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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사랑 시낭송 예술제-한국시인협회
김윤자
행사 기간 : 2005년 4월 2일(토) ∼ 4월 5일(화)
행사 주관 : 한국시인협회
2005년 4월 2일 토요일 밤
밤 11시 운현궁 앞에서 출발
* 운현궁 앞에서 집결
한국시인협회 사무실이 운현궁 근처에 있고, 운현궁에서 가까운 거리에 안국 전철역이 있어 시협에서 야외로 나가는 행사는 대개 이곳 운현궁 앞에서 집결하여 출발한다. 이번 행사도 운현궁 앞에 밤 10시까지 모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곳곳에서 시인들이 모여 사무국 간사들이 준비해온 명패를 찾는 것으로 접수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총 3대로 미리 와서 대기 중이었다. 포항까지 야간운행으로 달려야 하는 긴 여정으로 모두 한 마음으로 마지막 점검을 한다.
나는 김민자 시인님과 함께 앉았다. 부산 시인 축제에서 깊은 정이 든 언니뻘 시인이다. 함께 아껴주고 챙겨주었다. 독도사랑 시낭송 뱃지와 그 외 참가 기념물을 받은 후, 밤 11시에 버스는 출발했다. 시인 106명, 각 방송과 신문사 등의 취재진 32명, 예술인 등 합하여 140여명을 태운 버스는 힘차게 밤을 가르고 질주하여 나아갔다.
운형궁에 앞 집결하여 나누어준 참가 기념 명패와 시낭송 책자
2005년 4월 3일 일요일
포항 도착. 울릉도 출항. 다시 포항으로 회항
* 영일만 식당
밤새 달려온 버스는 다음날 새벽 4시경 포항에 도착했다. 길건너 영일만 식당으로 갔다. 포항에서 우리의 집결지는 앞으로 영일만 식당이라는 안내의 말을 듣고 눈여겨 보아두었다. 상호가 낭만적이어서일까. 손님은 우리 일행 외에도 차고 넘친다. 방과 홀에 꽉 차 통행조차 힘든다.
그런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가 오전 10시에 단1회만 있으므로 이렇게 모두들 밤 시간을 이용해 포항으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또 영일만 식당은 포항연안여객 터미널이 바라보이는 아주 근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집결 장소로 좋다.
새벽 5시경부터 해물탕 찌개로 아침식사를 했다. 밤새 하루를 건너 달려오면서 지친 몸을 따스한 대구탕 국물로 달래고, 곁의 여러 문우님들과 정겨운 인사를 나눴다. 해변도시 포항에서의 첫 새벽은 그렇게 열리고 있었다. 오전 10시에 울릉도로 출항하는 여객선을 타야하므로 이곳 영일만 식당에서 각자 휴식을 취하고 8시 30분까지 포항연안여객 터미널로 모이라는 전달사항을 듣고 우리 여류시인들은 식사 한 그곳 방에서 잠시 누웠다.
남자 시인들은 옆방에서 눕고, 더러는 홀에서 보내기도 하고 자투리 시간을 그렇게 메우며, 울릉도 출항을 기다렸다. 영일만 식당은 아주 포근한 새벽 휴식처였다.
다음날 다시 울릉도로 떠나기 위해 영일만 식당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가던 중 맞이한 포항의 일출
* 울릉도행 썬플라워호
포항에서 울릉도로 떠나는 배는 오전 10시, 단 1회다. 영일만 식당에서 8시 30분에 포항 연안 여객 터미널로 이동했다. 약간의 비가 내려 우산을 받쳐들고 갔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대로 흐린 아침이다. 그래도 파랑주의보만 없으면 배는 출항한다고 들었다.
우리가 승선한 배는 815명 정원의 대형 여객선 썬플라워호다. 승용차 16대까지 실을 수 있다는 거대한 배다. 썬플라워호는 정각 10시에 출항했다. 우리 일행은 여러 곳으로 나누어 승선하였지만 1층, 2층, 3층 중에서 1층 맨 끝방 단체여객실 C실에 50여명이 함께 탔다. 배의 맨 후미 창문으로 바다와 하늘과 포항 연안에 정박한 크고 작은 배들이 보인다.
그러나 배멀미 방지를 위해 모두들 출항 전부터 누웠다. 11시경 파고가 1∼2m로 손님의 안전에 주의하라는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창문을 잡고 일어서서 바다를 바라보니 아직도 흐린 날씨에, 눈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지만 망망대해 푸른 물이 가볍게 출렁인다. 저 멀리서 하얗게 넘실거리는 것이 파도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도 배가 지나가는 자리에 바다를 가르고 치솟는 하얀 물보라가 장관이다.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후들거려 누웠다가, 앉았다가, 다시 일어섰다가를 반복하며 갔다. 승선 전에 배멀미 약을 먹어서인지 멀미는 하지 않았다. 파도가 심할 때는 지진이 난 듯 흔들려 벽을 잡고 걸어야 한다. 누워 있을 때도 멍석에 드러누워 무등을 타는 기분이다. 무서움과 즐거움이 교차한다.
잠시 후 파고가 3∼4m라서 제1항로로 못 가고 제2항로로 간다고 방송이 나오고, 위험주의 방송이 수차례 나온다. 그래도 울릉도까지 무사히 도착하길 빌며 함께 동승한 독도 지킴이 정광태님으로부터 독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독도는 젊은 섬이며 영해의 닻이라 했다. 우리의 영토에 누군가 손을 댄다면, 손을 댄 그 자체만으로도 영원한 후회를 할 것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열거한다.
그렇게 독도사랑을 가슴깊이 품고 울릉도 도착을 기다리는데 뜻밖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파고가 심하여 다시 포항으로 회항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12시 40분에, 기관사의 안타까운 음성을 들었다.
포항과 울릉도를 오가는 대형 여객선 썬플라워호.815명 정원에 16대의 승용차까지 승선
* 포항으로 다시 회항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30분에서 길게잡아 1시간 후면 울릉도에 다다르는데 목전에 두고 다시 온길을 돌아가야한다니 황당했다. 창 밖을 보니 이미 썬플라워호는 빙그르 둥근 뱃길을 하얗게 만들며 돌고 있다. 강원도 연안의 산 풍경 원경이 오른쪽에서 보이던 것이 위치가 바뀐 왼쪽에서 보인다. 분명한 회항이다.
여기 저기서 웅성거린다. 혹자는 파고의 높이보다는 요즈음 일본과 한국과의 마찰로 인해 독도에 대해서 예민한 시기이므로 우리 한국 시인 협회의 행사를 안전상 중지시키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했다. 그렇게 판단한 것은 함께 승선한 이곳 주민들의 입에서 이 정도의 파도에 회항한 적이 없다는 말에서다.
그렇다면 내일 다시 울릉도와 독도에 진입한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혹자는 아니라고, 파도가 저 정도면 울릉도 접안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불안해하는 우리 일행을 안심시킨다. 돌아가는 뱃길이 지루했다. 정확히 오후 3시에 포항연안여객터미널에 다시 돌아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바다만 구경하고, 아니 배멀미만 다스리고 돌아온 것이다. 파도는 왜 더불어 살려하지 않을까 왜 우리의 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회항시킨 것일까. 1시간만 가면 울릉도인데... 망망대해 태평양을 5시간 동안 파도와 함께 흔들리고 돌아온 귀항. 파도는 거대한 페리어호가 지나간 자리를 금새 메꾸고 있다. 잔잔한 곳에서는 저 멀리 하얗게 뱃길이 남는데...
갈매기는 역시 용감했다. 파도를 결코 무서워하지 않고 하늘과 바다를 난다. 하얀 거품을 따라 내려왔다 오르고... 생명이 있는 것 중 너 하나만 바다를 이기고 있다.
지진이 난 듯 벽을 타고 화장실에 간다. 모두들 누워 있다. 멍석을 들어 온몸을 흔드는 느낌이다. 우리는 배 후미 바닥에 누워 그래도 멀미를 덜 했다. 나는 배의 창가에서 뱃전에 튀어오르는 하얀 물방울을 보며 생의 환희를 느꼈다. 그렇게 멀미를 이겼다.
포항에 돌아왔을 때는 비도 그치고 날씨가 맑아지고 있었다.
울릉도행 썬플라워호가 높은 파고로 접안이 불가능하여 다시 포항으로 회황하는 배 후미의 하얀 물길
* 저녁 만찬
다시 영일만 식당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베네시안 모텔에서 계획에 없던 여정을 풀었다. 나는 607호 김길자 시인님, 김민자 시인님과 나, 셋이서 한 방에 들었다. 여독을 풀며 쉬고 있을 때, 대구회 식당으로 저녁식사하러 나오라는 전화가 왔다. 늦은 점심 식사로 포만감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7시까지 모이라 했다.
우리 방 팀원 셋이서 좀 일찍 나와 포항연안여객터미널 주변의 바다를 바라보며 거닐었다. 석양의 황홀한 빛이 바다를 물들이고 하얗게 몰아오는 파도와 사막의 모래 물결처럼 잔잔히 날아오는 모래 바람이 곱다. 그 오붓한 바닷가에 대구회 식당이 있었다.
총총이 모여들고 저녁 만찬이 시작되었다. 오늘 저녁은 매일신문사에서 한국시인협회의 행사에 대한 협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김종해 회장님의 소개말씀과 매일신문 사장님의 인사말씀을 들었다.
정광태 (명예) 독도 군수의 건배 선창으로 축배의 잔을 들고 하나로 뭉치어 독도 사랑을 다짐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끼는 시간이다. 우리의 땅을 우리의 땅이라고 외쳐야 하는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사실은 이 저녁 만찬도 울릉도에서 가져야 했는데 배가 회항함으로 이곳 포항에서 갖게 된 돌발 상황이다. 그래도 140여명이 두 군데의 방에 나누어져 싱싱한 회와 해물찌개로 바다의 향기를 느끼며 문우의 정을 엮었다. 정광태 가수는 앞면과 뒷면이 독도 사랑과 ‘독도는 우리땅’노래 가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독도가 눈앞에 다가오는데, 독도에 대한 열변이 뜨겁게 이어진다.
창 밖의 바다는 까맣고 눈뜬 가로등만 커다랗다. 내일 울릉도로 재입도를 시도해 보고, 만일 들어가지 못하게 되면 그냥 서울로 돌아가는 것으로 임시 일정을 정했다. 모두들 예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는 다짐이지만, 우리를 울릉도까지, 아니 독도까지 인도하는 것은 오로지 신만이 알 일이다.
아름다운 저녁만찬이 아름다운 독도 행진으로 이어지길 기원하며 마지막 축배를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매일신문사 협찬 저녁만찬.일행을 챙기려 일어선 김종해회장님과 빨간 마후라의 정광태 독도명예군수
2005년 4월 4일 월요일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장엄한 행군
* 울릉도 재입도 성공
어제와 똑같은 순서로 영일만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포항연안여객터미널로 갔다. 다행이 오늘은 일기도 좋고 파고도 어제보다는 낮아 울릉도에 갈 수 있을거라는 예측이다.
포항연안여객터미널에는 인터넷 PC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따로이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잠시 배를 기다리는 시간을 틈내어 가족에게 이메일로 안전함을 전송하고 나의 시 카페에 안부글을 올렸다.
10시 정각에 썬플라워호는 울릉도를 향해 출항했다. 오늘은 기관사가 물너울이 심해 제1항로로 못 가고 제2항로로 간다는 안내 방송만 하고 잠잠했다. 날씨도 쾌청하여 바다 풍경과 뱃길에 부서지는 하얀 물보라가 장관이다. 맑은 날 배와 바다는 아름다운 향연이다. 지상의 어느 축제가 저리도 아름다울까. 배 양쪽에서 솟구치는 물보라가 하나로 중앙에서 만나 솟구친다. 하얗게 튀어오르는 물방울을 보며 생의 환희를 느낀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단체 객실 C실이다. 이곳이 그래도 배멀미를 덜하는 안전한 곳이다. 다들 시체처럼 누워있지만 평화로운 휴식이다. 시속 100km의 자가용 속도와 동일하다고 어느 분이 말해준다. 다행히 심하지 않은 파도로 오늘은 접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육안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제는 배가 지나간 자리를 사나운 파도가 금새 달려들어 메웠지만, 오늘은 배가 지나간 자리에 하얀 길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뱃길을 알려주는 부표인듯한 천연 색상의 빨노초 깃발이 간간히 보인다. 오늘은 편안한 마음으로 배의 창가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갔다. ‘바다를 가르며 하얀 피가 난다’고 무세중 교수는 시처럼 읊었다. 미술 교수인데 감성은 시인과 동일했다.
오후 1시 30분에 배는 무사히 울릉도에 도착했다. 재입도에 성공한 것이다. 조려온 마음만큼 기쁨이 컸다. 울릉도 선착장에서 사물패 장단으로 독도 수호식을 올리고 급히 독도로 가기 위해 이동했다.
포항에서 썬플라워호로 3시간을 달려 울릉도 도동항구에 내린 신비의 섬 울릉도
* 독도행 삼봉호
어제 울릉도에 들어와 울릉도 시낭송 행사를 마치고 오늘 독도에 들어가는 것이 순서인데, 어제 울릉도에 들어오지 못하여 오늘 독도까지 가야 한다. 오늘은 화창하여 심한 파도만 치지 않는다면 일정대로 독도에 입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믿는다.
울릉도에서 독도에 가는 배는 삼봉호로 오전과 오후 1회씩, 1일 2회 운항한다. 1층 180명, 2층 301명, 승무원 5명 총 215명 정원의 배다. 썬플라워호에 비하면 작지만 그리 작은 배는 아니다.
울릉도 선착장에서 곧바로 삼봉호를 탔다. 행렬을 놓칠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오후 2시에 출항하여 독도를 향해 배는 질주한다. 썬플라워호와는 배 안 구조가 다르다. 썬플라워호, 우리가 탔던 곳은 3면은 막혀 밖이 안 보이고, 배의 후미 1면만 밖을 볼 수 있는 유리창이 있었는데, 삼봉호는 2층 버스처럼 중앙에 계단이 있고, 좌우와 후미에 유리창 문이 있다. 그래서 배 안에 밝고 드넓은 바다가 잘 보인다.
나는 창가 의자에 앉았다. 배의 창가에 부서지는 파도 물보라가 창문에 뿌려진다. 잔결에서는 그냥 지나지만 좀 거친 곳에서는 어김없이 하얀 물보라가, 한 가득 담겨진 양동이로 위에서 붓듯 유리창 전면을 후려친다. 햇살과 푸른 물이 만나 창출하는 빛이 예술이다. 하늘과 수평선이 보이고, 한가득 넘실거리는 동해, 아니 태평양을 용감한 눈으로 바라본다. 물은 어디서 저리도 많이 모인걸까. 배의 아래를 보면 좀 무섭지만 저 멀리에는 푸른 평화가 있어 두렵지 않다. 삼봉호는 힘차게 달려나간다.
울릉도에서 독도로 떠나는 삼봉호 근경.오후 2시에 출항하여 4시에 독도 접근
* 선상 일행시 짓기
독도를 향해 푸른 바다를 질주하는 삼봉호에서 1행시를 지었다. 독도에 내려 솟대에 걸어두고 독도 수호식 행사에 사용한 후 독도 땅에 심어두고 갈 한국의 시혼이다.
한국시인협회 사무국 간사들이 흔들리는 배 안을 돌며 흰색, 파랑색, 빨강색 천과 검정 매직펜을 나누어주었다. 나는 흰색 천을 집었다. 이 세 가지 색 중 한 가지를 고르는데, 이 세 색상의 천은 태극기를 상징하는 것이다. 무릎 위에 신문지를 받치고 1행시를 지어 흰천에 새겼다.
독도여, 한국의 시혼을 심으려 우리가 간다
2005. 4. 4 월. 한국시인협회 김윤자
각 언론 매체 기자들은 카메라와 비디오 기기로 촬영하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말〕문예지 기자는 나의 1행시를 밀착취재하며 이 시가 무슨 뜻인지 설명을 부탁한다. 왜 썼느냐? 무슨 뜻이냐? 는 질문에 나는 힘주어 말했다.
독도에게, 이제 더 이상 울지도 말고, 외로워하지도 말고 고독해하지도 말라고 우리 한국시인협회에서 한국의 시혼을 심으로 간다고. 지금까지도 한국혼으로 잘 버티어 왔지만 한국의 시혼을 우리 시인들이 심으면 더 이상 고독한 섬이 아닐 거라고.
오후 4시 10분에 도착한다는 기관사의 방송이 나오고, 말 끝에 한국시인협회의 독도사랑행사의 성공을 빈다며, 꼭 1행시를 써서 한 분도 빠짐없이 솟대에 걸어놓고 가시란다.
시낭송 책자에 이름이 오르신 106명의 시인들은 꼭 그렇게 하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독도는 모두 천연 기념물이라고. 돌, 풀 어느 것 하나 가져가면 안 된다고. 이 배는 행사를 마치고 오후 5시 30분에 다시 울릉도로 출항하니 서두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장엄한 바다의 행군이다. 독도를 사랑하는 이 마음을 독도, 너는 알리라. 바다를 달리는 이 배, 삼봉호 역시 장엄한 질주다. 지치지 않는 뚝심으로 고독한 바다를 달린다.
모두들 1행시를 지어 들고 독도로, 독도로 달린다. 독도 땅에서 영원히 휘날릴 시혼을 매단 솟대를 그리며, 우리의 이 행사가 결코 헛되지 않기를 염원한다. 독도는 우리 땅, 한국의 영토임을 만방에 고하는 고결한 시혼이다.
[독도여, 한국의 시혼을 심으려 우리가 간다.2005.4.4.화.한국시인협회 김윤자]-삼봉호에서 지은 일행시
* 가슴으로 본 독도
아슬한 물언덕을 무던히도 넘어 달려온 삼봉호 여객선이 독도에 가까워질 무렵, 독도에 대한 소개와 환영한다는 인사말, 그리고 찾아주셔서 영광이라는 환대의 말과 함께 내리는 순서에 대하여 방송이 나왔다. 맨 처음 취재진이, 두 번째 사물패, 세 번째 낭송인, 마지막으로 시인들이 내리라고 한다. 독도의 접안 시설에 비하여 좀 넘치는 인원으로 안전상 질서를 유지해야 함을 사전에 주지시키고 있다.
시간은 오후 3시 30분, 이제 30분 후면 독도에 다다른다. 사물패 장단은 전통 의상으로 바꿔입고, 입항하기 전 마지막 절정의 무대를 배 안에서 펼치고 있다. 우리의 혼, 조국의 혼이 흐느낀다. 솟대와 여러 장비들을 들고 독도 땅에 내릴 준비를 서두를 때 기관사의 암울한 음성이 우리를 슬프게 했다.
독도 접안이 힘들다는 것이다. 풍랑으로 배가 섬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하다며 승객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기에 70여미터 떨어진 독도 앞 바다를 두 바퀴 서서히 돌아 오후 5시 정각에 다시 울릉도로 떠난다는 것이다. 그 동안 1시간의 선상 시낭송을 진행했다. 2층 배 후미 갑판 태극기가 휘날리는 선상에서 독도를 바라보며 성찬경 시인님 외 대표시인님들의 독도사랑 시낭송이 장엄한 바다 위에 구르고, 눈 앞의 독도는 묵묵히 듣고 있다.
비록 내려서 땅을 밟아보진 못했지만 바다 가운데 오롯한 독도의 동도와 서도, 그리고 부속 섬이 참 아름답다. TV나 신문보도상에서 보아온 사진보다 비교되지 않을만큼 어여쁘다. 〔가슴으로 본 독도〕라는 시제에 독도를 담아본다.
조선의 아씨처럼 어여쁜 독도의 동도 전경. 두개의 섬 중에서 아담하고 작은 섬
조선의 신랑처럼 우람한 독도 서도의 아름다운 전경. 가파르고 날카로운 바위로 된 큰 섬
[가슴으로 본 독도] / 松花 김윤자
조선의 아씨와 신랑이
고독한 바다에서 혼례를 올리고
무궁화 꽃송이 아가들 낳아
서른 여섯 식구 도란도란 어여삐 살고 있구나.
독도사랑 시낭송, 일백여 시인들
너를 만나러 달려왔는데
야속한 풍랑이 접안을 막아
바다 위 삼봉호에서 가슴으로 너를 보며
피보다 아픈 눈으로
눈물보다 짠 입술로 너를 만난다.
독도여, 한국의 시혼을 심으려 우리가 간다
일행시 지어 흰천에 새겨놓고
바라보는 내 눈시울이 시려오는데
순결한 울타리에
도둑바람이 서성이더라고
갈매기떼 발벗고 줄지어 날아와 흐느끼는데
너는 거룩하여라, 미동도 없이
정의로운 언어에만 귀를 연다고
한 주인의 방울소리에만 빗장을 연다고
살점이 다 깎이어도
웃으며 봄을 피워 올리고
마지막 남은 뼈 한조각일지라도
살빛 평화를 노래하고
다 부수어져 떠도는 혼백일지라도
대한의 맥으로 여기 남아
조국의 동녘 끝자리를 지키겠노라
푸른 피로 혈서를 쓴다.
바람에, 세월에 늙음이 찾아와도 너는 여기 이대로 영원하라. 너의 숨결을 지켜주는 무변의 생명체. 푸른 바다 물결이 수억만개의 눈과 귀를 쫑끗 세우고 너에게로 집중하고 있지 않느냐. 분명 이곳은 대한민국의 해역이고,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근엄하게 외치고 있지 않느냐. 우리 함께 용감하자. 바다의 신이, 하늘의 신이 올바른 심판을 할 것이거늘 무엇이 두려울소냐. 꿋꿋하게 지켜온 그 푸른 맥으로 왜인의 침범을 허용치 말라. 저 우렁찬 시낭송 시혼, 저 우렁찬 사물패 장단
바다와 하늘과, 독도와 육지인이 하나되어 역사의 한 획을 긋고 가노라.
독도는 정말로 생명의 섬, 신령의 섬이었다. 갈매기들이 끼륵끼륵 배 주위를 빙빙 돌며 환호함이 애달프다. 두고 떠나야 하는데, 어서 마무리하시고 자리로 돌아가라는 방송이 연이어 나오는데, 몸만 돌아설 뿐 마음은 독도와 갈매기에게서 떠나지지 않는다. 우리가 떠나고 나면 낙조가 너희들을 휘감을테고, 또다시 고독한 침묵으로 생을 엮겠지. 널 두고 떠남이 가슴 아프다. 독도여 안녕, 뜨거운 안녕!
오후 5시 정각. 삼봉호는 독도의 두 덩이, 우람한 서도와 새악시같은 동도를 한 폭의 수채화로 선창에 그리며 회항하여 울릉도로 뱃머리를 돌린다.
독도 앞바다 태극기 휘날리는 삼봉호 2층 갑판 위 선상 시낭송. 뒤로 보이는 것은 독도의 우람한 서도 봉우리
* 통화권 이탈
아쉽게 돌아선 독도가 가슴 속에, 머리 속에 애련히 남는다. 오후 5시 10분, 서서히 독도는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삼봉호는 바쁜 걸음으로 달리려 한다. 배가 더 속도를 내기 전에, 더 어두워지기 전에, 독도의 아름다움을 가족에게 전하고자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려니 〔통화권 이탈〕이라고 뜬다.
처음에는 그 글씨를 잘못 읽어 핸드폰 뚜껑을 덮었다가 다시 열었다. 통화권 이탈이라는 말을 확인한 것은 그리하기를 수차례 반복한 후였다. 내가 핸드폰을 잘못 조작하여 그런 줄만 알았다.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겼다.
아무 것도 조작이 불가능한 핸드폰을 들고 조금은 야속했다. 분명 이곳은 우리 해역이고, 우리 땅인데 왜 통화권 이탈이라는 말로 나를 슬프게 할까. 그것은 개인적인 슬픔이라기보다 국가적으로 분리된 영토의 아픔이다. 육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전화 기지국 설치도 불가능할 테고, 극소수의 사람이 머무는 곳이니 기지국 설치의 필요성도 못 느끼기에 그런 것일 거라고 위로하면서도 내 한쪽 가슴에서는 이런 현실로 인하여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이 아닐까 싶어 서러웠다.
〔통화권 이탈〕은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우리 정부에서 독도에 전화 기지국을 설치하여 독도가 완전한 우리 땅이길 빌어본다. 그 세밀한 상황을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아무튼 불가능함보다는 가능함으로 생각을 몰아가며 아린 가슴을 달랬다.
〔통화권 이탈〕이 해제된 것은 울릉도에 도착하기 20분 전에서야 알았다. 그 이전에도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울릉도에 20분 후면 입항하다는 방송을 듣고 핸드폰을 열었을 때 그 서러운 글자는 뜨지 않았다. 역시 독도는 고독한 바다, 고독한 섬이다. 동녘 끝땅, 문명조차 거부하는 순수의 땅이다.
독도를 두고 가려니 가슴이 아려옴에 동도와 서도를 꼬옥 품어 가고자 담은 풍경.조선의 아씨와 신랑이다.
* 파고에 대하여, 그 절감
독도에서 행사를 마치고 울릉도로 돌아가는 길은 바다와 배의 대전쟁이었다. 오후 6시경, 저녁 어둠이 내리면서 바다는 화가 난 듯 무섭게 일렁이고 배는 기우뚱거린다. 포항에서 울릉도로 향하던 배가 높은 파고로 다시 회항하던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높은 파고를 만난 것이다. 이곳에서는 회항하여 돌아갈 곳이 없음에 두려움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독도로 돌아간다 한들, 접안도 못하였는데 우리의 이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겠는가. 어디에서 잘 수 있겠는가.
오후 6시 30분, 점점 배는 세게 요동친다. 파도가 심하니 안전을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서지 말라는 방송이 나오고, 그런 방송이 아니어도 일어설 수가 없다. 영원을 깨무는 아픔으로 바다는 그래도 하얗게 길을 열어준다. 가야지, 가야지, 입술을 꽉 다물고 달리는 배는 더욱 용감한 질주로 나아간다.
무심한 어둠은 사위를 휘돌고, 태평양 망망대해는 본색을 잃어가고, 이런 상황에서 사고라도 당하면 속수무책이라는 불안감이 잠들지 않는다. 요동침과 뒤집혀 갈라질 것 같은 난파 직전의 굉음으로 모두들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머니 가슴이 저리 깊었을까〕-〔아버지 뚝심이 저리 깊었을까〕-〔바다 위에도 밤은 나리고〕-〔울지 않는 바다〕-〔슬플 때 웃는 바다〕-〔파고에 대하여, 그 절감〕
바다에 대한 나의 시제는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 무심코 듣던 파고에 대하여 절감하는 순간, 순간들이다. 3∼4m 파고의 위력이 대단하구나. 배를 쪼갤 것 같은 마찰음과 진동, 아! 이게 바로 바다 위 대지진이구나. 마지막 시제는 〔밤바다는 사나웠다〕로 마감했다. 수많은 세월, 사나운 풍랑에도 꿋꿋한 침묵으로 살아가는 독도의 인내에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독도를 떠날 때 본 동도와 서도 사이 예쁜 작은 섬과 갈매기들.바다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갈매기뿐이다
* 울릉도 저동항에 입항
독도를 떠난 배가 울릉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7시 20분 캄캄한 밤이다. 오는 도중 갑자기 세차게 몰아치는 풍랑에 여객선 삼봉호는 많이도 힘겨웠다. 일행도 모두 지쳐 있다. 배가 접안하기 20분전, 6시 50분에 방송이 나왔다. 20분 뒤에 도착예정이며, 파도가 세어 도동항에 접안이 불가능하여 저동항으로 입항한다는 것이다. 어느 곳이면 어떠할까. 모두 우리의 포근한 땅 울릉도인 것을.
통화권 이탈로 가족에게 보내지 못한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때는 가족 셋 중 한 사람에게만 보냈는데 요번에는 큰 아들, 작은 아들, 남편에게 동시에 보냈다. 사실은 평안한 문구로 '독도에서울릉도가는중10분후도착예정독도는조선의아씨와신랑이다'(4/4 오후 7:15 - 돌아와서 확인한 내용과 시간) 이렇게 써서 보냈지만, 그 사나운 바다에서 불안했던 가슴을 다독이고자 보낸 글이다. 이제는 죽지 않고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 표출의 함성이기도 했다.
어느 시인은 하선하여 말했다. 배가 죽기 살기로 달리더라고. 정말로 바다와 배의 무서운 싸움이었다. 어두움에 비례하여 파도는 세어지고, 파도에 비례하여 배의 속도는 빨라졌다. 그에 따라 배는 바다에게, 바다는 배에게 지지 않으려는 막강한 힘을 쏟는 듯 했다.
잠시 비틀거릴지언정 쓰러지지 않고, 세찬 바다를 이기고 무사히 우리를 울릉도에 내려준 삼봉호가 참으로 고마웠다. 포구의 밤은 참 아름답다. 울릉도 저동 항구마을 불빛 사이로 새가 멍멍 짖어대는 소리, 아! 그건 고독을 사르는 소리였다. 어두워서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조선의 옛 향기가 그윽하다. 아름다운 땅이다.
하선하여 어둔 밤길에 두 눈을 크게 두리번거릴 때 이미 셔틀버스는 나란히 줄 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밤 울릉군청에서 열리는 시낭송 축제를 위해 마중나온 것이다.
버스 안에서 정광태 가수는 독도에 내리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차라리 일본에 가고 싶다고. 팔아버리고 싶다고. 우리의 땅인데 이렇게 밟기가 힘들다고. 피를 토하듯 말한다. 작년 8월 5일 새벽 5시에 대한의 전사들 45명이 울릉도에서 수영으로 독도에 갔는데 28시간만인 8월 6일 아침 9시에 도착했다고. 그 45명 중에는 여중생 2명과 의족을 한 사람 1명도 있었다고.
14시간 수영할 때쯤 보도진이 사진을 찍고, 배에서 손을 흔들어 주는데 그건 기쁨이었고, 그건 눈물이었다고. 뗏목만 타고 간 적도 있다고.
내리지 못한 이 서러움, 이 비통함, 우리의 땅인데, 이렇게 어려운 땅이라고.
마음이 진정되었을 때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무리하게 독도에 접안하다간 난파당하여 큰일난다고. 물론 또다른 배가 따라 오니, 다시 그 배로 나오겠지만 그런 위험성 때문에 접안을 못한 거라고. 독도 곁에까지 간 것만도 행운이라고. 그렇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장엄한 행군을 성공하고 이곳 울릉도 저동항에 무사히 입항한 것은 큰 행운이다. 먼 발치에서나마 바라본 독도 땅, 우리의 땅이 눈물겹도록 고맙고 감사하다.
* 울릉군청 시낭송 축제
울릉도 저동항에서 울릉군청까지는 그리 멀지는 않으나 험한 언덕길을 오르내린다. 거칠고 굴곡이 심하여 흔들림이 세다. 알고 보니 울릉도에는 산길이 많고, 90。 각도로 꺾어지는 길이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서 길을 거칠게 만든 것이었다. 육지와는 다른 점을 어둠 속에서 짜릿한 전율로 맛보며, 독도초등학교를 지나 울릉군청에 이르렀다.
사실 오늘밤 이 시낭송은 어제 오후에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포항에서 하루가 지연되어 오늘밤에 하게 된 것이다. 지금 시간 밤 9시, 모두들 배고프고 지쳐있다. 독도까지 다녀온 직후라서 아직도 무서운 배의 요동침 잔상이 남아 어지럽다.
그러나 울릉군청에 들어서자 이미 울릉도 주민들은 한 가득 꽉 차 있고 '한국시인협회 울릉도 시낭송 축제' 라는 커다란 글씨의 대형 프랑카드가 무대 위에서 우리 일행을 따스히 맞아주고 있다. 모두들 평온한 마음으로 자리에 착석했다.
이승하 교수님의 사회로 진행된 1시간 동안의 시낭송 축제는 뜨거웠다. 모두들 독도사랑에 대한 다짐이고 수호 맹세다. 김종해 회장님 인사에 이어 울릉군수의 환영 인사와 함께 오늘밤 좀 늦었지만 저녁만찬을 베풀어주신다는 끝인사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여 주신다. 나의 앞좌석에는 울릉초등학생과 울릉중학생들이 앉아 있다. 가슴에 단 명패를 보더니 '와! 시인이다' 하며 신기한 듯 도란거리며 자꾸 뒤돌아본다. 나의 명함을 주는 것으로 분위기를 다독이려니, 옆의 학생도 달라한다. 중학생이라는데 다시 한 장 꺼내어 뒷면에 이메일 보내면 답신 주겠다는 내용의 몇 글자를 적어 줌으로 조용해졌다. 참으로 순진하고 때묻지 않은 아이들이다.
시낭송 축제는 고은 시인님의 첫 낭송으로 시작되어 이건청, 이생진, 이기철 시인님 등으로 이어졌다. 독도를 외갓집에 갔다가 손놓친 손주로 은유하여 아픔을 노래한 이기철 시인님의 〔소년 독도〕는 가슴 저린 감동이었다.
1부와 2부 사이에 김경배 님의 배뱅이굿이 있었다. 함께 무대에 오른 여인의 장구 추임새로 애절한 우리 가락이 이어진다. 독도 아리랑을 부를 때는 모두들 숨죽여 시린 마음으로 들었다. 시낭송 2부는 서안나 시인을 시작으로 전윤호, 김왕노, 편부경 시인으로 이어졌다. 편부경 시인은 주민등록을 독도에 옮긴 독도지킴이다.
시낭송이 끝나고 가수 정광태 님과의 노래 시간으로 '독도는 우리 땅' 합창을 했다. 반주 볼륨을 더 크게, 더 크게라는 사인과 함께 강당이 떠나가라 하나되어 손뼉치며 불렸다. 눈물겨운 일이다. 정당한 우리 땅을 독도는 우리 땅이라 강조하며 노래함이 분통터진다.
마지막 순서로 편부경 시인에게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설립 및 지회장을 수여하고, 독도 경비대에게 감사패를 김종해 회장님이 전달했다. 그리고 책과 기념품도 전달했는데 회장님의 덧붙임 말씀이 있었다.
무사히 시낭송 행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밤은 깊어 싸늘한 바람만 거리를 휘돈다. 울릉 군수님이 베풀어 주신다는 만찬 장소로 우리 일행은 이동했다.
울릉군청에서의 울릉도 시낭송 축제.정광태 가수겸 독도명예군수의 '독도는 우리 땅' 열창.박수와 힘찬 합창
2005년 4월 5일 화요일
신비의 섬 울릉,울릉도 나리분지 탐방
* 울릉리조트 대아호텔
울릉도 시낭송 축제를 마치고 나서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밤 10시가 조금 넘어 거리는 한산하다. 만찬 장소로 걸어가는 길이 언덕 내리막으로 계속 이어진다. 육지의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가파른 길에 바람까지 심하게 분다.
울릉도 특산품이라는 치나물과 오징어회무침이 진한 향으로 입맛을 돋우어 즐거운 저녁 향연을 마치고, 조금 걸어나가 미리 대기중인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갔다. 우리가 숙박할 곳은 울릉리조트 대아호텔이다. 그날 밤은 사방이 어둠에 싸여 지정된 방으로 가는 길 외는 보지 못했다.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길 2층의 아담한 건물이다.
방팀은 4명으로, 권천학, 김길자, 김민자, 나. 이렇게 넷이서 잤다. 모두들 내게는 언니 시인들이다. 권천학 시인님과 초면이다. 아름다운 담소를 나누는 것도 오늘은 무리다. 포항에서 독도까지 독도에서 울릉도까지 장장 배를 탄 시간만도 8시간이다. 머리가 흔들리는 느낌이 가시지 않아 곧바로 자리에 누웠다.
울릉리조트 대아호텔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다음날 아침에서야 알았다. 창문을 열었을 때 눈 앞에 전개되는 바다와 일출의 장관, 해변에 피어오르는 해무가 호텔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그리고 호텔 구조가 2층 얕으막한 건물로 줄지어 붙어 있다. 도시의 높은 호텔과는 대조적이다.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풍경이 록키산 매리어트 호텔과 같다. 모양도 참 예쁘다. 크림으로 만든 보드라운 집, 장난감 조립으로 만든 아기자기한 집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풍경을 본 것은 호텔 밖으로 나왔을 때다. 산 언덕에 또다른 호텔 집들이 즐비하다. 호텔 본관 건물만 바닷가 평지에 있을 뿐 모든 호텔의 숙소가 산자락에 지어져 있다. 그것도 가파른 산의 나무 사이 사이, 꼭 2층의 개인집 같은 모양이다.
바닷가에 작은 마을이 동화 속 이야기처럼 형성되어 있다. 두 개의 우람한 산봉우리와 산에 사는 나무, 바위들이 육지의 생김과는 다르다. 눈부신 아침해가 조명함에 산정의 바위 형상이 뚜렷하게 조명되고 오랜 세월을 바람만 먹고 산 울릉도 특유의 나무들이 다부지다.
그런 나무들이 호텔 집들을 더욱 아름다움으로 이끈다. 울릉리조트 대아호텔은 지은 지 얼마되지 않은 듯하다. 호텔 뷔페식으로 아침식사를 할 때 전면이 대형 유리창인 창가에서 먹는데, 바다를 사이에 둔 공간 뜨락에 수영장과 나무 심기 등 인부들이 작업하는 광경이 보였다. 다 완성되면 그 아름다움이 더 클 것이다. 정말 다시 찾고 싶은 호텔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로비에서 다음 일정을 기다렸다. 로비 역시 어느 잘 발달된 문명국에 온 착각이 들만큼 세련되고 아름답다. 꽃과 화분, 창 밖의 바다 풍경이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바다 쪽의 창은 전부 대형 유리로 설치해서 저 멀리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과 가까이 어부의 노젓는 손까지 다 보인다. 참 향기로운 호텔이다.
울릉리조트 대아호텔 안내데스크에서.'우리는 숨자'하며 아래에 감춰버린 천진한 울릉도의 두 남녀 직원
* 신비의 섬 울릉도
이제 한국시인협회의 독도사랑 시낭송 축제는 무사히 마쳤고, 오늘 오후에는 울릉도에서 포항으로 나간다. 남은 오전 시간은 신비의 섬 울릉도를 돌아 보았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 여러 대에 나누어 타고 오전 9시 30분에 관광길에 올랐다. 운전 기사가 가이드 역할까지 한다.
호텔에서 울릉도 해안도로로 나가는 첫 길목부터 꼬부라진 길을 만나고, 경사진 주변 밭뙈기에는 파란 나물이 소담스럽다. 울릉도 특산물인 부지깽이 나물로 1년에 3회 채취한다고. 그리고도 키가 2m나 자라 불쏘시개로 사용됨에 부지깽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치나물도 이곳 울릉도에서 많이 생산되는데 산 곳곳에 재배되고 있다. 이 두 나물은 모양이 비슷한데 옅은 초록색이 치나물이고 검은 빛이 도는 초록색이 부지깽이 나물이라고 알려준다.
차가 해안도로로 나왔을 때 울릉도 바다는 절경이었다. 축복의 눈부신 햇살이 바닷물을 더욱 푸르게 하고 바다의 최끝단으로 확 트이게 내어놓은 포장도로가 상큼하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이 1년에 50일밖에 안 된다며, 어떤 여행객은 여관비로 돈 다 날리고 간다 했다. 어제의 풍랑도 그저께의 비 내림도 오늘의 이 상쾌하고 기분좋은 날씨로 잊혀진다.
차는 계속 해변으로 달린다. 도로 가까운 해변의 바닷물 속에, 또는 바닷가에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서 있다. 장작을 켜켜이 쌓아놓은 듯한 장작바위, 거북이 한 마리가 산으로 오르는 듯한 거북바위, 사자바위, 노인바위, 코끼리 바위 등등 참 아름다운 풍경이 바다 위에 전시되어 있다. 거북바위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코끼리 바위가 보이는 등대길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전천후 항구를 조성하고 있는데 방파돌 한 개 값이 200만원이라고. 이 항구가 완공되면 육지의 도시로 배가 드나듦이 지금보다 편리해질 것이란다. 도로 곳곳 파손된 곳을 복구 중인데, 매미 태풍으로 입은 피해가 아직도 아물지 않음이다. 공사 중인 도로를 피해 차는 계속 달린다.
끝없는 바다가 가슴에 안겨온다. 울릉도는 다 해수욕장이란다. 바닷가 수심이 낮고 깨끗하여 가다가 더우면 그냥 벗고 들어가 수영을 한단다. 널쩍한 두 바위 사이를 건너가는 쇠다리를 보았다. 가족이 모여 노는 장소란다. 바다의 반대편으로는 높고 낮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산과 바다의 신비로운 조화다.
산에는 향나무가 많다. 절벽에 아스라이 걸터앉은 향나무가 신선인 듯 고요하다. 울릉도의 기후가 산을 향나무 단지로 키우고 있었다. 수백년된 향나무가 울릉도 항구의 산 절벽에, 산 능선에 한 폭의 동양 수채화로 자리잡은 모습도 보았다.
울릉도의 3무(三無)가 도둑, 공해, 뱀인데 향나무 향기가 독해서 뱀이 없다는 것이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울릉도의 산에는 진초록 고운 자태의 향나무가 많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울릉도의 5다(五多)는 물, 돌, 바람, 향나무, 어민이라고.
이렇게 아름다운 울릉도에 사람들이 입항한 것은 1882년 고종이 이 섬을 열어주면서부터이고 1883년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인구가 많을 때는 3만명까지 되었단다. 그땐 대부분 오징어잡이 어민으로 20∼30명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물레로 올려서 수동으로 오징어를 잡았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2∼3명의 어부가 잘 발달된 기구로 오징어를 잡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좀 서글픈 앙금으로 들렸다. 울릉도의 현재 인구가 1만명도 안 된다는데 어부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고기잡이의 발달이 어민들을 도시로 내보낸 것이다. 그리고 큰 이유로 자녀들 교육 때문에 이 섬을 떠나고 있다 한다. 예전에는 초등학교가 11개로 학교도 많았는데, 지금은 초등학교 6개, 중학교 5개, 고등학교 1개로 줄었고, 실제로 폐교된 초등학교를 보았다.
자동차는 3천대로 세 집에 한 대 꼴이다. 상당히 발달된 섬이다. 바다와 접한 것 빼고는 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울릉도에 와 보기 전에는 가냘프고 작은 섬으로 상상했는데 아니다. 상가가 밀집된 도심 마을에는 어느 것 하나 불편없는 편의시설이 다 있다. 육지 대도시의 상가를 보는 듯하다.
산촌 마을에는 노부부의 나물뜯는 손길이 아름답고 어촌 마을에는 어부들의 고기잡는 손길이 아름답다. 산과 바다가 조화로운 천혜의 섬이다. 우린 말했다. 여건이 주어진다면 이곳 울릉도에 와서 살고 싶다고. 그 말 속에는 울릉도에 대한 깊은 해석이 담겨 있다. 신비의 섬, 울릉도는 그렇게 이방인의 마음을 붙들고 있다.
독도와 울릉도 시낭송을 마치고 신비의 섬 울릉도 해변도로 곁의 코끼리 바위가 보이는 형포등대 길에서
* 울릉도 나리분지 탐방
해안 도로를 달리면서도 터널을 여러 개 만났다. 터널 입구에는 교통신호가 있어 초록불이 들어와야 진입한다. 외길이어서 그렇단다. 중국 장가계 무릉원 산길에서 만난 터널 같다. 최장 460m라는 삼막 터널을 지나자 차는 해변도로에서 멀어지고 점점 고지의 길로 접어든다.
운전기사는 말한다. '지금부터 아홉 고개 오릅니다. 열두 고개 오릅니다. 스무 고개 오릅니다.' 이런 식으로 가파른 길을 만날 때마다 예고를 한다. 울릉도는 직선도로가 없고 대부분이 8자형 도로란다. 나리분지에 가는 길은 8자도로의 연속이다. 산을 빙글빙글 돌아서 올라간다. 사람들의 긴장감을 줄여주려는 듯, 기사는 넌센스 퀴즈라며 문제를 맞춰 보란다. 정자와 정치인의 공통점이 무엇이냐고. 답이 나오지 않자, 인간이 될 확률이 수억만 분의 일이라는 점이 공통이라고 말함에 차 안은 웃음이 가득했다. 의자 등받이를 꼭 붙잡아도 심한 요동으로 몸이 기우뚱거리는데, 노련한 기사의 유우머로 잠시나마 웃음이 요동쳤다.
도로변에서 만난 묘지가 육지와는 다르다. 위가 뾰족하다. 비바람에 잘 견디도록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간간이 만나는 고산 마을에는 논을 밭으로 바꿔 치나물을 재배하고 있다. 그래서 뱀과 개구리가 사라졌다 한다. 물이 마르니 개구리가 죽고, 개구리가 없어지니 뱀도 죽고, 먹이사슬이 파괴된 것이다.
조금 평평한 마을에서, 울릉도 유일의 연못이 하나라는데 그 연못을 만났다. 육지에서는 웅덩이라 불러도 될 만큼 아주 작은 규모다. 이 큰 울릉도에 못이 하나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던 대목인데, 나리분지에 오르고서야 이해가 됐다. 울릉도 땅은 거대한 산이 솟아오른 한 덩이의 형상으로, 가운데 부분은 높은 봉우리의 산이고, 아랫부분은 곧바로 바다로 이어짐에 마을이라고는 산과 바다 사이 겨우 작은 촌락이다. 어촌, 아니면 산촌이기에 물의 필요성도 없고, 물을 가둘만큼 큰 땅도 없어서 그런 거라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고갯마루를 계속 오르면서, 이 거친 길도 감지덕지란다. 전에는 이 높은 산길을 걸어서 다녔고 운반 수단도 지게뿐이었단다. 가파른 언덕에서 대형 풍력 바람 개비를 하나 만났다. 고적하고 외딴 산길에서 문명의 흔적을 만남에 반가웠다. 울릉도에는 발전소가 4개인데 화력 4개, 풍력 1개, 수력 1개라 한다.
바위와 터널을 만나면서 해안도로를 질주하던 차가 산정으로 오르는 길에서도 개미처럼 부드럽게 잘 오른다. 나리마을이라는 입간판이 보이고 드디어 분지에 도달한 것이다. 해발 500m의 움푹 패인 분지마을이다.
분지에 사람이 사는 곳은 다 두 곳인데, 이태리와 이곳이라 한다. 60만 5천평으로 나리가 많아 나리분지라 부르는데 한약재배지였으나, 중국산에 밀려 지금은 주로 더덕을 재배하고 있었다. 울릉도 표상이라는 너와집과 토막집 2채가 입구에서 손님을 환영하고 있다. 너와집은 기와를 얹은 가옥이고, 토막집은 통나무로만 지은 가옥이다.
마을의 중앙에 형성된 나리촌 주막집에서 휴식하며 나리분지를 살펴 보았다. 바닥은 양지녘으로 따스한 기운이 감돌고 싹이 돋아 파릇한데, 장엄하게 서 있는 산에는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캐나다의 록키산을 연상시키는 산이다. 울릉도 성인봉에는 눈이 많은데 6월에도 안 녹는다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에서 조껍질술과 더덕파전으로 건배를 하며 나리분지의 깊음만큼 문우의 정을 깊이 나누었다.
산에는 눈이 평지에는 사람이 사는 울릉도 나리분지 마을에서.독도 지킴이 (우)편부경 시인과 함께
* 울릉도 오징어와 운전 기사
나리 분지에서 다시 하산길을 타고 내려와 해안도로를 달려온 길을 다시 그대로 간다. 올 때는 학포 만물상 전망대에서 단 한번만 휴식했다. 절벽 아래 바위에 부서지는 환상적인 파도 분말과 물빛, 그 곁에 솟은 산이 어우러져 장관이다. 이 곳은 나리분지와 해변의 중간쯤되는 고지인 듯하다.
순식간에 바닷가에 내려온 버스는 터널을 지나, 항구와 바위들 곁을 지나 힘차게 달린다. 아까 이 길을 지나갈 때 전봇대에 오징어가 걸렸으니 한 마리씩 따 잡수시라던 기사의 말을 이제서야 이해했다. 매설을 못 해서인지 전깃줄이 다 위로 지나는데 전봇대 하나에 한 마리씩 오징어 모양의 마스코트를 걸어놓았다. 바다 곁에 거대한 오징어 동상도 세웠다. '울릉도 오징어' 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산과 접한 도로의 수많은 전봇대에 삼원색으로 선명하게, 귀엽고 아름답게 만들어 걸어둔 오징어가 고운 미소로 춤추고 있다.
기사는 신이 났는지 또 유우머를 쏟아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영화 볼 때 가슴이 뭉클하면 예술이고, 몸이 뭉클하면 외설이란다. 또 손수건이 필요하면 예술이고, 화장지가 필요하면 외설이란다. 운전도 농담도 노련한 기사다. 시내버스로 나리분지까지 다녀와도 왕복요금이 12,000원인데 이 관광버스는 15,000원이니, 얼마나 이 차가 좋으냐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묻는 말에 대한 즉각적인 답도 절창이다. 바닷물 속에 서 있는 코끼리 바위 등짝도 하얗고, 야트막하게 드러누운 바위도 하얗기에 물었더니, 저곳이 갈매기 수세식 화장실이어서 그렇단다. 간간이 진담을 말할 때는 더욱 또렷한 음성이다.
후박나무가 울릉도에 많은데 그 열매와 껍데기를 한약재로 쓰며 천연기념물이라 한다. 여수 오동도에서 본 덩치 큰 후박나무가 떠오른다. 천연 에어콘이라는 풍혈을 지나, 악어터널을 지나, 박찬호 야구 글로버 바위를 지나, 거북이가 나온다는 구암 마을을 지나 달리고 달린 버스는 울릉 리조트 대아 호텔에 이르렀다. 아름다운 오징어와 아름다운 기사, 울릉도의 생생한 특산물이다.
울릉도 나리분지 탐방 후 하산길.울릉도에는 8자형 도로 밖에 없다는 말을 절감하는 아찔한 순간
* 울릉도 선착장에서의 마지막 예술제
울릉 리조트 대아 호텔 입구에 '한국시인협회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라는 프랭카드가 우리를 반긴다. 지난 밤길에 보지 못한 것을 지금 본다. 고맙다. 호텔 뷔페식은 한정식이 8,800원이고 그냥 뷔페식이 9,800원이라 쓰여 있는데 점심은 한정식으로 먹었다. 모두 값이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메뉴로 좋다.
오후 2시에 셔틀버스를 타고 도동항으로 이동했다. 포항에서의 회항으로 행상 일정에 차질을 빚어 독도에서 했어야 할 예술제를 울릉도 선착장에서 했다. 중앙대학교 무세중 교수와 그 부인 무나미, 그리고 최대식 교수가 이끌어가는 독도 수호식 굿은 눈물겨웠다.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배가 출항하기 전 1시간 동안 우리 한국시인협회 시인들과 울릉도 주민들과 뜨거운 한마당이었고, 열띤 취재진들의 촬영기기 물결 또한 뜨겁다.
여객선 썬플라워호 바로 앞에 흰천을 깔고 젯상을 차려놓는 것으로 시작하여, 솟대에 1행시 매달기, 1행시가 쓰여진 빨강, 파랑, 하양색 천에 백두산에서 퍼온 흙 바르기, 태극춤, 대형 태국기 휘날리기 등 독도는 우리 땅임을, 그래서 지켜야 함을 탄탄하게 다지는 장엄한 행사다. 눈과 귀가 집중되어 하늘과 바다와 땅이 하나되고, 독도 수호의 우렁찬 사물패 장단이 가슴을 울린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언어가 독도로, 일본으로 달려간다. 올바른 잣대로 진정한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의 바램이 헛되지 않기를 빌고 또 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독도와 울릉도 예술제는 무사히 마쳤다.
4시 정각에 배는 출항했다. 독도 사랑 시낭송 예술제, 한국시인협회의 방문 환영 프랭카드가 멀어지고 울릉도 도동 항구마을이 이별을 고한다. 산 절벽에, 산정에 수백년된 향나무가 겸손한 절로 배웅하고, 계단처럼 층층이 늘어선 고운 집들이, 우리의 귀향길 선물을 샀던 울릉농협마트가 까치발로 떠나가는 배를 지켜본다. 거대한 여객선은 석양의 아름다운 바다를 가르고 포항으로 질주한다. 독도와 울릉도에게 뜨거운 안녕을 외치며 떠나왔다.
울릉도 선착장에서 마지막 돌아오는 날 진행된 예술제.솟대에 시인들이 지은 일행시를 매달아 휘날리는 모습
2005년 4월 6일 수요일
서울도착, 새벽의 귀가길
* 서울의 새벽 귀가길
울릉도에서 오후 4시에 출항한 썬플라워호 여객선은 심한 풍랑을 이기고, 어둠을 가르고 포항연안여객터미널에 밤8시에 입항했다. 일행이 한데 모여 포항에 도착하던 첫날 집결지였던 영일만 식당 앞 주차장에서 대기중인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형관광버스 3대가 올 때처럼 우리를 싣고 고속도로 야간주행으로 달린다.
촉박한 시간 관계로 저녁 식사는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 했다. 벽면 대형 TV에서는 밤9시 뉴스 보도 중인데, 독도에 대한 일본의 왜곡 보도가 줄줄이 이어진다. 남다른 감회로, 남다른 느낌으로, 그리고 날카로운 예지의 눈으로 바라보며 한마디씩 건넨다. 저건 아니라고, 진정 아니라고.
모두들 지친 몸으로 잠든 사이 고요한 밤길을 달려온 버스는 새벽 2시경 운현궁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출발한 곳이다. 싸늘한 새벽 기온이 감도는데, 이젠 각자의 집으로 갈 방법이 걱정이다. 남자 시인들은 야간 택시라도 타고 갈 수 있겠지만, 여류 시인들은 집에서 데리러 오지 않으면 움직이기 어려운 시간이다. 대중교통수단이 다 끊긴 적막한 밤길이다.
삼삼오오 모여 이동한 곳은 모두 다르겠지만, 나와 김민자, 권천학 시인은 한국시협 사무실 지하 건물에 있는 사우나탕에 갔다. 그곳 욕탕에서 몸을 씻고 잠시 눈을 붙인 후 새벽 5시 30분 수원행 첫 전철을 타기 위해 나왔다.
서울의 새벽 귀가길이다. 토요일에 출발하여 수요일 아침에 돌아가는 4박 5일만의 귀가다. 울릉도 특산물로 산, 오징어 두 축과 부지깽이 나물, 치나물이 무거운 무게로 어깨에 매달려도 새벽에 내딛는 걸음이 희망차다. 독도를 만나러 가는 길도 장엄했고, 독도를 만나는 것도 장엄했고, 행사도 장엄한 축제였고, 돌아가는 새벽길 또한 장엄한 순간이다.
첫댓글 찿고 찾아 왔습니다. 언젠가 가봐야 할곳. 독도. 독도38번지(저의 본적지랍니다)
방삿갓님, 반갑습니다. 독도, 그 아름다운 곳이 님의 본적지군요. 정말 잘 지켜야 하는 땅입니다.