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터줏대감으로 뿌리 내린
아랍 장씨(張氏), 중국 황씨(黃氏)
덕수장씨는 인구수에서 국내 유력 성씨로 꼽힐 뿐 아니라, 각계에 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名門)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들 덕수장씨의 시조는 아랍인이다. 옛 사라센의 문물이 세계에 폭넓게 전파되던 시절, 한반도에 정착한 아랍인이 귀화해 일군 가문이 바로 덕수장씨다. 하지만 장씨가(家)의 사람들을, 그 시조가 아랍인이었다고 해서 외국인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은 오늘날 아무도 없을 것이다.
황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까지 배출한 황씨 문중은 현재 55개의 본관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모든 황씨의 시조는 서기 28년(신라 유리왕 5년)에 중국 후한에서 귀화한 황락(黃洛) 임을 황씨 문중은 밝히고 있다. 필자는 몇 년 전 여름 휴가때 경상북도 백암온천 일대에 여행을 갔다가, 동해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운전하던 중 한 묘당이 눈에 띄어 잠시 들러본 적이 있다. 그 묘당은 다름 아닌 국내 황씨의 시조인 황씨의 묘와 함께 그의 국내 귀화과정을 설명한 비문을 모신 곳이었다. 비문에 따르면 그는 당시 후한 장군이었던 구대림〔丘大林, 평해 구(丘)씨의 시조〕과 함께 교지국(交趾國, 옛 월남의 한 지방)에 사신으로 가던 중 폭랑을 만나 표류하던 중 경북 평해에 상륙, 월남행을 포기하고 한반도에 정착해 살면서 가족을 이뤘다.
황락이 경북 평해 항구에 닿았을 당시, 그는 분명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하는 외국인이었다. 그러나 당시 신라에 귀화한 뒤 신라인이 됐고, 숱한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후손들은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 한국인으로 뿌리를 내렸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인을 시조로 하는 황씨는 한국 외에 베트남에도 상당수가 문중을 이루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무역분야를 취재하던 1990년대 초, 한국을 방문중이었던 베트남 국회의원 황반훤(黃文煥, Huang Ban-huan)씨와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베트남 황씨와 한국 황씨는 다같이 중국인을 시조로 하는 같은 혈통”이라고 들려줬다. 선뜻 그의 말이 믿겨지지 않아 자료를 찾아봤더니 그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한국과 중국, 대만, 베트남, 홍콩,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 황씨들이 수백년에 걸쳐 뿌리를 내려 살아온 나라들은 물론, 20세기 들어 이민으로 정착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세계 20여개국 황씨들이 ‘우리는 단일 조상의 후손’이라며 세계 황씨 종친회(Hwang International)를 결성해 매년 각 국을 번갈아 가며 세계 종친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