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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 100년 기념 고속철(KTX) 시낭송 및 부산MBC <시인축제>
김윤자
2004년 10월 30일 토요일 ∼ 10월 31일 일요일
*서울역 오프닝 행사
한국시인협회에서 11월 1일 시의 날 기념 행사로 〈시인 축제〉를 부산 MBC 문화 방송국에서 개최하였다. 작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식을 거행하였고 금년에는 한국의 시인 250여명이 부산으로 이동하여 가며 고속철(KTX)에서의 시낭송과 제34회 정기 세미나도 함께 이루어졌다.
그에 앞서 서울역 12시 40분 고속철 부산행이 출발하기 1시간 전인 11시 40분까지 서울역 2층 종합 안내소 앞에 모여 오프닝 행사를 했다. 역장님의 행사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한국시협 김종해 회장님의 인사말씀을 비롯하여 대표시인님들의 간단한 시낭송이 있었다.
서울역에 모인 여러 승객과 함께 시로 하나가 되는 흐뭇한 시간이다.
승차 전 역시 긴 테이프를 김종해 회장님과 대표시인님들께서 힘찬 박수와 함께 자르는 식을 거행했다. 그 어느 해보다 의미있고 뜻깊은 시인의 축제에 협력해 준 철도청에 감사하며 부산행 논스톱 고속철에 승차했다.
서울역 <시인 축제>오프닝 행사장 180 명 시인 참가
서울역 오프닝 행사 역장님 인사.뒤에는 김종해 회장님외 대표 시인님들
서울역에서 거행된 현대시 100년 시인축제 오프닝 행사 고속철 출발 테이프를 끊는 시인들.
오른쪽부터 조영서, 김후란, 김남조, 서울역장과 임원, 김종길, 김광림, 성찬경, 정진규, 이근배, 김종해 시인.
*고속철(KTX) 시낭송
달리는 고속철 시 낭송회가 〈시인과 시를 싣고 달린다〉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기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부산까지 논스톱으로 철도청에서 임시로 마련해 준 고속철로 시인과 취재진 200여명, 그리고 일반 승객 700여명이 함께 탄 열차다. 모두에게 〈한국애송명시〉책자를 나누어 주고 김남조 시인님 외 대표 시인님들과 즉석에서 신청받은 승객 몇 명이 방송 육성으로 시를 깔았다.
나의 스승님 성찬경 시인의 〈거리가 우주를 장난감으로 만든다〉는 대학에서 공부할 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케 했다. 거동이 불편하신 김남조 시인님의 〈올해의 가을〉의 주옥같은 시들이 낭송될 때마다 뜨거운 박수로 함께 예찬했다. 기차는 달리고, 시인도 시도 함께 창 밖의 익어가는 가을 잔치를 만끽하며 마음은 벌써 부산으로 달리고 있다.
고속철을 낮에 탄 것은 처음이다. 시속 삼백킬로가 넘는 속력인데도 미끄러지듯이 나아감으로 흔들림이 없다. 내부 시설도 승차감도 비행기와 유사하다. 낙동강 너른 강물이 보일 때쯤 시낭송은 끝나고 고속철은 부산으로 진입했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갯바람을 막아주는 항구 도시 부산이다. 부산역에 내려 일행은 대기한 버스 네 대로 부산 MBC 방송국으로 향했다.
스승님이신 성찬경 시인님의 자작시 [거리가 우주를 장난감으로 만든다] 낭송
*부산 MBC 아트홀 〈시인축제〉
부산 MBC 방송국 입구에서부터 〈시여 영원하라!〉는 문구의 큰 프랭 카드가 시인축제를 환영하고 있다. 실내 건물 출입문 앞에도 부산일보사와 부산문화방송의 몇몇 문단에서 기증한 화환이 화사롭게 시인잔치를 축하해 준다. 고운 문으로 들어가 아트홀에 착석하고, 이어서 유자효 시인 겸 방송인의 사회로 행사가 거행되었다.
김종해 회장님의 시인 선서를 모두 함께 일어서서 경청하고 국악인 박윤초님의 유치환 시〔그리움〕을 창으로 부르는 등 아름다운 시 낭송회가 열렸다. 노시인들도 조명이 그윽한 무대에서 자작시 혹은 명시인의 시를 낭송하는 모습이 더욱 훌륭하게 보이는 자리다. 김춘수 시인님의 〔꽃〕을 가요로 작곡하여 부르기도 하고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기타 반주와 육성으로, 노래로 낭송하기도 했다. 어떤 형식의 발표이든 공통된 의미는 변함없이 시다.
방청객은 이곳에서 합류한 시인을 합하여 시인들만도 총 250여명, 일반 방청객도 상당수 모여 성황을 이룬다. 순간 순간 아쉬움 속에 1부의 순서가 끝났다. 시간 단축을 위해 휴식 없이 2부가 곧바로 이어졌다. 행사는 5시부터 7시까지다. 아름다운 시인 축제다.
부산 MBC 방송국 아트홀 <시인 축제> 행사장 입구의 축하 화환들
부산MBC <시인 축제>김소월의 진달래를 낭송과 음악으로 시향 그윽히 채운 무대
*시인 선서
시인이여,
절실하지 않고, 원하지 않거든 쓰지 말라.
목마르지 않고, 주리지 않으면 구하지 말라.
스스로 안에서 차오르지 않고 넘치지 않으면 쓰지 말라.
물 흐르듯 바람 불 듯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을 좇아가라.
가지지 않고 있지도 않은 것을 다듬지 말라.
세상의 어느 곳에서 그대 시를 주문하더라도
그대의 절실함과 내통하지 않으면 응하지 말라.
그 주문에 의하여 시인이 시를 쓰고 시 배달을 한들
그것은 이미 곧 썩을 지푸라기시詩이며, 거짓말시詩가 아니냐.
시인이여, 시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대의 심연을 거치고
그대의 혼에 인각된 말씀이거늘, 치열한 장인의식 없이는 쓰지 말라.
시인이여, 시여, 그대는 이 지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위안하고
보다 높은 쪽으로 솟구치게 하는 가장 정직한 노래여야 한다.
온 세상이 권력의 전횡專橫에 눌려 핍박받을지라도
그대의 칼날 같은 저항과 충언을 숨기지 말라.
민주와 자유가 유린당하고, 한 시대와 사회가 말문을 잃어버릴지라도
시인이여, 그대는 어둠을 거쳐서 한 시대의 새벽이 다시 오는 진리를 깨우치게 하라.
그대는 외로운 이, 가난한 이, 그늘진 이, 핍박받는 이, 영원 쪽에 서서 일하는 이의
맹우盟友여야 한다.
〔사〕한국시인협회 회장 김 종 해
부산<시인축제> 행사 유자효 방송인겸 시인님의 사회
*〈사랑과 혁명의 시〉 시극 공연
부산 MBC 아트홀에서 2부 행사로 '이윤택과 연희단 거리패의 시극' 〈사랑과 혁명의 시〉를 관람했다. 시공을 넘나드는 광활함으로 시와 시인을 예찬하는 주제다. 4.19 혁명의 혼란 속에서도 조국을 애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주옥같은 시를 광야를 향해 읊고 있다.
남자 주인공은 공중에 매단 그네를 타고 높이 솟아 오르며 시심을 뜨거운 정열로 불태운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의 가슴은 뜨겁다.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사유를 시인만은 분명히 안다. 파도처럼 내 안의 가슴 속에서 분무한 언어의 함성을 쏟아내지 않으면 어이하겠는가.
어느덧 무대에는 시인을 잡으려 쫓는 형사도 등장하고 권총 총구 앞에서 굴하지 않는 시인의 강인함도 흐르고 어릿광대와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모두 시인을 옹호하는 자들이다. 세 그네줄에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너울대며 고전음악과 우리 가요 유정천리 가락 속에 시극은 절정에 이르고 객석의 뜨거운 박수 갈채가 끊이지 않는다.
혁명의 시, 불멸의 시는 시대와 민족과 조국을 위해 영원히 쓰여지고 읊어질 것이다. 이 밤 시극처럼.
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의 <사랑과 혁명의 시>공연.거꾸로 매달려도 시의 열정은
부산 MBC 아트홀 시극<사랑과 혁명의 시>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단원들 인사
*광안리 방파제 횟집
광안리에 온 것은 두 번째다. 야경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행운이다. 1, 2부 행사를 마치고 부산 MBC 방송국에서 이곳 방파제 횟집으로 이동하여 저녁식사를 했다. 바다 가운데 2층의 기다란 광안대교 조명이 찬란하다. 어두워서 뚜렷함이 돋보이는 정경이다.
시인처럼 시처럼 어둠에서 밝아라. 식당 입구에는 역시 〈시인 축제〉라는 프랭 카드가 2004년 10월 30일이라는 날짜를 기념하며 걸려 있다. 어느 지역에 가든 시인을 환영하는 것은 동일하다. 그만큼 역으로 시인의 사명 또한 큼을 인식하는 순간이다.
250여명이 다 함께 식사할 수 있는 3층 건물 방파제 풍성한 식사로 만찬을 즐겼다. 헤일 수 없는 건배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정담을 나누며 시간을 태운다. 술이 익고 시가 익어가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행복을 손에 쥔다. 모두가 동일한 감성으로 흐뭇한 표정이다. 나의 시 중에 〔광안리 소라꽃〕이 있다. 지난 봄 이곳 광안리 해변에서 지은 시다. 그 소라꽃 주인공이 지금 내 앞의 식탁에 있다. 예뻐서 사진도 찍고 껍질도 두 개 품어왔다. 문우의 정을 깊이 나눈 곳, 방파제 횟집은 우리 일행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광안리 '방파제 횟집'에서 저녁식사.식당 앞에서 본 광안대교의 환상적인 야경
광안리 '방파제 횟집'에서 저녁식사.입구에 걸어둔 '시인축제' 환영 프랑카드
*해운대 그랜드 호텔
광안리 방파제에서 아주 가까운 호텔이다. 원래 해운대와 광안리는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방은 이미 고속철 안에서 배정받은 호실이 정해져 있다. 호텔 로비에 더 자세히 방 배정 목록을 붙여놓아 5명씩 한 방으로 돌어가 유숙했다. 나는 715호, 김정완, 김정원, 김민자, 조인자 시인님 그리고 나, 이렇게 5명이 함께 잤다. 모두 나이드신 어른들이어서 밤 12시경 잠자리에 들었다.
다른 방원들은 2차, 3차 해운대의 밤 풍경을 나간다는데, 우리 방 시인님들은 고요히 밤을 지냈다. 다행이다. 내일의 세미나와 태종대 기행이 있으니 일찍이 쉬는 것이 낫다. 창밖 야경이 절경이다. 바다와는 다른 방향이지만 해운대 도심의 야경이 불바다다. 그랜드 호텔은 최고급 호텔이고 내외부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새벽 6시에 기상했다. 7시 30분부터 아침식사를 해야 하고 9시부터는 이 호텔에서 세미나가 있어 분주한 하루다. 하룻밤을 함께 한 우리 다섯 시인은 남다른 문우의 정이 들었다. 아름다운 여정이다.
*해운대의 해맞이
그랜드 호텔 뒤편 청기와 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조식을 마친 후 30분 간의 여유가 있기에 해운대 백사장으로 나갔다. 우연히 성찬경 교수님을 만나, 김민자 시인과 함께 셋이서 갔다. 큰 길의 횡단보도만 건너면 솔밭이 있고, 유명한 조선 호텔이 보인다. 파도가 잔잔히 일렁이는 해변을 거닐며 벌써 높이 떠오른 태양을 보았다. 눈부신 해맞이다.
백사장에는〔도약〕이라는 제목의 하반신 여인상이 거대한 규모로 세워져 있다. 여성의 도약을 의미하는 걸까. 두 발로 아슬하게 선 모습이 정말 도약이다.
바다 수영을 연습하는 사람들의 잰 놀림도 보이고 여러 철조 조각물이 이색 풍경이다. 갈매기는 모두 바닷물 위에 떠 있다. 배 근처에서 아침식사 중인가 보다. 구름이 조금 끼어 뿌연 바다, 오륙도가 어설프게 보인다. 성찬경 교수님은 우리와 함께 사진도 찍어 주시고 귀한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맑게 일깨워주신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시비가 고고하게 서 있다. 세미나 참석을 위해 빠른 걸음으로 다시 호텔로 왔다.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 전시된 조각물.[도약]-여체의 하반신 거대한 입상
*세미나 및 시낭송
해운대 그랜드 호텔 6층 연수장에서 제34회 정기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먼저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이남호님의 〔한국 현대시 100년, 우리 애송시에 관한 긍정과 부정〕이라는 주제문 발표가 있었다. 독자 3명 중 1명이 서정주의 시를 애송시로 꼽는데 지금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서정주의 시가 제외되고 있음에 대한 서두로, 나누어준 〔한국애송명시〕맨 뒷장의 글을 읽어나가며 서정주에 대한 재조명을 거론했다.
시대적 상황으로 좀 뒤틀린 시를 썼다 하여 시인을 폄하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손실임을 상기시켰다. 또한 시인이 애송하는 시와 독자가 애송하는 시에는 높은 장벽이 있음도 짚어나갔다. 독자는 이해하기 쉽고 부드러운 시를 선호하나, 시인은 시 속에 무언가 시사하는 뼈와 기둥이 있는 시를 읽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 김춘수 님의 꽃에 대하여 논했고, 마지막으로 오형영 외 여러 교수와 평론가의 질의 응답으로 세미나는 마감했다. 이어 여러 시인님들의 애송시 낭송이 진행되었다. 시인 축제, 시의 축제는 시간도 잊고, 지루함도 잊고 오래도록 이어졌다. 참으로 많은 시간을 시와 시인과 보낸 뜻깊은 행사다.
그랜드호텔 세미나와 시낭송이 열린 호텔연수장.김종해 회장님 인사 말씀
*태종대
세미나 및 시낭송은 9시부터 11시까지 진행되었고, 그랜드 호텔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후 다시 광안리 방파제 횟집으로 이동하여 중식을 마쳤다. 1시경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태종대로 향했다. 상행 기차가 오후 4시 30분 고속철이니 일정을 그리 잡은 것이다. 버스가 네 대, 좌석이 모자라 일부는 서서간다. 역사에 없는 시인의 대이동이라고 하니 뜻깊은 행사에 참석한 것만도 의미있는 일이다.
태종대는 부산의 맨 끝 육지에 붙은 곳이다. 프리즘 전망대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다. 3시까지 1시간 동안 바다와 전시된 시화를 보며 부산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보냈다. 절벽 아래 바위에 낚싯꾼 2명이 있다. 바닷물은 달려와 파뿌리 모양으로 바위를 휘감으며 하얀 승무춤을 춘다.〔바다의 승무〕라는 시제로 글을 써야 겠다는 단상을 했다. 죽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절벽 아래의 짙푸른 바다 풍경을 가슴에 담아 왔다. 사람들이 들끓는 태종대, 시심도 한가득 출렁이는 태종대다.
세미나와 시낭송 마치고 태종대 프리즘 전망대에서 윤강로시인님과 함께
세미나와 시낭송 마치고 들른 태종대에서.김태은 시인님과 함께
‘시인축제’를 끝내고 고속철로 귀경길에 오르기 직전 부산역에 모인 시인들. |
*돌아오는 고속철에서 만난 시인
부산역에는 4시에 도착했다. 부산 시내도 상당한 교통체증으로 시간이 촉박했다. 부산역 계단에서 다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역 계단이 길어 충분히 250여명의 시인 사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의 좌석은 15호차 4C, 그런데 우연히 좌석을 바꾸어 14호차 4C에 앉게 되었다. 유소례 시인과 김수린 시인을 위해 선행을 했다고 할까. 아무튼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좌석을 바꿨는데 더 큰 축복을 받았다. 내 곁에는 충남 문인 윤문자 시인님이 왔다.
태종대에서 비슷한 이름자라며 잠시 인사를 나누었는데 다시 동석하니 참 깊은 인연이다. 논산 문단 회원이시고 같은 충남 문학 회원이다. 논산 문학은 졸시〔은진미륵〕이 게재된 문단이다.
우리는 12살 차이의 같은 용띠, 나의 언니 격이다. 호흡이 잘 맞아 서울 용산역까지 3시간 걸린 시간이 30분처럼 지나갔다. 윤문자 시인님에게서 많은 아름다움을 보았다. 논산에서 흑염자 인절미를 손수 들고 와 한국시협 시인들에게 축하의 떡을 준 것은 눈시울을 적시는 광경이다. 베풀며 행복해하시는 시인을 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삶의 지혜도, 시인의 자세도 올곧으신 분이다. 돌아오는 고속철에서 지인을 만나 더욱 행복한 나들이였다.
<시인 축제> 행사 안내장 및 부산MBC 아트홀 '시여 영원하라' 행사 초대장
<시인 축제>행사가 다 끝나는 시간까지 가슴에 걸고 다닌 참가 기념 명패
<시인 축제>참가자와 승객에게 준 '한국 애송 명시'집과 서울과 부산고속철 왕복승차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