지
닌다(마 7 : 17 ; 12 : 33 ; 13'48), 그러므로 '더러운
말'은 쓸데 없고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해를 끼
치는 말을 의 미 한다. 덕을 세우는 데‥‥선한 말을 하여 ‥‥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덕을 세우는데'(oi70灰◎求 ,
오이코도메)는 '짓다', '세우다'(凍듯? , 데모)와
'집', '거주'( 0:707 , 오이코스)에서 유래된 말로
'세우는 일', '덕을 세움', '지어진 집' 등의 뜻을 지
닌다. 원래 이 단어는 건축에 쓰이는 용어였으나 성
경에서 신앙의 덕을 세우는데 사용되고 있다(롬 14
19 ; 고전 14 3).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말에 은
혜와 사랑과 축복이 넘침과 같이(눅 4 : 22) 타인에게
은혜를 끼 치는 말이 나 교회 의 덕 을 세우도록 선 한 말만
해야 하는 것이다(엡 5 . 4 ; 골 3 : 17;4:7;살전 2 :
5;딛 2:8).
4 : 30 30-32절은 25-29절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
분이다. 본절에서는 앞서 제시한 구체적 실천 사항의
종합으로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으
며, 31, 32절에서는 다시 교회 일치에 해가 되는 부정적
악덕을 경계한 후에 교회의 일치에 필요한 미덕을 제
시하여 행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근심하게 하다'( A7πi? , 뤼
페오)는 '고통', '비판', '슬픔'( A凉텃 , 뤼페)에서
유래된 말로 '괴롭히다', '슬프게 하다', '고통을 주다'
의 뜻을 지닌다. 성도들의 더럽고 합당치 아니한 말과
여러 가지 죄악된 행위들이 성령을 괴롭게 하는 것이
됨을 보여 준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므로 거룩치 못한
일로 인해 근심하게 된다. 그 안에서‥‥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인치다'(77fαγ칠? , 스프라
기조)는 '봉인', '도장', '인장'( 7껏約γ7'』 , 스프라
기스)에서 유래된 말로 '중명하다', '인봉하다'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구속의 날'은 주의 재림의 날을 의미
한다. 그러므로 본구절은 성도들이 죄사함을 받았다는
의 미 에서 구속은 받았으나 실제 적 인 구원의 완성 은 주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며 그 때까지 성령의 인치심은 성도
들의 구원의 보증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죄악의 행위로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고 선한 일로
성령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 것이다.
4.31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烈
방하는 것. '악독'( πf7P◎ , 피크리아)은 '쓴', '날
카로운'( 『』씬◎ , 피크로스)에서 유래된 말로 날카
롭고 록기가 있는 마음씨를 가리킨다(행 3 : 23 ; 름 3
14). '노함'( 凍◎(긋 , 뒤모스)은 '열정', '분노'의
뜻을 지니며 일시적인 분노를 가리킨다(눅 4 : 28 ; 계
16 :犯). '분냄'(쑤읏 , 오르게)은 '충격', '자극',
'진노함'의 뜻을 지니며 일시적이던 분노가 마음에 자
리잡아 오랫 동안 품고 있음을 가리킨다(마 3:7;롬
2's). '떠드는 것'(7pα◎따 , 크라우게)은 '부르짖
다', '소리지르다'( 끈긋◎? , 크라조)에서 유래된 말
로 마음에 있는 분노를 밖으로 터뜨리는 결정적인 고
함을 가리킨다. '훼방하는 것'(J9Aα7777◎, 블라스페
미아)은 '중상', '비방', '명예 훼손', '모독'의 뜻을
지니며 성경에서 보통 하나님을 거역하여 말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나, 타인에 대한 모욕적인 말이나
비방하는 말을 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고전 10 :
30 ;골 3:87딛 2 : 5). 결국 바울은 자연적으로 진보
하는 순서에 따라 성도들에게서 완전히 제거되어야 할
죄악된 속성들을 열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West-
C7tt),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악의'( 7α7◎ ,
카키아)는 '나쁜', '사악한', '부패한'( 7α77f , 카
코스)에서 유래된 말로 '사악함', '악덕', '악'의 의
미를 지니며 본절에서 열거한 악덕들의 근원이다. 즉
바울은 모든 악덕의 근본부터 제거할 것을 성도들에게
명 령 한 것 이 다.
4 : 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여기서
'인자' ( 3넨77r◎ , 크레스토스)는 '빌려주다'
(誇길◎? , 크라오)에서 유래된 말로 엡 2 7에서는 하
198 에베소서 4장
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으며, 본절에서는
성도들이 소유해야 할 실천적인 미덕으로서의 친절을
강조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불쌍히 여기다'
(7凉․πA뽄젓777 , 유스플랑크노스)는 '좋은', '잘'
(77, 유)과 '내장'(7rπ커즉젓70? , 스플랑크논)의 합
성어로 '온정이 있는 행동' 또는 '동정심이 많은 부드
러운 마음씨' 등을 나타낸다. 서로 용서하기를‥‥하나
님이‥‥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여기서 '하나님의 용서
4장 핵심 성구관주
4장 주제, 원어 &교리설교 그리스도를 배운 자의 거듭난 모습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시는 목적
구분 : 원어 설교
본문 :4:11, 12
찬송 11, 26o, 372
일선 교회 목회자들의 어려움 중에 하나가 성도들에게 직분을 맡기는 일이라고 합니다. 물론 직분의
수여자는 원천적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롬 12:3;고전 12 : 4-6) 교회 내에서 그 일은 목회자가
대행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느 성도에게 무슨 직분을 맡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며,
또 각 직분 맡은 자들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협력하도록 도와 교회에 덕이 되게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욱 어려운 일은 직분 맡은 자로 하여금 그 맡은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가르치는 일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직분을 주신 목적을 잘 가르침으로 성도들이 각자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이제 본문을 통해 원어를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여러 직분을 주신
이유를 살펴보진습니 다.
1.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 해서입니다.
본문에서 '온전케 하며'( 77r77r썬련쿄 , 카타르티스몬)는 '수선하다', '깁다'(마 4 : 21), '바로잡다'
(갈 6 : 1)는 뜻의 동사 '카타르티조'( 7αraor린? )에서 유래한 단어로 성도들을 바르게 세운다는 의미
입니다. 성도들은 맡겨진 직분을 성실히 행함으로 살아있는 믿음을 더하게 되고, 그로써 더 큰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됨으로써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맡겨진 직분이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13절)에 있어서 온전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불평과 불만으로 맡겨진 직분을 대하고 태만히 한다면 우리는 성도로서 온전한 신앙 성장을 이루지
못할 것 입 니 다.
2.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본문에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e◎ 7fγ7? 77α7o7◎』 , 에이스 엘곤 디아코니아스)는 '봉사의
일을 위하여'란 뜻으로, 이는 교회의 일반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시는 목적은 하나님을 위해 섬김을 다하고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간에
서로 듈고 서로를 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섬김과 봉사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성도들이 이루어야
할 중요한 신앙 인격임과 동시에, 이것은 하나님께 귀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귀한 것입니다(요 12 . 26 ;름 14 : 18). 고로 성도들은 자신의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 어떤 자랑이나 교만
함으로 해서는 절대 안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오직 겸손함으로, 하나님과 다른 성도들을 섬긴다는 자세로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 해서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세우려 하심이라'( 7:」 0:77灰◎군 , 에이스
오이코도멘)는 '집'이란 뜻의 명사 '오이코스'(Of77f)와 '짓다'라는 뜻의 동사 '데모'( 淡긋? )가 합성된
단어로 마치 건축물을 세우듯 모든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이루어 나간다는 의미입니다(엡 2 : 21).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각양 은사를 주시고 그에 따라 직분을 주신 것은 각 처소에서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수행하고, 그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완성해 나가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귀한 일을 맡은 직 분자들은 그 직분을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성실히 수행해 나감으로써 서로의 맡은 부분을
온전히 감당하고 서로간에 부족한 면을 보충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그
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각 지체들이 하나로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온전히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엡 4:16).
사도 마을은 엡 2 : 20-23에서 그리스도를 건물의 모퉁이 돌로, 그리고 성도를 건물을 이루고 연결하는
하나 하나의 부분들로 비유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이루는 하나의 부분들입니다.
그중에는 설교대를 받치는 받침대도 있고, 성가대를 받치는 받침대도 있듯이 교회내 에는 각각의 직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그 위치가 못마땅해서 빠져 나오면 건물이 무너지듯이, 성도들이 직분을 주신
목적을 망각하여 맡은 직분에 불만을 품고 일하지 않으면 교회는 욜구가 되어 성장하지 못하게 되며 그
리스도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직분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히 깨달아
각자 있는 곳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배운 자의 거듭난 모습
구분 : 주제설교
본문 : 4: 17-24
찬송 . 29, 209, 493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달았을 때는 그 배우고 깨달은 것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에 적용하고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남보다 좀더 배운 지식인들에게는 그만큼 책임있는 삶의 실천이 요구되는
것이며, 그러한 책임을 다하는 지식인이야말로 참된 지성인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도들도 그리스도에 대해 배우고 그분 안에서 참된 진리를 깨달은 자라면 마땅히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자답게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문에서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배우고 진리를 깨달은 성도들에게
그것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같이 살지 말고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배우고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하게 된 자들이 마땅히 살아야 할 거듭난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1. 주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믿어 구원함을 받은 성도들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성령으로 의롭다 인침을
받은 자들입니다(엡 1 . 13). 그러므로 이제 성도들은 더이상 세상의 헛된 것들과 자신 안의 허망한 것들을
따라 살아가서는 안되며, 오직 새롭게 배우고 믿게 된 그리스도의 의로운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를 위해 항상 주의 말씀으로 가르침 받고 인도함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보면 말씀을 멀리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말씀을 잘못 가르침 받아 그룻 행하는 자가 많지 않습니까?
입으로만 예수를 믿지, 그 말씀의 심오한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없고, 말씀을 듣고 가르침 받기를 게을리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게 말씀을 사모하여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온전히 가르침 받기 원하심을 명심하십시오
(벧전 2 : 2). 그러므로 순전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쉬지않고 말씀을 사모하고 가르침 받아 온전히 거듭난
믿음의 생활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2.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예수님을 배우고 믿은 후에도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리지 못하는 성도가 참으로 많
습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정욕, 상황 여하에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이 행하던 버룻을 그대로
행하고, 더럽고 가증한 일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것들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자랑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새롭게 창조된 우리들은 오직 주 예수 그
리스도로 옷입고 육신의 정욕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롬 13 : 14).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대속하시고 우리를 의인의 반열에 서게 하신 그리스도의 회생과 사랑을 알고 믿는 우리는 이제, 이전의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마 5 . 13,
14). 성도 여러분, 아직도 옛 사람의 모습을 지닌 채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속히
옛 사람의 모양을 벗어 버리고 우리를 의롭게 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자답게 거룩하고 순전한 새 사람이
되 십 시 오.
3. 의와 진리를 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배우고 거듭난 성도들이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새롭게 창조되는 것을 말합니다(골 3 : 10). 이것은 말과 생각 뿐만 아니라 그 행위와
삶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로부터 배운 의와 진리에 합당한 모습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배우고 거듭난 성도들은 이미 어두움의 자식이 아니요 주 안에서 새 사람된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빛의 자녀들로서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엡 5'8, 9).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는 의와 진리의 삶에서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바로 배운 자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믿음을 소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새 사람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들이 생활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이야말로 참된
믿음의 성도가 취해야 할 자세임을 자각합시다.
성도 여러분 ! 그리스도를 바로 배운 성도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거듭난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진정
그리스도를 배우고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더욱 바로 아는 지식을 소유하기 위해 항상 주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옛 사람의 악한 구습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의와 진리를
행하는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배우고 믿는 자의 책임있는 모습이며, 마땅한 본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 여러분의
현재의 모습은 그리스도를 배운 자로서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옛 사람의 성품이 그대로 남아
있지 는 않습니까 ?
4장 예 화
●삯바느질 중의 구제 ● 엡4:28/신15: 10
그리스도인이 빈궁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마땅히 행할
일이 다.
다음은 프랑스 구제사에 기부된 어떤 구제비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날, 구제사의 사원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극빈자를 조사하던 중
어렵게 사는 한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그 집안에는 쓸수 없을 정도로 낡은 두 서너개 의자와 테이블 뿐이었고,
할머니 혼자만이 의자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이런 형편을 살핀 사원은 할머니를 구호대상자로 구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드리겠다며 할머니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고맙지만 자신은 괜찮다며 낡은 손가방에서 지폐 묶
음을 꺼내 사원에게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내가 삯바느질을 하면서 평생동안 모은 것입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어렵게 살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을 터이니, 비록 작지만 나의
정성이니 그들을 위해 써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니
구호를 받을 필요는 없답니다. "
그리고는 할머니는 지금까지 저축한 모든 것을 기부하였다.
이와 같이 삯바느질로 어렵게 모은 돈을 구제비로 기부한 할머니의
아름다운 구제는 우리가 구제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 해야하는지를
각성케 한다.
당신은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당신의 손으로 수고하는가? 그 수고로
인한 구제가 더욱 값지며 참된 구제인 것이다.
聾 세상에서의 질서와 조화, 만물에 대한 일관되고 통일적인 지배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한 전능자, 곧
(6절 /토마스 왓슨)
(11, 12절/찰스 헷돈 스펄젼)
聾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는 가장 많이 아는 자가 아니라,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이다.
(15절 /프레드릭 스판하임 )
聾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삶을 새롱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그 심령이 변화되거나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삶이 새로워 졌다고 할만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22-24절 /조지 스왼녹)
勳 하나님의 마음은 광대하고 무한한 우주 이상(以上)이다. 하지만 그 다음엔 우리들의 죄악을 기억하는
그 어떤 공간도 없다.
(32절/랄프 활도 에머슨)
한 하나님이 오직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증명한다.
蓼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느 분야에서 종사하건 간에 그들의 믿음이 올바른 길로 최선을 다해 빛을 발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께로 충성하는 길이다.
(박은원)
0․1제목
4장 Q. T
4 : 1-3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
를 부르셨는데. 우리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겸손과
온유와 사람과 관용. 이러한 신앙의
덕목을 얼마나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
는지․.
1골 1 10 ; 살전 2 : 12(313.517)
4, 71, 12 성도와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해 주님이 내게 주신 직분은
무엇인가? 이에 충성하며 진정 교회를
온전케 하고 있는가?
1름 12 3 : 고전 12 : 7(277.527)
4 : 22-74 우리는 여전히 욕심을
따라 색어걱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
은 아닌지, 진정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좇는 새사람의 모습이 곧 구원받은 나
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름6:4;골2. 12(37s. 517)
4'32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우리 또한 서
로 용서해야 함을 성경은 말씀한다.
그런데 우리는 내 허물에 대한 용서는
힘써 간구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가
벼운 잘못은 용서하지 않고 있지는 않
은가 ?
7마6 14;골3.13(377,708)
제5장 성도의 대신(對神)관계와 성도의 신앙 생활에 대한 결론적 권면 및 바람직한 부부 상
5장 본문&자료노트 강해주석 주제, 원어&교리설교
예화 핵심 성구관주 Q. T 금 언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넓게는 교회의 일치와 연합 및 변화된 성도의 개개인의 신앙 생활과
관련된 실천적 교훈들을 주고 있는 본론 후반부 4 1-6 20까지의 일련 기사의 연속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 하에 본장은 다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된다.
먼저 전반부 1-14절은 넓게는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 생활과 관련된 일련의 교훈들을 기록한
4'17-5'21의 연속부분이다. 그리고 좁게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마땅히 요청되는 새 삶의 방
법으로서 대인(對人) ․ 대신(對神)관계에 있어서의 성도의 태도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4 : 25-5 :14에 기록된 일련 기사의 종결부분으로서 성도와 하나님간의 대신 관계에 있어서의 성도의 태도에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대할 때 여기서 우리는 구원의 대상(對象)인 성도들이
구원의 주체(主偉)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가져야 할 마땅한 삶의 자세로써 성도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 목적에 적합하며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하고 순결한
것이어야 한다(롬 12 : 1. 2)는 것과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의 성도의 자세는 삶의 전 영역에서
실제적으로 실천해야 할 모든 윤리적 행위의 기초가 된다는 구속사적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 고 중반부 15-21절은 구원받은 성 도의 신앙 생 활과 관련 된 일 련의 교훈들을 기 록한 4 : 17-5 . 21의 종결 부분으로서 성도의 신앙 생활에 관한 결론적 권면을 기록하고 있다. 즉 그 결론적 권면은 세월을 아껴 주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행하라는 것과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대할 때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즉 태초부터 세상 종말까지 이어지는 구속사(救讀吏)의 한 노정에서 우리 개개인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전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볼 때 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개
성도들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짧은 시간은 우리 성도들에게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노정에서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귀중한 황금같은 시간이다. 이 시간에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맡겨 주신 予속사적 사명을 완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는 촌음(寸陰)이라도 허비할만한 여유가 전혀 없다. 따라서 이 시간을
최 대 한 아껴서 우리 성 도들은 매 순간마다 실존적 인 종말 의 식을 가지 고 하나님 께서 자기 자신에 게 요구하시는 바 그 뜻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파악하여 주께서 기뻐하시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에 의하여 구원받은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우리 성도들은 개개인이 먼저 하나님과의 바른 수직적 관계를 힘씀과 동시에 동일한 구속사의 시대에 즈음하여 동일한 사명을 수행해야 할 교회의 지체로서의 성도와 성도간의 일치와 화목을 이루는 수평적 관계에 있어서도 결코 소흘히해서는 안될 것이다.
후반부 22-23절은 지금까지 4 . 17-5 . 21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신앙 생활과 관련된 일련의
교훈들을 준 것 에 이어 보다 구체 적으로 성 도의 가정 생 활에 관한 교훈들을 제 시 하고 있는 5 : 22-6: 9까지의 일련 기사의 개시 부분으로서 성경적인 바른 부부관계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그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먼저 22-24절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대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해야 함을. 25-28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남편들도 그 아내를 사랑해야 함을, 그리고 29-33절에서는 부부관계에 대한 결론적인 교훈으로 그리스도와 교회가 머리와 그 몸의 지체들로 한 몸을 이루듯 부부도 한 몸으로서 남편은 자기 지체를 돌보듯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 아내는 머리된 남편을 경외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여기서 먼저 5 : 22-6 . 9까지에서 기록하고 있는 성도의 가정 생활과 관련된 교훈들 전체에
대하여 구속사적으로 개관할 때에 우리는 성도의 가정에 대한 구속사적 의의를 발견하게 된다.
'가정'(Family)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의 원리에 따라 인생의 생활을 위한 여러가지
기본 사회 제도를 허락하신 바 그 중에서 부부(夫婦)를 중심으로 혈연 관계자가 함께 살고 있는
가장 작은 사회의 기본 단위이다. 인간은 가정을 통해서 태어나 존재하게 되며 또 가정을 중심으로 일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가정으로부터 인생에 가장 원초적으로 필요한 생명과 사랑과
양육과 보호를 공급받는다. 이러한 가정은 태초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중심으로 최초로
성립된 이후로부터 세상 끝날까지 이 땅에 존속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세대의 인간들은 이러한
가정을 통하여 자신의 인생을 은전히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아담의 타락 이후 전 인류에게
미친 죄의 오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창조시메 허락하신 참다운 가정의 모습은 왜곡되게 되었고 온갖 비정상적인 가정의 양태가 인간 세계에 난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를 중심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이 서서히
회복되게 되었다. 때문에 성도들이 온전한 가정의 모습을 회복할 때에 그것은 먼저 성도들 자신의
가족들의 행복은 물론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참 가정의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선교의 효과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른 가정을 만들어가는
일은 필연적이라 하겠다.
이러한 맥락 하에 바람직한 성도의 부부상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 본문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대할 때 우리는 다음의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즉 가정의 핵심은 부부(夫婦)이다. 가정에 질서와
조화가 있고 사랑이 넘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부간에 질서와 사랑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할 때만이 다른 가족들도 가정 안에서 참 행복을 느끼며 그 속에서 참 인생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 원리에 따라 부부간에 질서가 있게 하시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며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관계가 되도록 창조하신 것이다(창 2 : 18-
15). 그런데 가정의 참다운 모습의 왜곡과 마찬가지로 창조 당시의 이러한 본래적인 부부관계도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상당히 왜곡되어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각각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회복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델로서 교회가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부부
관계도 복종과 사랑의 관계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는 가정의 질서와 평안 및 화목을 위해
필연적 인 것 이 다.
5장 본문&자료노트
원어연구- 보감-
신학용어- 인물연구-
신학용어- 지리배경-
보감-5 : 1-21 본장에 나타난 빛의 자녀로서의 성도의 의무
1 사랑 가운데서 행 함(2절)
2 더러움을 버림 (3젼)
3 감사하늘 말을 함(4절)
4 악한 자와 연합치 않음(7절)
5 주를 기쁘시게 함(10절)
6 어두움의 일을 책망함(11절) 것
7 주어진 기회를 선용함(16절)
8 주의 뜻을 분별함(17절)
9 성령 충만을 받음(18절)
10 기쁨으로 생활함(19절)
11 항상 하나님께 찬양 드림(20절)
12 성도간 피차 복종함(21절)
주요주제-5:6 하나님의 나라의 이해 눅 서른 특별자료 참조
보감-5 : 18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새 생활 롬 12장 자료노트 참조
보감-5 : 2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이 성도에게 미친 영향 요 20장 자료노트 참조
보감-5: 8-14 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들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을 먼저는 그의 심령이 주님을 믿음으로 인해 변화되고 그 결과 그의 삶 속에서 열매를 맺어 가는 긴 과정이다. 이에 우리를 성도로 택하사 구원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이나 열매를 얼마나 잘 맺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인 것이다. 다음 도표에서 성도가 살아가면서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의 법을 지킴(시 119 : 32)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시 1犯 148)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잠 6 : 22)
하나님을 찬양함(사 26 : 19)
하나님께 기도함(마 26 41)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롬 12 : 2)
하나님께 영광 돌림(고전 10 : 31)
주를 경외 함(엡 5'14-21)
주께 감사함(골 4 : 2)
주의 말씀 전파(골 4:2-4)
주의 일(딤후2 IS)
●성도자신과 교회에 대하여
인내 (시40: 1)
그리스도의 재림 예비(마25 : 13)
기도(마 26 : 41)
죄악에서 벗어남(롬 13'12)
절제(롬 13 : 14) 의를 행 함(고전 15 : 34)
거룩하게 됨(엡 4'18-24)
세월을 아낌 (엡 5 : 16)
여러 성도 위해 간구함(엡 6 18)
근신(살전 5's,6)
좋은 것을 취함(살전 5 : 21)
순종(살후 1 8) 회개 (딤후 2'25,26)
성도의 모임 (히 10 : 22-75)
성도간의 사랑(히 10 : 22-25)
선한 일(히 10 : 24)
믿음을 굳게 함(벧전 5 8,9)
마귀를 대 적 함(벧전 5 : 8.9)
원어연구-5 : 4, 희롱의 말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유트라펠리
아'(77rP7rA◎)로 이는 형용사 '유
트라펠로스'(7707fr7A7r )에서 유
래한 말이다. '유트라펠로스'는 '좋은'
(good), '잘'(well)이라는 뜻인 '유'
(73)와 '돌다'(turn)라는 뜻인 '트레
포'(Ipf77)의 합성여로여 문자적인
의미는 '잘 도는'이다. 여기서 '신속히
준비된 , '재치있는'이라는 의미가 파
생되어 나왔다. 따라서 '유트라펠리아'
는 머리가 잘 돌아가 상황에 맞게 던지는
말을 지칭하는 '익살'. '농담'(pleasan-
t틴), '유모어'(humor)를 뜻한다.
그러나 이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
용될 때는 '저질스러운 농담', '천한
말', '상스러움'이라는 뜻을 나타내기
도 한다.
본문에서는 이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책망한
것은 일상 생촬 가운데 활력을 주는
유우머가 아니라 상스러운 말이기 때문
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자
녀로서 을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칫
소흘하여지기 쉬운 일상의 언어 생활에
있어서조차 주의를 기을여야 한다. 사
람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
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안다면(약
3 1-12) 언어 생활에 있어 우리 성도
들의 혀의 절제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
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 다.
도표-5 : 21, 22 성경상의 순종의 9대 유형
1 하나님과 주님께 대한 만민의 순종(요14.21: 775:29)
2 하나님과 주님께 대한 만물의 순종(마 8 27 ; 고전 15 : 28)
3 사람에 대한 동물의 순종(창1.28:약3:3)
4 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종(창28:7:엡7:1)
5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1? 5 22)
6 상전에 대한 종의 순종(776: 5)
7 통치자에 대한 백성의 순종(딛3'1)
8 교회 지도자에 대한 성도의 순종(7l 13 : 17)
9 성도에 대한 성도 상호간의 순종(79 5: 21)
보감-5:22-33 부부 상호간의 의무들
주요주제-5:22-33 남녀의 상호 관계에 대한 성경적 이해 고전 11장 자료노트 참조
●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
땀흘려 수고하며 부양함(창 3 : 17-19)
어떤 일이라도 의논함(창 31'4-16)
순결을 지킴(잠 5 : 15-17)
즐거워하고 족하게 여 김(전 9 9)
궤사를 행치 않음(말 2 : 15)
죽는 날까지 함께 함(마 19 : 3-9)
성 적 의무를 다함(고전 7 . 3,4)
자기 몸처럼 사랑함(엡 5 : 25, 努)
더 연약한 그릇이므로 귀히 여 김(벧전 3 7)
●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
사모함(창 3 : 16)
부지런함과 지혜로 내조함(잠 31 11,23)
성 적 의무를 다함(고전 7 : 3,4)
복종하고 경외함(엡 5 : 22,33)
친절하고 순결할 것임 (딛 2 : 5)
5장 강해주석
5 : 1-14 그리스도인의 대(對) 하나님 관계
5 : 15-21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생활에 대한 결론적 권면
5 : 22-33 그리스도인 부부 관계에 대한 교훈
5 : 1-14 그리스도인의 대(對) 하나님 관계
앞단락(엡 4. 25-32)에서 바울은 새 사람의 생활의 보다
구체적인 적용으로써 수평적으로 그리스도인의 대 이옷 관
계에 대해서 논한 바 있다. 이어 본문에서는 수직적으로
그리스도인의 대 하나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을 보면 바울은 먼저 '너회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 (1절)는 말로써 그가 말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대 하나님 관계에 대한 전제를 삼고 있는데, 이는 본문 전
체의 결론이라 해도 무방하다. 사실 성도가 하나님과 을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일 것이다. 때문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본
받을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이란 무엇인가?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
랑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사랑 가운데 거 하라는 것이 다(2절) .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우리의 대속물로 내어주시
기까지 우리를 사락하겼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회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하나
님의 뜻에 순종하며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셨다. 그와 같이 성도들도 자기를 회생하여 하나님과
형제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성도들은 본질상
사랑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
들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본받아 사락 가운데 행
하는 것이 마땅하다(요일 4 7-21).
들개. 불순종한 죄인의 생활을 버리라는 것이다(3-7절).
즉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과 우상 숭배 등의 크고
작은 모든 죄악에서 떠나라는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눈에
잘 띄는 죄악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경계하지만
눈에 잘 안띄는 작은 죄악에 대해서는 소홀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더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다. 특히 우상 숭배에 있어서도 우리는 표면적으로
나타난 우상을 섬기는 것만을 죄악시할 수 있는데 어느 것
이든지 하나님보다 더 관심을 두며 중시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악행을 저지름으로써 욜순종한 죄인의 생활을
일삼아서는 안되며 이러한 죄악된 생활에서 돌이켜 성도된
자의 마땅히 행할 바인 성결의 생활을 해야 한다(롬 13'12-
14 :빌 2 : 15). 그리고 이러한 세상을 사랑하며 육체의 소
욕대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장차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그러한 자들에게 임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고후 5 : 10 : 벧후 2 9 ; 3 7).
셋째, 어두움 대신 빛 가운데 사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8
-14절). 구원받기 이전의 성도들은 행할 바를 몰라 어두움
가운데 혜매이던 자들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빛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이제 더 이상 어두움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로서 세상에 대하여 말과 행위로써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빛의 자녀로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맺는 생활(갈 5 : 22. 23)은 성도의 책임이자
의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5;1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본받는 자'(7(7◎굿, 미메테스)는 '흉
내를 잘 내는 사람'( 릴롤7T , 미모스)에서 유래된
말로 '모방자'의 뜻을 지닌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인간을 본받는다는 뜻으로 주로 사용되 었는데 (고전 4 :
緖 ; 11 : 1), 본절에서 만은 하나님을 본받는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
랑으로 그의 자녀가 되고 용서함을 받은 자로서 마치
어린 아이가 그 부모를 모방하듯 하나님 아버지의 거
록하심과 사랑을 모방하여 닳아가야 하는 것이다.
5 : 2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하나님을 본받을 구체적인 내
용이 사랑임을 밝히고 있다. 그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극적
으로 보여 준 것이다(요 14 : 9, 16). 그리스도께서도
'내가 너 회 를 사랑한 것 같이 너 회 도 서 로 사랑하라' (요
13 . 34)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새 계명으로 주셨다. 한편
강해주석 2a7
'행하라'( π7p77α77ir? , 페리파테이테)는 현재 명
령형으로 계속되는 반복의 뜻를 지닌다. 즉 본절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계속해서 실천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다. '버리다'(rrαP-
α7諸7틸? , 파라디도미)는 '~에서부터'(π77☞신, 파
라)와 '주다'. '건네주다', '위탁하다', '제물로 바치
다'(7消抄릴」 , 디도미)의 합성어로 '양도하다', '포
기하다'의 뜻을 지닌다. 본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
원하시기 위한 그분의 자의에 의한 것이었음을 나타낸
다. 한편 이 단어는 엡 4 . 19에서 이방인들에게 사용
되고 있는데 이방인들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는 것과
대조하여 성도는 그리스도와 같이 의와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함을 보여 준다. 蠻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구약의 제사 제도에 비유되고 있다. 여기서
'제물'(np0770f? . 프로스포라)은 일반적인 제사의
통칭으로 주로 감사제를 가리키며, '생측'( θ77쑈 ,
뒤시아)은 짐승의 퍼를 뿌려 바치는 속죄제를 가리킨다.
따라서 '제물'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바치신
그의 전생애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으며, '생축'은 그
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회생 자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 다(Clarke, Westcott, Vincent) .
5 3 署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부르지 말라.
'음행'(77f77쏘 , 포르네이아)은 '간음', '매음'의
뜻을 지니는 말로 결흔 관계 이외의 모든 불법적인
성관계를 가리킨다. 이러한 음행은 이교도들의 종교
의식의 한 특징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죄를 음행에 비유하고 있기도
하다(렘 3 : 6-10). '더러운 것'( 려7αθ7i77◎ , 아카
다르시아)은 '음행'의 불결한 성격을 묘사한 말이다.
'탐욕'( πA7777f◎ , 플레오넥시아)은 이익만을 추
구하는 욕망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정관사 '에'(7)와
함께 쓰여져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을 추구하는
정욕적 인 욕심 올 가리킨다(Westcott, Ab◎11, Salmond) .
이같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는 구절은 이
방신들의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 것과 그들의 제사 방
식에 대해서도 일체 말하지 말 것을 강조한 구약의
말씀과 같은 맥락에 있다(출 23. 13 ;신 12 : 30;시 16
: 4). 사도 바울의 이러한 명령은 풍요의 여신으로 간
주되어 그를 숭배하는 데 보통 성적 향연이 자행되었던
헬라 여신 아데미(Diana)를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던
에베소 지역의 성도들에게 매우 수준 높고 고상한 요
구였다(Stott) ,
5 4누추함과‥‥마땅치 아니하니. '누추함'(α◎7-
f7r7, 아이스크로테스)은 '천한', '속된'(α◎牙-
』◎, 아이스크로스)에서 유래된 말로 신약에서는 본
절에만 나온다.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는 더러운 행동
전반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Bengel. Meyer. Abbott)
본절의 문맥상 저급하고 속된 말을 의미한다고 봄이
타당하다(Harness, Westcott). '어리석은 말'(길껜길OA-
oγ뇨 , 모률로기아) 역시 신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말로, 아무 유익이나 가치가 없는 말이라는 의미 이상의
죄성을 떤 말을 가리킨다(Vincent). '희롱하는 말'(77-
rfαπ7A◎ , 유트라펠리아)은 '좋은'(77, 유)과
'들다'( 7pi7? , 트레포)의 합성어로 좋은 의미로는
'재치 있음', '재빨리 재치 있게 응답함' 등의 뜻을 갖고
있으나 저속한 의미로는 본절처럼 '상스러운 말', '독
설' 등의 뜻으로도 쓰인다. 감사하는 말을 하라. '감
사하는 말'( 777H70777쑈 , 유카리스티아)는 '좋은'
(7? . 유)과 '은혜'( 깃주7f , 카리스)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이 단어를 '은혜를 끼치는 말'로 해석하는 학
자도 있다(Calvin, Meyer). 그러나 성경에서 이러한
용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하나님 의 은혜 에 대 한 '감사의 말'로 해석 함이 타당하다
(Linc71n). 사실 그리스도민은 더럽고 추한 죄악된 말을
삼가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그의 영광을 드
러내는 데 그 입술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그리스
도인의 마땅한 도리인 것이다(골 2 . 7:3:15).
5:5 너희도 이것물 정렝히 알거니와. 본구절의 헬
라어 '투토 이스테 기노스콘테스'( r77r? 諒re γf-
7고7×7717T)는 현재 직설법으로도 볼 수 있고 명령
법으로도 볼 수 있다. 이를 명령법으로 해석하면 '이
것을 진실로 확신하라'는 의미가 되고(NEB, RSV),
직설법으로 해석하면 '너희가 이것을 안다'(7린, N訓,
Fou拉es, Bruce)가 된다. 어느 것을 취해도 무방하나
직설법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Robertson). 음행하는
자‥‥곧 우상 숭배자는‥‥기업을 얻지 뭇하리니. 여기서
'우상 숭배자'가 '탐하는 자'에 게만 연결되느냐(Eadie,
Salmond) 앞에 나온 '음행하는 자'와 '더러운 자'를
포함하느냐(barless, 黙ier, Meyer)가 문제가 된다. 골
3 . 5에 비춰 볼 때 전자의 의견이 타당성이 있으나,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탐하는 자가 뚜렷히 구별된
다기 보다는 성도와 대조되는 악한 자들의 더러운 속
성을 표현한 것으로 볼 때 후자의 의견도 일면 타당성이
있다고 하겠다. 한편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77린i
J37777ffα r0? Xff7r0? 7α71 θ777. 071 ㅂ1
실레이아 투 크리스투 카이 데우)는 '하나님' 앞에 관
사가 없으므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나라'로 해석
하기도 하나(Bengel, Harness, Hodge), '그리스도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로 해석함이 자연스러운 해석
이다(Meyer, Ellicott, Eadie),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
라는 신령하고 의로운 나라로서 모든 불의한 자들은
이곳에서 배척될 것임을 바울은 경고한 것이다.
5 : 6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본절의 '누구든지'에 대하여는 ① 영지주의자들을 가
리킨다는 견해(Barth, Milton), ② 불신 이방인들을
가리킨다는 견해(Meyer, Eadie), ③ 교회 내의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는 견해(Linco◎), ①유대주의적 이
단을 가리킨다는 견해(Grotius) 등이 있다. 본문에서
특정 한 지 칭이 없으므로 일반적 인 거 짓 가르침을 행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리고 '헛된 말'은
공허한 거짓말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대조되는 거짓
교훈을 가리킨다. 특히 본문에서는 육체의 음행과 더
208 에베소서 5 장
러운 것과 탐심을 가지고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수 없다는 진리를 부정하여 사람들을 육
체적 방종에 빠지게 하는 거짓된 이단사설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중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불
순중의 아들들'이라는 말은 히브리적인 표현법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욜순종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엡 2 : 2 주석 참조.
한편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
으로(요 3'36 ;골 3:6; 계 19 : 15) 심판의 시기에
대하여 ① '임하나니'(77r7rα? , 에르케타이)가 현
재형이므로 현세에 받는 심판이라는 의견(Calvin), ⑦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있을 마지막 때의 심판이라는
의견(Meyer), ③ 현재와 미래의 심판을 등시에 의미
한다는 의견(Ab◎龍, Barth) 등이 있다. 성도들의 구
원의 문제가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문제
인 것과 마찬가지로 불의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
판이 행해질 때 역시 궁극적으로는 미래일 것이나 그
것은 이미 나타난 사실이기 때문에 ③의 의견이 타당
하다고 보겠다. 즉 불의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이제 시작되어 심판의 마지막 날에 가서는 절
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롬 1 : 18 : 엡 4 : 17-19).
5 : T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3절부터 시작된 권면의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여기서
'함께 참예하는 자'(刻◎길ir03:07, 슁메토코스)는
'함께'(7'7? , 쉰)와 '동참자'(칠frO벗07, 메토코스)
의 합성어로 신약에서는 본서에만 나온다. '참예'의
대상에 대하여는 ① '죄'를 가리킨다는 견해(Eadie),
② 심판을 가리킨다는 견해(Koppe, Ab◎11), ③두 가
지를 동시에 가리킨다는 견해(Stier, Westcott)가 있다.
①과 ②의 견해가 필연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③의 견해로 봄이 좋겠다. 즉 바울은 비륵 자신을 그
리스도인이라고 공표하는 자라 할지라도 불신자들의
악행에 협동하여 범죄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들이 당할
진노의 심판에도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심각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경고는 구원의 확신이
단순히 지적 동의나 감정적인 동감의 차원이 아닌 행
함의 열매가 있는 전인격적인 차원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임을 교훈해 준다(약 2 : 26).
5 : 8 바울은 1-7절에서 하나님을 본받는 태도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는 제목하에 권 면하였다. 이제
8-14절에서는 '덴 가운데서 행하라'는 제목하에 권면
하고 있다. 전자에 있어서는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묘사된 반면, 후자에서는 '빛의 자녀'로 묘사되고 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전에'와 '이제'를 대조하여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신
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빛'은 죄악 세상과 대조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성경은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 1 : 5)고 증거하며 하나님의 권위와 영
광과 거룩하심 그리고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 시는 계
시인 진리를 빛으로 상징하고 있다(시 43:3; 딤전 6
16), 하여튼 에베소 성도들은 과거에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불신앙의 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흑암의
권세를 쥐고 있는 사탄의 추종자들이었다(엡 2 : 1, 2).
그러한 그들이 이제 참 및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비췽을 받아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 빛의 자녀가
된 것이다(롬 13 : 12 ;고후 4'S ;골 1 : 13). 빛의 자
녀들처럼 행하라. 에베소 성도들을 '빛의 자녀'라고
규정한 바울은 이제 그들에게 빛의 자녀들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 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바울의 구속
받은 성도들의 본질적인 신분의 변화된 상태에 대한
직설법적 표현과 그에 따르는 책임을 수행하라는 명령
법적 권면은 성도들의 구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
적인 은혜성과 그에 따르는 인간의 책임과 의무와의
관계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즉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
원의 은혜 속에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결
단하고 힘씀으로 비로소 구원의 역사가 온전히 이루어
짐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빛의 열매'는 '빛'과 '열매'라는 두 개의
비유가 결합되어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의 행실을 의미
하고 있다. 후기 사본들에는 '빛'대신 '성령'으로 기
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에 있어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갈 5 22). 여기서
'착함'(려γaθ77777, 아가도쉬네)은 일반적 의미의
도덕적 선을 가리킨다. 또 '의로움'( 7r7αfo777? -
디카이오쉬네)은 도덕적 악을 버린 정직과 성실한 태
도를 가리키며, '진실함'(려A쑨◎脚 , 알레데이아)은
허위와 외식에 반대되는 도덕적 진실을 의미한다. 이
상의 세 가지 는 빛 이 신 하나님 께서 자녀 들과 공유하시 는
신적 속성으로 어두움의 열매(엡 4 : 31)와 대조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營 속에서 당연히 나타나야 할 행
함의 열매 들이 다.
5 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시험하여 보라'( 707fr7707r7f , 도키마존
테스)는 '분별하다', '입증하다', '중명하다'의 뜻으로
실험을 통해 무엇을 실종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성도들이 행함에 있어서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성도들이 이처럼 자신의 발걸음을 맞추어 나가야할 기
준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발걸음을 맞추어 나가는 營이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산 제사요 영적 예배인
것이다(름 12 . 1, 2).
5 : 11 너희는‥‥참예하지 말고‥‥책망하라. 여기서
'어두움의 일'은 '악한 일'(골 1 : 21), '육체의 일'(갈
5 : 19), '죽음의 일'(히 6 : 1)로서 열매가 없는 사망에
이르는 길이다(롬 6 : 21). 한편 바울은 7절에서 어두
움의 일에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는 소극적인 권면을
한데 이어 본절에서는 '책망하라'는 적극적인 권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책망하다'(7Afγr7, 엘렝코)는
원래 '망신시키다', '부끄럽게 만들다'의 의미를 지녔
다. 따라서 여기서의 의미는 성도들이 말로만 어두움의
일을 책망하는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 사람들과
캉해주석 209
근본적으로 구별된 성결하고 거룩한 빛으로 행함으로
그들의 죄를 들춰내어 부끄럽게 만들라는 뜻이다. 이
러한 바울의 권면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너회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회로 너회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회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는 말씀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즉 성도
들의 빛된 營은 죄인들에게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여
부끄럽게 만들 뿐만 아니라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및으로
들어오게 하는 전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5 : 12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
러움이라. 본절의 초두에 '왜냐하면'(◎주 , 가르)이
라는 전치사가 있어 앞절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어둠의 일들의 속
성으로 그러한 일들이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더럽고 가
중한 일들이므로 책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5.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
나나니. 성도들이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한 및의 삶을
살므로 어 둠의 일들을 책 망하여 야 할 당위 성 을 설 명 하고
있다. 그것은 세상에 및된 삶으로 세상의 어두움을 밝게
비추어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은밀한 일들을 세상에 밝히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빛을 비추면 어두움이 물
러가고 그 속에 숨기웠던 모든 악한 일들이 밝히 보
여지게 되는 것이다.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나타나지는'( 』α7ff07770? , 파네루메논)의 형태
를 중간태로 보아서 본구절을 '나타내는 자는 빛이 라'로
해석하는 견해(Calvin, Grotius, Ab◎tt)와 수동태로 보
아 븐구절을 '나타냄을 받는 자는 빛이 된다'로 해석
하는 견해(Bengel, Ellicgtt, AHord)가 있다. 문맥상 후
설이 좋으나 전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후설을 취하면 본절은 성도들이 빛을 비춰
어두움의 일들을 책망한 결과로, 및을 비췽을 당한
자들이 회개하여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아온다는 뜻이
다. 한 사람의 및은 어두움을 비춰 그 속의 것들을
드러나게 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을 빛으로 만드는
것이 다(Foulkes) .
5 : 14그러므로 이르시기를‥‥네게 비취시리라. '이
르시기를'( Aiγ7f , 레게이)은 보통 다른 구절을 인
용할 때 쓰이는 말이다. 본절은 구약의 사 26. 19 ; 脚 :
1 등을 자유롭게 인용한 것으로 초대 교회 당시 침례식
흑은 부활절에 부르던 찬송시를 바울이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Bruce, Weod). 蠻자는 자여 깨어서.
'잠자는 자'는 아담 안에 죽은 자, 즉 하나님과 분리 되어
영성이 죽고 어두움에 속하여 도덕적 감각이 없는 자를
가리킨다. 이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받기 전의 모든
사람의 상태이다. 그리고 '깨어서'( 칟γ딛씰린 , 에게이
레)는 영적인 부활, 즉 회심을 뜻하고 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잠자는 자'와 '죽은 자들', '깨
어서'와 '일어나라'는 대구법적 표현으로 그 의미가
보다 강화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171게 비취시 리라.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어두움을 이기시고
그 속에 있는 죄인들을 생명의 빛으로 옮기시는 구속
사역을 묘사한 것이다(요 1 : 9). 한편 본절은 어두움
에서 빛으로 변화하는 인간의 삶의 변화가 인간 스스
로의 능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
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5 : 15-21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생활에 대한 결론적 권면
바울은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의 생쁠 원칙(4 : 17-黙),
그리스도인의 대 이옷 관계(4 25-露), 그리스도인의 대
하나님 관계(5'1-14)에 대해 논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구
속으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된 성도들의 개인적 생활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교훈하였다. 이어 본문에서는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생활에 대한 결론적 권면을 함으로써
실천적 권면의 두번째 사항(4 : 17-5 , 21)을 종결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의 권면의 요지는 혼탁한 세상에서 지혜 있는
자의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석기서 바울이 알하는 지혜있는
자의 생활은 ① 시간을 규모있게 사용하고(16절) ? 주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에 맞게 살며(17절) 辯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라(18절)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세상을 향
하여는 절제된 삶올, 하나님을 향하석는 역동적인 삶을 살
라는 참경건의 요청이라 하겠다. 각 구절의 의미에 대해서는
해당 주석을 참조하라.
5 : IS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주의하다'(◎뀨π? , 블레포)의 문자적 의미는 '보
다'의 뜻으로, 여기서는 '주의깊게 살피다'의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행하다'( π7f7παri? , 줴리파테오)
는 '걸어 다니다', '살아가다'. '따라다니다'의 뜻을
지닌다. 그러므로 븐구절은 '너회가 어떻게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지를 주의깊게 살퍼라'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바울은 본절에서 '지혜 없는 자'와 '지혜
있는 자'를 대조시켜 앞에서의 '어두움'과 '빛'의 의
미를 표현하고 있다. '지혜 없는 자'( 遣교◎ , 아소
포이)는 부정접두어 '안'(7y )과 '지혜로운', '현명한'
을 의미하는 '소포스'( 77f(긋 )의 합성어로 '어리석
은 자'를 뜻한다. 빛은 순결함의 상징일 뿐 아니라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5 : le세월을 아끼라. '세훨'(rα렌7f , 카이로스)
은 단순히 일반적 의미의 시간을 의미하기 보다는
'기회', '적절한 기간'의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하나
님에서 부여하신 특별한 기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아
끼다'( ifαγ7f777, 엑사고라조)는 문자적으로 '1
로부터 사들이다'의 뜻을 지니며 갈 3 : 13:4:5에서
이 단어는 '속량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다
사버리다'의 의미로 보아 '세월을 최대한 이용하라'
(RSV)로 해석할 수 있다.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
껴야 하는 이유는 시간이 양적으로 짬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현세 대가 질적으로 악한 시 대 이 기 때문이 다(Ea-
die, Salmond). 즉 지혜로운 자는 악한 시대 속에서
살면서도 그 악한 시대 속에 흘러가지 않고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악을 대항하고 선을 행해야 하는 것이다. 선한
일을 위해 바쳐도 모자라는 짧은 생애를 악을 행함으로
210 에베소서 5 장
허비하는 것은 지혜 없는 자들인 것이다.
5 : IT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어리석은
자'(7:7fo77f , 아프로네스)는 15절에서 언급한 '지혜
없는 자'(◎7070f , 아소포이) 보다 더 강한 뜻으로
기본적인 지혜의 부족함을 넘어 도덕적으로 우둔함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이해하다'(777곳칠? , 쉬니에미)는 문자적으로 '같이
놓다'의 뜻으로, 비 유적으로는 '깨닫다', '지혜 있다'
(고후 10 : 12)의 뜻으로 쓰인다. 즉 이해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생각을 그 대상과 같이 놓을 때
비로소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결국 바울은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확신 아래 성도들에게 주의 뜻에 자기의 뜻을 맞추어
지혜로운 자로서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본절과 10절의 말씀은 롬 12 : 2의 말씀에서 종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5 18술 칠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방탕'
(7771◎ , 아소티아)은 문자적으로 '저축하지 않음',
'낭비'의 뜻으로 윤리적인 면에서의 '부도덕'과 '허랑
방탕한 생활'(눅 15 13)을 의미하는 말로 이교도들의
윤리상태를 잘 표현하는 말이다(Trench), 특별히 에베
소에서는 신전 제사에서 술에 취하여 춤을 추었고 술
취함이 자랑거리로 여겨졌었다고 한다. 바울은 이러한
사회 문화적 배경 가운데 살아가고있는 에베소 교인
들에게 이교도들과 같이 술 취함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지 혜 로운 자로서 의 절제 되 고 경 건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충만을
받으라'( πA7po77θ? , 플레루스데)는 현재 수동명령
형이다. 여기서 현재 시제는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단회적인 것이 아니고 연속적으로 늘 받아야 할 것임을
나타낸다. 즉 성령의 인치심(엡 1 13)은 단회적인 사
건이지만 성령의 충만은 계속적으로 성도들이 하나님
께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이다(행 4 . 8, 31:6:3, 5 ; 9
: 17). 또한 수동태는 성령 충만케 하는 주체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다. 명령형은 비록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지만 성도들은 성령 충만을 갈망하고
하나님께 구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 바울은 '술 취함'
과 '성령 충만'을 대비시키고 있는데, 이는 두 가지가
외 관상 유사성을 보이 기 도 하면서 본질적으로 대 조되 기
때문이다. 술취한 사람이 술의 힘에 자신을 내맡기고
행동하듯이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힘을 의지하여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술 취함은 무절제와
방탕을 가져오고 성령 충만은 절제와 거룩한 행실을
낳는 것으로 대조된다.
5 :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돌로 서로 화답하며,
바울은 여기서 술취한 자들의 떠들석함과 성령 충만한
자들의 신령한 노래로 인한 온전한 기쁨을 대조하고
있다(Robe戒son). '시'(올고◎o◎, 프살모이스)는 구
약의 시편과 시 형태의 새로운 노래들을 의미한다(눅
1 : 46-55, 68-79:2:29-32). '찬미'(7친7oi7', 휭
노이스)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미하기 위해 지은
노래이다. '신령한 노래'( 푸론◎ π7777αr77α冷 ,
오다이 스 프뉴마티카이 스)는 성 령 의 영 감으로 만들어 진
노래로 일반적인 성가(聖歌)를 가리킨다. 한편 '서로
화답하며'는 초대 교회의 공 예배윽 서로 나뉘어 교
창하던 것을 묘사한 것이다.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그 대상이 하나님이신 찬양은 형식적인 것이
아닌 성도들의 심령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 되어야
함을 의 미 한다.
5 20범사에‥‥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권고는 바을 서신에서 자주 나타난다(골
3 : 15-17 ;살전 5. 18). 사실 성령 충만한 생활의 특
징은 찬미와 더불어 감사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한편 '범사'에 대하여서는 ① '모든 축복'으로 제한하는
견해(Meyer, Ab◎tt, Salmond)와 ⑦ '모든 길흥'을
포함한다는 견해 (Ch린sostom. Jerome, Eadie)가 있는데
②의 의견이 유력하다. 왜냐하면 성도의 모든 고난도
결국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
다. 사도 바울은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하는
모범을 보여 주었다(행 16 25;빌 1 : 12-18),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본절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
도를 통해 오듯이 성도들의 감사 역시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하나님께 드려짐을 보여 준다.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의 모든 일의 증보자가 되시는 것이다.
5 :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본절에
대하여 다음 세 가지의 견해가 있다. 즉 ① 본절을
됫절들과 연결시켜 22-33절의 서론으로 보는 견해
(Meyer, 01shausen), ② 본절을 독립구로 보는 견해
(Calvin, Koppe), ③앞절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는 견해
(Lenski, Hendriksen) 등이 있다. 내용상으로 볼 때는
22절에 연결된다고 보는 ①의 견해가 타당성을 지니나,
'복종하라'( 도'Ofα7:교구770f , 휘포닻소메노이)는
말이 앞절들에서 언급된 '화답하며', '노래하며', '찬
송하며' , '감사하며'와 함께 분사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③의 견해가 문법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본절을 앞절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는 ③의 견해가 보
편적 이 다.
5 : 22-33 그리스도인 부부 관계에 대한 교훈
지금까지 바울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경륜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입고 새 사람이 된 성도들의 일반적 윤리
로서의 교회 생활 및 개인 생활에 대하여 논하였다(엡 4 1-
5. 21). 이어 본문에서부터 엡 6 : 9까지에서는 가정 생활
이라는 좀더 특수한 의미의 윤리를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부부 관계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여 논하고 있다. 이런 부부 관계에 대한 권면은
먼저 아내들에게. 다음으로 남편들에게, 그리고 공동적으로
주어 졌다.
이러한 권면의 세부 내용을 좀더 면밀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아내들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22-24절). 즉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머리이신 그
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들도 그 머리되는 남편에게 복종하
라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것은 이미 고
린도전서에서도 밝힌 바 있는 창조의 원리이다(고전 11'3).
물론 여기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것은 여자가 남
자보다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도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복종을 의미하지 않는
다. 남자와 여자는 다같이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된 동등한
인격체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지배 논리가 성립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고전 11장 자료노트. '남녀의 상호
관계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참조하라. 바울은 다만 여기서
창조의 질서적 측면에서 남편의 권위에 순복하되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 자발적인 복종을 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 다.
다음으로 남편들에게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다
(25-30절).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의 생명
까지도 내어주신 무조건적인 헌신적인 회생적 사랑이다.
남편들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와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면 아내는 웅당 남편 자신의 몸이
분명하다. 따라서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임을 알고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사랑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남편와 아내 양자에게 결론적인 권면을
하고 있는데(31-33절). 여기서 바울은 창 2'24의 말씀을
인용하여 피리스도와 교회가 뗄래야 뗄 수 없는 신비한 연합
관계에 있듯 남편과 아내도 신비한 연합을 이뤄 한 몸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남편과 아내로 하여금 각자의 본분에
충실하여 서로 존경하고 사랑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는. 부부는 협력함으로 은전한 한 몸을 이룸을
알고 존경과 사랑으로 부부 관계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5 :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헬라어 원문에는 '복종하라'라는 단어가
없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앞절(21절)과 연관되어 있음
을 알 수 있다. 즉 바울은 '피차 복종하라'는 성도간의
일반 원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부부의 관계에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내의 입장에서 볼 때 남편에 대한 복
종은 의무이다(고전 11:3.골 3'18). 물론 여기서의
복종이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신분의 차이를 의
미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오히려 남성과 여성이 주
안에서 평등하다고 증거하고 있다(갈 3 : 28). 다만 바
울은 창조의 질서에 입각하여(고전 11 : 2-16) 가정의
질서와 통일성을 위해서 아내는 남편을 가정의 대표로서
인정하여 존경하고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는 고전 11장 자료노트, '남여의
상호 관계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보다 참조하라.
5 : 23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터니.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할 이
유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인 것처럼 남편은
아내 의 머 리가 되므로 아내 는 남편 에 게 복종해 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에 대해서는 고전 11 . 3 주석에서 상
세히 다루었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여기서 '그'에 대해서는 ?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견해(Calvin, Westcott)와 ⑦ 남편를 가리
킨다는 견해(Calvin, De Wette)가 있는데, ①이 합당
하다. 왜냐하면 구주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모두 오직
'그리스도'일 뿐 누구에게도 그리스도 외의 인간이 구
주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5 : 24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둘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앞절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로 비유한 바울은 이 제
본절에서 는 아내 들이 남편에 게 복종해 야 할 의 무를 더 욱
강조하고 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란 말은
아내 가 남편에 게 복종함이 하나님 의 세우신 질서 에 대 한
자발적이고 순종적인 신앙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제시해 주고 있다. 즉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 강제적인 힘에 의하지 않고 감사와 믿음으로 하
듯이 아내도 남편에게 복종함이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5 :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
회를 사람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2-24
절에서 남편에 대한 아내의 취할 태도를 언급한 바을은
이제 본절에서부터 30절까지에서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취할 태도를 언급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서 '사랑하다'
(◎γ耐글7, 아가파오)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쓰는 단어로, 전적으로 희생적이고 무조건
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즉 교회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십 자가의 제물로 자기 몸을 아끼지 아니 하시 고 주심 같이
남편들은 아내에 대하여 무조건적 이고 회생적인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5 : 20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쏨으로 깨꿋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
셨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물로 썬어'와 '말씀
으로 깨끗하게 하사'는 동일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의 미 하는 말로 말씀으로 중생 하여 영 흔의 죄를 깨 끗하게
껏는 것과 그것을 외적인 상징으로 나타내는 물 침례를
함께 기록한 것이다(Calvin). '물로 껏어'(f率 AO7不◎
r0? 77☞107, 토 루트로 투 휘다토스)는 문자적으로
'물의 목욕탕에서'로 침례식을 나타낼 때 쓰였던 단어
이다(딛 3 : 5). 즉 바울은 그리스도에 그의 피로 교회를
성결케 하신 사실을 신부가 결혼식 전에 몸을 깨끗이
썬는 사실에 비유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거룩하게
하시고'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목적으로 예수께서
는 이것을 자신의 열망과 기도로 나타내신 바 있다(요
17 : 17-19).
5 :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무사. '세우
다'( π7o◎科◎( , 파리스테미)는 '~곁에','~함께'
를 의미하는 '파라'( 『o킬신 )와 '서게하다', '놓다',
'임명하다'를 의미하는 '히스테미'( 凉◎琴길? )의 합성
어로 '옆에 놓다', '바치다', '준비하다'의 뜻을 지닌
다. 여기서는 '스스로'( jα7r? , 혜아우토)란 말과
같이 쓰여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교회를 자신에게 바
친다'는 문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영광
스러운'(777ofo? , 엔독손)은 눅 7 : 25에서 화려한
옷과 관련하여 사용된 적이 있는 단어이다. 바울은
신랑이 아름답게 단장한 신부를 자기 앞에 세우는 것을
212 에베소서 5 장
연상하며(고후 11 : 2)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구속
함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구절이 성취되는
시기에 대해서는 미래적인 사건으로 보아 재림의 때라고
하기도 하고(Meyer, Barth, Bruce, Wood) 현재적인
사건으로 보기도 하나(L교coin, Schlier) 그리스도의 구
속의 성취와 진행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현재와 미래를
다 포함하는 사건으로 봄이 좋겠다.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러
하심이라. 신부가 완벽하게 단장하고 신랑 앞에 서듯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완전케 하시어 구원하시려 하심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이미
창세 전부터 세워졌음을 증거하고 있다(엡 1 . 4). 이
러한 교회의 성화는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시작하여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속에 진행 되어지며 완성되어져
가는 것 이 다.
5 : 28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바울은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 그
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 역시 회생 적이고 무조건적이
어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교훈의 요지이다. 이러한
바울의 권면은 '내가 너회를 사랑한 것 같이 너회도
서로 사랑하라'(요 13 34)는 그리스도의 새 계명을
아내에 대한 남편의 자세에 적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바울은 창 2 : 24의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라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사상적 배경으로 하여 아내 사
랑이 곧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것임을 교훈한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여 아
내 와 남편이 한 몸임 을 진술한 것은 타락으로 깨어 졌던
창조 질서 속에서의 부부 관계가(창 3 : 12)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진 구속 질서 속에서 다시 회복되었음을
암시 한다.
5 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헬라어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왜냐하면'(렷주 , 가르)이라는
말이 있어서 본절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할 이유를
설명한 것임을 보여 준다. 즉 바울은 사람이 자기 몸을
아끼고 보살피듯이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인 교회를 사
랑하시고 돌보심을 언급하여 남편들도 자신의 몸인 아
내를 사랑하고 돌보아야 함이 마땅함을 설명하고 있는
것 이 다.
5 : 30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 를 사랑하시 고 들보시 는 이 유이 다. 그리 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어 자신에게 연합시키며 깊고도 확고한
결합을 통해서 우리를 자신의 부분으로 만드셨다. 따
라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그 누구도 나눌 수 없다. 그와
같이 남편은 자기의 생명과 육체의 한 부분이 되어
뗄래야 뗄 수 없는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것이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 질서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길인 것이다(골 3 : 19;
벧전 3'7),
5 :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할
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창 2'24의 인용으로
남녀가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합하다'(n70770人大◎? , 프로스콜라오)
는 '-로 향하여','~에서부터'를 의미하는 '프로스'
(젠7r )와 '아교로 붙이다', '합치다'를 의미하는
'콜라오'(70커커◎w)의 합성어로서 '꼭 붙이다','-에
집착하다'의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남녀가 합법적인
성적 결합을 통해 결코 분리될래야 분리될 수 없는
한몸을 이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전 6 : 16 ;
Bruce, Wood) .
5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비밀'(릴77利글f0? , 위스테리온)
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예정으로 전에는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것이다. 본
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통일되어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되고 그리스도와 교
회가 연합되는 구원론과 교회론을 연결시키는 웅대한
하나님 의 뜻을 큰 비 밀로 소개 하고 있다(엡 1:9;3:3,
4, 9;6'19), 특히 본절에서는 창 2 : 24의 하나님께서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 속에 세우신 창조 원리를 비유
하여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설명하며 그것이 놀
라운 하나님의 비밀임을 밝히고 있다. 이 비밀은 구약
성경에서 이미 간접적이지만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
계를 부부 관계 에 비유함으로 나타나고 있고(사 54 . 5 :
렘 3 : 14, 20 ;호 2 : 16), 예수께서도 성도를 신부에,
자신을 신랑으로 비유하심으로 나타내셨다(마 25:11
막 2:19, 20).
5 33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람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그러나'
( πA운 , 플렌)는 반의(反意) 접속사이지만 본절에서
는 '좌우지간'. '이제' 등의 뜻으로 쓰였다. 바울은
아내와 남편간의 사랑과 순종의 자세를 언급하면서 그
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큰 비밀을 교훈한 후에
다시 실천적인 권면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앞에서는
'사랑'과 '복종'이라는 말로 시작했으나 결론 부분에
서는 '사랑'과 '경외'로 바뀌었다. '경외하다'( 7o -
βi7, 포베오)는 문자적으로 '두려워 하다'는 뜻을 지
닌다. 사랑이 공포와 공존할 수는 없으나(요일 4 :姻)
남편에 대한 아내의 깊고 강한 사랑은 '경외'와 '존경'
으로 나타나는 '두려움'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두려움을 기초로 한 사랑과 존경은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자세(21절), 부모에 대한 자녀의 자세(레
19 : 3), 통치자에 대한 신하의 자세(수 4 14 :잠 24
21), 주인에 대한 종의 자세(벧전 2 : 18)에도 요구되
어 지 는 기 독교 윤리 이 다. 또한 남편과 부모와 통치 자와
주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사랑하심 같이
상대를 사랑하여야 한다.
5장 핵심 성구관주
5장 주제, 원어 &교리설교 선한 부부
빛의 자녀된 성도가 변화되어야 할 것
구분 : 주제설교
본문 ' s : 3-9
찬송 : 39,456, 508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성도들이 마땅히 행할 도리에 대해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어둠 가운데서 어두움의 일을 하였으나, 이제 주 안에서 빛의 자녀들이 된 성도들은 어두움에 거하던 옛
사람의 모습들을 과감히 청산하고 빛의 자녀들로서의 확실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는 빛의
자녀가 된 성도가 주 안에서 분명하게 달라지고 변화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를 통해 오늘
우리의 상태를 돌아보도록 합시다.
1. 거처가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빛 가운데로 부르시고 선택한 성도들은 먼저 거하는 장소가 변해야 합니다. 곧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어두움 가운데 거하였으나 선택받은 성도가 된 후에는 및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요 5'24).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므로(요 1'12)
당연히 그 거처는 하나님의 영광된 생명의 나라로 변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어두움의 세력이 가득한
이 땅을 떠나 하늘 나라로 가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의 삶의 자리는 악한 세상이 될 수밖에
없지만 빛의 자녀된 자는 근본적으로 하늘에 속한 자로서 악한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에서의 삶중에도 이전에 거하던 죄악된 자리에서 떠나 보다 주님과 가까이 하는 곳으로 향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행위가 변해야 합니다.
또한 빛의 자녀된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 자녀로서의 합당한 믿음을 지녀야 할 뿐만 아니라 그에 맞는
선하고 빛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 믿음을 지키고 빛된 삶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행하던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고 과감히 돌이켜 우리의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행실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마 5 . 16) 빛의 자녀된 성도의 기본
의무요, 자세인 것을 깨달아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음으로
(고전 4 20), 우리들은 먼저 말을 앞세우지 말고 아름다운 빛의 행위들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행위는 주님의 향기를 나타내어야만 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데 보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소망이 변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빛의 자녀로 선택받은 성도들은 소망이 변해야 합니다.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에는 헛되고
썩어질 이 세상의 보이는 것에만 소망을 두었다면, 빛의 자녀로 거듭난 성도로서 이제 우리는 하늘의 신령한
것에 우리의 영원한 소망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어두움 가운데서 썩어질 것들만을
소망하다 그와 함께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죄인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소망하고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된 자리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고로 이제 우리는 소망을 하늘에
두는 성도에게 하늘의 시민권이 주어지며 영생이 주어짐을 기억하고, 오직 하늘 소망만을 바라보며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롬 14 : 8). 그것이 바로
어두움의 자녀에서 및의 자녀로 옮기운 자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의 자녀된 자로서 합당한 및의 자녀된
자로서 있습니까? 올바른 성도로서 주 안에서 합당한 변화를 이루었는지 살펴보십시오. 진정 어두움의
자리에서 빛 가운데로 거처가 변했는지, 어두움의 일을 벗고 선하고 및된 행실을 나타내는지, 그리고 썩어질
어두움의 것들을 소망하던 것에서 신령하고 영원한 하늘의 것을 소망하는 자로 변했는지 분명하게 점검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주 안에서 분명히 달라지고 변화된 모습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떳떳이
증거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선한 부부
구분 : 주제설교
본문 : 5'22-33
찬송 : 32, 288, 305
오늘날 현대 사회가 불안해지고 삭막해져 가는 것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가정이 제 역할을 바로 감당하지
못하고 사랑이 메마르고 황폐해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정이야말로 한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며
한 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고로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건강한 가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화목하고 밝은 가정을 이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가정을 이루는 가장 기본 단위인 부부 관계가 바람직하게 이루어질 때만 가능합니다. 부부 관계가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면 가정 전체가 화목하게 되지만, 부부 사이에 미움과 다툼이 일어나면 가정 또한 불안해지고
피폐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부부 관계에 있어서 특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부부 관계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성경에서 말하는 바람직한 부부 관계는 어떤 것인지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16 에베소서 5 장
1.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도들중에는 부부 사이의 육체적인 관계를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심지어 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결혼제도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막 10 : 9), 결혼이란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아름다운 육체적인 결합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창
2 : 21-24). 따라서 부부 사이의 육체적인 결합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는 축복된 것입니다. 특히 구약 히브리어 '야다'(71', 창 4 : 1)는 '부부가
동침함으로써 서로 친숙하여지고 상대를 깊이 알게 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부부 관계가 다른
어떤 인간 관계보다 더 친밀하고 서 로에 대 한 깊은 이 해를 갖는 것은 아름다운 육체 적 인 관계가 있기 때문임 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혹시 성도는 부부 사이도 신령하며 영적이어야만 하고 육
체적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안에서 하나된 부부의
육체적인 하나됨 또한 성결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2. 인격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 사이의 육체적인 결합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육체적인 결합이
단순히 쾌락의 차원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은 부부 사이의 인격적인 하나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아담이 하와를 향해 '내 뼈중의 뼈요 내 살중의 살'(창 2 : 23)이라고 한 것은 하와를 자신의
부속물이나 종이 아니라 서로 사랑을 나누고 협력해야 할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혹시 배우자를 하찮은 존재나 귀찮은 존재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이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하
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입니다. 부부 사이란 주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여야 할 인격적인 관계
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을 통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제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성도들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부부 보다 믿음 안에서 인격적으로 하나되고, 인생의 동반자로
서로를 존중하는 부부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3. 생활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이전까지 살아왔던 자신만의 이기적인 삶을 포기하고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뜻입니다(창 2 : 24). 따라서 이제는 남편과 아내사이의 역할에 따라 각자가 하는 일은
다를지라도 서로간에 무관한 일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즉 부부란 서로의 일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지고
함께 생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생활의 경제적인 문제 뿐만이 아니라 자녀 교육, 장래 문제, 부모
문제 등 모든 문제에 대해 서로 관심과 책임을 갖고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잠29, 31장).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가정에서 남편이라고 해서 자녀교육 문제를 모두 아내의 책임으로 돌리거나, 아내라고 해서
경제적인 문제나 장래 문제에 대해 남편의 책임으로 돌리고 무관심 하지는 않습니까? 부부란 생활에서도
하나이어야 합니다.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모든 일을 함께 준비하고 가꾸어 나가야 할 공동의 책임과
하나됨만이 있을 뿐입니다.
4.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 위에 부부는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부가 서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가 될 때 하나님께서 짝 지워주신 배우자를(마 19 : 6)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러지 못하고 부부가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들의 영적 갈등은 이내 여러 가지 가정 문제를 일으키고 다툼을 조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함께
믿음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신앙의 불균형 상태가 계속되면 서로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기 보다 오히려
서로간에 부담과 불편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된 부부는 매일의 생활에서
서로를 위쓿 기도곯고, 을껴 율씀흘 쏠으굴, 즌퐁으로 하나를께 영쑹똘 골리른 경친 껄활이 험써야 합니다.
그러할 때 온전히 신앙으로 하나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을 가꾸어 갈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주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하나됨이 선하고 아름다울진대(시 133 : 1) 믿음으로 하나된
부부 관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처럼 소중한
부부 관계가 잘못되어 서로 미움과 다툼으로 불화하고 깨어지는 모습을 볼 때 너무나 안타까을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 이제는 이기심과 미움을 던져 버리고 주안에서 하나되는 부부가 되십시오. 육체적으로나 인
격적으로, 또한 생활 면에 있어서나 신앙적인 면에서도 사랑과 화목으로 하나되는 부부의 모습을 통해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장 예화
●기회는 지혜자의 것 ● 엡 5 : 15-17 /고후 6 : 2
'세월을 아끼라'는 구절의 난하주를 보면 기회를 사라는 헬라어
쓰여 있다.
우리는 기회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다음에 소개하는 회 랍의 어느 옛 도시 중앙에 우뚝 선 동상을 통해
보자.
이 동상은 조각가 뤼지푸스(B.C.360-316)에 의해 만들어진
앞머리에만 머리카락이 있고 뒤는 까까머리며 발에는 날개가 달린
하고 있다.
그리고 동상 밑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회람어로 쓰여 있다.
"누가 그대를 만들었지 ? -뤼지푸스."
"그대의 이름은? -내 이름은 기회."
"왜 날개가 발에 있지 ? -땅 위로 잽싸게 날아가려고."
"왜 앞에만 머리카락이 있지 ? -내가오는 대로사람들이 날쉽게 잡도록
하려 고. "
"왜 뒷머리는 없지 ? -내가 떠난 후엔 날 잡을 수 없도록."
이렇게 기회란 눈깜짝할 사이에, 누구에게나 찾아왔다 간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기회이지만 잽싸게 날아가려고 날개를
달고, 떠날 때 잡을 수 없게 까까머리의 형.상을 하고 있기에 뒤늦게 잡을
수 없다.
누가 이런 기회를 잡아서 세월을 아낄 수 있을까?
그것은 지혜자이다.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살피고 주의하여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자,
그런 사람만이 기회가 왔을 때 재빨리 잡아서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박은원)
5장 금 언
자녀는 자기를 창조한 하나님을
(1절 /토마스 풀러)
(4절 / C.쿨리지)
7가장 축복받는 사람이 되려면 가장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
聾 빛 속을 걸으라. 비륵 가시밭 길이라 해도 그대의 길을 밝게 볼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로 그대 안에
(8절 /버나드 바튼)
聾 나의 전적인 헌신(獻身)만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17절 /1. H.쓴엘)
(21절 7J.S. 밀)
聾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선은 순종 속에 포함되어 있다.
魯 부부의 결합이란 것은, 이미 요리된 행복의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둘이 서로 합심하여 행복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
(22-錫절 / F. 비 까르)
疇 자식이 자기를 랗아 준 부모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실망시켜서는 안된다.
거하시고 하나님 스스로가 빛이 되시기 때문이다.
5장 Q. T
5: 3,4 성도된 우리의 입으로 어
떠한 말을 즐겨 했는지 돌이켜 보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 탐욕은 그 이
름도 부르지도 말고. 누추함, 어리석은
말. 회릉의 말에서 들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하겼는데, 진정 은혜의 말.
감사의 말애 힘쓰고 있는지․.
●장10 : 19;갈5 : 19(212, 487)
5. 14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녀로
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할텐데. 지금
나는 구원은 받았으되 삶에 아무런 변
화가 없는 잠자는 자와 같지 않은가 ?
'잠자는 자여 깨어 일어나라'는 주님의
경 책을 들어보라.
1눅1 : 78;름13: 11(too,329)
5 : 18 우리는 쾌락이라는 술. 명
애라는 술, 성공이라는 술에 칠해 있
지는 않은가? 오히려 우리는 이런 세
상의 술이 아닌 하나님의 일에 취해야
하는 자들이 아닌가?
●눅1 : IS;갈5: 16(173, 432)
5 : 22-黙1 사랑보다 자기 이익을
앞세워 결혼하고. 또 쉽게 혜어지기도
하는 요즘 세 태속에서 당신의 부부관은
어떠한가? 성도된 우리는 부부란 하
나님이 맺어주신 사랑의 관계임을 깨
닫고, 서로 존중하며 양보하면서 그리
스도와 교회의 연합처럼 일치를 도모
해야 하지 않겠는가?
1창2 : 24:골2 : 2(243,527)
제6장 성도의 부모와 자녀, 주인과 종에 대한 바른 관계와 성도의 영적 싸움 및 끝맺는 말
6장 본문&자료노트 강해주석 주제, 원어&교리설교
예화 핵심 성구관주 Q. T 금 언
구속사적 개관
본서의 마지막 장인 본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된다. 먼저 전반부 1-9절은 교회의 일치와 연합 및 구원받은 성도 개개인의 신앙 생활과 관련된 실천적 교훈들을 주고 있는 본론 후반부 4 : 1-6 : 20 중 성도의 가정 생활에 관한 교훈들을 제시하고 있는 5 : 22-6 : 9까지의 일련 기사의 종결 부분으로서 성도의 부모와 자녀의 바른 관계(14절) 및 주인과 종의 바른 관계(4-9절)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중반부 10-20절은 교회의 일치와 연합 및 구원받은 성도 개개인의 신앙 생활과 관련된 실천적
교훈들을 주고 있는 본론 후반부 4 : 1-6 : 20까지의 일련 기사의 종결 부분이다. 여기서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현세상에서 필히 겪게 되는 영적 싸움에 대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고
성령 충만을 얻도록 교훈하고 있다.
후반부 21-24절은 본서 전체의 종결 부분으로서 바울이 본서의 전달자인 두기고를 소개하는
내용(21, 22절)과 본서 수신자에 대한 축도로써 본서를 끝맺고 있다.
먼저 전반부 1-9절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대할 때 성도의 가정에 관한 전반적인 구속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제 5장 개관을 참조토록 하고 여기서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대해서만 살
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성도의 가정에 있어서 부모는 자녀의 육적인 양육 뿐만 아니라 영적인 양육의 책임까지도
맡은 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된 자는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여 먼저
자녀들이 주님의 교훈을 좇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며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신앙적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자녀는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인간과 인간간의 바른 수평적 관계에 있어서
최우선이 되어야 할 윤리적 의무로서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모에 대한 자녀의
공경은 성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친 신앙과 윤리의 자세에 대한 계명들인 십계명 중 제 5계명에서도 제시하고 있는 바이다.
한편 본문에서 종과 상전은 사회적인 신분의 상하 관계이나 여기서 성도의 가정 생활에 관한
일련의 교훈들과 함께 제시하고 있는 것은 종과 상전이 결국 한 가정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과 상전의 관계에 대한 구속사적인 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본문에 서 바울이 준 교훈은 당시 사회 의 노예 제 도를 옹호하고 있는 것 이 결코 아니 다. 바울은 다만 천국 시민권을 소유한 성도(臺徒)는 자신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갖는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에 얽매이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초월하여 자신이 어떠한 신분과 지위를 가지든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실현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교훈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구속 구원(救讀救援)을 얻은 성도의 일차적인 삶의 목적은 자신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함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 변할 수밖에 없고 또
죄성을 지닌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폐단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의 어떤 체제(體制)나 그
체제 속에서 주어지는 신분(身分)에 얽매여 사는 것은 결코 성도로서 마땅한 삶의 자세가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이 세상에서 더 좋은 사회적 지위와 신분의 차별 때문에 불평하며 또는
그것들 자체만을 개혁하기 위해 투쟁하며 살 것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자신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기쁘시고 선하신 뜻을 실현하기 위해(롬 12 1, 2)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중반부 10-20절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여기서 우리는 구속사의 최종 마감을 앞둔 현세상에
대한 구속사적 인식을 새롭게 함과 동시에 이러한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요청되는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 현 세상에는 먼저 그 자신이 하나님께
도전하여 타락하였고 인류의 시조(始祖)인 아담까지 유혹하여 범죄케 한 사탄(Satan)이 권세를
부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 세상을 심판하사 하나님의 자녀와 사탄의
자녀를 구분하는 이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에선 타락한 이 세상의 오
고오는 세대에 걸쳐 모든 택한 하나님의 백성(God's People)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믿고 회개하여 다 구원얻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사탄과 세상에 대한 심판을 유보(留保)하시고 장구한 구속사(救續史)가 현 세상에서 진행되게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침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모두 회개하여 구원을 얻고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사탄과 세상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세상 끝날이 오기까지는 하나님의 구원 진리를 믿는 성도들을 향한 사탄의
공격이 끓이지 아니할 것인데 그 양상은 곧 핍박과 환난 뿐 아니라 각양 이단 사상으로 미혹하는
것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말세가 가까워 오면 올수록 더욱 분명하고 자주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구속사(救讀史)의 전개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항상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 성령에 충만해 있음으로 사탄의 술수에 넘어지지 말고 자신의 믿음을 지켜 온전히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빌 2 12).
끝으로 후반부 21-24절에서 우리는 자신이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중에서도 자기 자신보다
다른 성도들을 먼저 생각하며 에베소 교인들에게 본서와 같은 서신을 기록한 바울을 통하여 진정
우리 개개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할 구속사적인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된다.
바울의 이러한 모습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진정 이 세상을 바라 보지 아니하고 천국의
푯대를 향하여 쉬임없이 매진하는(빌 3'12-14) 참 성도상이 아닐 수 없다.
6장 본문&자료노트
원어연구- 보감-
신학용어- 인물연구-
신학용어- 지리배경-
도표-6: 1-3 자녀들의 부모 순종에 대한 성경의 주요 실례
1 노아의 아들들과 자부들(창 7 : 7) 아비 의 뜻대로 방주에 들어감
2 이삭(창 22 : 6-10) 아비 의 뜻대로 순순히 제물로 결박됨
3 야곱(창 28 : 7) 부모의 명을 좇아 객지로 떠남
4 요셉(창 50:1-14) 아비의 유언을 그대로 행함
5 입다의 딸(삿 11:36-39) 아비의 서 원을 이 행토록 함
6 룻(룻3 : 1-18) 시모의 모든 말에 순종하여 행함
7 사울(삼상 9 : 3-5) 아비 의 명대로 암 나귀를 찾아다님
8 다윗(삼상 17 : 17-20) 아비의 심부름에 묵묵히 순종함
9 예수(눅 2 : 51, 52) 부모에게 순종하며 받들
10 디모데 (딤후 1:5;3:15) 조모와 어미 의 신앙 교육에 순종함
도표-6:10-17 하나님의 전신갑주
이 땅에서 성도는 하나님을 위해 사
단과 영적일 싸움을 하고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이 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그의 말년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딤후 4 : 7)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
러면 다음에 성도가 이 영적 싸움을
위해서 무장해야할 하나님의 전신갑주
에 대해 살펴보자.
1 허리 -진리의 허리띠(14절) 주의 진리를 중심 삼아 요동치 않음
2 가슴- 의의 흉배(14절) 사탄의 불의한 미혹으로부터 보호함
3 발-복음의 신(15절) 복음을 전파하여 사탄의 세력을 쳐부숨
4 손-믿음의 방패(16절) 주의 능력을 신뢰하고 대적들을 막아냄
5 손- 성령의 검 (17절) 말씀으로 악한 세력들을 공격함
6 머리 - 구원의 투구(17절) 구원의 확신으로 승리를 확신하며 싸움
보감-6: 1-4 부모와 자녀 상호간의 의무
●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무
잘못된 것을 교정시킴 (신 21 . 18-21)
신앙의 본을 보임(왕하 15 : 3, 34)
필요를 공급함(마7 : 9-11 : 고후 12'14)
축복함(눅 1 : 76-79)
노엽게 하지 않음(엡 6 : 4)
주의 도로 지도하고 가르침(엡 6 4)
권면하고 위로함(살전 2 : 11)
다스림(딤전 3 : 4,5, 12)
사랑함(딛 2 : 4) 보호함(히 11 : 23)
●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
사랑함(룻 1 17-18)
훈계를 들어 지킴 (잠 7:1-5)
기쁘게 해 드림(잠 15 : 20)
순종함(엡 6 1)
공경 함(엡 6 : 2)
봉양하며 보은함(딤전 5 : 4)
역사배경-6: 5-9 로마 제국의 노예 제도 몬 1장 자료노트 참조
원어연구-6 : 24, 변함없이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은 '엔 아프다르시아'(◎ 勞流띨킵슈 )이다. 여기서 '아프다르시아'는 '욜멸성'. '불변성'이라는 뜻의 명사 '아프다르시아' (奇消琴7(? )의 여 격 이 다. '아프다르시아'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이는 부정(否定) 접두어 '아'(凉)와 '부패시키다' '멸망시키다', '타락케하다'라는 뜻의 동사 '프데이로'(77-닌주7)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명사이다. 한편 '프다르시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헤트'(RH☞)는 전쟁이나 다른 어떤 힘에 의해 건물이 파괴되는 것, 또는 도덕적으로 종교 의식적으로 타락하여 부정케 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아프다르시아'란 외적인 손상이나 내적인 홈이 없는 순수함을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전치사 '엔'과 함께 쓰일 때 부사적으로 '순수하게', '진지하게'. '계속적으로'라고 해석된다. 따라서 본문의 '변함없이'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에 있어서나 흑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로서 반드시 요청되는 외적인 생활 태도에 있어서는 변함없이 순수하게 지속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지속적으로 입증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삽화-6: 14-17 전신갑주를 입은 로마 병사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투구, 흥배. 허리띠. 방패. 검 등이 갖추어진 전신감주를 입었다. 이러한 완전무장을 비유로 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병사된 성도들 역시 영적 전투에 임함에 있어 하나님의 전신감주를 입어야함을교훈하고 있다.
주요주제-6:18-19 중보 기도의 이해 고후 1장 자료노트 참조
6장 강해주석
6: 1-4 그리스도인 부모와 자녀에 대한 교훈
6: 5-9 그리스도인 종과 상전에 대한 교훈
6 : 10-20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쟁
1 6:21-24끝맺는 말
6: 1-4 그리스도인 부모와 자녀에 대한 교훈
바울은 앞 단락(엡 5 : 22-33)에서 그리스도인의 부부 관계에 대해 언급한 데 이어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에 관한 윤리 중 부모와 자녀간에 지녀야 할 생활 윤리를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자녀는 부모에 대해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하며(1-3절), 부모는 자녀를 신앙 안에서 바르게 양육해야 한다는 것으로(4. 5절) 요약된다. 사실 가정의 온전한 일치를 위해서는 부부의 화함 못지않게 부모와 자녀 사이의 화합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부모의 권위에 마땅히 순종함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이는 십계명의 제 5계명에서도
명령하고 있는 것으로 제 5계명은 그것을 지키는 자에게 장수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다(신 5 : 16). 하지만 성경은 부모를 조롱하며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는 저주의 말을 하고 있으며(잠 30 : 17 ;겔 22'7), 또 부모를 치거나 저주하는 자는 돌로 럭 죽이라고 하고 있다(출 21 : 姑 ; 레 20 :9). 하여튼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부성애적 사랑을 상징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공경은 하나님 공경의 첫걸음이자 외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도들에게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하겠다.
한편 부모는 자녀에게 그가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쳐야 한다(잠 22:6:사 38 . 19). 이때 부모도 자녀를 자기의 소유물인 양 생각하고 무조건적인 권위를 내세우며 강압적으로 다루는 일이 없어야 한다. 특별히 부모는 자녀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신 것과 같이 헌신적으로 사
랑해야 하며, 그들이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소유임을 깨닫고 두려운 마음으로 책임성 있게 양육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할 때 진정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이 될 것이다. 아올러 오늘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 문제는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순종하다'(凉約닌o7脚 , 휘파쿠오)는 '~에 의해','~아래에'를 의미하는 '휘포'( 릴곯 )와 '듣다', '청취하다'를 의미하는 '아쿠오'( 려70교티 )의 합성어로 '귀를 기울이다'. '따르다'의 뜻을 지닌다. 본절에서는 '언제나 부모의 말씀을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 안에서'라는 말은 부모의 명령과 하나님의 뜻이 상반될 때를 염두에 두고 바울이 기록했다기 보다는(Bruce) 자녀의 부모에 대한 순종이 그
리스도께 순종하는 것과 같아야 함을 강조한 표현이라 하겠다(Hendriksen). 이것이 을으니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부모를 공경할 것을 교훈하셨고(신 27'16 ) 인간 심성에 보편적으로 새겨주신 자연법으로도 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종이 옳은 일임을 알게 하셨다. 실로 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종과 효는 지극히 당연한 도리인 것이다(요 19 : 26, 27). 이와 관련해서는 신 21장 자료노트, '성 경 의 효 사상'을 보다 참조하라.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십계명의 제5계명의 인용이다(출 20 12 ;신 5 16). 십계명을 두부분으로 나눌 때 보통 제1-4계명을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의무로, 나머지 여섯 계명을 이웃에 대한 인간의무로 구분한다. 그러나 유대 인들은 두 돌비 에 는 각각 다섯 계명씩 기록되어 있어 다섯째 계명은 전자에 속한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부모를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한다. 따라서 부모에 대한 공경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십계명의 제 2계명에도 약속이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어떻게 해서 제 5계명이 '첫계명'이냐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견해가 있다. 즉 ① '첫째'를 '으뜸'으로 해석하며 '으뜸되는 축복의 약속이 있는 계명'이란 뜻
으로 보는 견해(帶este고, H떨go), ② 십계명을 제1-4계명과 제5-10계명으로 구분하여 인간 관계에 관한 계명 중에 첫째 계명이라는 견해(Ho나lausen), ③ '첫째'를 유대인 아이들이 첫째로 배우는 계명이라고 보는 견해(Braune, Stier), ① 제 2계명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 아니라 제 5계 명이 진정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견해(Meyer, Robinson) 등이 있다. 이상의 견해들
가운데 ②의 견해는 제 5계명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첫째 돌비에 새겨졌다고 믿어졌기 때문에 합당하지 않고, ③의 견해는 제 5계명이 '어린이를 위한 첫 계명이 아니라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점에서 합당하지 않으며, ④의 견해는 비록 일반적 성격의 것이라고는 하나 제 2계명에도 약속이 있다는 점에서 부합되지 않는다. 그러나 제 5계명은 순수하게 축복만을 약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①의 견해가 본절의 해석에 가장 부합된다 할것이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약속'이란 다음절에 언급된 장수하는 복을 말한다.
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출 20 '12과 신 5'16로부터 인용한 구절이다. 바울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라는 구약의 본래의 약속을 '땅에서'로 바꾸어 인용했는데, 이는 구약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신약 시대 성도들에게 보편화시켜 적용시킨 것이다. 즉 영적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인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는 축복과 아올러 이 땅에서의 물질적인 축복과 건강과 장수의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6:4 또 아비들아. 1-3절에서 부모에 대한 자녀의 도리를 언급한 바울은 이제 본절에서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도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본절에서'부모'대신 '아비'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당시 자녀의 양육이 아버지의 책임하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Hend-r泣son, Wood),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부모의 도리에 대한 바울의 권면은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에서 나뉘는데 먼저 소극적인 면으로 바울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는 그 당시 가장의 권한으로 자녀를 죽일 수도 있었던 로마인들의 관습과는 매우 대조적 인 교훈으로 개 개 인의 인격 에 대한 존귀함이 강조되고 있다. 한편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이유로는 지나친 엄격, 가흑, 편애 등을 들 수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 문제의 주요 요인이 기도 하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적극적인 면에서의 자녀에 대한 부모의 도리를 권면하고 있다. '교양'( πα777◎ , 파이데이아)은 '아이'( πα◎ , 파이스)에서 파생된 말로 '어린이를 양육함'. '교육', '훈련', '징계'의 뜻을 지닌다.
이는 자녀를 교육하는 데 있어서 '책벌을 통한 훈련',즉 징 계로 잘못된 점을 교정 시 키는 것을 의 미 한다. 이 와같은 징계와 책벌에 대해서는 구약 성경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잠 13 : 4 : 23 : 13-14; 24 : 15 ; 29 :15). 자녀를 노엽게 하는 잘못된 징계의 반대는 올바른 징계를 통해 자녀가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훈계'(7o7θ77◎ , 누데시아)는 에베소서 6 장신', '마음', '이성'을 의미하는 '누스'( 70i◎ )와 '위치하다', '배치하다', '놓다'를 의미하는 '티데미'( r7'計◎」 )의 파생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충고'의 뜻을지닌다. 즉 '교양'이 행위적 책벌을 통한 훈련인 반면에, '훈계'는 말을 통하여 자녀를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녀 교육과 관련하여서는 신 4장 자료노트, '성도의 자녀 교육에 대한 원칙들'을 보다 참조하라. 한편 바울은 '주의 훈계와 교양'이라고 하여 그 기준이 주님의 뜻과 말씀에 있음을 강조했는데, 이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과 함께 그리스도중심의 기독교 윤리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6 : 5-9 그리스도인 종과 상전에 대한 교훈
그리스도인의 가정 생활과 관련된 교훈으로 부부 및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바울(5 : 22-6 : 4)은 이제 본문에서는 가정 생활과 관련된 교훈의 마지막으로 종과 상전과의 관계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의 교훈은 좁게는 가정 생활과 관련된 교훈이라 할 수 있지만 넓게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사회 생활과 관련된 교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의 범죄 이후 인간이 이룬 사회는 욜평등과 계급적 구조라는 뼈아픈 현실을 양산하고 말았다. 물른 인간들은 이러한 모순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여러 이론을 제시하고 또한 제도를 채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의 어떠한 이론과 제도로도 타락으로 파괴된 질서는 회복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이 세상이 존속하는 날까지 그대로 계속될 것이며.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비로소 창조때의 본래 모습으로 회복될 것이다. 이에 바을은 현실적 상황을 타파하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바로 그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륵 하기 위해 주종간의 정당한 의무와 책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다. 이러한 바울의 권면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종된 자들은상전에 대해 성도가 그리스도께 하듯 성실한 마음으로 순
종하라는 것이며(5-8절), 상전된 자들은 하늘에 그들의 참 상전이 있음을 깨닫고 종들에 대해 가혹하게 하지 말고 후대하라는 것이다(9절). 사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볼 때는 상전이나 종이나 다같이 하나님의 종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종된 자들은 그들의 처지에게 성실하게 직분을 감당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며. 상전된 자들 역시 종들에 대해 진실함과 선의로 대함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쏙한 자임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바울은 종이나 상전들에게
그들이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행하든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그대로 베푸실 것을 기억하고 맡은 바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도륵 명령하고 있다(8절 ;엡 5 :10) .한편 이러 한 종과 상전의 관계 를 현재 사회 에서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기회주의적인 자세를 버리고 성실하게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여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며 회사를 경영하는 경영주는 사원들을 이 해하며 사랑을 베플며 화목한 노사 관계를유지해야 할 것이다(골 3 22-4 : 1).
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채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부부간(엡 5 : 22-33), 친자간(1-4절)의 윤리를 언급한
바울은 이제 본절에서부터 9절까지에서는 주종지간의
윤리를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주종지간의 윤리는 넓
게는 오늘날의 고용주와 피 고용주의 관계에까지 그대로
적용된다 할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두려워하고 떨며'
는 의 무를 수행 하려는 진실한 태도를 의 미 한다(고전 2
3 ;고후 7 15 ; 빌 2 12). '성실한 마음'은 위선이나
다른 저의가 없이 성심껏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
리스도께 하듯 하여'는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간에
주께 하듯 해야 한다(름 14 : 7-9)는 삶의 원리를 종의
상전에 대한 봉사에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6: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눈가림'(勞流깁친0諒7A7('? , 오프달모둘레이
아)은 '눈'(却θ교◎◎ , 오프달모스)와 '노예의 의무
를 수행하다', '섬기다'(707A77妙 둘류오)에서 유래
된 '노예상태'(707A7뇨 , 둘레이아)의 합성어로서
'눈가림만 하는 봉사'라는 뜻을 가진다. 사람의 눈 앞
에서만 열심히 봉사하면 그 사람은 기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노예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
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은
성 도들이 언제나 정 직 하고 성 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
결코 거짓되고 눈가림만 하는 삶이 아닌 것이다. 여
기에서 사람의 노예와 그리스도의 노예와의 근본적인
인생관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성도들은 사람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T 단 마음으로 설기기틀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
에게 하듯 하지 말라. '단 마음'( 7770fα , 유노이아)
는 '선의', '열정', '호의'의 뜻을 지닌다. 따라서 본
절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듯 하지 말고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을 섬기듯이 하라는 말이다. 기쁜 마음
으로 열정을 가지고 주인에게 봉사할 때 그 종은 이미
사람의 종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이다.
6: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종들에 대한 바울의 권면의 근
거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선서 심판하실 때 이 땅에서의
신분에 상관 없이 그가 자기의 위치에서 얼마나 주를
섬기고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또한 상급을 받을 것이므로 성도
들은 비록 이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모든 일을 주께 하듯이 성실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은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의 주된 관심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있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6: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
갈을 그치라. '이와 같이'는 '주께 하듯하고', '하나
님의 뜻'을 행하고 '단 마음으로'하라는 종에 대한 권
면이 그 상대 인 주인에 게 도 그대 로 적용됨 을 의 미 한다.
그리고 '공갈을 그치라'의 '그치라'( 려77i7r7T . 아
강해주석 223
니엔테스)는 '늦추다', '풀어주다'를 의미하는 '아니
에미'(77쏜칠」 )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 '위협하는
일을 그만두라'는 뜻이 다. 이는‥‥외모로 사람을 쉬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상전들이 종들에게
공갈하지 아니하고 잘 대해주어야 할 이유이다. 즉
상전이나 종은 모두 그리스도를 상전으로 모시는 자들일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신분의 차이에 따라 차별하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실 것이므로
상전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하듯 종
들을 대해야 하는 것이다.
6 : 10-20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쟁
죄악된 옛 생활을 청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
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실천적 윤리들을 여러 방면에서 제
시한 바울(4 : 1-6 : 9)은 이제 본문에서는 그 실천적 윤리
들의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새 생활을 온전히 영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수행해야 할 사악한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영적 전
쟁의 성격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부분으로, 여기서 바울은
성도들이 수행해야 할 영적 전쟁이 연약한 인간을 상대로
한 싸움이 아니라 마귀의 세력과의 영적 전쟁임을 밝히고
있다(10-12절). 이러한 영적 전쟁은 성도가 하나님의 자
녀로 부름받은 그 순간부터 장차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때
까지 계속될 성질의 것이다. 하여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
리스도를 통하여 우주 만물을 통일시키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계 시 나 마귀 는 기 회 만 있으면 하나님 의 일을 방해 하고자
한다. 특히 마귀는 성도들을 유혹하여 실족케 하여 하나님
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함으로써 결국 성도들을 자기의 수하에
두고자 한다(고후 11 . 4;벧전 5 8:유 1 : 3). 따라서 성
도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마귀에게 대적해야만 하는 것이다.
둘째, 영적 전쟁을 위한 성도들의 준비를 언급하고 있는
부분으로, 여기서 바울은 성도들이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 감주로 무장해야 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13-17절). 실로 마귀는 인간의 힘을 훨씬 능가하는
능력을 소유한 영적 존재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모든 능력
위에 뛰어난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 비
로소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언급된 성도의 무장은 고대 로마 병사가 전투에 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장비에 비유한 것으로 그 의미에 대해서는 해당
주석을 참조하라.
셋째, 영적 전쟁의 수행 방법으로. 여기서 바울은 성령
안에서 항상 깨어 기도하여야 할 것을 밝히고 있다(18-20
절). 사실 병사가 아무리 무장을 철저히 하고 있다 할지라도
깨어 적의 공격을 대비하지 않는다면 필연코 패할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이 성도들은 모든 무장을 갖춘 후에는 깨어
기도함으로 마귀의 공격을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깨어 기도함으로 마귀와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반면(마 點 38-42),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깨어 있지 못함으로써 영적 전투에서
패하고 결국 예수를 부인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마 26 ;泌, 41, 56, 69-75).
6: 10 종말로(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종말로'(r0? AOfπ07, 투 로이푸)는
소유격으로 '나머지 사항에 대하여서는'의 뜻이다. 그
리고 '강건하여지고'(7777린띤0炭꺾』 , 엔뒤나무스
데)는 '~에'.'-위에'를 의미하는 '엔'( i? )과 '힘'
'능력', '권능'을 의미하는 '뒤나미스'(77띤띨(』 )의
합성어, '권능을 부여하다', '능력을 주다'( i7777α-
린7脚, 엔뒤나모오)의 현재 수동태 명령법이다. 즉 성
도들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지속적으로 강건함을 받
아야 할 것을 의 미 하는 것이 다. 한편 바울은 성 도들헤 게
악한 영들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주
안에'거하며 '그 힘의 능력'으로 채움을 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
에서 스스로 강건케 하려 하면 패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승리했던 '여호와의 전쟁'의 특성이 신약 성
도들의 영적 전투에 그대로 적용되어 짐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다.
6: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일으라. '마귀'(777β7AOT , 디아볼로스)
는 모든 악마들의 머리로서 '사탄'을 가리킨다. 그리고
'궤계'(릴7θo77◎ , 메도데이아)는 '기술을 사용하
다'(길7θo7777, 메도듀오)에서 유래業. 말로, '기
술', '속임', '모략', '교활'의 뜻을 지닌다. 즉 사탄은
교활하여서 성도들의 약점을 잘 파악하여 여러 가지
속임수와 능숙한 기술로 공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
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한
것이다. 바울은 그 당시 군인들의 전신 갑주를 비유로
영적인 무장을 묘사하고 있는데 전신 갑주는 '방패, 칼,
창, 투구, 정갱이받이, 흥배' 등이었다短olybius). 한편
'대적하기'(7r77α』 , 스테나이)는 군사 용어로서 쳐
들어오는 적을 물러서지 않고 대항하여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도들은 마귀의 궤계에 대해 소극적으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
어야 하는 것이다.
? :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씨름'(π7A7, 팔레)은 '던지다', '흔들다'를 의미하
는 '팔로'( 瑞狀人? )에서 나온 옛 단어로서 두 사람이
맛붙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던져 내리 누르는 경기를
말한다. 즉 바울은 당시의 운동 경기를 성도들의 영적
전투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과 육'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성을 의미한다(마 16 : 17 ;고
전 15'50;갈 1 : 16;히 2 14). 성도들의 싸움은 바로
이러한 연약한 인간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세상의 권세
자인 마귀와의 싸움이다. 따라서 성도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
야만 하는 것이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정
사와 권세'는 천사들의 이름으로서 선한 천사뿐 아니라
타락한 천사. 즉 악의 영들에 대하여도 욜려지는 칭
호이다. 여기서는 악의 영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
었다(엡 3 : 10 ;골 2 : 15).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
들' 역시 마귀들로서 요 12 : 31 ; 14 : 30 ;고후 4'4에
서는 '세상 전체의 주관자', '세상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224 에베소서 6 장
자들'이라는 의미로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또한 '하
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불리워진다. 여기서 '하늘'
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서의 하늘이 아니라 유대
인들의 삼층천의 개념에서의 2충, 곧 마귀들의 주거지인
공중을 가리킨다. 엡 2:2 주석 참조. 하여튼 그리스
도인들은 마귀의 통치 영역에 살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욜가피하게 영적인 전투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바
울은 성도들이 대적해야 할 상대가 어떤 존재들인가를
설명한 후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함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악한 날'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① 성도들의
죽음을 통한 개인적인 종말의 때(Schmid), ⑦ 그리스
도의 재림을 통한 우주적 종말의 심판의 때(Ch◎sostom,
Jerome) ③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특별한 환난의
때(Meyer, Koppe, Carid)潘 성도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겪는 마귀의 시험의 때(Eadie, Bruce. De Wette). 성
도들과 악한 영들과의 싸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므로 戀의 견해가 타당하다.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행한'을 '전쟁에 승
리한'으로 보아 '싸움이 끝난 후 승리자로 서기 위하여'
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나(Meyer, Milton), '행한
후'를 '완성한 후'로 보아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
장을 완성한 후에'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편적
해석이다(Bengel, Ab◎11, Westcott, Meyer). 즉 본절은
성도들이 사탄의 공격에 넘어지지 아니하고 끝까지 싸워
이길 수 있는 전쟁을 위한 진지를 확고히 구축한다는
의 미 인 것 이 다.
6 :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본절에서 17절까지는 성도들이 영적 전투를 위해 무장
해야 할 전신 갑주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다. 한편 본
절에서 '진리'는 그리스도와 성경 안에서의 '진리'인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할 수 있으나 헬라어 원문에 정
관사가 없으므로 '성실' 또는 '정직'(NEB)의 의미로
해석함이 좋다. 즉 거짓과 기만을 일삼는 사탄의 궤계를
깨뜨리기 위해서 성도들은 성실하고 정직해야 하는 것
이다(시 51 . 6 ; 엡 4. 15. 25). 그리고 '허리 띠를 띠
고'는 그 당시 병사들이 옷을 단단히 동이고 검을 붙
들어 매는데 사용했덮 가죽 허리 띠에 성도들의 신앙을
비유한 것으로 '어떤 행동을 준비한다'라는 의미로 사
용되었다. 구약 성경에서도 메시야 예언과 관련하여
그가 '공의로 그 허리 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 : 5)고 말씀하고 있다. 의의 흥배를
붙들고. 여기서의 '의'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칭의'가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원칙과 행
동으로 충성하는 것' 곧 도덕적 완전함을 의미한다
(Moule, Bruce, Kent). 그리고 '흥배'는 굳은 가죽,
쇠, 구리 등으로 만들어 병사의 가슴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했던 것이다. 실로 성도들의 의로운 삶은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심장을 보호하여 주는 것이다.
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평안의 복음'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서 화평케 하시는
중보자의 역 할을 하신 예 수 그리 스도의 화평 의 복음이 다
(엡 2 : 14). 그리고 '예비한 것'( iro뚠껄◎ , 헤토
이마시아)은 '준비', '채비'(시 9:4;10 17) 또는
'견고성'을 가리킨다. 한편 여기서의 '신'은 로마 병
사들이 전쟁을 위해 신던 것으로 긴 행군을 하기에
용이 하고 발이 미 끄러 지 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 할을 하여
전쟁을 효과적으로 치루기 위한 필수품이었다(Barth).
따라서 본구절은 성도들이 악한 영들과의 전투에서 승
리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화평
으로 견고히 서야함을 의미하고 있다(Meyer, Ab◎11).
죄 로 인하여 하나님 과 평 화를 누리 지 못하는 상태 에서 는
사탄의 공격을 막아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 도들은 평 안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 과 형 제 들과의 관계
속에서 화평 하도록 거룩하고 성 결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 이 다.
6. 7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여기서의
'방패'는 조그마한 것이 아니고 길이가 1.2mxo.77m나
되어 전신을 다 가릴 수 있는 긴 장방형의 것을 가리킨다
(Stott).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을 전족으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Bruce, Moule).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화전'은 그 당시의 공격용 무
기로 송진을 발라서 불을 붙여 쏘던 화살이다. 성도들의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는 사탄이 가공할 모든 공
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막아주는 방패의 역할을 하는 것
이 다(잠 30 : 5) .
6. IT 구원의 투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
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혜는 영적 전투에서의 가장 확
실한 승리의 보장이다.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소유한
구원의 소망(살전 5 : 8)과 확신은 사탄의 어떠한 공격
이라도 능히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당시 로마
병사들의 '투구'는 도끼나 망치로 내려치지 않는 한
뚫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여 머리를 보호하는데 부
족함이 없었다. 또한 이 투구는 장식 용으로도 이용되어
깃털과'같은 화려한 장식을 달기도 했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을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인을 꾸며 주며 보호해
주고, 그로 하여금 확신과 기왐으로 머리를 들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그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다' (H떫go)라고
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쏨을 가지라. '성령의
검'은 성도의 무장에서 유일의 공격용 무기로,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말
씀'이 유일한 공격용 무기로 제시된 것은 성도들의 영적
전투에 있어서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은 믿
음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함으로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수께서도 사탄의 시험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시된 말
씀으로 대항하시고 승리하셨다(마 4'4, 7, 10),
이로)는 '모든 경우에'라는 뜻이다. '성령 안에서'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받아서 하라는 뜻이다. 즉
성도들은 항상 기도하기를 힘쓰되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의 기
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데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전 2 : 11). 혹자는 이처럼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기도를 중언 부언하는 기도(마 6 . 7)과 대조시키
기도 했다(Ch틴sostom). 하여튼 성도들의 기도가 이교
도들의 그것과 다른 것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그들은 자기의 뜻대로 구한다는 것이다. 그러
므로 성령 밖에서 자기 맘대로 구할 때 그것은 이미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도가 아닌 것이다. 바울은 성령
께서는 성도 안에 거하시며 그들을 위해 친히 간구하
시며 성도들을 통하여 기도하심을 증거하고 있다(롬 S :
26),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바울은 성도들에게 자신들을 위해서 뿐만 아
니라 여러 성도들을 위하여 깨어 기도하기를 항상 힘
쓰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는 영적 전투에서 성도들의
공동의 책임 의식과 기도를 통한 영적 군사들간의 연
합을 강조한 것이다(딤전 2 : 1),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할 것이니.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복음 사역을 위해 기
도를 부탁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복음 사역이
가능한 것 임 을 고백 한 것 이.다. 복음 전파의 사역은 영 적
전투의 최전선에서 악한 영들과의 대대적인 전투를 벌
이는 것이므로 기도를 통한 영적 지원이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말씀을 주사'는 복음 전파의
근원이고 '입을 벌려'가 복음 전파의 과정이며 '알리게
하옵소서 '를 복음 전파의 결과라고 한다면, 바울은 지금
자신의 사역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
기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6 :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사신이 되다'(n777f訓◎, 프레스뷰오)는
'전권 대사가 되다'의 뜻이다. 이는 왕의 메시지를 가
지고 파송된 자를 의미한다. 즉 바울은 자신을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쇠사슬에 매인'은 바
울이 감옥에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나로 이 일에 당
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비록 옥에 갇힌 신세였지만 로마에 모여든 어느 나라의
사신과도 비교가 안되는 자신의 영광스런 직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왕이신 주님의
말씀을 당연히 사람들에게 중거하여야만 했고 두려움
없이 담대히 복음을 전파할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Kent) .
6:21-24끝맺는 말
본문은 본서의 최종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본 서신의
전달자인 두기고에 대한 소개(21. 22절)와 수신자인 에베소
교회를 중심한 소아시아 교회들에 대한 축복의 말이 언급되어
있다(23, 24절) .
여기서 본 서신의 전달자로 묘사된 두기고는 아시아 사
람으로(행 20 : 4)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시에 동행했으며.
본서 등을 비롯하여 바울의 최후 서신으로 보는 목회서신을
기록할 때도 관여한 것으로 나타난다(딤후 4 : 璉 ; 딛 3 :
12). 또한 본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본서와 빌레몬서. 골로
새서를 각각의 수신자에게 전달하는 임무와 오네시모를 빌
레몬에게 돌려보내는 임무를 맡았었다(골 4 : 7. 9). 이상
에서 보듯 두기고는 바울에게 크게 인정받던 사역자였음이
분명 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바을 서신이 그러하듯이 본서 또한 수
신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빌고 있는데, 본서는 특
별히 축복의 대상이 '형제들', 즉 3인칭이라는 것과 축복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본서가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그 주변의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보
내어진 '회람 서신'임을 뒷받침해 주는 중거가 된다.
한편 본서는 A.D.62년경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감금되었을
때 쓴 옥중 서신이다. 이와 같이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조차 에베소 교회의 분열을 염려하며 그리
스도를 중심한 유기체적 교회 안에서의 성도의 일치와 연합을
강조하며 그들의 생활을 독려 하는 글을 썼다는 삿실은 복음이
그에게 준 확신이 얼마나 컸으며, 복음의 권능을 힘입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 중에서도 능히 이길 힘이 있음을
알게 해준다.
6 : 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알게 하리라. 바울은 에베소 성도
들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사정을 알리기 위해 두기고를
보냈는데, 이는 바울의 성도들에 대한 목회자로서의
공적인 입장 뿐만 아니라 사적인 관심과 사랑, 친분을
보여 준다. 두기고. 아시아 사람으로서(행 20 : 4) 바
울의 제 3차 전도 여행에 동행하였고, 이 때에는 본서와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가지고 오네시모와 함에 로마를
떠나 소아시아 지방을 순행할 임무를 맡고 있었다(골
4 : 7, 9).
6 : 22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
하게 하기 위하여‥‥보내었노라. 바울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은 바울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성도들에게 근심거
리가 되었을 것이다(엡 3 : 13). 그래서 바울은 두기고를
보내어 자신의 소식을 자세히 알림으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바을 자신은 로마
에서 복음을 전파하려는 소망을 갖고 있었고(행 28 : 17
-31) 자신이 매임으로 복음이 전파됨을 인하여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었다(빌 1 12-18).
? : 23 아버지 하나님과‥‥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
어다. 본절과 다음절은 본 서신을 끝맺는 사도 바울의
인사말로 기도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유대인의
일상적인 인사말인 '평안'(마 10'12)과 함께 '믿음을
겸한 사랑'이 성도들에게 있기를 구하고 있는데 믿음은
사랑의 원인이 되며 사랑은 믿음의 열매인 것이다. 즉
바울은 성도들에게 온전한 신앙이 있기를 구하고 있다.
이러한 영적인 축복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
226 에베소서 6 장
? : 2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 다. '변함없이 ' (7? 콕順_
a깰◎ , 엔 아프다르시아)는 '욜멸', '썩지 아니함'의
뜻을 지닌다. 이를 '은혜'에 연결시켜 해석하기도 하나
(Bengel, Beza), '사랑'에 관련시킴이 바람직하다(Cal-
vin, Meyer). 즉 바울은 환난과 폅박 속에서도 인내하여
끝까지 신앙을 지킬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변함
없이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생
명의 면류관이 상급으로 주어질 것이다. 한편 여기서
'은혜가 있을지 어 다'는 헬라인들의 통상적 인 인사말로,
그 의미에 대해서는 엡 1 : 2주석에 다루었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6장 핵심 성구관주
6장 주제, 원어 &교리설교 그리스도인의 생활 태도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할 때 임하는 축복
구분 : 주제설교
본문 :6:1-3
찬송 : 4o, 3o4, 379
본문 말씀은 자녀들이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명하고 있는 윤리적이고 실제적인 규범입니다.
특히 본문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명하면서 그에 따르는 축복도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다. 실로
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종은 어길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출 20. 12). 고로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순종은 하나님의 의로운 뜻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같으며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할 때 임하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1. 형통하게 됩니다.
주 안에서의 부모에 대한 순종은 사람이 먼저 법도를 세우고 제정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자녀들을 향해 내리신 말씀입니다(2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령과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는 자에게 범사에 형통케 되는 복을 내려 주십니다(수 1 : 8). 즉 주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이 범사가 잘되는 생활의 안전함을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주안에서 그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도 역시
형통하게 되는 축복이 주어집니다(3절). 특히 이러한 형통의 축복은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에게까지
대대로 미칠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신 5 29).
2. 장수하게 됩니다.
주 안에서의 부모에 대한 순종이 주는 또 하나의 뚜렷하고 특징적인 축복은 이 땅에서의 장수입니다.
물론 이러한 장수의 축복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계명을 준수하는 자에게 이미 약속되어진
영생의 축복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왕상 3 . 14). 그러므로 영적인 장수의 복으로 주어지는 영생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우선적으로 취할 수 있는 축복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에서의
장수의 복도 허락하셔서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에게는 이 땅에서도 오래 사는 복을 주셨습니다(출
20 . 12).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육적, 영적인 장수의 축복을 다 누리도록 합시다.
3. 복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성경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을 향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계명을 실행하는 자가 복을 받으리라'(약 1 . 25)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그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상급으로서 영육간에
복을 누리게 되는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신 5 : 16). 죽음의 자리까지 따르며 그 아비에게 순종한 이삭(창
22 : 6-10). 그에게 하나님은 복을 내리사 창대케 하셨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진심으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께 하듯 부모에게 순종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약속된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자녀들이 되도록 합시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 모두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되 단지 행위적인 순종만이 참된 순종이 아님을
기억합시다. 그것은 주 안에서의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다(막 7'10-12).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온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 주께 하듯 마음 중심으로 받드는 순종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범사가 형통케 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여
하나님의 커다란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태도
구분 : 주제 설교
본문 : 6. 1-18
찬송 : 16, 4ol, 51s
예수를 믿고 변화받아 성도가 되 었다는 것은 과거 의 잘못되고 방탕한 생 활로부터 벗어나 그리 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선하고 진실된 삶을 살아가게 됨을 의미합니다(고후 10'17). 또한 성도의 이런 변화된 삶은
단지 개인적이거나 교회 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어둡고 부패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적극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마 5. 13-16).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 생활 뿐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합당한 을바른 생활
태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성도들의 을바른 생활
태도는 어떤 것일까요 ?
1. 가정적이어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서 교회에 봉사하는 일이나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말씀 읽고, 전도하는 것 때문에 가정의
일을 소흘히 하다가 가정에 큰 불화가 생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활
태도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며(창 2 : 24)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소중한 보금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도들이 아끼고 가꾸어 사랑과 화목으로 하나되게 해야할 곳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경고한
것입니다(딤전 5 8). 성도들은 불신자들보다도 더욱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해야 하며 자녀를 믿음으로
잘 양육하고 부부간에 서 로 이 해하고 감싸주는 가정 적 인 생 활 태도를 가져 야 합니 다. 성도 여 러 분 ! 여 러 분은
교회에 봉사하는 것을 핑계로 혹은 세상일로 가정에 소흘하지 않습니까? 가정은 작지만 소중한 하나님의
나라이며 주안에서의 사랑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먼저 가정으로 여러분의 눈길을 돌리십시오.
2. 사회적이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궁극적인 소망은 마지막 심판 때에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이르기까지는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고, 정의롭고 진리이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삶은 결코 세상과 무관할 수 없으며 오히려 세상의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세상을 하
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속한 직장이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여 성실히 일하여야 합니다(5절), 세상 사람들과 같이 권모술수나 이기주의가 아니라 정직한
방법으로 사회와 국가를 위해 일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사회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생활
태도를 보일 때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3. 영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더 가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성실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간구하심과 도우셔을 통해서 만이 가능합니다(름 8 :諒). 그
러므로 성도들은 언제나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영적인 생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더욱이 마지막 때에
사탄의 무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혹하고 넘어지게 하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성도들을 시험하고 있
습니다(벧전 5 : 8). 그러므로 더욱 성도들은 영적으로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이
육신이 깨어 열심히 살아가는 동안에 영혼은 깊은 잠속에 빠져있지는 않습니까? 깨어 나십시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며 영적으로 강건하여지십시오.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세상을 이길
힘과 담대함을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및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燈樂) 위에 둠으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듯이(마5 :順), 여러분이 지금 서있는 그 자리에서 복음과
진리의 빛을 비추십시오.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성실하고 진실한 생활 태도로 빛을 비추십시오.
특별히 영적인 삶에 충실함으로써 말씀과 기도의 삶을 잃어버리지는 마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힘주실
것 입 니 다.
6장 예 화
● 프랭크린의 기도 요구 ● 엡6 18/고후1 : 11
1770년 미국의 헌법위원회는 작은 주들에게도 큰 주와 마찬가지로 대표권을 주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벤자민 프랭크린은 사람들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는 성경의 한 구절, 곧 시 127 : 1 말씀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
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여러분, 나는 지난 81년 동안의 나의 인생에서 주님만이 인간의 일을 지배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참새 한마리도 하나님의 뜻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나는 우리의 힘으로 결론을 내리기가 힘든 이 문제를 놓고 우리 모두가 전신 전력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 라고 믿습니다. 또한 나는 하나님 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가 우리가 무슨 일을 행하기전 매일 아침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에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 졌고 그때부터 매일 아침 기도가 행해졌다. 기도를 시작한 후 그들이 고민하던 작은 주에 대한 대표권 부여 문제는지혜롬게 해결되어졌고 그때 결정됐던 법률이 지금까지도 아무 무리없이
지속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화속의 프랭크린처럼 본문의 사도 바을 역시도 에베소 교회에게 하
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항상 기도에 힘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권고이랴.
기도가 성도의 생활을 승리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원천임을 아는 모든
성도들의 마땅히 힘쓸 바가 아니겠는가.
6장 Q T
6:1-4 자녀된 자로서 마땅한 부
모님에 대한 순종이 흑 가식적인 것에
불과하지는 않았는가? 또한 부모로서
자녀를 주의 말씀으로 양육하기 보다
그저 자녀의 출세와 성공에만 관심들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출20 : 12 ;골3 : 21(304. 421)
? : 5-T 성도는 어떠한 일에 임하
든지 그리스도께 하듯 성실해야 하는데
흑 나는 때에 따라 눈가림하며 불성실
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은가?
●갈1 10;골3. 22. 23(373. 57o)
0.9 주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않고 그 중심을 보신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을 판단함에 그의 외모나 권세 등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는 않는자‥‥ 이제 진실한 자세로 사람을 대하여 선한 관계를 맺어야 하겠다.
●신 10 : 17 : 행 10'34(塊. 399)
6 13-lT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부패와 욜신과 거짓 진리가 난무하는 이 세상을 승리하면서 살아갈 방법은 없는가? 여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고 날카로운 말씀의 검으로 이 세대를 공격하라 말씀하시는데 지금 우리는 전신갑주의 모양만을 취하고 칼끝이 무딘 검을 들고 승리를 다짐하고 있는 위태로운 모습은 아닌가?
●사49: 2;히4: 12(357. 372)
6장 금언
輦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아들은 축복받지 못하나, 부모에 순종하고 공경하는 자는 자신의 자식에게서도 같은 대접을 받을 것이다.
(폴리 탄)
(1-3절 /유리 피 데 스)
聾 자기 신앙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묵묵히 자기 논으로 일하며 사는 사람이 한충 존경할 만하다.
(5-8절 /톨스토이 )
聾 당신이 전신갑주(全身甲曺)를 입는 데 있어서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라. 많은 진리를 그냥 스쳐 지나가지 말고 가장 실제적인 말씀을
주목하여 깊이 파고 들어가라.
(17절 /카일 러 )
聾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달린 것처럼 기도하고 모든 것이 네게 달린 것처럼 일하라 (18절/스펠만)
聾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가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19, 20절 / C. 렘프레 톤)
聾 주님에 대한 나의 관심이 주님이 주시는 떡과 고기에 있다면, 나의 마음은 그 부스러기를 담는 바구니들로
어지럽혀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간절히 사랑한다면, 이 사랑이 시간을 초월하고 죽음도 극복할것 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